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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Oct 29. 2020

종말의 역사에서 인간의 오만함을 경계하다

서평 시리즈 #66 : <하드코어 히스토리> 댄 칼린


부족민의 절반을 쓸어버린 치열한 전투 이후 살아남은 자들은 강해졌을까? 수 세기에 걸쳐 수 억 명이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던 중세 유럽의 다크 에이지는 유럽을 더욱 강한 공동체로 만들었을까? 답은 '그렇다'가 될 수도 '아니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종의 기원>이나 <이기적 유전자>에 의하면 살아남은 자들의 유전자는 보다 강한 개체를 만든다. 어쩌면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하드코어'한 대 격투는 살아남은 자들을 강하게 만들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피바람도 우리를 강하게 할까? 


<하드코어 히스토리>는 인류 역사상 수없이 되풀이되었던 종말의 현장에서 다가올 미래를 전망한다. 코로나19 이전의 대재앙이었던 페스트는 중세 유럽을 지도 상에만 존재하는 지역으로 만들 뻔했다. 청동기 시대가 저물었던 이유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으리라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던 로마는 1000년에 달하는 찬란한 역사를 뒤로하고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을까. 핵 전쟁은 인류가 미래에 '강인함'을 발휘할 여지조차 남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겪었던 수많은 위기들을 가벼운 수준으로 나열했으리라 판단했지만 <하드코어 히스토리>는 보다 심오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로마 제국의 흥망사를,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망'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풀면서 우리가 같은 역사를 되풀이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역설한다. 냉전 시대를 기점으로 지구상에 3만 개가 넘는 핵무기가 만들어진 이유와 각 나라의 수많은 윤리적 결정들을 통해 거대한 힘을 쥔 이들의 비인간적인 태도를 보고 있으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유럽 대륙은 피가 낭자하고 늘 살육이 벌어지던 곳이었다. 수많은 부족들이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정복 전쟁을 일삼았고 민간인들의 피해 또한 피할 수 없었다. 로마 제국은 절대적인 맹주가 없던 유럽을 삽시간에 정복한 강력한 제국이었다. 현대의 군사 전문가들이 여전히 주의 깊게 연구하는 존재인 로마군을 통해 로마는 1000년에 달하는 '영원한 제국'을 만들 수 있었다. 여러 국가에서 파견된 용병들을 하나로 결속하여 통솔하는 장군들의 리더십은 빛났고 그렇게 정복한 땅에 관개 시설과 사회 간접 기반을 설치하여 제국 자체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로마 시대는 여전히 야만의 시대였다. 가끔씩 '훈족', '게르만족'과 같은 현세의 사람들도 역사 책에서 흔히 본 부족들이 영토를 침범했고 로마는 점점 쇠락했다. 막강하던 군대가 야만인화 되기 시작하면서 쇠락의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중국이 주변의 모든 국가를 오랑캐라 칭했듯 로마의 입장에서도 주변의 거칠고 난폭한(또한 강력한) 부족들은 모두 야만족이었다. 수많은 야만인 중 게르만족은 로마의 군대로 빠르게 편입되었다. 이는 로마군에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고 로마군의 규율과 체계는 당나라 군대가 되어버렸다. 여기에 훈족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야만인이 등장하면서 결국 로마는 찬란한 역사를 뒤로 한 채 책 페이지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이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자유세계의 뛰어난 과학자들을 모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원자의 힘을 만들어 냈을 때 과학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자신들의 성과에 미소를 띠거나 눈물을 짓거나. 눈물을 지었던 사람들은 원자폭탄이 생각보다 더욱 막강한 힘을 지닐 수 있겠다는 공포감에 떨고 있는 것이었다. 2차 대전의 말미 일본에 당시 과학의 정수가 투하되었고 세계는 종전과 함께 충격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념으로 대립된 두 세계가 원자폭탄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군비 경쟁을 시작한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핵무기와 같은 강력한 살상 무기는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고.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명목으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이 될까? 이와 같은 명제는 윤리적으로 엄청난 공분을 불러왔다. 3차 대전이라는 사건이 만약에 발생하게 된다면,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은 최후의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어느 한 진영의 승리가 아니라 '핵'의 승리를 불러올 것이다. 인류의 종말과 함께 말이다.


이처럼 거대한 힘을 미국 대통령이라는 하나의 개인에게 쥐여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각국 정상들은 핵 전쟁의 상황이 발발했을 때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2차 세계 대전의 시기까지는 인류가 선택한 결정들을 되돌리는 것이 가능했다고 할지언정 핵 전쟁은 그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여태 수없이 반복했던 것처럼 역사는 핵전쟁 이후에도 반복될 수 있을까? <하드코어 히스토리>는 이와 같이 무거운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이야기를 끝낸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가 인간적인, 윤리적인 차원에서 많은 생각을 했던 책이었다. 지금의 이라크에 자리했던 고대의 제국 아시리아와 페르시아의 전쟁,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 인류에게 종말을 선사할 핵 전쟁, 그리고 이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이슈처럼 보이는 코로나19와 페스트까지 인류의 곁에는 수많은 위기가 함께 했었다. 


고등한 종족이라 스스로를 생각하는 인간이지만 수많은 위기 뒤에도 또 다른 위기는 다가오고 만다. 학습 능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강력한 위협이 존재함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기들을 모두 견디고 인류 전체의 측면에서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욕심으로 인해 만들어진 코로나19, 핵 전쟁과 같은 이슈는 자연스러운 수준의 위협이 아니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만들어지고 핵 전쟁이 발발하면 인류는 미래를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종말의 역사 속에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 하지만 인간의 오만함은 역사 속에서 우리를 지워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종말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오만함을 경계하다, <하드코어 히스토리>였습니다. 




* 본 리뷰는 북라이프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 출처 : 

1) https://unsplash.com/photos/0Bs3et8FYyg?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2) https://unsplash.com/photos/OwqLxCvoVxI?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3) https://unsplash.com/photos/gRdTreyRops?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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