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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구 Nov 13. 2023

고백

오래된 가방

고백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건 너를 꼭 껴안아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조물주는 답을 알려주지 않았고, 심지어 너를 처음 만났을 때조차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 그러나 그 답을 알려준 건 결국 너였어.


#1

너를 처음 만난 건 아마 3년 전이었을 것이다. 나와 너 사이에 오작교를 놓아준 건 너와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었지. 그 친구도 나를 좋게 봤는지 너에게 소개해주고 싶어 안달이더라. 나를 처음 만난 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심을 보였던 네 두 눈이 어렴풋이 기억나.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부터 너의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어.


너는 늘 너의 작은 일상 그리고 꿈을 나와 함께 나누려 했어. 이러한 것들로 나의 부족한 내면을 채울 때마다, 이상하게도 너를 두 팔로 꼭 껴안아주고 싶었어.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네가 무사히 하루를 끝내고,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가길 바랐거든. 그렇게 때로는 가슴 설레게, 때로는 땀이 날 정도로 뜨겁게 끌어안아 주고 싶었어.


하지만 이런 내 진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작 너는 내게 절반의 진심만을 내주더라고. 너와 두 눈을 마주 보고 가슴을 맞대고 껴안으려는 나의 보챔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주변 시선이 신경 쓰였던 걸까. 대신 자기 등에 업히는 건 허락해 주었지. 그렇게 꿈을 좇아 앞만 바라보는 너의 뒷모습이라도 뜨겁게 안아주기로 했다.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안기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어. 내 두 팔의 힘이 다 빠진 건지, 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건지, 나를 차갑게 떼어내버리곤 했어. 너를 뜨겁게 안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너의 반복되는 매정함에 나는 점점 지쳐만 갔어. 두 팔의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내 마음 한 구석에 조그만 상처가 나기 시작했거든.


다행히 너는 눈치가 빨라 내 아픔을 금방 알아채더라. 내 팔을 잡고 좌우로 늘려 가며 마사지도 해주고, 내가 좋아하는 옷을 사주며 달래주는 등, 너에게 미약하게나마 따뜻함이 남아 있더라.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너에게 서운한 마음이 풀리는가 싶더니, 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너는 여전히 내게 등을 보이기만 했다. 대체 나는 왜 너와 함께 하는 것이며, 왜 너를 끌어안고 싶었던 것일까.


그 답을 알게 된 것은 놀랍게도 늦은 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였다.


#2

홍대입구에서 너와 데이트를 하는 날, 밤 11시가 넘어서 집에 가야 했어. 사는 곳이 가까워 같은 버스를 탔어. 그날따라 피곤했는지 몸이 기울면서 너의 무릎에 머리가 닿았고, 그 순간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너와 두 눈이 마주치자마자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어린아이 같았던 너의 두 눈이 빛나는 것을 봤어. 그리고 이어진 너의 한 마디.


"지금까지 네가 나를 안아주려 했던 노력들이 당연하게만 느껴졌어. 너를 일상의 일부분을 함께하는 존재로만 생각했어. 무엇보다 꿈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내게, 등 뒤로 너의 따뜻함을돌아볼 여유가 없었지. 하지만 오늘밤 내 두 눈으로 너의 진짜 모습을 보고야 말았어. 너는 나의 일상을 나눠 갖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 없이 따뜻한 사랑을 나눠주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너의 따뜻한 무릎에 안긴 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진짜 이유를 드디어 찾은 거 같아.


* 이 글의 화자를 가방이라 생각하고, 상대가 나라 생각하고 이 글을 다시 읽어보세요. 사랑의 본질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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