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역은 불광동, 대조동, 녹번동으로 둘러싸여 있다. 불광동은 북한산 비봉 서쪽에 있던 불광사에서 동명이 유래한다. 비봉은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봉 기슭에 절이 복원돼 옛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대조동은 옛날 이 지역을 대추나무골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대추를 한방에서는 대조(大棗)라고 한다.
녹번동은 녹번이고개에서 비롯됐다. 녹번이고개는 조선시대 청백리들이 설이나 추석 등 명절 전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받은 녹(祿) 일부를 이 고개에다 슬며시 두고 갔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사람들은 관리들이 녹을 버린 것으로 생각하고 ‘녹을 버린 고개’란 뜻으로 녹번이고개라고 불렀다. 옛 동네 이름을 쫓아가보면 지역의 역사가 보인다. 이런 면에서 도로명 주소는 지역의 역사성을 상당히 훼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옛 지번 주소가 훨씬 정감이 간다.
불광동 먹자골목에 들어서면 ‘결정장애’가 발생한다. 저마다 특색을 뽐내며 식객을 유혹하는 간판들이 골목마다 꽉 들어 차 있기 때문이다. 다행이 이번엔 갈 곳을 정했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골목을 통과할 수 있었다. 먹자골목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중화요리 전문점 <중화원>. 점심시간 전인데 이미 대기자들이 골목 이곳저곳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대기명단을 적어 놓기 때문에 굳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중화원>은 불광역 먹자골목 북쪽 끝을 사수하는 화상집이다. 몇 개의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점심시간 때 가면 이삼십분 웨이팅은 각오해야 한다. 이 집의 대표메뉴는 해물누룽지탕이다.
소고기 등심을 구워먹으면 좋을 성 싶은 두꺼운 무쇠불판을 한껏 달군다. 어느 정도 달궈진 불판에 갖은 재료를 왕창 쏟아 부으면 맹렬히 끓어오르는데, 지글거리는 소리와 부글거리는 모양이 구미를 한껏 고조시킨다. 다른 중국집에서는 누룽지탕을 주방에서 해가지고 나오는 데 이집은 식객 눈앞에서 ‘쇼잉’을 한다. 입맛을 돋우기도 하지만 손님들로 하여금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고도의 마케팅이다.
식사류도 인기가 많다. 특히 짬뽕을 찾는 손님이 많다. 비교적 맑은 육수에 고추로 직접 기름을 냈기 때문에 시원하면서도 매콤하고 구수한 뒷맛이 있다. 표고버섯을 많이 사용해서 특유의 기분 좋은 버섯향이 입안으로 따라 온다.
짜장면은 유니짜장인데 간이 좀 싱겁다. 유니(肉泥)는 잘게 다진 고기를 의미한다. 잘게 다진 고기가 마치 진흙 같다고 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유니짜장은 간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모든 재료를 잘게 다져 사용한다. 일반 짜장면에 비해 맛이 부드럽고 고소한 게 특징이다.
탕수육은 소자를 시켰는데 양이 제법 많다. 생부추를 얹어서 색감과 식감을 모두 잡았다. 옆자리에서 먹는 볶음밥을 보니 무척 고슬고슬해 보인다. 여러 면에서 음식을 진중하게 만드는 집이란 느낌을 받았다. 손님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격도 적당해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충족시키는 집이다.
<횡강골남원추어탕>은 불광역에서 가깝지만 골목에 위치해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집은 골목을 무작정 걷다가 발견한 음식점이다. 한옥대문을 가지고 있어서 안을 구경하고 싶은 생각을 겸해 들어간 집이다. 추어탕을 먹은 지 오래된 것도 결정을 하는 데 한몫했다. 일반 추어탕과 돌솥밥 추어탕이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다. 일반 추어탕은 지어 놓은 밥을 주고 1000원을 더 주면 갓 지은 돌솥밥을 맛 볼 수 있다. 돌솥밥은 숭늉을 덤으로 생산(?) 한다.
돌솥밥을 시켜 숭늉으로 입가심하길 권한다. 숭늉이 미세하게 남은 추어의 비릿함을 완전히 씻어준다. 양치한 듯 입안이 뽀득뽀득해지는 기분이다. 물론 돌솥밥 짓는 시간이 좀 걸려서 식사 제공 시간이 늦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추어탕은 마늘과 부추, 들깨가루, 초피를 각자의 레시피 대로 넣고 맛을 즐기면 좋다.
횡강골은 경북 김천에 있는 지명인데 전북 남원과 섞어 놓았다. 작명의도가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못했다. 이 집은 업력은 7년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탕과 밑반찬 맛이 그윽하다. 근래 먹어 본 추어탕 중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소개해도 큰 욕은 피하지 싶을 정도다.
추어탕 하면 남원이 유명하다. 추어탕 거리가 있을 정도다. 남원은 추어탕집이 40여 군데 있다. 인구비례로 따지면 전국 1위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남원의 논밭을 적신다. 남원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논두렁이나 수로에서 미꾸리를 잡아 보양식으로 즐겼다. 남원 사람들은 지역서 잡힌 토종 미꾸리는 동네 식당에 공급하기에도 부족하기 때문에 진짜 추어탕은 남원서만 맛볼 수 있다고 한다.
<혜원삼계탕>은 30년이 된 삼계탕 전문점이다. 하얀 타일 외벽을 가진 단독 건물이 나름 예쁜 집이다. 혼자 갔는데도 편하게 아무데나 앉으라고 할 정도로 손님을 배려하는 곳이다. 양심이 있어서 혼자 앉은 중년 아저씨와 눈을 맞추고 합석했다. 첫날은 닭칼국수를 시켰는데 좀 짜서 물 반 컵을 섞었다. 깍두기 맛이 좋았다. 요구르트를 후식으로 주는 정감 어린 곳이다. 두 번째 방문 때는 삼계탕을 시켰다.
삼계탕 육수가 맑고 개운하다. 닭칼국수 보다는 삼계탕이 밑반찬과 잘 어울린다. 김치와 깍두기 숙성 정도가 삼계탕에 기준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가족들이 나와서 일을 하는데 한결같이 친절하다. 한 손님이 지갑을 두고 왔다며 식사 값을 나중에 주겠다고 하니 단 일초의 주저함도 없이 그러라고 한다. 넉넉한 인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좋은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에 인심까지 더해지면 그것은 음식을 넘어서 보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