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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Aug 21. 2020

마음 따뜻한 정신과 전문의의 산책 편지

서평 시리즈 #4 : 상처는 한 번만 받겠습니다 by 김병수

* 본 리뷰는 달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된 글임을 밝힙니다. 

<상처는 한 번만 받겠습니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서평단 이벤트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최근 저 스스로도 불안,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가끔 

느끼다 보니 다시 예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인도해줄 책 한 권이 필요하기도 했어요.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간 뒤의 생각은, '기분 좋은 산책을 다녀올 수 있음에 감사하다'입니다.

감사하게도 서평단에 선정되고 나서 얼마 후 새하얀 표지에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을 품은 얇은 책 한권이 문 앞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요즘은 도서 시장도 마케팅이 무척 중요하다 보니 휘황찬란 표지를 가진 책이 많아서 그런지 겉모습이 '조용한' 책을 보면 크게 눈길이 안 가기도 합니다. 전하는 글이 중요한 책이라는 존재가 어느 순간 화려한 가면을 쓰고 제 몸을 부풀리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도 한데요. 

<상처는 한 번만 받겠습니다>는 어느 순간 책의 얼굴에 사로잡힌 제 편견을 다시 깨부수어준 고마운 책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행복하신가요?

아니, 여러분은 얼마나 불행하신가요?


취업난, 주택난, 경제 불황, 코로나 시대 등 미간을 곧게 펴고 입꼬리를 방, 긋 올릴 만한 기분 좋은 소식이 없는 요즘 누군가를 만나면 안녕하신지를 물어보는 것보다 얼마나 불행한지, 안녕하진 않더라도 조금은 덜 불행하진 않은지 물어보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세상은 메마른 곳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6월쯤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든 저도 참 고민이 많습니다. 기나긴 취준은 과연 끝이 날지, 취업을 한들 저의 인생은 과연 더 나아질지, 무엇이 옳은 길인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물음을 품기도 하는 나날들입니다.

<상처는 한 번만 받겠습니다>의 저자 김병수 정신과 전문의는 저와 같은 사람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이들에게 답을 주려 글을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책 속에 담긴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상담'을 진행합니다. 저자 스스로도 책의 곳곳에 상담이 내담자들에게 '답'을 주는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당장의 답을 원하는 내담자들을 만날 때면 스스로가 곤란하다고 하기도 하죠. 답을 줄 수 없는 것도 안타깝지만 각자의 인생 속에서 과연 답이라는 것이 있을까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신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도록 유도합니다.

약물 치료니, 세로토닌이니, 옥시토신이니, DSM이니 복잡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아요. 산과 들이 나오고, 대학생 시절 산행을 떠났다 역에서 잠시 노숙을 한 이야기가 나오고, 매일같이 열심히 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죠. 책 속의 이야기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저의 일상이기도 하고,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 아주머니의 일상이기도 하고, 아이 셋을 키우는 한 어머니의 일상이기도 할 것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그 일상을 자신의 이야기로, 자신의 마음속으로 깊이 끌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곤 각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방식으로 각색하여 가볍게 읽어나가게 됩니다.


저는 매일 5km를 달리며 살아'낼' 수 있었다는 저자의 말이 많이 와닿았어요. 상사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달리며 몸을 고단하게 만들지 않고서는 쉽게 잠에 빠질 수 없었다는 저자. 2~3년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달리기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저자. 그리고 달리기 덕분에 살아낼 수 있었다는 저자.

저 또한 3월부터 시작한 달리기를 제 이십대 후반의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이처럼 독자가 스스로의 경험과 생각을 책 속에서 골라 읽을 수 있는 점이 무척 좋았습니다.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으면 마음을 치유할 수가 없을테지요. 가볍게, 편하게 쓰여진 글이기에 누가 읽든 자신의 이야기로 느껴지게 만드는 저자의 이야기 솜씨가 참 좋았습니다.


▶ 약 대신 달리기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에는 약보다 운동이 더 효과적이다. 정교하게 시행된 임상 연구들을 보면 약한 정도의 우울증에는 운동이 항우울제만큼 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략) 더욱 놀라운 것은 꾸준히 운동한 환자는 항우울제로 치료한 이보다 재발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이다.

<상처는 한 번만 받겠습니다> P.91

▶ 전쟁이 터져도, 먹어야 산다

아무리 치열하고, 위험하고, 긴장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도, 그리고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라도 맛있게 먹고 즐거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입시 공부가 중요하지, 취업 시험 준비중인데 여유 부릴 수 없다, 이렇게 우울한데 먹는 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염려 말고, 그럴 때일수록 맛난 것 찾아 먹고, 유머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상처는 한 번만 받겠습니다> P.102

▶ 자기 산을 올라라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공간 속에서 내 마음이 움직였다면 '왜 그랬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자. 결핍, 욕망, 잠재력, 울분과 콤플렉스, 온갖 감정들이 마음속에 숨죽여 있다가 공간을 만나 제 소리를 내는 것일 테니까. 

잃었던 동심일 수도, 주변을 의식하느라 묻어두고 살아야 했던 자일 수도 있고, 무의식에 침잠해 있는 그림자가 마음 놓고 드러낼 장소를 만났다고 기지개를 켜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처는 한 번만 받겠습니다> P. 135~136

▶ 기쁨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신뢰감, 친밀감, 연대감의 형성에는 옥시토신이 절대적이다. 옥시토신은 임신과 수유에만 작용하지 않는다. 남자에게도 바소프레신처럼 옥시토신의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략) 옥시토신 효과를 최대로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하다. '스킨십'을 늘리면 된다. 사랑하는 가족의 손을 잡고, 안아주고, 등을 두들겨주면 옥시토신이 활성화된다. 사람을 곁에 두고 우정을 나누면 된다. 신체적 접촉이 아니라 친밀감과 연대감을 느끼기만 해도 옥시토신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상처는 한 번만 받겠습니다> P. 139

▶ 고민과 산책하기

고민은 산책이다. 지도 없이 하는 산책이 고민이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시야를 트이게 하는 과정이다. 같이 고민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든든한 동반자와 함께 걷는 것이다.

<상처는 한 번만 받겠습니다> P.157


마음을 치유하는 글을 많이 읽어보았지만 유독 마음에 와닿는 문구가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유려한 문체로, 기가막힌 진리의 말을 전하기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왜 마음이 울렸는지를 곰곰, 생각해보니 한 가지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김병수 원장님의 마음이 참 따뜻해서라는 것을요.

저자는 중간중간 덧붙이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내담자와의 상담을 즐기게 되었다는 표현 뒤에, 상담에 좀 더 진실하게 다가갔다는 말이니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구절 같은 것입니다. 저자 스스로가 걱정이 많기도 하고, 그렇기에 사람을 많이 배려하는 분이라는 것이 느껴졌어요. 단 한 줄의 표현도 허투루 쓰지 않은 것이죠.

그렇기에, 깊이 고민하여 글을 쓰고 깊이 고민하여 편지를 써내려 갑니다. 누가 읽든 마음에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는 연고를 글로써 전하고 있는 것이죠. 글을 쓴 사람이 진중한 마음을 담아 쓰다보니 읽는 사람은 울림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참 따뜻한 글이었습니다. 200페이지 안팎의 짧은 글이지만 350페이지짜리 두꺼운 책을 읽어낸 것보다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저자의 이야기였고 동시에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책을 읽는 잠깐의 시간 동안 머나먼 산책을 다녀온 것 같아요.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한다는 저자와 함께 마음속으로 제 이야기를 주루룩 늘어놓으며 한시름 걱정을 덜어놓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잘 쓰여진 편지를 읽은 것 같습니다.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는 어찌되었든 마음 한편을 울리는 감동을 주니까요. 독서는 책과 자신의 대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 자신과 이야기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책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배려심 깊은 저자와 함께 자신과의 대화를 만끽해보길 바랄게요.

마음 따뜻한 정신과 전문의가 전하는 산책 편지, <상처는 한 번만 받겠습니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달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된 글임을 밝힙니다. \


출처(reference) : 

1) https://unsplash.com/photos/BuNWp1bL0nc?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2) https://unsplash.com/photos/ZHys6xN7sUE?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3) https://unsplash.com/photos/d3bYmnZ0ank?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4) https://pixabay.com/ko/photos/%EB%B9%84%EC%B9%98-%ED%95%B4%EC%95%88%EC%84%A0-%ED%95%B4%EC%95%88-%EC%97%AC%EB%A6%84-83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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