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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Sep 16. 2020

맛있는 문장을 위해 하루키를 배우다

서평 시리즈 #35 :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나카무라 구니오

현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하루키. 그의 문장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녹은 치즈가 되어 전과 같은 선명한 사고가 되지 않는 듯한 몽환감을 느낀다. 비록 소설에 대한 독서 경험과 문학적 감수성이 부족하여 점차로 소설을 멀리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하루키의 작품은 몇 편쯤 읽어봤다. 아마 그 시작은 중학생 무렵 읽었던 <상실의 시대>였다. 


<노르웨이의 숲>이 아닌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던 그 책은 며칠 동안 점심시간마다 정문을 마주 봤을 때 2층 복도 왼쪽 끝에 있던 도서실을 찾게 만들었다. 당시 나의 기준으로는 무척이나 선정적이었던 묘사와 여자애와 손 한번 잡아본 적 없던 중학생에게 이해하기 힘든 것들 투성이로 다가왔던 주인공들의 현실적인 이야기. 


하루키는 그 무렵부터 종종 눈에 들어왔고 종종 읽을 때마다 종종 여러 의미에서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경험들을 하게 만들었다. 

하루키는 전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작가이다. 때문에 당연히 소위 '덕후'라 불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의 저자 '나카무라 구니오'도 하루키의 지독한 덕후이다. 그는 하루키의 문장에 매료되어 문장을 분석하고 하루키를 따라 쓰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얻어 낸 하루키처럼 쓰는 비결 47가지를 모은 책이 바로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이다. 


단순히 하루키의 문장만을 분석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 자체를 세세히 분석한 보고서 같은 느낌이다. 작가의 가치관, 세계관, 신념, 생활 등을 알아야 그의 작품을 들여볼 수 있기에 그럴 것이다. 


덕분에 아직 접해보지 못했던 하루키의 다른 작품에 대한 분석과 에세이집, 단문집에 얽힌 이야기들, 그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47가지의 문장을 쓰는 규칙도 흥미로웠지만 규칙 사이에 삽입된 작품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석이 더욱 눈이 갔다. '하루키 독서회'가 열리기도 하는 북 카페 '로쿠지겐(6차원)'을 도쿄에서 운용하고 있는 저자답게 하루키를 수십 번 읽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접할 수 있었던,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기사단장 죽이기> 등의 작품의 세세한 부분까지 색다른 관점의 해석을 내놓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가 47가지로 분석한 '하루키의 문장' 또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저자가 아닌 우리도 충분히 '그런 것 같은데?' 정도로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자와 같이 또 하나, 나름의 '문장'으로 옮겨내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문장을 통해서 구체화가 되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되는 것이다. 


하루키 문장의 규칙


■ 규칙 2 : 제목에 강력한 키워드를 넣는다 

<로마제국의 붕괴.1881년의 인디언 봉기.히틀러의 폴란드 침입.그리고 강풍세계>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한 문체로 완성한 <빵가게 재습격>에 수록된 초기 단편소설이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 강풍이 불기 시작한다. 여자친구에게 걸려온 전화벨이 울렸을 때, 시곗바늘은 2시 36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이런, 나는 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계속 일기를 썼다'라는 이야기다. 

아마도 제목의 키워드인 '로마제국'은 주인공인 '나'의 혼자만의 시간, '인디언 봉기'는 여자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폴란드 침입'은 여자친구가 집에 찾아오는 것의 비유라고 생각된다.  

(p.21)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은 표현이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마저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와 같은 제목을 붙인다면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이러한 제목에 맞게 매력적인 본문을 쓰는 사람이기에 사람들이 매료될 수 있는 것일까?


■ 규칙 12 : 갑자기 소중한 무언가가 사라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는 항상 갑자기 무언가가 사라진다. 

고양이가 사라지고, 아내가 사리지고, 애인이 사라지고, 색이 사라진다. 그렇게 마법처럼 여러 가지가 차례차례 사라지는 것이 하루키식 '양식'의 아름다움이다. (중략) 이처럼 하루키 작품에서 여성이나 고양이 등의 '갑작스러운 실종'이나 '상실감'이 중요한 테마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주인공이 그것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 세계의 뒤편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하루키 문학의 큰 줄기라고 할 수 있다. 

(p.80~81) 


■ 규칙 19 : 구체적인 숫자를 사용한다

숫자는 마법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여간 숫자에 집착한다. (중략)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대 나는 6922번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부터 시작해서 주인공의 여자친구는 '세 번째로 잔 여자'라 불리며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어도 구체적인 숫자를 쓰는 것은 굉장히 효과적인 연출이다. 상상의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가장 적절한 기법이기 때문이다. 

(p.127~128) 


누군가가 산발적으로 풀어쓴 문장만 단편적으로 보더라도 하루키의 글은 매력적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더 재미있게 더 매력적으로 쓰고 싶다는 근원적인 욕망을 모두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가끔 아무런 의미 없는 말들을 이어붙이고 조합하며 나름의 만족감을 채워 넣기도 한다. 이 리뷰의 처음에도 하루키식으로 장난을 쳐 보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고민을 안고 있는 분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읽는 동안 문장의 몽글몽글함에 감탄이 나오기도 하고, 어서 펜을 꺼내 들고 나만의 색다른 문장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가득해지기도 한다. 


저자인 나카무라 구니오는 책의 중간중간 따라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좋아하는 작품의 좋아하는 묘사의 좋아하는 문장을 받아 적으며 그 문장을 음미하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색다른 문장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고 한다. '하루키' 자체를 공부하는 데에도 글쓰기를 공부하는 데에도 흥미로웠던 책이었다. 얼른 하루키식으로 미묘한 글을 휘갈기러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맛있는 문장을 쓰기 위해 하루키를 배우는 시간,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밀리언서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 : 

1) https://unsplash.com/photos/LxphooAHzvc?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2) https://unsplash.com/photos/y02jEX_B0O0?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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