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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Jul 02. 2023

5. 성장, 불편한 일과 조금씩 마주치는 일

도쿄여행 마지막 날. 츠타야 서점에서 좋아하던 만화책 한 권과 아이돌 앨범을 샀다. 지금은 카페에서 쇼핑하러 떠난 친구를 기다리는 중.


2층 창가에 앉아서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주위에는 일본인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적당한 볼륨으로 들린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음악처럼 느껴진다.


방금 전까지 창밖에 분주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 속에 내가 있었다. 관찰이 재미있다. 이곳에서 저곳을 바라보지 못했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들이 교차한다. 어제 아침 급 가게 된 호텔 로비 카페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환경. 내가 원하던 여행은 이런 거였구나. 겪고 보니 내 여행스타일을 이제 조금 알겠다. 뭔가 한 단계 레벨 업한 것만 같아 뿌듯함마저 든다.


혼자 하는 해외여행은 쫄보라 꿈도 못 꿨다. 홀로 여행하면 불편한 게 먼저 생각난다. 길을 잃기도 쉽고, 추억을 공유할 사람이 없으니 아쉽고, 유쾌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도 없으니까. 함께하는 여행은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마흔이 넘어 한 번은 꼭 혼자서 여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앞에서 말한 불편함을 이겨내는 단 하나의 치명적인 기쁨이 있었다. ‘사색의 즐거움’이라는 기쁨.


거기에 조금 곁들이자면, 상대적으로 꽂히는 무언가에 긴 시간을 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유일하게 친구에게 제안한 게 서점에 가는 것이었다. 한국의 교보문고처럼 일본에서 유명한 츠타야 서점을 예전부터 가 보고 싶었다.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이고 스테디셀러인지, 디피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친구와 같이 처음 가 볼 땐 오래 머물지 못해서 살짝 아쉬웠다. 그래서 여행 마지막 날인 오늘 혼자 한 번 더 다녀왔다. 그랬더니 첫날 보지 못했던 게 곳곳에 흩어져 있더라. 영화를 두 번 관람하면 안 보이던 게 보이는 마법이 여기서도 벌어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마 얼굴에 홍조도 피었을 것 같다. 이렇게 관찰의 즐거움을 품어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기분이 좋다. 낯선 풍경이라는 퍼즐에 내가 더해져 모든 조각이 꼭 맞아떨어지는 그런 느낌. 이 공간에 내가 녹아들어 있는 느낌. 온전히 누려 본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고, 물 흐르는 대로 흘려보낸다. 앞에 놓인 크레이프 치즈 케이크를 한 입 먹고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기분이 좋다.


23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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