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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이 국산’인 차이나타운 남구로시장 맛집

‘광희네칼국수’‧‘동강면옥’‧‘원조소문난순대국’

한국전쟁 이후 서울의 인구는 급속히 늘어났다. 전후 피폐해진 농촌에서 땅이 없던 농민들이 대거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무허가 집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정부는 공영주택이란 이름의 공공주택 정책을 편다.            

공영주택은 지원자금과 건축 목적별로 ICA주택, 부흥주택, 재건주택, 시범주택 등으로 불렸다. 비교적 빈 땅이 많았던 사대문 밖 서울 변두리 지역에 들어섰다. 대표적인 곳이 성북구 정릉동과 안암동이고 서대문구 창천동, 홍제동, 행촌동, 동대문구 휘경동, 회기동, 청량리동, 답십리동, 성동구 행당동 등으로 초기에는 비교적 시내와 가까운 곳에 지어졌다.           


인구 증가와 함께 도시는 계속 팽창하면서 1961년에는 구로동 일대에 공영주택과 간이주택이 들어섰다. 그리고 인근에 구로공단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가 조성됐다. 구로공단은 당시 대한민국 수출을 견인하는 심장부 같은 곳이었다. 공영주택, 간이주택 거주민과 공장 인력 등이 몰리면서 자연발생적으로 구로시장이 생겼다.             


당시 구로시장이 자리를 잡고 번성했을 때 상가에 입점하지 못한 행상들이 인근 길가에 좌판을 하나둘 펼치면서 노점을 형성했다. 이것이 남구로시장의 출발이다. 당시는 지금보다 길도 좁은 골목이었다. 이곳에 무허가 점포들이 햇빛과 비를 막는 우산 하나씩 꼽은 채로 장사를 했다. 마치 시골 5일장 같은 풍경이었다.           


노점이 대형 전통시장으로 변모한 남구로시장


구로시장 인근 길가 노점이었던 곳이 남구로시장으로 발전했다.

남구로시장이 된 구로장터길은 주요 보행통로라서 유동인구가 많아서 시장으로는 적격이었다. 이후 중국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료품점, 잡화점이 많이 들어서게 된다. 남구로시장은 중국식품, 채소, 정육점, 과일, 수산물, 농산물 등이 주를 이루고 의류와 한식당, 분식, 중국식당, 한의원, 치과, 약국 등 200여 개 점포가 들어서 있다.           


지금은 시장 서쪽으로는 서문광장이 길게 용처럼 늘어져 있고 중간에는 동문광장, 동쪽에는 극동아파트 정문에 경계선이 있어 총길이 367m에 이르는 대형 전통시장이 됐다. 시장면적은 4.546㎡(1378평)이고 직녀거리(서문쪽), 오작교거리(상인회사무실), 은하수거리(패션타운), 견우거리(동쪽)로 구분돼 있다. 2012년 전통시장 시설현대화사업과 2015년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을 거치면서 쇼핑하기 편리한 시장으로 변모했다.            


남구로시장은 구로시장과 붙어있다. 구로시장 의류와 침구류, 포목과 한복, 방앗간과 떡집, 기름집 등을 주로 취급하고 남구로시장은 먹거리 위주의 식료품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이 만들어지고 구로와 대림역 인근에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모여 살면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됐고 남구로시장이 이들의 주요 이동통로가 되면서 급속히 발달했다. 이들 때문에 남구로시장 물건은 ‘중국산이 곧 국산’인 셈이다.           


전통시장인 만큼 남구로시장도 먹거리가 풍성하다. 올 3월 구로시장의 맛집으로 ‘칠공주떡볶이’와 국숫집 ‘신자네2호점’을 소개한 적이 있다. 전통시장 대표 먹거리로 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잔치국수, 칼국수는 가벼운 지갑으로 가볍게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먹거리다.           


POP 활용 돋보이는 ‘광희네칼국수’


남구로시장 으뜸 맛집 ‘광희네칼국수’

남구로시장에서 ‘광희네칼국수’는 꽤 유명한 식당이다. 식당 내외부에 음식에 대한 설명을 잔뜩 적어 놨는데, 이는 고객들에게 상당한 신뢰와 먹는 재미를 준다. 중요한 식당 마케팅의 한 부분이다. 광희네칼국수는 이를 십분 활용하는 곳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면 반죽은 무말랭이를 우려내고 감자전분을 혼합하며 면을 완성합니다. 보리와 쌀을 혼합하여 다시마를 넣어 건강식으로 보리밥을 짓습니다. 보리밥은 혈당을 낮추고 체중감량에 효과적입니다’. 실내에 적어 놓은 면과 밥에 대한 설명이다.          


또 식당 입구 위에는 ‘멸치, 다시마, 무, 대파뿌리, 양파껍질을 망에 담아 육수를 냅니다.’라고 써 붙여 놓음으로써 음식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런 설명은 손님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한편 식당에 대한 바이럴 마케팅의 소재를 제공하는 요소다.        

  

칼국수가 나오기 전 각종 채소와 함께 비벼 먹을 수 있도록 조그만 대접에 보리밥이 나온다. 앞서 설명했던 다시마를 넣어 만든 건강에 좋은 보리밥이다. 겉절이는 칼국수집의 맛 5할 이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반찬이다. 식당 바깥 정중앙 상단에는 ‘겉절이 담그는 법’에 대해 적어 놨다.‘배추는 짧고 통통한 것으로 고른다. 배추는 줄기와 잎을 따로 분류한다. 소금물에 절일 때는 줄기 먼저 절이고 1시간 후 잎을 절인다.’ 친절한 레시피다. 그러면서 겉절이도 판매한다고 끝을 맺는다. 겉절이를 판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의미다. 없던 맛도 생기는 것이 이런 설명들이다. POP를 잘 활용한 식당이다. 칼국수 맛은 정성을 들인 만큼 저절로 따라온다.      

    

남구로시장 맛집 도전장 낸 ‘동강면옥’

   

간판 바꾼 지 2개월 된 남구로시장 새 맛집 ‘동강면옥’

남구로시장 메인 통로를 살짝 벗어나서 골목을 걷다 만난 ‘동강면옥’. 여름 끝물에 면옥 집을 만난 기쁜 마음에 시장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저절로 식당을 향했다. 깨끗한 간판을 보니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면옥 집이라 궁금해서 들어가 봤다. 당연히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집인 줄 알았던 것이다.          

 

아뿔싸! 메뉴판을 보니 이곳이 남구로시장, 차이나타운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물냉면 한 그릇을 주문한 상태였다. 메뉴판엔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소고기무침은 육회이겠거니 시켰는데 냉면 육수를 뽑고 나온 아롱사태를 어슷하게 썰어 중국식 양념 무친 것이다. 오이, 대파, 당근, 고추와 향채인 고수, 특유의 향을 가진 양념이 어우러져 상당히 이국적인 맛을 냈다. 첫 식감은 그랬지만 몇 번 접하고 나니 그럭저럭 입맛에 맞았다.           


냉면이 나왔다. 100% 한우 아롱사태로 육수를 냈다. 면도 100% 밀가루다. 얼음물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글루텐션’(글루텐+텐션의 조어)이 최강이다. 전분 면보다는 덜 하지만 쫀득함과 찰기가 있어 씹는 맛이 남다르다. 중국 냉면 특유의 새콤함과 양념장에 들어있는 이국적 향미가 어우러진 육수와 면이 잘 어울린다. 소고기무침과 면의 ‘육쌈’도 나름 괜찮았다.           


뒷자리서 소 주물럭 한 점을 맛보라고 줬다. 숯불에 구워 숯향도 있고 달달한 게 입맛에 맞았다. 그래서 숯불이 있는 김에 소 주물럭도 1인분 시켰다. 원래는 2인분을 시켜야 숯불을 피우는 데 마침 뒷자리서 불을 뺄 상황이라 운 좋게 1인분 맛을 볼 수 있었다. 고기를 한 점 준 것은 다름 아닌 이 식당 사장님이다. 사장님 인정으로 매출도 올리고 이미지도 좋게 쌓았으니 역시 장사는 친절이 중요하다.            


식당 경험이 풍부한 조선족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동강면옥’이란 상호로 바꾼 지 2개월밖에 되질 않았다. 그래선지 영수증에는 아직도 계서대등면옥이란 상호가 남아있다. 중국 흑룡강성 계서시는 계서냉면으로 유명하다. 1953년 연변조선족자치구에서 온 최 씨 성을 가진 여성이 한족 입맛에 맞춰 냉면집을 연 것이 계서냉면의 시초라고 한다.           


매장 문 닫고 포장만 하는 ‘원조소문난순대국’


남구로시장에서 21년째 영업을 하고 있는 ‘원조소문난순대국’

동강면옥을 들르기 전에 남구로시장에서 21년째 영업을 하고 있는 ‘원조소문난순대국’에서 순대 1인분을 포장했던 터다. 이 집은 원래 홀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인데,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아예 홀 장사를 접고 포장만 하고 있다.           


순대 1인분 4000원에 정량 600g을 아예 저울을 놓고 달아준다. 지금껏 수많은 시장통 순대와 프랜차이즈 순대를 접해봤지만 저울을 놓고 정량을 달아주는 곳은 처음이다. 그동안 홀 장사와 포장을 어떻게 하셨을지 상상이 된다. 순대 구성은 찹쌀순대, 간, 허파, 염통, 울대, 오소리감투 등 골고루 넣어 준다. 특히 좋아하는 부위가 있으면 사전에 이야기하면 된다. 순댓국 1인분 포장은 거의 2인분을 싸준다고 한다.           


홀은 언제 열 계획이냔 질문에 “고민이다. 홀을 열 경우 지금 같은 경기에 인건비 부담이 크다. 이참에 아들과 둘이서 포장 전문으로 할까 한다”고 답했다. 매대 옆 쇼 케이스 안에는 배추김치, 물김치 등 다양한 김치류가 들어 있다. 순대는 물론 김치도 팔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시장의 변화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남구로시장에서 식당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업주들의 고민을 미약하게나마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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