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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Sep 26. 2021

독서의 계절, 강력히 추천하는 책 한 권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5가지

  아껴서 읽고 싶은 '취향저격' 책을 발견했다. 지금 읽기에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할 것이다.

이안 블래치포드&틸리 블라이스, <혁신의 뿌리>

 

 책 <혁신의 뿌리>는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과학과 예술 그리고 문화의 관계가 얼마나 극적으로 변화해왔는지를 20개의 이야기로 짚어준다. 과학과 예술이 결합해 혁신과 혁명이 탄생한 역사적인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 재미가 넘사벽


  책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나는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읽기에 큰 부담이 없어야 한다. 재미없는 책은 읽는 행위 자체가 고역이다. 읽으면 나에게 도움 되는 책이야 이 세상에 넘치고도 남겠지만, 도움이 되면서 재미까지 있는 책은 만나기 어렵다.

  게다가 이 책은 소장가치가 있다. 컬러풀한 그림과 사진 자료들이 시선을 사로잡아 감상하는 재미도 톡톡히 볼 수 있다. 총 20개의 챕터로 나뉘어 스토리가 깔끔하게 정리돼 있으니 하루에 한 챕터씩만 부담 없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런던 과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컬러 사진과 일러스트를 통해 혁신의 역사를 소개한다. 역사적인 과학 발견의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이 사료들은 과학박물관에 실제로 방문한 것 같은 매우 생생하고 놀라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이안 블래치포드&틸리 블라이스, <혁신의 뿌리>



2. 문체가 넘사벽


  과학뿐만 아니라 예술을 다루는 책이다 보니 문체가 아름답다.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도록 뛰어난 표현력을 가진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한 말들을 적재적소에 인용했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당시의 배경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에 보라색은 오랫동안 부와 권력을 나타내는 색이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설명으로 나온 게 아래 인용문이다.


풍성하지만 순수하고 모든 것에 적절하다. 부채, 슬리퍼, 가운, 리본, 손수건, 타이, 장갑 무엇이든 상관없다. 숙녀의 눈에 부드럽고 영원한 황혼 같은 빛이 더해진다. 어떤 형태든 찾아서 그녀의 볼 주변을 맴돌고, 달라붙어 바람이 불면 그녀의 입술로 옮겨 가고, 그녀의 발에 키스하고, 귀에 속삭일 것이다. 오 퍼킨스의 보라색, 너는 운 좋은 색이로구나.

찰스 디킨스, 1859


  인용문도 그렇지만, 저자의 매끄러운 설명 역시 좋았다. 때로는 친절히 풀어주고, 때로는 함축적인 단어로 요약한다.

  나는 책의 맨 마지막 구절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 권의 책 속에 방점을 찍는 말이 대개 맨 마지막 구절에 담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임팩트가 크고, 책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함축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혁신의 뿌리> 역시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 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개인적으로 매우 마음에 들었다. ' 책을 이렇게 끝맺다니!' 하면서 말이다. 스포가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직접 내용을 확인하기 바란다.


폴라로이드사진으로 퍼즐을 맞추듯 콜라주를 만드는 데이비드 호크니.


3. 깊이가 넘사벽


  <혁신의 뿌리>는 한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아이디어가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 시대에 과학과 예술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따라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방식도 달랐던 점을 서술한다. 즉 예술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과학에 의존했고, 과학자는 새로운 영감이나 주제를 찾기 위해 예술에 의존했다. 이렇게 과학과 예술은 하나의 문화를 이루는 데 있어 두 개의 큰 기둥이라는 사실도 함께 말한다.


  인상 깊은 내용은 과학자와 예술가의 유사점을 설명한 부분이었다. 과학자와 예술가는 호기심으로 가득하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려는 탐구심을 기존의 방법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색다른 방법으로 바꾸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현대 사회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게 만든 혁신의 역사를 과학과 예술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예술은 과학자들이 남긴 유산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적 발견을 널리 알렸고, 과학은 예술가의 독특한 시선을 통해 시야의 저변을 넓혔으며,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는 걸 깨닫도록 돕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두 저자의 내공이 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4. 디테일이 넘사벽


   책은 낭만의 시대, 열정의 시대, 모호성의 시대로 나눠 과학과 예술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를 면밀히 관찰한다. 그렇지만 과학사와 미술사 자체의 대서사를 뭉뚱그려 다루지 않는다. 예술가와 과학자가 서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고, 이런 대화를 어떻게 시작됐는지  디테일들을 알려줌으로써  그림을 그려내도록 돕는다.


나스미스는 달 표면에 서서 지구를 바라보는 상상을 했다. 이 작품은 후대 공상 과학 작가와 예술가에게 큰 영감을 줬다고 한다.


5. 통찰이 넘사벽


   저자는 <혁신의 뿌리> 담긴 이야기를 현대의 기준으로만 판단해선  되며, 반드시 시대상을 반영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맥락을 알아야 과학계와 예술계를 제대로 이해할  있기 때문이다. 자칫 현대의 시각으로 잘못된 이해를   있음을 인지하고 제대로 을 수 있도록 방법을 안내했다. 책의 제목이 <혁신의 뿌리> 만큼 '혁신' 무엇인지 개념을 짚어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을 아래와 같이 풀어주어 개인적으로 좋았다.


사람들은 혁신가를 반항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혁신가를 우상파괴주의적 반항아로만 봐서는 안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발견은 예술가와 과학자가 세심하게 오랜 기간 공을 들인 힘든 작업 끝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에 임할 때 예술가와 과학자들은 매우 정확히, 조심스럽게, 수없이 반복적으로 현상을 관찰하기 마련이다. 예술에서든, 과학에서든, 혼자서 하든, 팀을 이루어서 하든, 디테일과 씨름하며 심혈을 기울이는 작업은 솟구치는 상상력과 용기 있는 우상파괴적 행동만큼이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일 것이다.

이안 블래치포드&틸리 블라이스, <혁신의 뿌리>


  혁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만한 인사이트 있는 대목이다. 반복적으로 관찰하며 디테일과 씨름하는 자, 반짝이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사고의 조류를 만들어 내는 자. 그게 바로 혁신가다.


줄리어스 이벳슨, <성조지 필드에서 날린 루나르디의 두 번째 풍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열기구 비행 행사를 그린 작품.


마무리하며


  대학교 때 학점 채우려고 억지로 들은 교양 과목들 중 유일하게 좋아했던 교양 수업이 있었다. '미술의 이해'였다. 유명한 미술 작품을 낳은 예술가들의 업적과 생애를 다룬 수업이었는데, 각자의 이야기가 너무나 인상적이고 매력적이었다. 때론 가난에 찌들고 병마에 시달려 죽음에 이를 때까지도 팔레트와 붓을 놓지 않던 어느 화가의 이야기를 듣고, 한 사람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생애를 가볍게 여길 수 없어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의 양식을 쌓은 교양다운 교양은 그 수업이 유일했다.


  <혁신의 뿌리>는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즐겁고 행복했던, 유일무이한 그 교양 수업이 생각나는 책이다. 그때의 지식은 시간이 흘러 많이 휘발돼 버렸지만, 기분 좋은 감정만큼은 잊혀지지 않는다. 이 책은 그때의 즐거움과 기쁨은 물론이고, 잃어버린 지식마저 내게 돌려준 책이다.


  바람 좋은 가을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또한 취향저격의 책을 만나 나와 같은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고 마음의 양식까지 쌓을 수 있길 바란다. 그런 책을 찾기 어렵다면, <혁신의 뿌리>를 강력히 추천한다. 부디 이 책과 함께하며 이 계절을 만끽하기 바란다.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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