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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식재료 ‘이모카세’를 아시나요

메뉴판에 없는 여사장 요리가 유명한 합정 '목포식당'

2월까지 제철인 새조개 샤부샤부 깜짝 등장

꽃게탕·대방어회·주꾸미 등 해물요리 강해     

B급 상권 50년 된 주상복합 건물서 ‘대박’         


필자는 지난해 가을 무렵 삼각지 사무실에서부터 남쪽으로 걸어서 한강을 건너 루틴 하게 퇴근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한 겨울이라 주춤하고 있지만 춘풍이 산 너머 남촌부터 불어오면 또 열심히 걸어볼 요량이다. 숙소까지 약 2만 보 정도 거리인데, 4~5개월 정도 했더니 체중 감소와 근력강화라는 당연한 결과를 얻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비견될만한 ‘워커스 하이’(walker’s high)를 톡톡히 실감했던 것이다. 러너스 하이란 미국의 심리학자인 A. J. 맨델이 1979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달릴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신체 현상을 말한다. 극한으로 치닫는 신체적 고통이 인체서 분비되는 화학물질로 인해 행복으로 치환되는 메커니즘이다.     

       

이중 엔도르핀이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져 왔다. 이는 동물의 뇌 등에서 추출되는 모르핀과 같은 진통효과를 가지는 물질의 총칭이다. 엔도르핀이라는 이름은 'endogenous morphine'(내인성 모르핀)에서 유래했다. 엔도르핀은 유산소 운동 시 운동 강도가 높아져 산소가 줄어드는 무산소 상태가 되면 급증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혈액으로 방출된 엔도르핀은 큰 분자 크기로 인해 혈액뇌관문(blood-brain barrier)을 통과하지 못한다. 따라서 뇌로 신경물질을 전달하지 못해 러너스 하이에 영향을 주지 못하다는 가설이다. 대신 학계는 또 다른 분자인 엔도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s)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대마초(cannabis)의 활성 화합물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의 영향을 받는 동일한 시스템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엔도르핀과 마찬가지로 혈액으로 방출되지만 분자가 작아 혈액뇌관문을 통과해 뇌에 영향을 준다.            

러너스 하이는 달리기뿐만 아니라  수영, 등산, 사이클, 축구, 스키 등 장시간 지속되는 운동을 하면 느낄 수 있다. 달리기의 경우 보통 1분에 120회 이상 심장박동수로 30분 정도 달리면 러너스 하이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러너스 하이를 느끼고 싶어 운동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 점은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각 개개인마다 경험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행복감’을 측정하기 어렵다. 러너스 하이가 생기는 지점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 모르고 또한 거리가 신체 능력 범위 밖일 수 있기 때문이다.           


러너스 하이는 불안과 우울감 감소, 기억력과 집중력 증가, 유연성 증가 및 이동성 향상, 면역 체계 증가, 인슐린에 대한 개선된 반응, 체중 감소 또는 유지 등의 장점이 있다. 이는 필자 경험상 워커스 하이에서도 동일한 효과를 나타낸다. 격렬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반복되는 ‘루틴’을 만들면 충분히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러너스 하이, 워커스 하이를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이런 효과를 공유하기 위해서고 또 하나는 필자의 걷기에는 한강 다리 5개를 골라서 건너는 재미가 있어서다.    

       

한강다리 5개 건너며 ‘워커스 하이’  

       

필자가 삼각지부터 숙소까지 걷기 운동을 하며 건너는 5개의 한강 다리와 코스

삼각지에서 한강의 남쪽으로 가기 위해 직진을 하면 나오는 다리가 한강대교다. 과거에는 제1한강교라고 불렀던 최초의 인도교다. 한강에 가장 먼저 생긴 다리는 기차용 한강철교다. 한강대교가 생기기 전에는 나루터에서 배로 강의 남북을 건넜다. 한강에 생긴 다리는 대부분 기존에 나루터를 기준으로 남북을 이었다. 한강대교는 노들섬을 사이에 두고 신용산과 노량진을 잇는 다리다. 필자는 한강대교를 기준으로 서쪽으로 4개의 다리를 이용해 강을 건너 걸었다.      


다음으로는 원효대교를 이용해 용산과 여의도 동쪽, 여의교를 건너 대방역으로 이어지는 노선이고 세 번째는 마포대교를 이용해 여의도 한가운데를 관통해 서울교를 지나 영등포로 이어지는 길이다. 네 번째는 밤섬을 지나가는 서강대교를 이용해 여의도 동쪽을 지난 여의2교를 거쳐 영등포시장 뒤쪽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은 삼각지에서 지하철 6호선을 따라 횡보해서 합정역까지 간 다음 양화대교를 이용해 선유도를 거쳐 양평동으로 들어서는 노선이다. 양화대교는 인도교로는 한강대교, 광진교 다음으로 놓였고 이를 제2한강교라 불렀다. 양화대교 다음으로는 한남대교(제3한강교), 마포대교 순으로 놓였고 지금은 경기권역까지 30개 이상이 됐다.           


양화대교를 이용해 삼각지에서 숙소까지 걸으면 3만 보가 넘는다. 이 경우 워커스 하이를 심하게 느낄 수 있다. 뻐근한 다리와 땀으로 축축해진 등은 달리기로 뻐근해지는 심장과 비슷한 쾌감이 있다. 그래서 많은 현대인들이 둘레길을 걷고 올레를 체험하나 보다.         

  

이번 칼럼에 소개할 식당이 양화대교 근처에 있다. 그래서 서론이 뜬금없이 많이 길었다. 뜬금없기로는 양화대교 북단 다리 초입 우측에는 정몽주 동상도 한몫한다. 이한상이란 독지가가 제1회 5.16민족상 산업부문 장려상 상금 50만 원을 서울신문에 기탁하면서 촉발됐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다. 당시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 총재를 맡았고 위원회를 통해 15개의 동상이 세워지는데 정몽주 동상도 그중 하나다.            

광화문광장의 충무공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한상 씨는 장충단공원 사명대사 동상을 세웠고 정몽주 동상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비용을 댔다. 대부분 기업체 후원으로 동상은 세워졌고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거머쥔 군부는 이름난 선조를 앞세워 선양운동을 벌이면서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 활용했다. 본관이 영일인 정몽주 동상을 하동 정 씨인 정주영 회장이 세운 것은 또 하나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영진종합시장 전경. 중정이 있는 주상복합아파트다. 목포식당은 1층 북측 중앙에 위치해 있다.

합정역 인근에서 식사 약속이 있어서 그동안 건넜던 방향과 반대로 이번에는 남단에서 북단으로 걸었다. 뜬금없이 서 있는 정몽주 동상 앞을 무감각하게 지나다 동상 좌대 생각이 나서 힐끗 봤다. 다름 아니라 좌대는 정몽주가 참변을 당한 선죽교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역사성이 결여된 장소에서 억지로 또 하나의 역사성을 욱여넣은 모습이 씁쓸할 뿐이었다. 선죽교를 본 적이 없어서 비교 불가한 것도 무덤함의 한 이유리라.          


합정동이란 동명은 이 동네에 조개우물이 있어서 불린 이름이다. 조개는 한자로 ‘합(蛤)’인데 일제강점기 때 ‘합(合)’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조개우물은 우물 바닥에 조개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이곳에 우물을 판 이유는 망나니들이 칼을 갈기 위해서였다고 전해진다.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받은 양화진 잠두봉(절두산)이 근처라서 생긴 야사다.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합정역사거리에서 월드컵경기장 쪽으로 좌회전을 해서 400여 미터를 걸어 내려가면 민치과의원이 나오고 뒤편에 영진종합시장이란 주상복합 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수없이 골목 앞을 다녔지만 유심히 보지 않았던 관계로 주상복합을 발견하고 살짝 놀랐다. 1층은 영진종합시장이고 2, 3층은 주거용 아파트다. 1971년 12월에 준공된 50년이 넘은 꽤나 연식 있는 주상복합이다. 41.65㎡ ~ 75.37㎡ 면적을 가진 48세대가 입주해 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중정이 있는 아파트다.        

     

‘목포’라는 이름만으로 침샘 자극

  

육전, 오징어볶음과 갖은 밑반찬.

이 주상복합 1층 시장 안에 이번 칼럼의 주인공 ‘목포식당’이 있다. 시장은 이미 많은 기능을 상실해 있었다. 그 빈틈을 목포식당 ‘실내 야장’이 채웠다. 식당 밖 빈 공간에 테이블을 펼쳤다. 식당 밖이라고는 하지만 실내이기 때문에 식당을 엄청나게 크게 쓰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식당 여주인 또한 손이 크고 인심이 푸지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목포라는 지명은 미각을 돋우는 자극제다. 우리나라에서 바다는 접한 여러 지명이 있지만 특히 포항, 통영, 여수, 장흥, 벌교 등지는 미각을 직접적으로 자극한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지만 부동의 보단 동의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목포식당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침샘이 자연스레 자극을 받았다.           


점심 메뉴는 ‘백반’ 한 가지다. 이는 매일 반찬을 바꿔가며 집밥 같은 식사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계란 프라이를 셀프로 부쳐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고 9첩 반상에 준하는 밑반찬을 차려준다. 저녁에 방문했기 때문에 점심백반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저녁 밑반찬을 보니 점심백반이 쉽게 그려진다. 반찬이 겹치기 때문이다. 이날도 시금치, 고사리, 어리굴젓, 숙주나물  등 기본 찬이 깔리고 뒤이어 고등어조림이 가운데를 차지했다. 육전도 어느새 한 접시 부쳐 나왔고 오징어볶음도 뚝딱 등장했다.          

 

메뉴판을 보니 저녁 메뉴로는 삼겹살이 가장 상단에 올라있다. 이어 홍어, 닭·오리백숙, 닭도리탕, 생선조림, 동태찌개, 김치찌개, 오징어볶음, 육전, 닭발 등이 뒤를 이었다. 육해공 메뉴가 골고루 분포해 있다. 요리에 대한 자신감으로 읽힌다. 목포식당을 예약한 일행이 이곳에 영화인들이 많이 온다고 귀띔했다. 이날도 실내 야장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영화감독의 동생이 먼저 ‘좌판’을 깔고 있었다.                


     

‘목포식당’이 내 놓은 이날의 이모카세 새조개 샤부샤부

‘목포식당’은 ‘이모카세’가 유명한 곳이다. ‘이모카세’란 ‘이모사장’과 ‘오마카세’를 합성한 신조어다. 이모사장은 식당에서 흔히 쓰이는 이모와 사장을 합친 단어로 ‘목포식당’ 여사장을 부르는 식객들의 애칭이다.  오마카세(お任せ)는 요리사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의미로 이에 대해 요리사는 가장 신선한 식재료로 제철 요리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모카세는 목포식당 여사장의 손끝에 메뉴를 맡긴다는 의미다.            


이때는 메뉴판에 없는 묵직한 메뉴가 등장한다. 이날은 새조개가 주인공이다. 새조개는 1~2월이 제철이다. 비싸기도 하지만 기회가 없어서 올해는 맛을 못 보고 지나치나 싶었는데 의외의 곳에서 맞닥트렸다. 새조개는 새부리 모양과 비슷하게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씨알이 크고 두툼해 달달하고 쫀득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봄동과 냉이로 채수를 낸 육수에 된장을 풀어 구수하게 만든 후 새조개를 살짝 담갔다가 꺼내 씹으니 입안이 향긋하다. 가격 대비 새조개 양도 제법 많아 좋은 가성비를 자랑했다. 새조개에 이어 튼실한 낙지까지 꼼지락거리며 등장해 식객들 구미를 충족시켰다. 새조개 샤부샤부가 연포탕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먼저 다녀간 식객들의 기록을 찾아보니 꽃게 철엔 꽃게찜과 꽃게탕이 등장하고 대방어회, 주꾸미 샤브 등 제철 바다 식재료를 이용한 숨어 있던 중량급 메뉴가 쏟아진다. 철마다 바뀌는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메뉴를 일일이 메뉴판에 적어 놓기 어렵다 보니 아예 빼놓고 ‘이모카세’로 대응하는 전략이다. 이런 전략, 식객들에겐 행복으로 다가온다. 행복에 도취돼 이날도 마무리 기억이 흐릿한 날이 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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