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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Jun 13. 2021

유전자를 가위로 잘라내는 기술이 등장했다

유전자 편집의 현실 : 무섭도록 쉽고 빠름

성격 상 단점이 하나도 없는 내가 된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까.


'저의 장단점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입사지원서를  때마다 나를 돌아본다. 나는 어떤 강점이 있으며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장점보다 단점이  빨리 떠오르는 나는 생각한다.  단점만큼은 가능하다면 정말 없애고 싶다. 방법이 없을까? 미래에 나의 DNA 녹아들어 있는 있는 단점만 추출해서 제거하는 기술이 생긴다면   나은 나로   있지 않을까? 이런 망상에 지나지 않는 생각들은 사실 내가 모르는 사이, 착실하게 현실화되고 있었다.


책 <유전자 임팩트>에서는 유전자 편집이 가능한 최신 기술 '크리스퍼'에 대해 자세히 저술하고 있다. 유전공학에서 현재 가장 핫한 기술인 크리스퍼는 유전자 가위라고도 불린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어렵고, 이제 막 연구에 착수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이 기술은 이미 깜짝 놀랄 정도로 발전하였다.



책 내용에 따르면 크리스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암과 수천 가지 유전질환을 치료할 수 있고, 코로나19 같은 대유행병 등 치명적인 감염질환의 발생을 탐지하는 간단하고 저렴하면서도 휴대 가능한 진단 도구를 만들 수 있으며, 전 세계인을 먹여 살릴 더 튼튼하고 영양소가 풍부한 작물을 개발할 수 있다. 병에 걸리지 않는 새로운 품종의 가축, 인체에 이식이 가능한 장기를 제공할 동물도 만들 수 있고, 좋든 싫든 공상과학 소설의 한 장면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처럼 사람의 배아 DNA를 편집해서 인간 유전자의 종류가 바뀌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질병이 생겨 고통스럽다고 해 보자.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하면 질병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제거할 수 있어 비교적 손쉽게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각종 미디어에서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며 늘 거론되는 단어가 인공지능이다. 이 단어에 너무 많이 노출된 나머지 다른 어떤 기술보다 미래를 바꿀 기술은 인공지능이 유일하다고 여겼던 나에게 크리스퍼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퍼 기술은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간편하며, 부작용이 덜하다는 것. 거기에 비용 또한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다는 점이 놀라웠다. 유튜브 체인지 그라운드 영상을 보면, 그간의 유전공학 연구가 10년이 걸리고 조 단위의 비용이 들었다면, 크리스퍼는 유전자를 모두 읽어내는데 20시간, 1천 달러 정도면 가능하다고 하니 입이 떡 벌어진다. 그야말로 기존의 기술과는 성능과 비용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성능이 너무 좋아서 무서울 정도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이로움에 대조되는 부정적인 영향이다. 먼저 생명윤리의식이 부족한 과학자가 연구를 빌미로 어떤 실험을 자행할지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 우성 유전자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암시장이 생길 확률도 높다. 정자, 난자, 배아세포의 성질을 조금만 바꿔주면 대대손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법과 윤리, 정치에 따라 유전자의 일부를 임의로 바꾸는 이 기술이 앞으로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일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미래 기술이라는 바다에서 순항 중인 크리스퍼 혁명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올바른 목적지에 도착할 수도, 예상 밖의 폭풍우나 암초를 만나 전복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임팩트>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크리스퍼는 사회가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참고 문헌까지 합치면 700쪽이 넘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실 이 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결국 이 대단한 과학 기술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어떤 고민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의미가 아닌가.


유전공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우리의 인생, 더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마저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기술이 이미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이 기술을 알게 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크리스퍼의 역사 안에서 나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단점이 없는 나를 꿈꾸는 건 꿈을 꾸었을 때에만 장밋빛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존재는 숨기고만 싶었던 결핍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오직 좋은 점만 있는 나는 정말 내가 맞는 걸까?


사람마다 미래를 그리는 도구가 다양하다. 열린 결말로 끝맺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두를 던지고, 그에 따른 다양한 상황을 통해 보는 사람에게 각자 도구를 쥐도록 함으로써 각자의 엔딩을 그리도록 만드는 게 곧 삶과 닮아 있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유전자 가위는 내 주변인들에게 각자 어떤 결말을 안겨주게 될지 매우 궁금하다.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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