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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나 있으면서 가성비도 좋은 냉면집    

① 오류동 평양냉면‧동교동 평안도상원냉면‧금호동 부원냉면

[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겨울음식이었던 냉면. 이제는 여름음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날이 더워지면 식사시간 때 냉면집 문 앞은 장사진이다. 뙤약볕 아래서 대기를 감수하고라도 꼭 맛을 봐야 하는 여름음식이 됐다. 얼음 냉(冷) 자가 뇌에게 주는 감각과 혀의 미뢰를 타고 전달되는 시원한 육수의 매력적인 맛, 냉면은 무더위에 지친 여름날 심신을 달래는 ‘영혼의 육향’이다.           


"평양냉면, 해주냉면 다음으로 서울냉면을 손꼽을 만큼 이제는 서울냉면이 냉면 축에서 뻐젓하게 한몫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성냉면은 말하자면 평양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입 까다로운 서울사람들의 미각을 정복해보려고 평양냉면 장사들이 일류 기술자-냉면의 맛은 그 기술 여하에 달렸습니다-를 데리고 경성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굳은 지반을 쌓아놓았습니다. 여름 한철 더군다나 각 관청 회사의 점심시간이면은 냉면집 전화통에서는 불이 날 지경입니다."       


1936년 7월23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냉면 관련 기사다. 당시 서울에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냉면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울에는 1920년대 후반부터 부벽루, 백양루, 동양루 등 평양의 냉면 기술자(면장)들을 스카우트해서 문을 열어 유명해진 냉면집들이 많았다.      


부벽루란 이름은 평양 대동강 가의 누각 이름인데, 직관적인 평양냉면 옥호(屋號)로는 아마도 최고이지 싶다. 백양루는 광교와 수표교 사이 청계천 변에 있었고 동양루는 돈의동 지역에서 맹위를 떨쳤다고 한다. 당시에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쪽 지역에 약 40곳의 냉면집이 들어섰다. 예나 지금이나 평양냉면은 지역과 손님을 분점(分占)하는 메뉴다.       


제빙기술 발달로 겨울서 여름음식으로 ‘변신’

      

1909년 부산에 세워진 부산항 제빙공장. 지금은 남포동 현대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겨울음식이던 냉면은 근대 제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여름에도 맛을 볼 수 있다가 냉장고의 보급으로 완전히 여름음식으로 뿌리내렸다. 대한제국 탁지부는 1909년 부산항에 제빙공장을 세웠다. 근대적 제빙 기술과 겨울에 캐낸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하는 냉장 시설의 탄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한제국 탁지부는 1909년 최초로 부산항에 제빙 공장을 세웠는데, 생선 유통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력 생산량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이라 제빙만으로는 채산성이 맞질 않아 채빙한 얼음을 보관하는 기능을 겸했다. 서빙고, 동빙고의 기능을 당시 현대적인 기술과 접목한 것이다. 일제는 1913년 서울 용산에 제빙공장을 세웠다. 뒤이어 경성천연빙회사, 조선천연빙회사 등이 들어서면서 얼음 공급이 늘어나자 서울의 냉면집도 덩달아 영업이 활발해졌다.       


20년대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냉면집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노포는 1946년에 비로소 나타난다. 해방 후 종로 주교동에 일제 적산가옥을 사들여 문을 연 우래옥이다. 처음엔 서북관이란 상호로 문을 열었지만 한국전쟁 때 피란을 가느라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면옥집을 열었다고 해서 ‘우래옥(又來屋)’이란 간판을 달았다. 냉면이 겨울에서 여름음식으로 자리 잡은 배경과 서울의 냉면의 역사는 대략 이렇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다. 장마가 끝나면 한반도는 뜨겁게 달아올라서 시원한 냉면을 찾는 이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서울에는 유명한 냉면집이 20년대만큼 많다. 본점만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가맹점을 늘려가는 업체도 적지 않다. 우래옥, 필동면옥, 을지면옥, 봉피양 등 평양냉면 절대강자는 아니지만 미식가들에게 나름 사랑받고 있는 면옥집을 소개한다.      


부원냉면, ‘핫플’로 뜨는 금남시장 함흥냉면 맹주 


금남시장 함흥냉면 전문점 부원냉면.

부원면옥이 아니다. 부원면옥은 남대문 시장 안에 있는 평양냉면 집이고 부원냉면은 금호동 금남시장 인근에 있는 함흥냉면 집이다. 두 냉면집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언론매체 조차 부원면옥을 부원냉면으로 표기한다. 덕분에 부원냉면은 가만히 앉아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셈인데, 명불허전이라고 이 지역 맹주다.      


자가제면으로 뽑은 면발이 섬세하고 잘 먹힌다. 오장동 함흥냉면 촌처럼 질긴 전분 면이 아니라 메밀을 적당히 섞어 식감을 유연하게 했다. 비빔냉면 소스 맛이 일품인데 오장동과는 결이 다른 맛이다. 고명으로 올린 소고기 질이 좋고 예서 뺀 육수 또한 농후하고 고소해 뜨겁지만 자꾸 먹힌다. 이열치열하기 딱 좋은, 함흥냉면 집의 묘미다.       


부원냉면은 배달이 강한 집이다. 배달직원만 세 명 정도가 되는 듯하지만 주말 식사 때 배달 주문하면 30분 대기를 각오해야 한다. 그만큼 인근에선 주문량이 많은 것을 반증한다. 면을 직접 쳐내는 여사장님 표정에는 자부심이 그득하다. 자신의 음식이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만 있으면 ‘미어터질’ 집이다.     


평양냉면, 오류동 3대 내림 손맛 자부심 그득  


3대  평양냉면을 자랑하는 오류동 평양냉면.

굵직한 면발, 미끈한 식감으로 다소 평양냉면 같지 않아도 가성비로 커버되는 곳이다. 지난 20115년 좌식일 때 가보고 오랜만에 들렀더니 깔끔한 인테리어에 입식으로 바뀌었다. 손님이 제법 늘었고 종업원도 여럿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냉면을 대접한 후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은 평양냉면의 후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편육 플레이팅이 예나 지금이나 질서정연(?) 했는데 먹기엔 아주 편했다. 양도 변함없이 그대로다. 겨자, 무김치, 무생채, 배추김치와 수육을 조화롭게 곁들여 먹으면 필동면옥 수육이 부럽지 않다. 더욱이 온기 있는 수육이라 부드럽게 느껴진다. 빈대떡은 광장시장 순희네빈대떡 작은 버전 인양 내용물과 맛이 흡사하다.      


면에 메밀 함량을 높이고 밀가루나 전분을 좀 덜어내면 서울 서부지역 강자 굳히기에 성공할 듯하다. 냉면이 8000원으로 대부분 1만원 넘는 시대에 가성비가 좋은 집이다. 전용 주차장이 없는 게 단점이나 인근에 공용주차장이 있고 면옥 앞에 두 대 정도 세울 수 있다.      


평안도상원냉면, 홍대입구 지하를 북적이게 하는 집


빌딩 지하 음식마당 중 한 곳이라 찾기가 수월치 않은 평안도상원냉면.

‘평냉초보 입문용 면옥’이란 마케팅 문구가 궁금해 맛을 보러 갔다. 하루 전날 저녁 먹으러 오후 6시경 갔는데 2시에 이미 영업이 끝났다 했다. 전엔 50인분만 하다가 요즘은 100인분 정도 하는데 그나마 점심에 모두 소진됐다고. 다음날은 일찌감치 11시15분에 갔는데도 대기 번호 4번을 받았다. 마침 반죽을 하고 있는 사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10인분 정도를 익반죽하고 있었는데, 10분 정도 치댄다고 했다. 무척 힘들다는 말을 덧붙였다.

      

북한에서부터 3대 70~80년 업력이 있다고 한다. 상원은 평안도에 있는 지명으로 조부의 고향이라고 한다. 현 자리에서는 2년 차 영업이다. 상원냉면은 가성비 측면에선 한번쯤 맛 볼만한 곳이다. 이 집도 오류동 평양냉면과 같이 8000원이다.      


이 곳을 번듯한 식당으로 알고 찾아가면 낭패다. 빌딩 지하 음식백화점(푸드코트) 한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간판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종업원을 두고 영업을 더 하고 싶지만 음식백화점 공간을 공동 점유하는 다른 식당을 배려하는 눈치다.      


음식 기호에 대해선 왈가왈부하지 말란 외국 격언이 있다. 모든 음식 맛의 기준은 자신의 혀다. 특히 냉면 맛에 대한 평가는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요즘 세태다. 그냥 즐겁게 즐기자, 시원한 냉면의 세계. 여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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