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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서 원효로 내달렸던 구용산선 종점 맛집

‘삽다리순대국’ㆍ‘싱싱나라’ㆍ‘창성옥’

곰탕 같은 맑은 육수로 유명한 ‘삽다리순대국’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 닫는 김밥 ‘싱싱나라’

70년 넘은 백년가게 뼈 해장국 전문 ‘창성옥’       


1899년 5월 4일 우리나라 최초로 서대문부터 청량리까지 부설된 홍릉선 전차 개통식이 열렸다. 개통식은 동대문발전소에서 열렸다. 동대문발전소는 지금 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서울이 있는 자리다. 아시아에서 일본 교토, 나고야에 이어 세 번째이자 수도로는 첫 번째였다. 세계 최초 전차는 1881년 독일 지멘스사가 베를린 교외선으로 도입한 것이고 일본 수도 도쿄는 1901년 개통했다. 이처럼 대한제국의 전차 도입은 세계적으로 상당히 빨랐다.      


유길준의 서양 기행문이자 국정 개혁서인 ‘서유견문’을 보면 독일 전차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유길준은 1883년 보빙사 일원으로 미국에 갔다가 유럽 등을 둘러보고 1885년 귀국해 ‘서유견문’을 4년간 정리한 후 1890년 고종에게 초고를 올렸다. 책이 출간된 것은 1895년인데, 내용 중 “베를린 시내에 전차가 운행되고 있다. 전차는 철로를 오가는 차량이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말에 끌게 하지도 않으면서 오가는 것을 전기로 조정하는 차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전차 호기심 때문에 재산탕진’

    

1899년 5월 4일 우리나라 최초 전차 개통식이 열린 동대문발전소(현 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서울) 전경.[사진=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당시 전차는 전기철도 또는 전기거라고도 불렸다. 동대문발전소에서 열린 개통식 사진을 보면 숭례문 계단과 문루까지 입추의 여지가 없이 흰옷으로 꽉 채운 인파를 볼 수 있다. 그만큼 전차는 신기한 문물이었고 도시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똘똘 뭉친 상징이었다.      


개통식 이후 2주간의 점검을 마친 전차는 5월 20일부터 본격적으로 승객을 태우고 운행했다. 노선은 경교(현 적십자병원 인근) 근처 서대문역서부터 청량리까지다. 서대문에서 동대문까지를 중앙선, 동대문에서 청량리까지를 홍릉선이라고 불렀다. 통칭할 땐 홍릉선으로 불렀다. 이 노선은 고종이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 능행을 위해 부설됐다는 황헌의 ‘매천야록’ 기록이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야사일 뿐 정확한 목적은 남아있지 않다.      

처음 전차가 도입됐을 때 ‘웃픈’ 생활상이 신문 기사로 남아 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신기해 전차를 타보려는 사람이 많아 언제나 북새통이었고 가까스로 전차에 오르더라도 내리질 않아 골머리였다. 매일신보 1936년 1월 4일 자에 따르면 ‘번갯불을 잡아서 사람이 타고 다닌다고 하여 초인간적 이상함에 놀라서 전답을 팔아 전차를 타고 다니느라 재산을 탕진했다는 거짓말 같은 사실도 있었다’고 한다. 전차 도입 초기는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신기한 신문물을 경험해 보려는 경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노선은 종각서 용산 강항까지


전차 구용산선 종점에 대한제국의 용산전환국이 있었다는 표지판. 지금은 KT 용산 IDC가 들어서 있다.


두 번째 전차노선은 보신각에서 용산(강항)으로 이어졌다. 당시 용산은 지금의 구용산인 용산 전자상가 쪽을 의미한다. 용산은 1884년 개시장(開市場)으로 지정되면서 선박과 외국인 출입이 왕성했던 곳이다. 1900년을 전후로 이 지역에 각종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897년 벽돌제조창이 세워진 후 1900년도 전환국이 인천에서 옮겨왔다. 전환국은 지금의 KT 용산 IDC 자리다. 이곳은 전환국이 들어서기 전엔 군자감 강감이 있던 자리다. 군자감은 조선시대 군량미 및 군수품 저장과 출납을 맡은 국가 관청이다. 사대문 안에 본감·분감과 성 밖 용산강가에는 강감을 두었다.     


군량미는 한 곳에 보관했는데 창고가 비좁아 지자 용산강창을 준공했고 송현(솔고개)에도 창고를 세우고 분감이라 했다. 후대에는 군인들뿐만 아니라 관원들 월급인 녹미도 겸해 약 30만 섬의 곡식을 저장했다고 한다.   


전환국은 근대 화폐를 주조·발행하는 관청으로 원래는 서울 현 남대문로 부영 사랑으로 빌딩 앞에 있다가 1892년 인천으로 옮겨갔다. 전환국이 서울과 인천을 오간 이유는 일본의 화폐권 침해 의도가 담겨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당시만 해도 서울(한성) 보다는 인천에서의 일본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자신들의 휘하에 두려는 속셈이었다. 이번 두 번째 답사의 마무리는 인천서 옮겨온 강감 터이자 전환국이 있던 자리였다.      


1899년 9월 경인철도가 인천에서 노량진까지 가영업을 시작하면서 일대 교통과 물산 흐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영등포에서 여의도간 궤도차가 가설되고 여의도에서 배로 용산까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전차부설에 필요한 재료도 인천에서 도성 안으로 운송하기 편리해지면서 전차 가설에 속도가 붙었다.      


구용산선은 신용산이 개발되기 전이라 초기에 전차 노선은 종각에서 남대문을 지나 경성역 뒤편을 경유해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앞길인 현재의 원효로를 통해 용문시장 입구 전환국이 있던 원효로3가까지였다. 신용산이 생기면서는 현 남영역에서 신용산선과 구용산선이 분기했다.      


구용산선 종점엔 용문전통시장 있어  

      

옛 전차노선인 구용산선 종점 인근에 있는 용문전통시장은 구색이 잘 갖춰져 있어서 매우 활성화된 시장인 동시에 다양한 맛집이 있다.

구용산선 종점 인근에는 용문전통시장이 있다. 1965년 무렵 형성됐고 2013년 서울시 인정시장으로 등록된 시장이다. 실질적 시장의 형성은 이보다 훨씬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고 1948년 시장이 개설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시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보단 상거래가 꾸준히 이뤄지던 곳이 모양새를 갖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점에서 이곳 역시 훨씬 이전부터 시장 기능을 했을 것이란 추정이다.      


시장은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현재 매우 활성화된 상태다. 오래된 전통시장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서 정감 어린 부분도 있다. 시장 초입에는 과거 간판도 없이 장사하던 순댓국 노포가 하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있다. 다만 어엿하게 엑스배너로 간판을 세웠다. ‘삽다리순대국’이란 곳이다. 필자가 칼럼에서 이미 한번 소개했던 곳이다. 뼈 해장국 전문점인 창성옥과 함께 용문시장의 대표적 맛집이다.         

    

‘창성옥’은 장사가 잘돼 옆집까지 점포를 늘렸다. 내용물이 실하고 무쇠 그릇에 끓여서 나와  맛이 깊은 곳이다. 70년을 훌쩍 넘은 해장국 전문점이니 저력이 있기 마련이다. 일제강점기 때 창업한 곳이다. 이 지역이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 인구가 제법 많았다. 창업 이후 창업주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건물주 부부가 3대째 이어서 운영 중이며 ‘백년가게’로 인정받았다.      


장사 잘돼 재료 소진 일찍 문 닫아     

용문시장 삽다리순대국의 맑은 곰탐 같은 순댓국

이밖에도 용문시장에는 유명한 식당이 꽤 있다. 효창공원역서 진입하는 시장 입구에는 ‘싱싱나라’라는 간판을 단 김밥집이 있다. 늘 긴 줄을 세우는 이곳은 오후 서너 시면 재료 소진으로 문을 닫는다. 서울 옛 전찻길 두 번째 답사를 마친 지난 23일에도 ‘삽다리순대국’서 점심 한 그릇을 비우고 입가심으로 김밥을 한 줄 먹으려 했지만 바로 코앞에서 재료가 떨어졌다. 그동안 수차례 지나치면서 이제나 저제나 했던 터라 아쉬움이 컸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필자에게 있어서 ‘삽다리순대국’은 용문시장 으뜸 맛집이다. 맛도 맛이지만 인심과 정직한 맛이 좋다. 이번에도 답사를 마치고 15명이 들이닥쳤더니 재료가 10인분 밖에 없다며 손님을 다 받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욕심이 있는 주인이라면 15인분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물론 그런 식당 주인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아등바등하지 않고 여유롭게 영업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삽다리순대국’ 맛의 특징은 곰탕같이 맑은 순댓국이다. 잡뼈를 사용하지 않고 머리고기와 내장만을 사용해서 육수를 우렸다. 소고기 곰탕과 같은 원리다. 또한 대부분 순댓국 식당이 양념에 들깻가루 등을 넣어 입맛 선택권을 빼앗은 반면 이곳은 순대와 머리 고기, 내장에 부추만 넣어 제공한다. 뜨거운 육수에서 달달한 채수를 내놓은 부추가 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2회차 옛 전찻길 답사 길 끝에서 만난 용문시장 ‘삽다리순대국’에 10명 모두 엄치를 치켜세웠다. 2차로 들른 시장 초입 ‘구룡포횟집’의 두툼한 막회와 1인분도 파는 물회 역시 시장 인심을 대변하듯 풍성했다. 다음번 전찻길 답사는 마포선이다. 마포종점에는 또 어떤 맛집을 탐방할지도 자못 기대된다. 


구용산선 전찻길 답사를 마치고 KT IDC 앞에서 단체사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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