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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야행 허기 달래준 ‘남도식당’은 무얼 팔까?

정동 터줏대감 남원식 추어탕 전문점

쓰러져가는 한옥 옛 살림집 정취 남아       


필자가 대표를 맡고 있는 문화지평은 지난해 두 개의 서울시 사업을 수행했다. 서울시 사업은 민간 보조금을 받아 시(市)를 대신해 시민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영위하는 것이다. 하나는 ‘전찻길 따라 시공간을 잇는 서울 역사’고 또 하나는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근대건축 테마답사’란 사업이다.      


‘전찻길’ 사업은 1899년 생겨서 1968년 사라진 노면전차의 가상 노선을 따라 걸으며 전차의 역사와 주변 공간의 변화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근대건축 테마답사 역시 조선말과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에 대한 답사다. 특히 멸실 위기 2층 한옥에 대한 답사가 이뤄져서 그동안 간과하고 지났던 도시건축유산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환기시킨 시간이 됐다.      


전찻길 답사는 총 8회에 걸쳐 진행했고 이중 6회는 본 음식칼럼으로 답사 흔적을 남겼다. 금강산도 식후경의 자세로 답사 후 찾은 식당에 대한 맛집기행 칼럼을 남긴 것이다. 그러나 근대건축 테마답사는 4회에 걸쳐 진행했으나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관련 맛집기행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시간을 되짚어 당시 답사가 끝나고 들른 맛집을 찾아가 본다.     


한겨울 밤 낭만 답사 ‘정동야행’

정동야행의 답사팀이 세실마루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구랍 12월 20일 정동을 저녁에 걸었다. 정동 지역은 흔히 근대 건축물의 ‘보물창고’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시대별, 양식별, 역사적으로 많은 근대건축물들이 지어졌고 잘 보존된 공간이다. 과거에는 중구청 주관 ‘정동야행’이란 특별한 축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그 추억을 되살려 근대건축 테마답사를 정동야행에 접목했다.     


정동 일대 주간, 야간 경관을 아울러 돌아볼 수 있도록 오후 4시 원구단에서 답사를 시작했다. 정동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 씨의 묘가 있었기에 붙은 지명이다. 서울시 중구에 있는 동으로 행정상으로 소공동에 속한다. 이곳은 신문로·태평로·서소문 등에 둘러싸여 있으며 면적은 30만㎡, 인구는 400여 명이 거주하는 아주 작은 동이다.     


정동은 이씨 조선 왕조의 시작과 끝이 있는 곳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4년 뒤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 씨가 세상을 뜨자 정동에 묘를 조성했다. 애틋함이 과해서 사대문 안에 묘를 쓰지 말라는 국법에 반하면서까지 묘를 쓴 탓에 오늘날 정동이란 이름이 남았다.       


답사는 환구단에서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2월 일대가 총독부 소유가 되면서 일제는 1913년 환구단을 헐고 조선총독부 철도호텔(현 조선호텔)을 지었다. 해체해서 나온 부재는 이곳저곳에 팔아 고의적으로 훼손했다. 환구단 정문은 조선호텔 정문이 됐다가 1967년 조선호텔이 신축되고 태평로가 확장되면서 이듬해 해체되고 1969년 5월 어디론가 팔려갔다.     


2007년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그린파크호텔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호텔 정문이 환구단 정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9년 지금 자리로 이전 복원됐다. 황궁우, 석고 등 환구단 일대를 시피고 난 후 옛 세실극장 옥상인 세실마루로 향해 주변을 살폈다. 세실극장 옆에는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이 있다. 서울에서 보기 드문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면서도 한국적 정서의 처마장식, 기와지붕 등을 적용한 아름다운 건물이다.      


성공회주교좌성당 뒤편에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건물 앞에 섰다. 연말연시면 어김없이 지하철역이나 번화가에 등장하는 ‘사랑의 열매’ 모금함을 운용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소유의 이 건축물은 김수근이 설계한 정동빌딩이다.      


정동 붉은 벽돌 건물군…제2의 대학로     

붉은벽돌로 지은 이화여고박물관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정동빌딩이 있는 이 길은 붉은 벽돌 건물로 채워져 있다. 정동빌딩 옆에 있는 조선일보미술관(1988)은 건축가 윤승중이 설계한 건물이다. 이곳에는 1922년 지어진 정동제일예배당이 있었다. 1946년부터 덕수교회로 불리다가 1980년대 초 이곳을 떠나 성북동으로 이전했다.      


조선일보미술관 옆 성공회 성가수녀원은 한옥을 제외한 부분을 건축가 김원이 1990년 설계했다. 김원은 성공회주교좌성당 증축을 맡았던 건축가다. 윤승중과 김원은 공교롭게도 김수근의 제자들이다. 이 지역 일대는 김수근 군단이 지은 붉은 벽동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마치 제2의 대학로를 연상시킨다.      


이어서 사조빌딩, 선원전 터, 구세군중앙회관, 미 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 덕수초등학교, 중명전 등을 거쳐 정동아파트를 지나면 적벽돌로 외관을 마감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을 만날 수 있다. 교육회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이 건물 뒤에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원이 있다. 교육회관을 지은 김원의 스승인 김수근이 설계해 1965년 준공된 건축물이다.      


프란치스코 교육관과 수도원을 지나 강북삼성병원 앞 정동사거리 방향으로 오르면 길 끝에 경향신문 사옥이 나타난다. 옛 MBC정동사옥(현 경향신문)과 그 뒤편에 방송국 건물로 사용했던 정동빌딩은 김수근이 1967년 설계한 건축물이다. 이처럼 정동은 제2의 대학로라 불러도 무리 없는 김수근과 제자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서울의 남원식 추어탕 강자

남도식당 추어탕과 식당외관

 늘 그렇지만 답사의 끝은 맛집 탑방이다. 답사를 4시에 시작한 이유도 저녁 식사시간 무렵에 끝내고 시장한 배를 채우기 위함이다. 이날은 답사를 마치고 ‘남도식당’을 갔다. 식당 이름만으로는 메뉴가 뭔지 모르지만 이름만 대면 대부분 사람들이 아는 유명한 추어탕 식당이다.      


1930년대 큰 한옥을 쪼개서 여러 채의 개량형 한옥을 지어 보급할 때 지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조그맣고 허름한 전통가옥을 개조해 만든 식당으로 좁고 불편하다. 그러나 맛 만큼은 진심인지라 여러 불편을 감수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추어탕과 사이드 반찬 궁합이 훌륭한 곳으로 정동 터주대감 소리를 듣는다. 


정동극장과 중명전 사이 골목에 있다. 장사가 얼마나 잘됐는지 옛날 세무 공무원들이 식당 앞에서 손님 수를 세서 세금을 추징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추징세금이 어마어마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장사가 ‘불티나게’ 잘됐다는 반증이다.      


남도식당의 추어탕은 남원식이다. 남원식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오랜 시간 끓인 후 살을 발라내서 쓴다. 함께 부재료로 들어가는 시래기는 고추장, 된장에 무쳐 간을 맞춘 후 생강, 후춧가루로 맛 균형을 잡는다. 기호에 따라 들깨나 산초가루를 넣어 머그면 된다. 남도식당 식탁에는 산초가루, 청양고추, 후추가루 등이 골고루 구비돼 있다.      


미꾸라지 요리는 전북 남원이 대표적이다. 서울식, 원주식 등 지역명을 붙인 추어탕도 유명하지만 남원식이 강세다. 남원 추어탕은 지리산 맑은 계곡에서 자란 질 좋은 미꾸라지를 사용하는 데 따른 자부심이 대단하다.


남원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논두렁이나 수로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보양식으로 즐겼다. 갖은양념과 산채를 가미한 특유의 요리법이 전승되고 있다. 남원시 요천로 추어탕 거리에는 20여 개 점포가 모여 있다. 추어탕 고장답게 인구 대비 추어탕 식당 수가 전국 1위다.


남도식당은 식당명에서 남원식 추어탕을 유추할 수 있도록 했다. 된장 베이스의 구수한 탕국물이 웅숭깊다. 보기는 지극히 시골스럽지만 넉넉한 남도의 넓은 벌판이 생각나는 맛이다. 반찬으로 제공되는 김치, 오이무침, 얼갈이 무침 등이 탕과 궁합이 참 좋다.      


정동지역은 해설사를 대동해 수십 번 답사 했지만 늘 새로운 곳이고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그만큼 역사의 시층이 두터운 곳이다. 근대 교육과 의료의 발상지이자 개항 후 외교의 각축장이기도 한 지역이다. 또 개신교와 정교회, 성공회 등 외래 종교가 포교활동을 한 중심지면서 고종이 대한제국을 통해 황제국가를 이룬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정동에는 남도식당과 같은 오랜 노포식당도 많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정동길을 걸어보고 노포에서 역사를 만끽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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