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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Aug 30. 2020

살아야 한다. 반드시 살아야 한다,

서평 시리즈 #15 : <생의 마침표에. 천 일의 쉼표를 찍다,> 이주완

* 본 리뷰는 레드우드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된 글임을 밝힙니다.


저는 어릴 때 잔병치레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아프지 말라고 처방받은 약을 빈속에 너무 많이 먹어서 위경련이 일어나는 바람에 급히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국어 수업을 듣다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바라봤던 그 큰 병원의 응급실 풍경은 언제 봐도 차가웠어요.


아픈 사람과 치료하는 사람으로 나뉜 그 공간 속에는 괴로움에 소리를 지르시던 할머니도 있었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남편도 있었죠.

2016년에 전쟁 같은 고3 수험생 신분이 되었어야 할 이주완 군은 수험 생활이라는 마라톤 대신 항암 치료라는 기나긴 사투를 시작하게 됩니다. <생의 마침표에. 천 일의 쉼표를 찍다,>는 가을에 걸린 감기가 겨울이 되도록 낫지 않고 온몸의 관절이 쑤셔 병원을 찾았던 여리고도 강인한 한 학생의, 한 사람의 1000일을 담은 일기입니다.


300페이지가량의 두툼한 에세이를 읽어 내려가며 몇 번이나 눈물을 참아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한참은 더 어린, 그렇기에 아무것도 모른 채 친구들과 신나게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았어야 했던,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철없는 낭만을 느꼈어야 했던, 병상이 아닌 일상에서의 행복만을 누렸어야 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눈에 담고 있으면 마침내는 눈물이 터져 나오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어째서 이토록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고통 속에서 몸부림쳐야 했는지가 너무도 속상해서, 그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사랑이 마음에 밟혀서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어요.


이주완 군은 학생 회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선거 운동을 준비할 정도 밝고 씩씩한 학생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고생하고 있던 시기에 이미 몸이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넘어지면 곧바로 시퍼런 피멍이 들고 온몸의 뼈마디는 쑤시고 축 쳐져만 갔죠. 꽤나 시간이 흘러 찾은 병원에서 주완 군과 어머니는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듣게 됩니다.


"백혈병인 것 같습니다. 큰 병원에 가보시죠."


무거워진 마음에 대학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달려간 모자는 곧 각종 검사 결과를 받아 듣게 됩니다.


"급성 백혈병입니다."


어머니는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애써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괜히 보다 일찍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병원을 찾은 날이 마침 학생 회장으로 당선되고서 맞는 첫 번째 학생 회의였기에 자신이 없으면 학생 회의를 열심히 준비했을 친구들에게 미안할 것 같다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먼저 앞서는 이주완 군.

학교에 당분간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짧은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 채 곧바로 골수 검수를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하게 됩니다.


주완 군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의 과정을 오히려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슬픈 마음, 우울한 마음을 모두 가져도 괜찮으니 마지막의 순간에는 긍정적인 마음만 남겨야 한다는 어느 페이지 속 그가 남긴 구절처럼, 오히려 담담하게 모든 것들을 이겨 나가려고 해요. 분명 적혀 있는 글의 내용은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소년이 감당하기엔 가혹하리만큼 고통스러운 것들이었지만 주완군의 유머 감각을 보며 피식 웃음 짓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주완 군은 마음속에 좋은 에너지가 가득하다는 사실이 느껴졌어요. 꼭 유머 감각을 글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관해 항암, 공고 항암.

한창 학교에서 수능 공부를 하고 있을 나이에 처음 접하게 되는 단어들은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저 또한 항암 치료의 과정에 대해서 거의 처음으로 자세히 알게 되었어요. 주완 군이 당시 적어 내려 갔던 일기를 통해 재밌는 비유를 많이 곁들여 준 덕분에 암과 백혈병이라는 병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이겨나가는 과정에 대해서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8회에 걸친 항암 치료를 주완 군은 잘 이겨냅니다. 조혈모세포 이식 또한 성공적으로 끝마치게 되구요.

주완 군은 이날을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말합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부분이었어요.

그가 투병 생활을 하기 전, 세상을 바라봤던 방식과 투병이 시작된 후 삶을 느끼는 방식은 확연히 달라집니다.

고장이 나버린 조혈모세포를 없애고 누나의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기에 신체적으로도 다시 태어난 셈이었지만

정신적으로도 다시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또다시 병원에 가게 됩니다. 또 다른 질환이 생긴 거였어요. 출혈성 방광염이었습니다.

소변에서 가운데 손가락 길이만 한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오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주완 군은 열흘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무균실에서 말 그대로 아무런 맛이 없는 무균식을 먹으며 항암 치료를 받는 것이 더 낫겠다고 할 정도였죠. 그럼에도 주완 군은 꿋꿋이, 굳건하게도 견뎌냅니다.


그때에 쓰인 일기에도 나아지고 있다는 말과 함께 세상을 달리 보려는 시선이 계속 묻어나옵니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 성숙한 주완군의 모습에 제가 부끄러워질 정도였어요.


■ "그냥 좀 아파요."

하지만 백혈병을 비롯한 대부분의 암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암이라는 단어, 자기 병명을 쉽게 말하지 못한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 "그냥 좀 아파요.", "뭐 다 그렇죠.", "여기 왜 있겠어요." 등의 말로 돌려 말하곤 한다. 사실 환자들 사이에서, 보호자들 사이에서는 서로 잘 묻지도 않는다. 그게 얼마나 실례되는 말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p.51~52)


■ 아픈 몸은 약으로, 아픈 마음은 사람으로 치유하다

몸이 아프면 자신이 초라하고 어색하게 느껴져 남들 앞에 서기가 두려워진다. 설령 그게 오랜 친구였을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럴 댄, 만약 내가 아픈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대했을지 한번 생각해 보면 된다.

(p.113)


■ 아픔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기쁨에는 익숙해질 수 있지만 아픔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여간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 해봤으니 다음번에는 수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럴 땐 채찍질을 당한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채찍질을 두 번 당했다고 처음보다 덜 아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도 아팠고 두 번째도 아플 것이다. 오히려 두 번째가 고통을 알기에, 처음 맞았던 상처가 덜 아물었기에 더 아프게 느껴질 수 있다.

(p.122~123)


■ 건강할 때의 나로 한 시간을 살 수 있게 해 준다면

건강할 때의 내가 헌혈의 가치를 알았고, 내가 그 수혜자가 될 거라는 걸 알았다면 나는 분명 헌혈의 집에 단골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내 생각에 '이게 그렇게 도움이 될까?' 하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선행이라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입장에서는 작은 선행일 수 있지만, 그게 누군가에겐 새 삶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p.276~277)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수가 되어 형이 집행되기 직전 집행이 취소가 되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살고 싶다는 마음을 느낀 후 이전의 환락적인 삶을 청산하고 불멸의 작품들을 써내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삶의 그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에도 삶의 소중함을 모르고 삶을 낭비하곤 합니다. 삶의 유한성을 느끼는 순간 발버둥 치며 의미 있게 살아보려 이미 때는 늦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늘 한 번뿐인 인생이라며 말하고 다니지만 오늘도 의미 없이 하루를 낭비하고 말았으니까요.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주완군의 일기장을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들여다봤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생각해보기 힘들었을 19살 나이에 삶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 주완 군은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이겨나가겠다는 의지가 돋보이지만 분명 주완 군도 두려워했습니다. 중간중간 그가 마주했던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암 환자라면 누구나 재발의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250페이지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거의 처음으로 무척이나 두려웠다는 말을 꺼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주완 군도 똑같이 힘들고 두려웠습니다. 그럼에도 헤쳐나가려고 했던 거예요. 누군가에게는 무심코 흘러가는 하루가 자신에게는 쏜살같이 흘러만 가는, 간절하게 붙잡고픈 시간이었으니까요. 삶은 하루하루 조금 더 누리고 싶은 소중한 것이었으니까요.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한번 바꾸게 만들어준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을 살아가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스스로에게도 가장 소중한 건 주어진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삶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야만, 반드시 절실하게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알려준 <생의 마침표에. 천일의 쉼표를 찍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레드우드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reference) :

1) https://unsplash.com/photos/yGUuMIqjIrU?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2) https://unsplash.com/photos/-G3rw6Y02D0?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3) https://pixabay.com/ko/photos/%EC%A2%8C%EC%84%9D-%ED%9C%B4%EC%8B%9D-%ED%8E%B8%EC%95%88%ED%95%9C-247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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