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하는 일에 진심인 사람을 만나면, 눈물이 납니다
이상한 경험을 했다. 처음 만난 분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4월 중순, 올해 들어 만난 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태석 재단의 구수환 이사장님. 고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울지마 톤즈>의 감독이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 나는 이태석 신부님의 존재를 몰랐다. 구수환 피디님(피디라고 불러주는 게 가장 좋다고 하셨다)과의 인터뷰 준비를 위해 <울지마 톤즈>와 이번에 재개봉한 영화 <부활>을 보며 신부님을 알게 됐다. 본 사람은 알겠지만 휴지는 필수다. 감동적인 장면들이 너무 많아서 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봐주었으면 했다.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이태석 신부님을 모르는 사람이 줄어들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사전 질문지를 작성해서 만나 뵈었는데, 구수환 피디님이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다. "질문지 봤는데, 준비된 대로 하면 오히려 말이 잘 안 나와요." 20년 가까이 시사 고발 프로그램 연출을 맡고 책임 프로듀서로 있으면서 얻은 노하우가 담긴 말씀이었다.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피디님, 그럼 말씀 듣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그때그때 질문드리겠습니다."
준비된 시간은 2시간이었다. 구 피디님은 3시간 동안 거의 쉼 없이 인터뷰에 응해 주셨다. 인터뷰 전에도, 인터뷰 후에도 피디님은 PD로서 어떤 자세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다. 사전 질문지에는 없는 값진 이야기였다.
문제는 말씀 하나하나가 머리가 아닌 가슴에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내전으로 폐허가 된 남수단 주민에게 늘 진심이었던 이태석 신부님, 신부님의 이름 석자에 눈물을 보이는 남수단의 제자들, 그 모습을 왜곡 없이 객관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려고 매일 고민하는 구 피디님... 이 이야기들이 가슴을 울렸고 두 눈에서 흩뿌려지려는 걸 몇 번이나 참았는지 모른다. 질문을 해야 할 타이밍에 목이 메여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했다.
가장 울컥했던 건 구 피디님의 표정이었다. 10년 넘게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힘들었던 때를 떠올리면서도 피디님의 입가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행복하다는 얼굴로 피디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태석 신부의 서번트 리더십을 알게 된 국민들이 바뀌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 분들이 이기적으로 살았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눈물 흘립니다. 제작비 3억 써서 2억 5천 손해 본 게 문제입니까? 저는 지금이 사람들을 변화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봐요."
인터뷰가 끝나고 인사를 나눈 후 피디님은 다음 미팅을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나와 동료 피디는 촬영장비를 정리했다. 그때 인터뷰 준비를 도와주신 사무국장님이 차량은 가지고 왔는지 내게 물어봤던 것 같다. 대답하려고 눈을 마주치자 겨우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이처럼 서럽게 울자 사무국장님이 무슨 일이냐며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곧 그 눈물의 의미를 알겠다는 듯 다독여 주었다.
진심을 다해 신부님의 뜻을 전하고 소신을 지키며 강단 있게 전진하는 구 피디님의 모습에서 이태석 신부님이 겹쳐 보였다. 피디님은 수단의 아이들이 신부님의 삶을 따라서 의사의 길을 밟고 있는 게 놀랍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 모습에 기뻐하는 피디님이 더 놀라웠다. 의미 있는 일을 위해 기꺼이 개인의 삶을 포기한 피디님은 할 일이 너무 많은데 하루가 짧아 곤란하다는 듯 허허허 웃었다. 그마저도 행복한 모습이었다.
오늘 인터뷰 편집이 끝났다. 작업하면서도 몇 번이나 울었지만, 구 피디님이 이야기했듯 슬픔과 아쉬움이 아닌 희망의 눈물이었기에 행복했다. 인터뷰 영상을 시청할 분들에게도 이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