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으려면

힘든 때에도 일상을 지켜야 하는 까닭

by 시누의 서재

그를 처음 본 건 작년 11월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서 말을 기깔나게 잘하는 한 중년 남성을 봤어요.


누구와의 논쟁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조목조목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모습에 호기심이 잔뜩 생겼죠.

찾아보니 그 사람의 강연과 말, 사상 등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유튜버들이 우리나라에만 꽤 여럿 있었어요.

이미 알고 계신 분도 많으시겠지만, 바로 조던 피터슨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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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을 수십 개 보고선 때마침 출간되어 있던 책까지 곧바로 읽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처음으로 나름의 '독서노트'를 만들어서 가슴에 와 닿는 말들을 옮겨 적으면 곱씹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챕터, 그중에서도 거의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래야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인생이 완전히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번에는 이 구절에 얽힌 이야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 말 덕분에 제 인생이 아직까지는 완전히 망가지지 않고 견디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야' 앞에 나올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강인하다. 지금 눈앞에 놓인 문제를 마주할 용기만 낸다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아주 사소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12가지 인생의 법칙> P.485


아마, '뭐야,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그런 말이잖아.' 하고 다소 기대했던 마음이 식어버린 분도 계실 거예요.

저는 사람은 강인하다는 말에는 큰 감명을 받지 않았어요. 저도 살면서 백만 번은 더 넘게 들었으니까요.

문제를 마주하라는 말 또한 마찬가지일 겁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조금은 충격을 받았어요.

전의 챕터에서 잠깐 나왔던 '힘든 순간에도 일상적인 삶을 지켜나가야 한다'라는 말과 겹치며

당시 겪고 있던 심리적 불안정을 헤쳐 나갈 방법을 찾은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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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1년쯤 앞둔 시점까지 저는 큰 풍파라고는 없는 삶을 살고 있었어요. 저의 인생 항해는 말 그대로 순항 중이었죠. 슬슬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안 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자세한 이야기를 적어봤다가, 구구절절 재미가 없어서 다 지웠네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어머니의 등쌀에 마지못해 취준을 하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창업 준비를 하다 다시 취준을 하게 된 상황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될 줄 알았던 삶에 빗금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땡'하고 오답 표시가 생긴 거죠. 결론적으로는 제 깜냥과 의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만요.


긍정적인 멘탈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가끔씩 불안감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실패'랄까,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것이랄까, 그런 경험을 많이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그런 것들이

쏟아지니 온몸의 지표들이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자존감, 자신감, 정신력, 의지력 등이 말이죠.


그때마다 떠오른 건, 아주 사소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 일상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안 좋은 감정들이 가득한 날에도 제 나름의 일상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일상이라고 해봐야 별 것 없지만, 제 인생에 언제 또 이렇게 책을 마음 놓고 읽어보겠냐는 생각에 좋은 책을 잡히는 대로 읽었어요. 글도 쓰고, 기억하고픈 일 하나 없는 날에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는 꼭 썼죠. 평소에 관심 있던 것도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틈틈이 공부도 하고 뭐 그렇게 평범하게 지냈습니다.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당연히 살아가야 하는 날을 살아간 것이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난 7월 당연한 것들을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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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에서 중순쯤 여러 가지 일이 겹쳤습니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하죠. 안 좋은 일이 잘 없는 편이었는데 한번 생기기 시작하니 몰아서 오더라구요.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잘리고, 이별을 겪기도 하면서 멘탈이 많이 휘청였습니다. 그 '당연한' 것들을 하는 것마저 쉽지 않더라구요. 차분히 책을 읽으려 해도 머릿속에 온통 다른 생각이 가득했어요. 당연히도 감정은 요동쳤구요.


붙잡고 의지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복잡함 그 자체인 머릿속을 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한동안 지웠던 SNS를 찾게 되더라구요.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내리면 영원토록이라도 내려갈 수 있으니까요.


2주, 어쩌면 3주 동안 제 아이폰 스크린 타임은 11시간이 넘었어요.

깨어 있는 시간 내내 관심도 없었던 동영상을 보고 있었던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뭐 하고 지내나 작은 화면 너머로 구경이나 하고 있었던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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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대단한 인생의 위기도 아니었지만 휘청이는 마음을 붙잡기 어렵다고 해서

일상을 놓아버리니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 되었습니다. 무서운 건 머릿속을 비워준다는 그 달콤함 때문에

새롭게 일자리를 구하거나, 하고 싶었던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을 행동에 옮기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거예요.

점점 더 망가지는 길임을 알고 있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죠.


취준 할 때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근 1년 동안 해낸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에도 그러려니 하고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해나갈 때는 무너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힘들다는 이유로 잠시만 숨자, 잠시만 피하자라고 했을 때 오히려 저는 무너짐을 경험했습니다.


물론 인생에서 모든 순간을 담담히 받아들일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유튜브 뒤에 숨어 12시간을 멍하게 지내고선 '그러지 마라!'라고 얘기할 순 없죠. 다만, 어떤 순간에도 일상을 지켜내며 특별한 일이 없는 듯 살아가라는 조던 피터슨의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주 사소한 아름다움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거예요. 일상을 지켜냈기에 저자의 딸 미카엘라가 37개의 관절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도 조던 피터슨은 자신과 가족이 무너지지 않게 걸어갈 수 있었을 거예요.


저는 애초에 제 인생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인식'하고 있지 못했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10%는 될까요.

90%의 순간마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괴와 우울에 몸부림친다면 그 자체로 인생은 '완전히'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90%나 되는 순간을 '회피'하며 보내는 것이니까요.


저의 경험들은 힘든 축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감히 써봅니다.

힘든 순간에도 사소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일상을 꼬옥 붙잡고 있어 보자고.

망가지고 고치고 하며 살아내는 인생이라면, 고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아야 할 테니까요.




출처(reference) :

1) 커버 : https://ko.m.wikipedia.org/wiki/%ED%8C%8C%EC%9D%BC:Jordan_Peterson_(28058501817).jpg

2) https://www.flickr.com/photos/gageskidmore/42026121325

3) https://www.piqsels.com/ko/public-domain-photo-fbkrv

4) https://www.needpix.com/photo/794093/cloud-rain-cloud-anxiety-dark-clouds

5) https://www.wallpaperflare.com/turned-on-smartphone-opened-black-candybar-phone-iphone-screen-wallpaper-zta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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