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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담백함과 기름진 맛의 공존

신구 문화예술ㆍ다양한 맛 어우러짐 좋은 곳 

 


38년 업력 한우육우 곱창 맛집 ‘종가집’ 

구운 김과 함께 먹는 흑두부보쌈 ‘오수’      


지난주 금요일 찾은 인사동은 이미 봄기운이 물씬하다. 갤러리마다 봄을 맞이하듯 화려하고 선 굵은 작품들이 내걸렸다. 이건희 컬렉션을 인사동 북쪽 길 건너 송현동에 세운다고 결정이 난 후로 인사동 갤러리들이 더욱 활기를 띠는 듯하다. 게다가 올해는 지난해 성황을 이룬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서울’이 세계적인 페어 프리츠와 공동으로 열릴 예정이어서 연초부터 미술시장을 가열시키고 있다,   

           

지난해 키아프 서울은 코로나19로 인해 2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를 열었다. 단 5일간이었지만 약 8만 8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작품 판매액은 무려 650여 억 원으로 집계돼 미술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 키아프 서울은 영국 프리츠와 손을 잡았다. 그래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이목이 쏠릴 예정이다. 프리츠는 스위스 아트바젤, 프랑스 피악과 더불어 세계 3대 페어로 불린다.            


이번엔 키아프 플러스(Kiaf PLUS)라는 아트페어도 새로 론칭한다. 이는 키아프 서울이 열리는 코엑스와 2km 떨어진 세텍(SETEC)에서 열리고 기존 컨템퍼러리 아트는 물론, 폭발적 관심을 받고 있는 NFT(대체불가토큰)를 포함한 모든 장르를 선보일 예정이다. 키아프 서울은 9월 3일부터 6일까지, 키아프 플러스 2일부터 5일까지 열린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술 시장은 약 5000억 원대. 올해는 약 2배인 1조 원 대로 폭발적인 성장을 보일 것이란 장미 빛 전망을 내놨다. 해외 언론에서는 지금까지 아시아에서는 홍콩이 미술시장을 선도했지만 서울이 ‘아시아 허브’로 발돋움할 원년이 될 것이란 전망이 이미 지난해 말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인사동은 벌써 봄…올해 그림시장 ‘후끈’     

     

한국 근대기에 유럽에서 활동한 화가 배운성이 그린 ‘가족화’. 캔버스에 유채. 세로 140㎝×가로 200㎝.[사진=대전시 제공]

국제적 미술전문 매체 ‘더아트뉴스페이퍼’는 지난해 10월 15일 자로 ‘Korean wave: could Seoul become the art capital of Asia?’(한류 : 서울이 아시아의 예술 수도가 될 수 있을까?)란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에 따르면 독일의 쾨닉갤러리가 지난해 4월 럭셔리 부티크 MCM하우스에 문을 열었고, 10월엔 한남동에 오픈한 오스트리아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를 포함해 여러 해외 갤러리가 서울에 문을 열었다. 이에 앞서 뉴욕에 기반을 둔 글래드스톤갤러리도 서울에 전초기지를 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올 키아프 서울을 앞두고 유수 갤러리들이 대거 서울에 전초기지를 둔 것이다. 이들은 중국에 반환된 홍콩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을 우려했고 무엇보다 세금에 우호적인 서울에 매력을 느끼면서 대안지로 손꼽았기 때문이다.           


매체는 “서울은 세금 문제도 없고 배송 문제도 없고 모든 것이 매우 편리하다. 게다가 우리는 정치적인 문제가 없고 안정적”이라며 “아시아 시장과 세계 시장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강소정 아라리오갤러리 이사와 “한국 미술 시장이 작년(2020년) 말부터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서울로의 이동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운이 좋다”며 “이런 분위기가 2022년 9월 키아프 서울이 열릴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고 한 박경미 PKM갤러리 회장의 멘트를 실었다.    


해외 미술시장에서 한국작가들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수년 동안 한국 미술을 탐구해 오던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은 내년 9월 11일부터 5개월 간 1897년부터 1964년까지 작품을 전시한다. 이 시기는 일제 강점기(1910-45년)와 미국의 문화적 영향, 특히 표현주의에 강한 영향을 가져온 한국전쟁(1950-53)을 거쳐 1964년까지 시기를 다룬다. 전시에는 윤명로, 이상범, 박재현 등 현대미술의 태동기부터 도입까지 90명의 작가의 140개의 그림, 사진, 조각품이 전시된다. 이 전시는 내년도 ‘꼭 봐야할’ 전시회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런저런 분위기가 반영돼서인지 인사동 갤러리 진열창에서 생동감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갤러리H는 이달 21일까지 MagazineQ 창간 10주년 기념으로 그간 표지화와 인터뷰에 참여한 최지윤 작가 등 29명의 초대전을 열고 있다. 갤러리인사아트에서는 도예가 김흥배 개인전, 갤러리모나리자산촌에서는 박재동의 시사만화 ‘한판 붙자’, 인사아트프라자에서는 이희돈 초대전과 이소윤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미술품 매매 활발     


그렇다면 인사동은 언제부터 그림과 골동품 등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했나. 원래 이곳은 조선시대 충훈부가 있던 곳이다. 충훈부는 공신을 우대하기 위해 이들의 처우와 관련한 문제를 담당하는 관청이다. 충훈부는 종친부·의정부·의빈부·돈령부와 더불어 오상사(五上司)로 불리며 조선시대 최고위 관청으로 대우를 받았던 곳이다. 북인사관광안내소 뒤에 충훈부 터 표지석이 있다.        

    

인사동은 조선시대에는 관청과 민가가 뒤섞여 있던 곳이다. 골동품 상가가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부터다. 국보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도 인사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도 유배 중에 그린 문인화로 절제미와 고상한 추사의 서화 이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한도는 추사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것이다. 이상적은 추사가 보내준 세한도를 들고 중국에 가서 청나라 학자 16명의 시와 글을 받았다. 이를 ‘청유십육가(淸儒十六家) 제찬’이라고 한다.           


세한도는 이상적 사후 그의 제자 김병선과 김준학, 휘문고등학교 설립자인 민영휘와 그의 아들 민규식의 손을 거쳤다. 이후 베이징의 골동상을 거쳐 인사동에 매물로 나온 것을 당시 경성제국대학 중국철학과 교수로 부임한 후지츠카 치카시가 손에 넣었다. 추사 작품에 대한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인사동에서 골동품 매매가 더욱 발전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인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다. 이후 가짜 골동품 사건들이 터지면서 쇠락한 자리를 토속음식점과 전통찻집 등이 자리를 차지했다. 화랑과 갤러리는 이들보다 뒤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인사동 이외에는 골동품과 헌책방, 옛 서화점, 토속음식점이 드물었다. 그래서 이 동네를 1988년 ‘전통문화거리’로 지정하고 관광객을 불러들였다.         

  

고미술품, 골동품, 고서화와 오래된 생활도구, 장신, 전통공예품들을 파는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고 화랑과 갤러리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 비교적 임대료가 쌌던 평창동과 삼청동으로 이전하게 됐다. 코로나19 여파로 지금도 대로변 간판이 자주 바뀌고 있는 가운데 송현동 개발이 인사동에 어떤 영향을 줄지 사뭇 기대하는 분위기다.       

    

작은 한옥 개조한 임실풍(風) 식당

    

흑두부전문점 오수의 흑두부보쌈.

갤러리를 한 바퀴 돌았더니 시장기가 돈다. 예전엔 인사동에 오면 두부요리를 자주 먹었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식당이 많아 작은 문간방이나 사랑방이 있는 곳을 찾았는데, 두부집이 그러했다. ‘獒樹’(오수)란 식당이다. 오수는 어려운 한자다. 개오라고 한다. 잠든 주인을 산불에서 구하기 위해 몸에 물을 묻혀 주인은 살리고 개죽음(?)한 충견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1000여 년도 더 전에 전북 임실서 전해지는 이야기란다. 그래서 임실군에는 오수면이 있는데, 그때 주인이 충견을 기려 심은 나무가 오수다.           


인사동 사동면옥 골목길로 들어가면 흑두부 전문점 오수가 나온다. 주인이 암만해도 임실 사람이지 싶다. 사선막걸리라고 임실서 나는 술까지 메뉴에 넣었으니 말이다. 사선막걸리는 비열처리 생주로 누룩을 사용 전통 자연 발효법으로 완전 숙성시켰다고 한다. 게다가 임실 지하 200미터 천연암반수를 참숯으로 정화해 3번의 정제과정을 거친 물로 만들었단다.           


흑두부와 홍어삼합이 주력인 집이다. 삼합 대신 수육으로 주문했다. 영양밥은 대추가 많이 들었다. 흑두부는 직접 만든다. 음식들이 나쁘지 않다. 한옥을 개조한 좌식집이다. 별관에 왔는데 본관이 궁금하다. 공간이 아담하고 차분하다. 한옥이 주는 매력 같다. 둘레둘레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기 좋은 곳이다. 창가 사랑채 툇마루 같은 4인 좌석이 매력적이다. 다음번엔 그곳에 앉아보리라 기약했다.           


초벌구이 곱창에 불쇼 볼거리

      

‘종가집’의 한우 육우 알곱창과 간·처녑.

담백한 두부의 맛을 기억하고 최근에 들렀던 곱창전문점 ‘종가집’은 한마디로 기름진 맛이다. 인사동 제법 규모 있는 한옥채를 고스란히 식당으로 만들어 고풍을 덤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손님이 한창일 때 실내는 곱창 기름연기로 자욱하지만 그리 거북할 정도는 아니다. 초벌로 구워 나와 밖에서 소주로 불쇼를 한번 하는 게 이 집 시그니처 퍼포먼스다. 냉장고서 새 소주를 꺼내 들이붓는 연세 지긋하고 ‘걸크러시’한 홀 서버들이 멋지고 친절하다.           


1984년 문을 연 업력 38년 차 노포라면 노포다. 육우 한우곱창을 사용한다. 2차를 위해 밥을 볶지 않았으나 다른 곳에 비해 볶음밥이 맛있을 것 같아 보인다. 페이스북 친구 중에 ‘종가집’ 단골이 한 분 있다. 동성동본으로 항렬로는 집안 아재인데 식도락가다. 필자가 알곱창만 주문했다니까 양을 꼭 함께 섞고 반드시 공깃밥을 볶아야 한다고 했다. 또 한 분은 농촌진흥청에 근무하는 분인데 볶음밥은 ‘코리안 디저트’라며 “탕이건, 찜이건, 조림이건, 구이건 메인 디시 후 밥 한 공기 넣고 볶는 디저트, 하트 모양내고, 김으로 장식하는” 볶음밥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사실 곱창기름에 볶아 먹는 밥이 고소하니 풍미가 좋다. 옛날에는 우유팩에 곱창기름 굳은 것을 싸준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그런 식당을 만나기 힘들다. 곱창기름은 어쩌다 한 번이지 집에까지 싸들고 가기엔 건강이 염려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크고 작은 한옥을 개조한 식당에서의 식사는 그 자체가 낭만적이다. 정갈하진 않더라도 푸근함이 있다. 또 어느 식당엔 담백함과 기름짐이 있는 곳, 인사동 한옥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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