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영하가 말하는 글쓰기의 쓰임새
글쓰기는 인생의 변화를 주는가? 이 질문에 김영하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내면이 변화하기 시작해요. 캐릭터를 부여해서 내 인생을 소설처럼 보게 되죠. 삶을 바라보는 자세나 태도가 바뀌어요."
내면의 변화.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생각보다 아주 가벼운 터치만으로도 바뀔 수 있는 것. 정말 그런 것 같다. 방금 카페에서 자몽에이드를 주문하고 내면이 변화한 걸 인지했으니.
픽업하고 보니 자몽에이드에 자몽이 빠져 있더라.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분에게 이야기했더니 토끼 눈을 하고는 그런다. "어머! 잠시만요!" 몹시 당황한 듯한 그녀가 슬라이스 된 자몽을 퐁당 넣어주고 음료를 다시 내어줬다.
'어머, 잠시만요'를 말하고 5초도 안 돼서 자몽이 든 에이드를 받아 드니 이번엔 내가 당황스러웠다. 그분이 너무 민첩해서...
이 사람은 아마 평상시에도 엄청나게 빠른 대처로 당황스러움과 실수를 타개하겠지.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캐릭터가 부여되면서 상황을 바라보게 되었다.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글쓰기는 전문적 능력이 아니냐는 질문에 김영하 작가는 말했다.
"전문성을 띨수록 오히려 글쓰기가 어려워져요. 그럼 시작하는 분들은 제일 잘 써질 때거든요. 데뷔작으로 끝나는 작가들 많잖아요. 처음 외부로 내보내는, 물꼬는 트는 이야기는 파괴력이 크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인생이 하나의 정원이라고 생각해요. 그 정원에 있어야 할 것을 잘 피우게 하고 필요 없는 건 관리해야죠. 장미밭이 아닌데 장미가 피어있다면 장미도 잡초가 될 수 있어요. 정원을 가꾸는 일은 내 인생에 대한 예의입니다."
그래서 기록한다. 내 인생 정원을 가꾼다는 마음으로. 자몽 없는 자몽에이드를 받고 아르바이트생의 실수를 탓하며 불만을 표출할 수도 있었는데, 김영하 작가의 터치로 잡초가 뽑혔다. 짜증이라는 잡초가.
2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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