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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막살이 갈매기살이 된 사연

밑반찬 좋은 제기동 ‘미미갈매기살’·양이 푸짐한 ‘양평동 장군집’

‘밥상 위에 국가대표 우리 돼지 한돈’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 슬로건이다. 밥상 위에 국가대표란 표현이 틀리지 않을 정도로 우리 국민이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육류 소비가 전반적으로 늘고 있다. 통계청의  ‘통계로 본 축산업 구조 변화’에 따르면 육류 1인당 소비량은 1980년 11.3㎏에서 2018년 53.9㎏으로 늘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이 지난 40년 동안 매년 평균 4% 이상씩 증가했다.     

 

이 중 돼지고기를 1인당 27.0㎏ 소비했다. 육류 소비 절반이 돼지고기란 소리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 연간 24.4kg을 소비한 것에 비해 3kg 가까이 늘었다. 돼지고기는 우리 국민들에게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곳은 유럽연합(EU)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EC) 지난해 발표한 ‘세계 식품의 공급 및 수요, 소비자 동향 및 무역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EU 국가들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연간 40kg에 달한다. 우리보다 13kg을 더 먹는 양이다.       


뒤를 이어 북아메리카가 1인당 30kg을 기록했다. EC는 아시아의 경우 2020년 1인당 15kg을 소비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우리는 이미 아시아 평균에 비해 2배 가까운 소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에서도 돼지고기를 상당히 많이 먹고 있다는 반증이다.       


1인당 연간 돼지고기 27kg 소비 

우리 국민은 연간 돼지고기를 27kg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아시아 평균인 15kg에 2배 가까운 양이다.

지난해 8월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2020 농식품 소비 트렌드 발표대회’에서는 국립축산과학원 손지용 연구사가 돼지고기 부분을 발표했다. 이때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전지의 경우 2010년 대비 2019년 소비 비율이 4.9%p 상승하면서 후지를 제치고 삼겹살 다음으로 소비가 많은 부분이 됐다.      


가장 인기가 높은 돼지 품종은 인터넷 인기 검색어 기준 제주흑돼지와 이베리코였다. 이베리코는 2016년 하반기부터 검색어로 등장했고 2018년부터는 제주흑돼지를 뛰어넘어 가장 많이 검색되고 있다. 남성과 젊은 층에서 이베리코 돼지고기 검색이 많았고 여성과 고 연령층에서는 제주흑돼지가 선호됐다. 


삼겹살을 배달시켜 먹겠다는 수요는 낮았다. 코로나19가 해결돼도 삼겹살 배달은 10% 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삼겹살은 역시 불판을 앞에 두고 구워 먹어야 제 맛이란 진리를 확인시켜 주는 수치다. 40대 이하 젊은 층에서 배달 삼겹살이 선호되지 않는 이유는 맛이 뒤처지기 때문이란 응답이 50%가 넘었다. 젊은 층에서 이베리코 검색어가 많은 것도 결국 풍미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맛에 대한 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 국민은 냉동보다는 냉장(80.5%), 수입보다는 국산(78.2%), 백돼지보다는 흑돼지(55.0%), 일반 돼지고기보다는 브랜드 돼지고기(50.8%)를 선호했다. 특히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흑돼지고기와 브랜드 돼지고기를 선호했다. 이는 비용을 더 내고서라도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겠단 의지로 해석된다.      


흑돼지와 브랜드 돼지고기 선호 

     

돼지 한 마리를 정형하면 안심·등심·목심·앞다리·뒷다리·삼겹살·갈비 등 7개 부위로 대분할된다. 갈매기살은 삼겹살 부위를 소분할 할 때 나온다.

돼지고기는 도축하면 크게 안심·등심·목심·앞다리·뒷다리·삼겹살·갈비 등 7개 부위로 대분할된다. 이것은 다시 22개 소부위로 나뉜다. 예를 들어 대분할 앞다리살에는 앞사태살와 항정살이 포함돼 있다.          


돼지 한 마리를 정형해서 정육만 52kg 얻었을 때 무게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위는 뒷다리로 16kg 가까이 나온다. 다음은 삼겹살과 앞다리가 10여 kg으로 엇비슷하게 나오고 등심 6.7kg, 목심 4.8kg, 갈비 3.2kg, 안심 1㎏ 순이다.     


가장 많이 나오는 뒷다리살은 볼기 부위로 두텁고 지방이 적다. 소분할을 하면 볼깃살·설깃살·도가니살·홍두깨살·보섭살·뒷사태살이 나온다. 볼깃살은 돼지가 앉을 때 바닥에 닿는 궁둥이,  설깃살은 궁둥이 위에 있는 엉덩이 부위다. 도가니살은 뒷다리 중 근내지방 함량이 가장 적어  탕수육용으로 많이 쓰인다.      


또 담백한 맛을 내는 돈가스, 찌개, 잡채, 주물럭(불고기) 요리나 육가공용에 적합하다. 다만 설깃살에 붙은 홍두깨 모양의 홍두깨살은 근내지방이 많아 뒷다리 중 유일하게 구이를 해 먹을 수 있다. 뒷다리살은 단백질, 비타민B1이 많이 포함돼 있어 일명 ‘피로회복제’라고도 불린다.      


삼겹살은 ‘국민 고기’다. ‘돼지고기=삼겹살’ 등호 성립이 묵인되는 부위다. 삼겹살은 글자 그대로 살과 지방이 세 겹으로 구성돼 있다. 처음엔 세겹살이고 불렀다. 소분할을 하면 갈매기살·등갈비·토시살·오돌삼겹살 등이 나온다. 이번 칼럼의 소재가 바로 삼겹살의 한 부분인 갈매기살이다.      


갈매기살은 횡격막 부위 가로막살

갈매기살은 갈비뼈 안쪽 횡격막을 이루는 부위로 돼지 한 마리당 300~400g 정도 나온다. 사진은 ‘마포부자갈매기’ 집 갈매기살이다.

갈매기살은 갈비뼈 안쪽 횡격막을 이루는 부위다. 횡격막은 포유류의 배와 가슴을 가로로 나누는 막이다. 주된 역할은 수축과 이완을 통해 흉강의 크기를 조절, 내부 압력을 변화시켜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아래위를 가로막고 있다고 해서 우리말로 가로막, 가로막이라고 한다.      


갈매기살은 가로막에 붙어 있는 살로 가로막살이라고 부른다. 가로막살이 갈매기살로 변한 과정에 대해 충북대 조항범 국문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로막살’이 ‘가로마기살’로 변했을 것이다. 제3음절 ‘막’에 접미사 ‘-이’가 붙은 것이다. 다음으로 ‘ㅣ’모음 역행동화에 의해 ‘가로마기살’이 ‘가로매기살’로 변했다. 이어서 ‘가로매기살’이 ‘갈매기살’로 변했다.”     


가로막-가로막이-‘가로매기-갈매기로 변화하는 과정이 선명하다. 조 교수는 “‘가로매기’의 어원을 잘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것과 음이 비슷한 ‘갈매기’를 연상하여 그것과 연계해서 엉뚱하게 만들어낸 단어가 ‘갈매기살’”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가로막살을 업자들이 쉽게 부르는 과정에서 갈매기살로 정착됐다는 설도 있다. 또 하나는 부위 모양이 갈매기를 닮아서 그랬리 불렀다는 가담항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우리 국민은 원래 돼지고기보다 소고기를 선호했다. 조선시대만 해도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편(1417년 윤 5월8일)에 따르면 조선사신단이 명나라 갔을 때 명 황제가 내시에게 “조선인들은 원래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소고기와 양고기를 공급하도록 하라”고 명령했다고 할 정도다. 돼지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년 안팎이다. 


1970년대 무렵 소고기 값이 뛰자 안정화 대책으로 돼지고기 소비육성책을 적극 펼치면서부터를 분기점으로 본다. 가정에 냉장고 보급이 보편화되면서 고기 소비가 늘었다. 삽겹살은 80년대부터 이름이 널리 불리기 시작하다가 1994년에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 등재되기도 했다. 삼겹살과 돼지갈비는 주머니가 가벼운 청년층들의 음식에서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전 국민의 음식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정말이지 불과 얼마 전이다.       


갈매기살은 삼겹살보다 더 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갈매기살 부위는 얇은 껍질로 뒤덮여 있는 근육이라서 삼겹살이나 다른 부위보다 질기다. 게다가 막을 정리하는데 손이 많이 간다. 정리를 하고 나면 고기 수율도 좋지 않다. 그러니 기피 대상이었던 것이다. 반면 값이 싼 장점이 있었다.       


담백한 맛과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다 보니 막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메뉴였다. 서울에는 갈매기살을 전문 점포들이 몰려 있는 곳이 두 곳 있다. 하나는 고창집, 통돼지집, 광주집, 노들집, 미갈매기살 등이 있는 종로 3가 익선동 초입 돈의동이고 다른 한 곳은 마포 베스트웨스턴 프리미어 서울 가든호텔 뒤, 마포 삼성아파트 앞 골목이다. 이곳에는 장수갈매기, 부산갈매기, 마포부자갈매기 등이 있다.      


나루터가 있던 마포에는 옛날 배와 관련된 목재소와 철강소 등 노동 강도가 셌던 공장이 많았다.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지친 하루를 보내고 원기를 보충하기 위해 값싸고 양 많은 고기를 찾았는데 그게 바로 갈매기살이었다고 한다. 특히 연탄의 보급과 한국전쟁 후 기름 드럼통이 흔해지면서 자연스레 연탄불 구이 선술집이나 실비집의 식탁이 되면서 직화구이가 인기를 얻었다.            


제기동 한 자리서 갈매기살만 45년   

‘SINCE 1979’라고 써 붙였지만 그 보다 더 전부터 장사를 했다는 미미갈매기살. 제기동 터줏대감으로 한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노포다.

이 무렵 제기동에서도 한 갈매기살 점포가 문을 열었다. 가게 유리창에 ‘SINCE 1979’라고 써 붙인 ‘미미갈매기살’이다. 노부부가 40년 넘도록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력 있는 집이다. 79년 개업이라고 써 붙여 놨지만 45년은 족히 됐을 거라고 주방을 책임지는 여사장님이 말했다. 필자가 이곳을 처음 접했던 때는 아마도 1994년 정도였을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대한한의사협회가 제기동 경동시장 북쪽 끝에 위치해 있었고 출입기자여서 이 동네를 일주일에 두세 번씩 뻔질나게 오갈 때였다.      


이때 미미갈매기살에서 처음 접한 갈매기살은 기대 이상이었다. 삼겹살처럼 구울 때 기름이 튀거나 번질거림 없는 담백한 맛이 입맛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미미갈매기살의 장점은 밑반찬이다. 대로(왕산로)를 사이에 두고 경동시장을 접해 있어서 질 좋은 식재료를 사다가 철마다 맛있는 반찬을 내온다. 요즘은 깻잎간장장아찌, 오이초무침, 무 생채무침, 파절이, 김치, 총각김치 동치미김치 등 예닐곱 개 반찬이 상위에 펼쳐진다.      


양념이 거의 되지 않은 갈매기살은 반찬과 궁합이 잘 맞는다. 파절이와 일합을 맞추고 이합은 깻잎에 싸 먹으면 갈매기살의 담백함과 채소 반찬 특유의 향이 어우러지면서 각각의 맛을 혀에게 선사한다. 혀는 그 맛을 충실히 뇌로 전달하고 뇌는 끝내 ‘아! 맛있다’는 명령을 보내 입 밖으로 탄성을 터트리게 한다. 주변이 재개발돼서 지형이 많이 변했지만 이곳에 가면 여전히 예전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바로 그것이 노포의 아우라다.     


양평동은 양화도나루터(양화진) 근처 평평한 벌판에 있던 마을에서 지명이 유래됐다. 이곳은 해방 후 월남한 이북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살아서 전재민마을이라고 불렀다. 특히 안양천 뚝밑에 많이들 모여 살았다고 한다. 양평동은 문래동과 이어져 있다. ‘스틸타운’이라 불리는 문래동은 지금도 금속공장이 즐비하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영단주택이라는 대규모 집단 거주시설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돼지 특수부위 전문 푸짐한 양으로 승부

양평동 양평역 인근에 있는 ‘양평동 장군집’은 고기 양이 푸짐하기로 유명하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좋은 곳이다.


문래동의 시층과 겹치는 양평동 양평역 인근에 있는 ‘양평동 장군집’은 푸짐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돼지 특수부위와 부속고기 전문인 이 곳은 2006년에 지금 자리에 처음 똬리를 틀었다. 현재는 전국에 17개의 가맹점을 가졌다고 한다. ‘모든 메뉴는 A급 돼지고기만 사용한다’고 강조한 메뉴판이 인상적이다.      


갈매기살을 600g 단위로 파는 데 1인분(200g)으로 환산하면 다른 곳의 3분의 2 수준 가격이다. 파를 기름장에 담아 볶아서 갈매기살과 함께 고추장 베이스 소스를 찍어 먹는 것이 특징적인 곳이다. 밑반찬은 김치와 양파간장장아찌, 된장찌개 정도. 고깃값을 저렴하게 가져가려는 고민이 상차림에서 느껴진다.      


갈매기살 단품도 잘 나가지만 특히 부속고기 전문점이라 다양한 부위 정육과 내장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모둠스페셜 메뉴가 인기다. 또 갈매기살, 뽈살, 덜미살 3종 세트 고기모둠과 여기에 껍데기를 더한 스페셜껍데기도 인기가 많다. 후식으로 잔치국수와 김치말이국수를 파는데, 아쉽게도 맛을 보진 못했다. 기름진 고기 후식으로 국수 한 그릇은 ‘딱 떨어지는’ 입가심 메뉴다. 서울 도처에 갈매기살 강자가 많다. 이곳들은 가로막살이 갈매기살로 날아오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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