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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  서울의 기차 건널목 맛집

코다리찜 맛집 ‘독박골맛있는집’ㆍ닭다리 볶음 ‘오근내2닭갈비’

서소문건널목 코다리찜 맛집 ‘독박골맛있는집’

백빈건널목 국산 닭다리 볶음 ‘오근내2닭갈비’          


지난 호 ‘오래된 골목에 숨은 보석 같은 맛집’에 이어 골목 맛집 몇 곳을 더 소개한다. 골목상권은 대로변에 비해 물리적으로 불리하다. 물론 임대료가 그만큼 싸지만 대로변 상권의 수입이 임대료 차액을 뛰어넘기 때문에 결국은 불리하다. 그래서 골목상권은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 생존해야만 한다.      

     

흔히 식당의 성공은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도 옛말이 됐다. 요즘은 ‘기칠운삼’의 시대다. 단단한 실력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다. 근근이 꾸려나갈 수는 있어도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식당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고 피드백이 바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경리단을 시발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O리단길’이 골목상권을 기반으로 발달한다는 것이다. 대로는 8차로, 도로는 2~7차로, 길은 대로와 도로 이외의 것을 말한다. 골목은  길이 붙어서 골목길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O리단길’ 골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로변 길을 칭하기보단 작은 이면도로에 많이 발달해 있다.           


서울시 우리마을 가게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골목상권은 골목과 상권의 합성어로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에 상업상의 세력이 미치는 범위’로 정의하고 있다. 대로변이 아닌 거주지 안의 좁은 도로를 따라 형성되는 상업 세력의 범위를 뜻한다. 여기에 골목이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적 측면의 가치와 상권의 결합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필자가 인문역사공동체 문화지평(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을 처음 만들었던 2014년에는 단체 명칭이 ‘골목의 기억과 추억’이었다. 필자가 40여 년 전 등하교 시절 지났던 골목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위해 만들었다. 그러던 모임이 골목 답사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로 발전했고 최근 들어서는 서울의 역사를 따라 사방팔방을 누비기로 유명하단 입소문이 났다.   

        

골목 누빈 후 식사는 토론 겸한 시간  

     

인문역사공동체 문화지평은 골목답사와 골목상권을 사랑하는 단체다. 답사 후 식사는 토론을 겸하는 귀한 시간이다. 사진은 서소문건널목 전경.


골목 답사는 전문 해설사를 대동하고 지역의 인문학적 자원과 역사적 자원, 경관, 관광, 자연, 생태자원 등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그러고 나서는 지역에 있는 맛집을 찾아 ‘금강산도 식후경’으로 답사를 마무리한다. 식사는 답사에 대한 토론을 겸하는 시간이 된다. 이런 식사는 최고의 만찬이다. 모든 것이 골목이 주는 큰 선물이다.           


이번 호는 기차 건널목 근처에 있는 골목을 테마로 잡았다. 필자가 알기로는 서울에는 기차 건널목이 네 곳 정도 남아있다. 기차 건널목은 도로와 철도가 교차되는 지점이다. 건널목 개량촉진법 제2조에 따르면 ‘건널목’이란 철도와 도로가 평면 교차되는 곳을 말한다. 즉, 도로와 철도가 직접 교차되는 구간이다. 건널목은 이론 상 가장 적은 비용의 철도와 도로 교차로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서울 도심 곳곳에 천 여 개가 넘는 많은 철길 건널목이 있었다. 안전상의 이유로 2000년대 이후로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필자가 알고 있는 돈지방건널목, 서빙고북부건널목, 서소문건널목, 백빈건널목 등 4곳 이외에 휘경2건널목, 휘경4건널목, 남가좌리건널목 등 모두 7곳 정도가 남아 있다.           


돈지방건널목은 용산역에서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역을 잇는 간선철도 경원선 이촌역 인근에 있다. 지하철과 경의중앙선, 경춘선을 오가는 기차들이 수시로 지나고 있다.  서빙고 북부건널목은 중앙선 전철 서빙고역 동쪽에 위치해 있다. 반대쪽 반포대교 아래에는 남부건널목도 있지만 지하차도가 공존한다. 이들 서빙고건널목은 한강과 도로에 접해 있기 때문에 상권이 없다.    

        

경의선과 만초천 교차하는 섬 같은 곳      


독박골맛있는집의 코다리찜, 소고기미나리전, 청국장과 밑반찬.

서소문건널목은 상황이 다르다. 서울역이라는 철도 중심지 옆에 있는터라 하루에도 550여 차례 기차가 오가는 번잡한 건널목이다. 일제강점기 때 경의선 서소문역 때문에 지났던 철길이다. 지금은 서울역에서 문산역을 지나 도라산역까지 간다. 이 건널목을 건너서 골목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과연 이런 곳에 식당이 있을까 싶은 곳에 ‘독박골맛있는집’이란 독특한 상호를 가진 음식점이 나온다.           


식당 옆으로는 경의선이 급하게 꺾여 좌회전하고 안산과 인왕산에 스며있던 빗물이 모여 만든 물길 만초천이 교차하는 곳이다. 과거 만초천에는 미나리가 풍성했고 조개 파는 시장이 있어서 근동, 합동 등으로 불리다 합동으로 법정동이 통일된 동네다. 경의선 철길과 후일 서소문고가가 생기고 만초천 물길 위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천변 옛집은 마치 도시의 섬처럼 숨죽이며 들어앉았다. 이들 집 중 하나를 개조해 들어선 것이 ‘독발골맛있는집’이다.           


식당에 앉아있으면 가끔 기차의 쿨렁이는 소리를 안주 삼을 수도 있다. 음식이 맛있으면 식객들은 좁디좁은 골목도 용케 잘 찾아낸다. 주인은 주방서 웍을 돌리느라 얼굴 보기 힘들다. 대신 음식으로 인사하는 곳이다. 진정성을 담으려고 노력하는 맛이다.          

 

저녁 메뉴로는 코다리찜, 가지찜, 소고기미나리전이 주력이고 수육은 서너 시간 전에 예약해야 한다. 오래간만에 마음에 드는 고소하고 적당히 고릿한 청국장을 만나서 반가웠다. 점심식사는 김치찜, 김치찌개, 청국장, 표고뚝배기 등이 준비돼 있다. 예약하면 마음에 드는 자리를 선택해 편하게 먹을 수 있다. 겉은 허름하나 내부는 깔끔하고 세련된 곳이다. 2층에서 바라보는  창밖 도시 풍경이 궁금해져 다음 주에 다시 한번 가보기로 했다.           


한강과 철길로 막힌 시간이 멈춘 동네        

오근내2닭갈비의 닭갈비와 밑반찬.

용산 백빈건널목은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땡땡’ 경고음을 내서 ‘땡땡거리’라는 별칭이 있다. 조선시대 궁에서 나온 백씨 성의 빈이 근방에 살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일대는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1960~80년대 풍경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쪽은 한강으로 길이 끊겼고 다른 한쪽은 기찻길이 지나면서 이곳 역시 섬처럼 들어앉은 곳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철도관사를 비롯해 부속 시설들이 몰려 있던 동네다. 아직도 적산가옥 흔적이 대거 남아있다. 산낙지 전문식당 ‘해정’은 넓은 대지를 가진 꽤나 넓은 적산가옥을 고스란히 식당과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해정과 같은 라인 빌딩 두 채 정도 북쪽으로 ‘오근내2닭갈비’가 있다.   

        

오근내(烏斤乃)는 신라 문무왕 때 불렀던 춘천의 옛 이름이다. 춘천역사문화연구회는 고구려 때 불렀던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춘천이란 지명은 1413년(태종13)에 처음 등장한다. 춘천은 봄내란 예쁜 한글 이름도 있다.           


오근내 닭갈비는 현재 오근내7까지 여섯 개 점포가 출점해 있다. 오근내4가 없기 때문이다.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은 선정된 명불허전인 곳이다. 국내산 생닭 다리살만 이용해 포를 떠서 손님 앞에서 자르는 것이 오근내의 셀링 포인트다. 이를 통해 맛, 신뢰 모두 잡았다.           


때론 홀 크루가 볶아주기도 하지만 직접 볶는다면 양배추 순이 완전히 죽을 때 까지 달달 볶아 졸여야 제 맛이 나는게 팁이다. 깻잎을 더 달라고 해서 넣어주면 맛이 풍성해진다. 인근에 오근내 본점과 노포 ‘춘천식당’(본지에 소개)이 있어서 춘천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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