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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찻길 왕십리선 따라 걷다가 만난 떡볶이타운

신당동떡볶이 ‘마복림’ Vs ‘아이러브신당동’   

고추장 광고로 뜬 마 할머니 아성에 도전장        


1930년대 남대문 전경. 양 옆으로 성벽을 허물고 낸 전찻길이 보인다.[사진=서울역사박물관]


많이도 걸었다. 숭례문(남대문)부터 을지로를 통과해 왕십리까지 대로변을 따라가면 어림잡아 6.4km, 그러나 골목을 헤집고 다녔기에 8km를 훌쩍 넘게 걸었다.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 문화지평이 서울시 후원으로 진행하고 있는 ‘옛 전찻길 따라 시공간을 잇는 서울 역사’ 답사 탐방이 지난달 28일 진행됐다. 총 8회 차 중 5회 차로 을지로선(황금정선)과 왕십리선 구간을 걸으며 서울이란 지층에 쌓인 역사의 켜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무려 30명이 넘는 답사객이 몰려 이번 프로그램의 인기를 실감 나게 했다. 대한제국시기 전차는 서대문~청량리 구간을 필두로 종로~용산, 서대문~남대문, 서대문~마포 노선을 개통했다. 이들 노선은 조선후기 번창한 강항(江港)인 마포와 용산을 연결해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대한제국 정부가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한 한성전기에서 미국인 사업가 콜브란의 한미전기로 이어지는 시기 동안 부설된 것이다.     


전차경영권 日 인수 노선변화 초래       


1909년 일본의 일한와사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전차 노선의 큰 변화가 온다. 신설 노선 대부분이 일본인 거주지 위주로 편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종의 한성도시개조사업이 한일강제병합으로 인해 틀어져 버린 것이다. 인수 당시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의 수도 경성의 전등, 전차가 미국인 손에 경영된다는 것은 치욕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인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실거래가의 2배가량 비싼 값을 지불했다는 후문이다.      


한미전기의 인수는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였다. 한반도 식민 정책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일제는 1910년 을사늑약을 통한 강제병합 직후부터 전차사업에 집중적 투자를 한다. 가장 먼저 황금정통(지금의 을지로)에 노선을 부설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당시 황금정통은 도로가 너무 좁았다. 그래서 경성시구개수사업으로 도로를 정비한 후에야 진행됐다. 당시 황금정통은 본정통과 함께 상업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었다.     


1912년 12월 6일 개통한 황금정선은 기존 종로선과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경성의 동서를 잇는 중요한 전차선이 됐다. 종로선은 조선인, 황금정선은 일본인의 거주지를 관통했다. 그래서 복선화가 빨리 이뤄졌다. 하루 평균 6대가 운행하면서 약 2,000여 명을 실어 날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여객 수요가 많았다. 개통 2년 후인 1914년 7월 4일에는 황금정선 동쪽 끝인 광희문에서 왕십리까지 노선이 개통됐다.      


국권이 약화되자 도성 훼철 시작     


이날 답사는 숭례문에서 시작했다. 전차가 개통했을 때는 흥인지문(동대문)이나 숭례문의 성문을 통과했다. 전차의 운행은 공간의 변화와 함께 시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1895년 그동안 도성의 안과 밖의 왕래를 규제하던 인정과 파루를 정오와 자정에 종을 치는 것으로 일부 바뀌었다. 경성 시정일지인 ‘경성부사’ 1권에 따르면 ‘국초 이래 조석으로 성문을 여닫던 제도가 자연히 폐지됐다’고 기술됐다.      


1905년 경부철도가 개통되면서 남대문은 사람, 우마(牛馬) 짐수레, 전차가 뒤엉키면서 혼잡도가 증가했다. 이를 빌미로 성벽 훼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대한제국 정부 외부대신 이하영에게 공문을 보내 남대문 양측 성벽을 헐어내고 성문을 우회하는 2개 통로와 또 하나이 대로를 만들어 보행편의를 도모하고 교통체증을 줄이자는 제안을 했다.      


대한제국 정부는 처음에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계속되는 일본 측 요구에 1907년 고종은 끝내 재가하고 만다. 약해지는 국권과 기우는 대한제국의 명운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때 동대문과 남대문 좌우 각 8간(약 14.5m) 씩 헐기로 했고 대신 도로를 따로 내는 사업은 진행하지 않았다. 같은 해 7월 헤이그 밀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 퇴위되면서 성벽 훼철은 본격화됐다.    

 

대로·골목 누비며 이야깃거리 쏟아내      

문화지평이 지난달 28일 남대문에서 왕십리까지 옛 전찻길 답사를 시작하기 전 남대문 앞에서 단체사진을 남겼다.


이날 답사 해설을 진행한 김태휘 해설사(전국역사지도사모임 대표·궁궐길라잡이)는 “9월 남대문 앞 남지가 메워지고 북쪽 성벽을 철거하는 공사가 시작됐다”면서 “이듬해에는 남대문 남쪽 성벽과 동대문 북쪽 성벽, 오간수문이 헐렸다”고 설명했다. 광희문 성벽도 1911~13년 사이에 철거됐다.      


이날 답사는 황금정선과 왕십리선을 따라 옛 전차노선에 충실하되 이야깃거리가 있는 골목을 누볐다. 코스는 남지 터, 칠패시장 터, 전환국 터, 예빈시 터, 선혜청 터, 상진 집 터, 상동교회·새로나백화점, 조선은행·저경궁 터, 조선저축은행, 미쓰코시백화점, 미도파백화점 등 남대문로 일대를 먼저 걸었다.      


이후 명동길로 스며들어 코스모스백화점, 유네스코회관빌딩, 조선식산은행, 반민특위 사무실, 경성전기,  은성주점 터, 명치좌, 명동교자, 하동관, 오양빌딩(김수근), 나석주의사 의거 터(동양척식회사)를 둘러봤다.       

본격적으로 황금정통인 을지로에 접어들어서는 장악원 터, 도화서 터, 기업은행 본점(김중업), 혜민서 터, 양향청 터, 영락교회(박동진, 한경직 목사), 을지로골뱅이골목, 영희전 터, 스카라극장 명보극장, 이순신생가 터를 둘러봤다. 이어 양성지 살던 곳, 을지로노가리골목, 을지면옥, 국도극장 터, 동평관 터, 오장동 함흥냉면거리, 훈련원 터(극동공병단)를 둘러보고 멀리 보이는 벽돌조 경동교회(김수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동대문야구장)와 이간수문, 한양공고, 서산부인과(김중업)를 거쳐 황금정선의 종착인 광희문에 다다랐다. 남대문에서 30명 정도가 출발했는데 광희문에서 확인해 보니 20명 남짓 남았다. 계속해서 지금은 표석조차 없는 동활인서 터를 둘러본 뒤 신당동떡볶이타운에서 1차 해산을 했다. 많이들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동고, 무학초, 성동우체국, 행당1동주민센터를 거쳐 최종 종착지인 왕십리역에는 9명이 도착했다. 


표석 전문가답게 김 해설사는 답사로 내에 산재한 표석을 빠짐없이 들러보면서 역사적 의미를  더했다. 게다가 김중업, 김수근, 박동진 등 현대건축을 이끈 대가들의 건축 유산도 소홀하지 않았다. 을지면옥, 오장동함흥냉면골목, 하동관, 명동교자, 을지로골뱅이골목, 을지로 조명거리, 을지로 노가리 골목, 신당동떡볶이골목 등 을지로 노포와 서울미래유산 골목도 빠짐없이 지나치면서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쏟아냈다.      


7개 떡볶이 점포 ‘도원결의’       


신당동떡볶이타운 초입에 맞보고 있는 마복림떡볶이와 아이러브신당동. 이들은 떡볶이타운 발전을 견인하는 선의의 경쟁자다. 떡볶이 사진은 아이러브신당동.

작고한 마복림 할머니는 신당동 즉석떡볶이의 대명사다. 마 할머니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96년에 방송된 해찬들 태양초 고추장 광고 때문이다. 당시 광고모델은 대부분 유명 연예인이 꿰찼으나 마 할머니를 전면에 내세운 파격적 광고는 한마디로 대히트였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란 게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광고는 특히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라는 가족 간에도 영업 비밀을 강조하는 명 카피를 남겼다. 마 할머니는 떠났지만 신당동 일대는 아들과 며느리가 마 할머니 이름을 내건 상표를 단 떡볶이 집을 여럿 운영하고 있다. 광고 효과 탓에 신당동떡볶이타운을 첫 방문한 식객 대부분은 지금도 마복림떡볶이 점포 앞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위기를 느낀 주변 떡볶이 점포 꾸러기, 다사랑, 우리끼리, 잘난이, 토박이, 고인들 등 7곳은 ‘도원결의’(?)를 하고 마복림떡볶이에 맞선 공동브랜드를 개발하게 된다. 30년 이상 된 떡볶이 내공을 한껏 발휘해 2001년 ‘아이러브신당동’ 떡볶이를 탄생시켜 지금은 떡볶이타운 초입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DJ가 음악을 틀어주고 사연을 이야기한다. 통기타 라이브 무대도 펼쳐진다. 홈페이지로 들어가면 떡볶이 주문 게시판이 있는데 이곳을 통해서 택배로 떡볶이를 받아서 맛볼 수 있다.     


대표메뉴인 신당동떡볶이는 떡볶이, 어묵, 쫄면, 라면사리, 군만두 등으로 구성돼 있다. 메뉴명에서 매운맛이 느껴지는 눈물떡볶이, 베트남 땡초가 들어간 짜장떡볶이, 궁중떡볶이, 해물떡볶이, 치즈떡볶이 등이 인기메뉴다. 사이드 메뉴로 김밥, 순대, 닭발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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