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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입구서 만난 맛난 홍어전문점 ‘진미홍어’

가성비 좋고 인심 더 좋은 강북지역 홍어 성지

홍어삼합에 미나리 대신 달근한 보리 싹 제공

곰삭은 김치 테이블서 잘라주는 퍼포먼스 재미


옛 살던 동네 선배 전화가 왔다. 오래 전 축구동호회를 통해 알게 된 선배다. 당일 저녁밥을 같이 먹자는 ‘식사벙개’다. 약속장소는 수락산 입구로 정했다. 같은 서울이지만 지하철로 넉넉잡아 1시간 20분이 걸리는 먼 거리다. 서울을 대각선으로 질러가는 길이다. 비록 멀었지만 얼굴 본 지 칠팔년은 된 듯해서 흔쾌히 간다고 했다. 


반갑기도 했지만 메뉴가 ‘홍어삼합’인 이유가 컸다. 홍어는 필자가 ‘최애’(最愛)하는 메뉴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광성상가 지하 영산포수산(구 형제수산)은 단골 홍어집이다. 식당은 아니고 이곳은 해체한 홍어를 도시락에 담아 팔거나 마리째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도매와 소매를 겸하는 곳으로 필자는 가끔 통째로 한 마리를 해체하거나 도시락 두 개 정도를 구입한다. 


그리고 홍어 부속을 서비스로 받아 온다. 부속은 연골, 껍질, 내장, 애 등인데 여 사장님이 들고 가기 힘들 정도로 많이 싸준다. 국산 홍어도 취급하지만 주로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 수입산 홍어를 취급한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양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국산 홍어가 먹고 싶을 때는 노량진수산시장에 있는 홍어집을 이용하는 데, 직접 구매하지 않고 네이버 스토어에 있는 ‘프레시코리아’를 이용한다. 같은 가격이지만 직접 가지 않고 배송을 받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또 수입이 아닌 흑산도 참 홍어급 국산홍어란 점에서 매력적인 맛을 즐길 수 있다. 


필자는 이 곳 홍어를 ‘흑산도 앞바다에서 용케 살아남은 참홍어가 군산 앞바다와 대청도를 배회하다 불심검문에 걸려 포획된 것으로 차진 맛이 일품’이라고 표현한다. 같은 홍어지만 단지 ‘노는 물’이 달랐을 뿐 흑산도 참홍어와 맛은 같다는 의미다. 물론 홍어에 대한 전남 신안군의 애정과 노력은 남다르단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국산홍어는 노량진 수입산은 경동시장 

냉동하지 않은 국산홍어는 선홍색 빛을 띤다.(좌) 삭힌 수입산 홍어는 선홍빛을 점차 바래간다.

 

현재 소규모 가구에서 홍어 조업을 하고 있으며 생산량은 104톤 정도다. 남획을 막기 위해 철저하게 조업을 관리하고 있다. 흑산도 홍어는 전통 조업방식인 걸주낙으로 잡아 올려 바코드로 관리한다. 2009년 10월부터 홍어 꼬리에 바코드를 붙여 홍어를 잡은 배와 날짜. 위판기록 등을 알 수 있도록 생산이력관리시스템을 시작했다. 이는 흑산 홍어를 가짜와 구별해 신뢰성을 높이고 명품으로 정착시켜 어민소득과 관광소득을 늘린다는 전략에서 나왔다. 


흑산면을 이루는 흑산도는 행정구역상 최서남단 해역에 위치한 섬이다. 목포에서 서남방 해상 92.7㎞ 떨어진 곳에 있다.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다 해서 흑산도라 불린다. 섬 면적은 19.7㎢, 해안선 길이는 41.8㎞에 달하는 제법 큰 섬인데 특산물로 홍어를 비롯해 참전복, 우럭, 돌미역, 멸치액젓 등이 난다.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쓴 ‘자산어보’에는 홍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먼저 홍어 ‘거시기’에 관한 기록이다. ‘수놈에는 양경이 있다. 그 양경이 곧 척추다. 모양은 흰 칼과 같은데, 그 밑에 알주머니가 있다. 두 날개에는 가는 가시가 있어서 암수가 교미할 때에는 그 가시를 박고 교합한다. 낚시를 문 암컷을 수컷이 덮쳐 교합하다가 함께 잡히기도 한다. 결국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간음 때문에 죽어 음(淫)을 탐내는 자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그래서 어부가 수컷을 잡으면 우선 홍어 ‘거시기’부터 잘라버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가 됐다는 질펀한 말이 생겼다.       


또 ‘암놈은 알 낳는 문외에 구멍이 하나 더 있는데 안으로 구멍 세 개와 통하고 그중 가운데 구멍은 장의 양쪽으로 통하면서 반을 형성하고 있다. 대 위에 알 같은 것이 있는데 이 알이 없어지면 태가 만들어지면서 새끼가 형성된다. 태 안에는 각각 4, 5마리 새끼가 만들어진다’라며 홍어 내부 행태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신선한 회나 삭혀서 삼합으로 많이 즐겨

홍어는 신선한 회나 삭혀서 돼지고기, 김치 등과 삼합으로 많이 즐긴다. 사진은 보성에서 난 키조개관자와 사합을 맞췄고 홍어전까지 부쳐서 상에 올린 장면.

홍어는 전라도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신선한 회로 먹어도 쫄깃하고 담백하지만 삭혀 먹으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어종이다. 홍어는 육질이 차지고 부드러우며 담을 삭이는 효능이 뛰어나 기관지 천식, 소화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다. 식중독을 일으키지 않으며 유일하게 삭혀서 먹는 특별한 생선이다. 고단백, 저지방으로 숙취 효과가 뛰어나며 10월에서 다음해 3월까지가 가장 제 맛을 낸다. 지금이 제철인 셈이다. 


입안을 톡 쏘는 맛과 목과 코가 펑 뚫릴 정도의 특유한 냄새는 홍어에 대한 호불호를 나뉘게 하는 요소다. 처음 맛보는 사람들은 홍어의 톡 쏘는 맛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지만 홍어 맛을 제대로 아는 미식가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중독이 된다. 홍어맛을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회로 먹고 잘 익은 김치와 삶은 돼지고기, 홍어 세 가지를 한 입에 먹을 수 있 홍어삼합도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별미다.


수락산 입구 골목 숨은 홍어전문점

수락산역 3번 출구 인근 골목에 자리 잡은 가성비 좋은 홍어전문식당 ‘진미홍어’의 보리 싹 품은 홍어삼합과 서비스로 내준 홍어애탕.

필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노원구 중계동, 상계동을 오가며 살았다. 그래서 이 지역이 낯익다. 수락산 입구 경우 ‘감자탕교회’로 알려진 서울광염교회가 감자탕집 2층 상가에서 시작했을 때부터 다녔던 적이 있다. 그래서 매주말이면 수락산 입구를 다녔고 다른 한편으론 등산을 좋아해서 수락산을 자주 올랐다. 특히 수락산입구에는 다양한 음식점이 몰려 있어서 가족 식사를 하기 적당한 곳인 등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이 다녔다.   

      

그런데 이번에 찾은 ‘진미홍탁’은 초행이다. 이곳에서 10년 정도, 다른 곳까지 합치면 30년 가까이 식당을 했다는데 골목에 숨어있는 통해 간판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식당 안은 홍어집 특유의 콤콤한 냄새와 김치, 반찬 냄새 등이 어우러져 묘한 향을 냈지만 거부감이 없었다. 그만큼 홍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홍어는 맛보다 냄새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냄새를 극복하지 못하면 절대 입에 넣을 용기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홍어삼합을 주문했는데 적당히 삭은 홍어와 방금 삶아 낸 돼지수육, 2년 된 곰삭은 김치가 나온다. 메인이 나오기 전에 홍어코와 함께 먹을 무무침, 콩자반을 내준다. 돼지 수육 삶는 시간에 맛보기로 내주는 모양이다. 메뉴판을 보니 홍어회, 홍어삼합, 홍어애탕, 홍어전, 홍어찜, 홍어무침 등 홍어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전문점이다.  


가격도 홍어삼합 대자 기준 강남보다 2만원, 강북보다 1만원 정도 싸다. 홍어삼합이 나오는데 특이하다. 다른 곳 같으면 미나리와 합을 맞추는 데 이곳은 보리싹이 제공된다. 씹으면 달짝지근한 맛을 내는 보리싹이 홍어와 수육, 김치와 만나니 조합이 환상적이다. 입안에서 다양한 맛이 섞이면서 풍미가 폭발한다. 저절로 광대가 승천하는 맛이다. 


홍어 역시 적당히 삭은 것이라서 대부분 손님들이 큰 무리 없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다. 재미있는 퍼포먼스 한가지. 여사장님이 포기김치를 테이블 앞에서 맛나게 잘라주신다. 주방에서 썰어 와도 될 것인데, 손님들 앞에서 가위로 자르는 퍼포먼스는 일종의 식욕증진제다. 여 사장님 인심이 참 후하다. 조만간 있을 홍어모임에 쓸 김치를 살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안 판다고 해서 실망했는데, 나갈 때 슬며시 봉지 하나를 쥐어줬다. 내용물은 불문가지다.   


활홍어와 삭힌 홍어는 영양학적으로 일장일단이 있다. 전남대에서 나온 논문을 보면 비타민C와 E는 활홍어에서는 검출되지만 숙성된 홍어에서는 모두 사라지는 등 비타민은 활홍어가 우세했다. 유기산과 유리당 함량 역시 활홍어가 우세했다. 


반면 총 구성아미노산 함량은 숙성 14일째 삭힌 홍어가 가장 높았다. 필수 아미노산은 삭힌 홍어가 우세다. 그래서 그런지 탕수육의 ‘부먹찍먹’처럼 홍어 역시 ‘활먹삭먹’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필자의 기호를 굳이 밝히자면 삭힌 홍어 선호파다. 다소 하드코어지만 입안에 넣었을 때 혀가 얼얼하면서 입천장이 벗겨지고 코가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을 좋아한다. 오랜만에 만난 형님 덕분에 새 홍어 맛집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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