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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Jul 12. 2023

11. 내성적인 내가 무대에서 싸이 노래를 부른 이유

프레임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일. 누군가의 단면만 보고 전체를 가름하는 일. 뇌는 패턴화하는 걸 좋아해서 흑백논리에 쉽게 빠진다.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편견덩어리가 되어버릴지 모른다.


중학교 때까지 나는 스스로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걸 굳게 믿었다. 내가 만들어 둔 프레임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낯을 가리잖아.’

‘혼자 있는 걸 좋아하잖아.'

‘말수가 적잖아.’


철옹성 수준이었다. 그렇게 내재된 에너지를 애써 밀어냈던 건 아니었을까?


일관된 잣대로만 평가하던 나는 중학교 수학여행에서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모두를 무대에서 풀고 말았다. 반별 장기자랑에 나가 무려 싸이의 '챔피언'을 불렀다. 엥? 내성적이라던 애 어디 갔나.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두 개의 자아가 충돌했다.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고 숨고만 싶고 자아와 관심을 몹시도 바라는 자아. 한동안 ‘챔피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학교 곳곳에서 줄곧 원하던 관심을 받았으나, 여전히 수줍음 많은 내향인이라는 프레임을 놓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인간은 결코 일관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나답지 않은 모습이 나타날 때면 이렇게 생각했다.


'나 혹시 다중인격자 아냐?'


먼지같이 작은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눈치를 살피는 나도, 마음이 무너져야 할 타이밍에 오히려 무던했던 나도 모두 나였다. 그걸 인정하고 수용하게 된 건 서른이 넘고부터였다. 늘 부정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기회주의자, 이중인격자, 성격파탄자 등 부정적인 프레임에 수시로 가두고는 괴로워했다.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유퀴즈 온 더 블럭>같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는 종종 그런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나에게 질문한다.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16살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는 너로서 사랑스럽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용기. 사춘기 소녀에게는 어렵겠지만, 이제라도 그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쪼잔하고 찌질한 모습은 어떻게든 숨기고 싶다. 하지만 난 분명 찌질한 면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그런 내가 너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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