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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Mar 08. 2021

그 말을 듣고 마음의 빗장이 맥없이 풀렸다

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느꼈던 어느 날의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한 피디님에게 들었던 말,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되리라고는 말을 꺼낸 분도 그렇고 듣고 있던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학 시절 홀로 맛집 탐방하기를 즐겼다는 피디님은 단편적으로만 봐도 알 수 있듯 독립심이 강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내 기준에는 조금 특이한(?) 분이었다. 나를 포함해 보통의 사람들이 으레 하는 인사치레나 대화할 때 딱히 공감하지 않지만 겉으로는 매우 공감한다는 듯한 리액션을 거의 하지 않는 분.



그날은 내가 아는 맛집이 있다며 광화문에 있는 김치찌개 집을 데려가 주셨다. 북적이는 손님들 틈에서 밥을 먹던 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온 게, 가족이라는 주제였다.


"저희 집은 육 남매예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 듣는 분들은 대개 눈이 커짐과 동시에 히익... 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형제수이니까 그런 반응이 당연했다. 그 피디님은 "으응."하고 대답하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듯 식사를 이어갔다. 조금 예상했다. 평소에도 리액션이 잔잔했던 분이었으므로. 내가 놀란 건 그다음에 한 말이었다.


"형제 많아서 불편한 것도 많잖아? 사이좋게 잘 지내기도 어렵고."


거짓말 조금 보태서 김치찌개를 먹던 숟가락을 떨어트릴 뻔했다. '우리 집 육 남매예요.' 이 말을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말해 봤지만 그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 말이 그렇게나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뭐였을까? 처음 듣는 대답이라서 놀란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라면 편견을 깬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형제가 많으면 다복한 집안일 거라는 보통의 생각에서 빠져나온 말이지 않은가. 형제가 많으면 좋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여느 가정이 그렇듯 남들에겐 차마 말하지 못하는 상처의 순간들이 있다. 형제가 많으면 다복해야 하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 싶었던 순간들, 즉 형제가 많아서 힘들었던 점에 대해 피디님은 다 알고 있다는 듯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잠금해제가 되었던 것 같다.



말은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채우기도, 맥없이 풀어버리도 한다. 그날 피디님의 말은 내게 들추면 마음이 아파서 꼭꼭 숨겨둔 내면을 용기 내서 꺼내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형제가 많아 힘들었던 마음의 짐을 가볍게 만들었다. 형제 많은 집은 다복한 집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나조차도 버리지 못한 채로 살았는데, 그 생각을 깨고 나올 수 있게 해 준 어느 평범한 날의 점심시간이었다.


앞으로 여러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야 한다. 인터뷰어로서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야기를 들을지, 어떤 말을 건네서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빗장을 여는 순간을 만들지 고민이 많은 지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감사의 말씀을 못 드렸다. 본인이 한 말은 기억 못 하실 테지만, 김치찌개 먹고 싶다고 하면 반드시 그 집에 가자고 할 것 같다. 조만간 그곳에서 식사를 하며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인터뷰 조언도 구해 봐야겠다.


20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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