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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특화된 화곡본동시장엔 어떤 맛집이?

‘개성순대국’ㆍ‘영양족발’ㆍ‘순희네나물가게’

농후한 순댓국·푸짐한 모둠수육 ‘개성순대국’

시장 활성화 견인한 가성비 좋은 ‘영양족발’

새로운 핫플레이스 등극한 ‘순희네나물가게’       


한강 다리는 서울의 확장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속화시켰다. 최초의 한강 다리는 1900년 건설된 한강철교(철도용)다. 기차만 다닐 수 있었다. 뒤이어 1917년 지금의 한강대교인 제1한강교가 놓였다. 세 번째 교량은 1936년 건설된 광진교다. 광진교는 현존 한강 다리 중 1,056m로 가장 짧은 다리다. 가장 긴 다리는 마곡대교로 2,930m다. 광진교는 한강 다리에서 유일하게 대교로 불리지 않는다. 한강의 대교는 6차선 이상이어야 하는데 광진교는 4차선이기 때문이다.      


광진교 다음으로 1960년대 2개의 교량이 추가로 건설됐다. 제2한강교 양화대교와 제3한강교 한남대교이다. 1965년 놓인 양화대교의 가설로 화곡동 지역 개발이 가속화됐다. 화곡동(禾谷 洞) 동명은 땅이 기름져 벼가 잘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마을 이름으로 이 지역이 과거 벼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화곡동은 조선시대 경기도 양천군 등에 속해 있었다.      


 1963년 1월 1일 서울시역 확장으로 김포군의 양동면과 양서면(옛 양천군 지역)이 서울시에 편입될 때 영등포구 화곡동이 됐다. 1977년에는 신설된 강서구로 편입돼 오늘에 이른다. 1963년 늘어나는 강북 인구를 강남으로 분산 유치시키려는 서울시의 계획에 따라 화곡동에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10만 단지 주택지조성사업’을 계획하면서 화곡동이 변모하기 시작했다.      


당초 10만 단지계획이 1968년 30만 단지 화곡동 시범아파트 설치로 변경되면서 벼농사가 활발해 화곡동이란 이름을 가진 이 지역 모습은 급격히 변모하게 된다. 화곡동은 김포평야와 연결된 곳이어서 예로부터 벼농사 지역이 넓게 분포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비해 자연부락명이 적게 남아있다. 화곡동에서도 화곡본동은 강서구의 중심지대다. 화곡6동이 분동(分洞)되기 전까지 강서구청과 강서경찰서 등이 위치한 행정의 중심이었다.     


이 지역은 역말이란 부락 이름이 전해져 온다. 해바라기주유소란 도로명이 있는 일대다. 한자로는 역촌(驛村)으로 쓴다. 가까이 염창(鹽倉)이 있고 일대에 주막이 형성되면서 양화나루와 김포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았던 까닭에 역촌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 지역 역촌은 다른 지역에서는 관립여관의 성격을 지닌 원(院)과 함께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사사로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60년대 주택단지 들어서며 발전한 화곡동     


화곡본동은 우측으로는 봉제산, 좌측으로는 우장산이 있는 계곡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김포평야 끝자락인 데다가 양측 산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물로 벼가 잘 자랐다. 원래는 화곡2동이었으나 화곡동 일대 최초 주거지가 형성됐다는 주민들 주장에 따라 1970년 말 화곡본동으로 동명이 바뀌었다.     

 

개발되기 전 화곡동 지역은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산다’고 할 만큼 진흙 뻘이 유명했다. 이 때문에 택시비 ‘따따블’을 외쳐도 기사들이 기피했던 동네라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화곡동 진흙은 1925년부터 항아리 만드는 원료로 사용됐다. 한강 상류에 있던 도기 공장이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유실되자 하류인 염창동으로 이주해 도기공장을 차렸다. 1935년에는 이 지역에 11개의 독 굽는 가마가 생길 정도로 번성했다. 이랬던 동네가 1960년대부터 불어 닥친 주택단지 사업으로 진흙 뻘은 사라지고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자연스레 시장도 커지고 정비되기 시작했다. 시장 대부분이 그렇듯이 삼삼오오 모여 좌판을 깔고 농사지은 물품을 사고팔던 것이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번듯한 시장 모습을 갖추다가 정식 인증을 받아 상설시장으로 발전하는 단계를 거친다. 화곡본동시장 역시 자연적으로 형성되다가 1969년 상설시장으로 개설했다. 이후 2004년 강서구 전통시장으로 인정받았고 2018년 특성화첫걸음시장, 2019년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연이어 선정되면서 현대화된 모습을 갖췄다. 


2019년 문광형 시장으로 빌드업

‘화곡본동시장’은 1965년 상설시장으로 인가를 받은 후 2019년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재도약했다.


화곡본동시장은 특히 먹거리가 발달한 시장으로 유명하다. 화곡본동시장상인회 역시 자랑거리로 이 부분을 부각하고 있다. 상인회는 “사계절 싱싱하고 풍성한 농수산물 등 주로 1차 상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먹을거리가 많고 정겨움이 넘쳐나는 전통시장”이라며 “청결한 시장이면서 지역사회와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앞장서면서 시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 제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2019 문화관광형사업을 계기로 건강 먹거리 시장으로 발돋움이 도드라진다. 그래서 시장은 1차 농수산물뿐 아니라 반찬가게, 외식업이 잘 발달해 있다. 시장은 크지 않지만 영광수산, 세진수산, 제일수산, 영진수산, 우리농산물, 농우축산, 금호축산, 텃밭야채, 화곡슈퍼정육, 신화닭집, 고흥건어물 등 식재료상이 골고루 분포해 있다.        


이들 1차 농수축산물을 기반으로 민들레곱창, 명성왕족발, 개성순대국, 다케, 여하정, 본동부대찌개, 홍두깨칼국수, 영양족발, 신가네, 고향식당 등 외식업체와 부부반찬, 내고향반찬, 성희네나물가게 등 반찬가게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찬가게의 성업은 정주인구와 유동인구에 비례한다. 그만큼 주민들이 많고 시장 이용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50년 2대 대물림 저력 있는 순댓국

  

개성순대국은 개성 출신 시어머니가 하던 순댓국 외식업을 며느리가 이어서 50년 넘게 영업하고 있는 전통 있는 식당이다.

필자는 7~8년 전부터 시장 내에 있는 ‘개성순대국’에 다니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주 월요일인 7일에 들렀으나 아뿔싸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나중에 알았지만 인근에 ‘연화정’이란 꽤 훌륭한 순댓국 식당이 있었다. 검색보다는 직관이나 추천에 의해 식당을 찾는지라 맛볼 기회를 놓쳤다.    


개성순대국은 개성 출신 시어머니가 하던 순댓국 외식업을 며느리가 이어서 50년 넘게 영업하고 있는 전통 있는 식당이다. 하루 종일 돼지머리와 내장을 펄펄 끓여 진득한 국물을 우려내는 데 농후함과 웅숭깊은 맛이 일품이다. 김치와 깍두기도 예사 솜씨가 아니다. 금방 삶아낸 머리고기 맛은 소고기 부럽지 않다. 평범한 것 같지만 꾸준하고 성실한 맛이 담겨있다.      


순댓국은 서민 먹거리로 조선시대 후기부터 주막에서 많이 팔았다. 순대의 어원은 순대를 뜻하는 만주어 ‘성기 두하(senggi-duha)’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성기’는 피, ‘두하’는 창자를 뜻한다. 1800년대 후반의 요리책 ‘시의전서’에는 ‘슌다ᆡ’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한다. 이는 ‘성기 두하’의 줄임말이다.      


순대를 찍어 먹는 양념장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 일부)에서는 막장(쌈장), 일반적으로 주로 양념 소금을 찍어 먹지만 충청도에서는 새우젓, 광주 및 전북 전주, 완주 지방 등에서는 초장, 제주도에서는 순대를 간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속 재료에 따라 당면순대, 찹쌀순대 등이 있다,      


큰 접시 한가득 담겨 나오는 ‘개성순대국’의 모둠 머리고기는 군침을 자극하기 충분한 비주얼이다. 머리고기는 물론 각종 내장과 당면순대가 골고루 담겨 나온다. 당면순대는 당면이 주 재료인 순대이다. 해방 이후 순대는 고가의 음식이었지만 양돈 사육 두수 증가로 돼지 부속물과 창자의 가격이 많이 내렸다. 여기에 저렴한 당면을 주 재료로 사용하게 되면서 1970년대 초반부터 당면순대가 대중화됐다.      


순대는 지역에 따라 백암순대, 병천순대, 아바이순대, 암뽕순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백암순대는 경기도 용인 처인구 백암면 일대 순대이다. 돼지 내장에 두부, 숙주, 콩나물 등 채소를 넣어 만든다. 병천순대 충남도 천안 병천면 일대 순대다. 돼지 소창에 선지, 들깨, 배추, 파, 고추, 찹쌀 등을 넣어 만든다.      


아바이순대는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에서 함경도식 순대를 변형해 돼지 대창에 선지, 찹쌀, 우거지, 숙주, 배춧잎 등을 넣어 만든다. 이곳은 한국전쟁 중 1.4 후퇴 때 월남한 함경남도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암뽕순대 전북 담양의 한 외식업자가 만든 말로 돼지 막창으로 만든 순대와 새끼보(자궁, 암뽕)를 함께 내놓는 음식이다. 순창지역에서도 강세다. 경북 예천의 돼지 막창으로 만든 용궁순대, 제주의 선지에 메밀가루를 섞어 만든 수애 등도 있다.

      

족발집 대신 반찬가게에 긴 줄

한때 화곡본동시장 활성화를 견인했던 ‘영양족발’의 영화를 지금은 ‘순희네나물가게’서 바통을 이어받았다.


‘개성순대국’ 바로 앞집은 시장 최고의 ‘핫플’이었던(?) ‘영양족발’집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필자의 ‘뇌피셜’로 서울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호황이었던 집이다. 가성비가 으뜸이었다. 시장 초입에서 늘 줄을 길게 세워 시장의 활력을 줬던 곳이다. 한때는 족발 발라내는 점원만 네다섯 명이 매대에서 쉴 틈 없이 칼질과 포장을 했는데 이젠 단 둘만이 커버할 정도로 시들해졌다.      


실내 매장도 없앴고 대신 대로변에 배달전문 점포를 냈다. 다소 한가한 이유는 아마도 주문이 테이크아웃과 배달로 분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필자도 수차례 테이크아웃을 해서 집에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또 줄을 한참을 섰던 기억도 있다. 앞다리, 뒷다리를 고를 수 없었고 손에 잡히는 대로 뼈를 발라냈고 무게로 가격을 책정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제는 긴 대기 줄도, 실내 매장도, 수북하게 쌓인 족발도 없지만 그래도 시장의 대표선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신 시장에서 새롭게 줄을 세우는 곳이 있는데 놀랍게도 반찬가게다. 저녁 퇴근시간 무렵 ‘성희네나물가게’는 문전성시다. 들기름, 참기름에 버무린 시금치, 고사리, 콩나물, 숙주, 도라지 등이 구미를 당긴다. 직접 맛을 보진 못했지만 긴 줄은 이 집의 손맛을 대변하는 듯했다. ‘영양족발’이 내려놓은 ‘핫플’의 영예를 ‘순희네나물가게’가 잇고 있다. 지하철 5호선 화곡역 인근엔 먹거리가 특화된 전통시장 화곡본동시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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