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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면치기’ 평양냉면 시즌 본격 개시

북한음식전문점 ‘능라밥상’ㆍ여의도 ‘천지면옥'

금기시했던 식사법 시대 따라 재미난 변화상

수준급 냉면 선보인 북한음식전문점 ‘능라밥상’    

뛰어난 입지 강점 살릴 맛 기대되는 ‘천지면옥’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더위가 다가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이 냉면이다. 음식 중 즐기는 계절이 뒤바뀐 것이 있다면 대표적인 것이 냉면일 것이다. 과거 한 겨울 살얼음 동치미에 말아먹던 냉면이 요즘은 한 여름 불볕더위를 식히는 대표적 음식이 됐다.      


그중 평양냉면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남북화해를 나타내는 ‘기호’로 발전했으며 젊은 층 입맛까지 사로잡은 데 성공했다. 평양냉면집 노포를 가면 과거에는 백발의 북한 실향민들이 진을 쳤지만 요즘은 이삼십 대 냉면 마니아들과 함께 ‘웨이팅’을 하며 자리 쟁탈전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음식 문화가 글로벌화되면서 평양냉면 식탁에도 변화가 왔다. 일명 ‘면치기’라고 하는 습속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 식문화에서 소리를 내며 음식을 먹는 것은 ‘밥상머리 교육’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조선시대 각종 규범서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조용한 식사를 강조했다.      


후루룩 ‘면치기’ 조선시대에는 금기     


지금의 초등학교 입문과정과 같은 소학(小學)에서는 ‘무나 배나 밤을 먹을 때는 자주 씹어 사각사각 소리를 내지 말고, 국수나 국이나 죽을 먹을 때는 갑자기 들이마셔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내지 말고, 물을 마실 때는 목구멍 속에서 꿀꺽꿀꺽 소리 나게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 ~ 1793) 쓴 ‘사소설’에도 실렸다. 사소절은 우리 사회와 교육현실에 맞게 쓰여진 조선시대 대표적 교육고전의 하나이다. 사소절에는 음식과 관련된 경구가 특히 많다. 사소설은 남성의 예법을 담은 사전편, 부인의 예법 부의편, 아동의 예법을 말하는 동규편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사전과 동규편에는 음식을 먹을 때의 예법과 금기사항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남과 마주 앉아서 회를 먹을 때는 겨자초장을 많이 먹어서 재채기를 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말 것, 무를 많이 먹고 남을 향하여 트림을 하지 말 것, 남이 아직 식사를 마치지 않았다면 비록 급하더라도 변소에 가지 말 것, 무릇 어포 따위는 자주 냄새를 맡지 말 것, 고깃국의 기름기는 수저로 깨끗이 먹을 것, 국의 흐린 장물에 밥을 말아먹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또 국속의 생선은 숟가락으로 휘저어 부수지 말 것, 물국수를 먹을 때는 입 밖의 남은 부분이 어지러이 국물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 쌈을 너무 크게 싸서 입 안에 넣기 어렵게 하지 말 것, 생선과 고기 뼈는 빨거나 씹지 말 것 등 현대사회까지 꾸준히 지켜지고 있는 식사예법이 대부분이다.     

 

게 껍질 밥 비벼 먹는 것도 안 돼

옛 규범서에 따르면 면치기는 물론 게 껍질에 밥 비벼 먹는 것도 금기시했다.

재밌는 것은 ‘勿以蟹筐調飯’(물이해광조반)이란 경구다. 이는 게장 딱지에 밥을 비벼 먹지 말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는 큰일 날 소리다. 게장 먹는 이유 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것이 ‘게껍딱’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이를 못하게 하는 것은 마치 엘리베이터 타고나서 ‘문닫힘’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패닉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변한 식습관 사례로 손꼽힌다.    


이밖에 참외는 반드시 칼로 쪼개서 먹을 것, 수박은 씨를 자리에 뱉거나 이빨로 쪼개지 말 것, 밥을 앞에 놓고 기침하지 말고 밥 먹으면서 웃거나, 하품하지 말라고 했다. 술이 비록 독하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고 ‘카아’하고 숨을 내쉬어서는 안 되고 빨리 마셔서는 안 된다고 적고 있다. 밥이나 국이 뜨거워도 입으로 불지 말 것은 예나 지금이나 지키면 좋지만 현대사회에서는 큰 타박거리가 되질 않는다.     

 

규범서에서 강조하는 것을 요약하자면 애나 어른이나 밥상머리에서는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고 어른보다 나중에 먹는 것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식문화도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는 것과 외부의 영향과 시대의 변화에 따른 문화 변이로 완전히 바뀌는 경우도 있다. 면치기의 경우는 젓가락 문화권 중에서 유일하게 조용한 식사를 해왔던 우리 식문화가 주변국의 영향으로 인해 변한 대표적 사례다.     


우동과 소바 면 문화가 발달한 일본의 경우 음식을 입으로 밀어 넣을 때 식사법이 경쾌하다. 후루룩 소리와 함께 주변 공기까지 빨아들이는 기세가 식욕을 돋운다. 일본에서는 면요리에 한해서 후루룩 소리를 내어 먹을 것이 식사 예절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이런 식습관은 이유가 있다. 면을 공기와 함께 빨아들이면 메밀향과 같은 고유의 향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탈북 요리연구가의 매끈한 냉면 맛 

    

종로구 행촌동 북한음식전문점 ‘능라밥상’은 다양한 지역 북한음식을 선보이는데 평양냉면이 단연 수준급으로 손꼽힌다.

면 이야기가 나와서 이번 칼럼은 최근에 다녀온 냉면집 몇 곳을 소개한다. 평양냉면은 필자의 ‘최애음식 톱5’ 중 하나다. 북한음식 전문점 ‘능라밥상’에서는 북한식 평양냉면을 맛볼 수 있다. 원래는 종로통에 있다가 지금은 행촌동 권율 장군 집터 표석이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 옆으로 이전했다. 종로에 있을 땐 자주 들렀고 주인인 이애란 박사와 통일약과 이야기도 심심찮게 했는데 어느 날부터 입맛에 맞지 않아 발길이 끊어졌던 곳이다. 

  

행촌으로 이전한 후 처음 들렀던 날 전에 같지 않게 입맛에 맞았다. 맛이 남한화(南韓化) 됐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 레시피가 변하면 북한음식이 아닌 것이다. 그럼 필자 입맛이 북한화 된 것인가. 세월 따라 입맛도 살짝 변한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 보단 음식 내공이 살짝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부주사과무침 돼지고기편육, 녹두지짐, 돼지족발찜, 함경도 가자미식해, 개성장국밥, 해주비빔밥, 초계냉면, 만둣국 등 다양한 음식을 맛봤지만 평양냉면이 인상에 남는다. 차분하게 뽑은 육수와 면을 유기에 담아 내오는데, 참 소박하다. 남북정상회담 때 보던 평양 옥류관식 냉면이 아니라 남한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냉면 자태다. 면발이 곱고 매끄럽다. 탄력도 제법이어서 면치기에 적당하다. 특히 백김치와 어울려 절묘한 맛을 낸다.      


식당 바로 앞에 ‘딜쿠샤’로 불리는 ‘테일러 가옥’이라는 문화재가 있다. 정동에서부터 살살 걸어서 올라가면 홍난파 가옥도 만날 수 있다. 맛있는 동네 산책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다.      


여의도 평양냉면 각축장에 도전장

국회의사당 앞에 위치한 ‘천지면옥’은 평양냉면, 함흥냉면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정인면옥, 피양옥, 평양관, 배꼽집, 판동면옥 등 평양냉면 강자들이 즐비한 여의도에 지난 2019년 도전장을 내밀고 야심 차게 문을 열었다. 200석 규모로 비교적 크게 시작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일정 정도 고충이 있었지 싶다. 다행히 팬데믹이 해제된 요즘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근 정인면옥의 대기줄을 못 이기는 냉면 마니아들이 일부 몰리는 효과도 무시 못 하는 입지다.       


큰 특색 없는 평양냉면이지만 따져 보자면 육향이 강하고 면에서는 특유의 소다향이 묻어난다. 평범한 평양냉면 중 하나인데 이 식당에선 함흥냉면을 비롯해 갈비탕, 갈비찜, 가오리찜, 불고기, 만두, 파전, 녹두 전 등 메뉴 선택의 폭이 넓다는 장점이 있다.      


이 식당 평양냉면에 대한 리뷰 상당수가 따끔한(?) 지적이 많다. 평양냉면 마니아층이 그만큼 두텁고 진입장벽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평양냉면 강자들의 강점에 대한 연구를 조금만 한다면 입지가 좋아서 대박을 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곳이다. 이번 방문에는 맛을 ‘뜯어보느라’ 조심스러웠지만 다음번엔 신나게 면치기를 하면서 ‘흡입’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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