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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니들이 김치찌개 맛을 알아?"

 [김치찌개 맛집] ‘김삼보’ㆍ‘광화문집’ㆍ‘은주정’ㆍ ‘장호왕곱창’

김장 시즌이 마무리됐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초까지 사회관계망(SNS)에는 온통 가정 내 김장  담고 수육을 삶아 굴을 곁들여 ‘김장 노동’의 고단함을 달랬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이처럼 김장은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 월동 음식을 준비하는 성스런 연례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해마다 김장하는 가정이 줄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엄동이 오기 전 김치를 담그는 일은 절기 풍습과도 같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김치가 음식을 뛰어넘어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발효음식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영향력은 늘면 늘었지 줄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실로 쉽게 입증된다.         


中 파오차이 몽니…김치는 이미 2001년 국제표준 


김치와 중국의 파오차이. 발효조건이 틀려 완전히 다른 식품이다.

얼마 전 중국발 김치 국제표준 오보 사건은 도가 지나친 ‘국제적 말장난’이다. 일본의 ‘기무치’는 중국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중국은 소금에 절인 식품인 ‘파오차이’가 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FAO) 산하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코덱스)‘가 주관하는 ISO 24220 김치 규범과 시험방법’에서 국제 표준으로 인가를 받았다고 친정부 매체인 환구시보를 앞세워 대대적으로 떠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어지간히 뻔뻔하지 않으면 저지를 수 없는 망언이다. ISO 문서(ISO/FDIS 24220)는 파오차이를 인가 식품으로 명시했다. 그러나 하단에 분명하게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구를 선명하게 박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치와 파오차이는 완전히 다른 식품이기 때문이다.           


파오차이는 배추 같은 채소를 소금에 절여 바로 발효하는 피클과 같은 쓰촨 지방의 염장 채소다. 김장은 이와 달리 1차로 배추, 무를 소금에 절인 후 고춧가루, 피, 마늘, 생강으로 양념해 2차 발효를 시킨 음식이다. 코덱스는 이미 2001년 우리나라 김치를 국제표준으로 인정했다.      


코덱스 인증은 다른 분야 ISO 인증처럼 농수산 가공식품 분야에서 국제 유통의 기준이 된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오차이 사건은 우리 김치에 대한 주변국의 시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처음엔 화도 났지만 나중엔 안쓰럽게 느껴졌다.           


전 한국식품연구원장 “한국이 빌미 제공” 

고추의 임진왜란 시 일본 유입설이 김치의 역사적 뿌리를 흔드는 논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권대영 전 한국식품연구원 원장(한식인문학 저자)은 “중국이 언젠가는 이런 일을 할 거라고 우려했는데 드디어 그 시기가 온 것”이라며 “사실 중국이 이런 주장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이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지적했다.     


권 전 원장은 “중국에서 공부하고, 음식을 공부한다는 친구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주 모 교수는 오래전부터 ‘우리 김치의 어머니가 파오차이와 일본의 쯔께모노’라고 주장하고 다녔다”면서 “정말 비과학적인 얘기”라며 일축했다.      


권 전 원장에 따르면 그가 이런 주장 하게 된 연유는 고추가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왔다는 통설을 진실인 것 같이 믿고 이야기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또 김치 역사가 100년도 안됐다는 주장을 하다가 김치나 고추장을 뜻하는 단어가 문헌에서 나오자 임진왜란 전 고문헌에 나오는 김치는 백김치로 둔갑시키면서 고추 임진왜란 전래설을 합리화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결국 중국에게 파오차이가 김치 원조라는 빌미를 제공했다.      


권 전 원장의 지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 김치를 세계로 알리기 위해 세운 세계김치연구소에서도 중국의 이 같은 주장을 묵인 방조해서 일을 키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김치연구소가) 김치세미나에 중국 사람을 불러서 파오차이가 중국의 김치라고 이야기라고 하고 다니게 하고 심지어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한자로 쓰고 다녀도 아무런 대응 연구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권 전 원장의 지적대로라면 국민 세금을 국익을 해치는 일에 쏟아부은 것이 된다.      


권 전 원장은 “과학적으로 보면 파오차이는 유기산을 집어넣은 것이고 김치는 발효에 의하여 유기산이 생긴 것이다. 자꾸 우리 음식이 중국에서 왔을 것이라 생각하고 한자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자사대주의 학자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라고 했다. 이는 한편으로 김치를 둘러싼 논란이 우리 연구자들 사이에도 정리가 안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1973년 대양출판사에서 펴낸 ‘원색 세계의 요리’ 김치 편을 보면 ‘김치는 그 독특한 냄새와 감칠맛과 상쾌한 산미 따위가 어울려 우리 민족의 기호와 체질 속에 스며들어 있다. 소위 ’김치가 익었다‘라고 하는 것은 김치가 익어 맛이 들었다가 너무 시어서(산패) 못 먹을 사이에 수없이 많은 종류의 세균‧곰팡이‧효모(이스트) 등이 미생물의 번식 및 그들 사이의 성쇠로 인한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김치는 단순히 배추에 식초를 부어서 만들 음식이 아니란 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우리 민족의 기호와 체질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표현은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와 함께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치가 중국이나 일본에서 유래했다면 비슷한 것이 있어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2차 발효된 김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문화도 다른 문화자원과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 속에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김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 문화가 맞고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김치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다. 한민족 소울푸드의 가장 대표주자다. 김장이 끝나고 누구는 익지 않은 김치를 즐길 것이고 누구는 새콤하게 익은 김치를 즐기기 위해 군침을 머금고 기다릴 것이다. 이때 김치는 몸에 좋은 슬로푸드가 된다.      


김치 속에 있는 곰팡이나 효모는 산소를 좋아한다. 그래서 김칫독을 열면 공기와 접해있는 윗부분에 흰 막이 생긴다. 이를 골마지라고 부른. 세계김치연구소가 이를 분석한 결과 독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골마지가 낀다는 것은 김치의 익음 정도가 지나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때면 골마지를 씻어내고 김치찌개를 끓이거나 물에 하루 정도 푹 담근 후 속을 털어낸 후 멸치 몇 마리와 무를 썰어 넣고 뭉근하게 지짐을 해 먹기도 한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김치찌개에 대한 선호가 높다. 초중고 급식을 다룬 여러 논문을 보면 김치 응용 요리로 선호되는 것은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 김치전 순이다. 김치찌개 중에서도 돼지고기 넣은 것을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참치 김치찌개 정도가 가까스로 명함을 내밀뿐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대한 사랑이 압도적이다.    

  

이는 우리의 탕반 문화와도 관계있다. 탕반 문화의 핵심은 고기를 사용한 육수 국물이다.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를 뭉텅뭉텅 썰어 넣는 이유도 바로 탕반 문화의 완성이기 때문이며 우리 음식 문화의 전형이다. 음식의 감칠맛을 더하는 데는 고기 국물만 한 게 없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다.       


그래서 고기 전문점 중에서 돼지고기가 맛있는 집이 김치찌개도 맛있다. 김치가 맛있는 이유가 첫 번째지만 맛 좋은 돼지고기에서 나오는 감칠맛도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중국산 김치를 잘 익혀서 가성비 좋게 김치찌개를 내오는 식당도 늘었다. 그러나 저력 있는 노포들은 여전히 국내산 김치를 앞세워 승부를 걸고 있다.      


압도적 맛의 솥밥이 좋은 ‘김삼보’ 여의도점 

솥밥의 밥알이 살아 있어 김치찌개에 말아도 제 맛을 잃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김치찌개 맛집은 ‘김삼보 여의도점’이다. ‘김치찌개인지 돼지찌개인지 헷갈리는 집’. 자체적으로 소개한 글귀다. 과장이 조금 섞인 재미난 표현이다. 그만큼 돼지고기를 듬뿍 넣어주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여의도 회계법인에 다니는 후배를 만나 이른 점심을 했다. 일찍부터 자리가 메워지기 시작하더니 정오 무렵은 이미 만석이다. 원래 제주돼지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김삼보는 김치찌개, 삼겹살, 보쌈을 주력으로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상호로 을지로, 종로, 동대문에 분점이 있고 법인형태로 운영한다.      


‘김삼보’는 ‘식탁의 주인은 밥’이란 사실을 상기시키는 곳이다. 밥이 참 맛있다. 밥을 잘 지어선지 품종 좋은 햅쌀을 쓴 것 인지 찰지고 단단하다. 아마도 둘 다 충족할 듯하다. 적당한 누룽지 솥밥이 반찬 없이 먹어도 좋을 만큼 맛있다.      


김치찌개(8000원) 역시 명불허전의 맛이다. 돼지찌개로 보일 정도 양은 아니지만(?) 풍성하게 들어갔다. 계란말이는 벤치마킹할 만한 수준이다. 고전풍으로 넙데데하게 둘둘 말아서 토마토케첩을 지그재그로 재빠르고 과감하게 뿌려낸 솜씨가 맛과 잘 어우러진다. 업력이 40여 년쯤 되는 노포다. 이 식당의 또 하나 매력적인 것은 24시간 한다는 것이다.      


김치찌개는 김치 숙성 기술에 따라 맛 차이

상단부터 김치찌개만 40면 노포 ‘광화문집’, 푸짐하기로 유명한 방산시장 ‘은주정’, 구성이 독특한 ‘장호왕곱창김치찌개’

세종문화회관 인근 허름한 골목에 있는 ‘광화문집’은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40년 가까이 골목을 지키면서 돼지김치찌개, 계란말이, 제육볶음, 생두부 네 가지 메뉴로 승부하는 곳이다. 광화문집 주인은 김치 잘 담그기로 유명하다. 유명하다기 보단 스스로 자신 있어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알맞게 익은 김치를 내와서 이틀간 김치찌개용으로 쓴다. 20년 전 김치찌개와 계란말이가 공히 5000원이었는데 지금은 김치찌개만 8000원이 됐다.      


이곳은 서울경찰청과 가까워 경찰청 출입기자들이 제법 찾는다. 십수 년 전 경찰청 출입기자 후배들과 함께 낮부터 잔을 돌린 게 밑도 끝도 없었다. 허름한 80년대 풍 빈티지 실내가 주는 감성과 후배들과의 만남이 주는 감정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폭음을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김치찌개에 돼지고기가 풍성하기로는 방산시장 ‘은주정’이 손꼽힌다. 은주정은 돼지고기뿐 아니라 다양한 쌈 채소도 많이 주기로 유명한 곳이다. 일명 ‘쌈 싸 먹는 김치찌개’(8000원)를 표방하는 곳이다. 점심은 김치찌개만 팔지만 저녁엔 삼겹살과 세트(1만2000원)로 판다. ‘은주정’은 시내 역사탐방을 다니면서 끝나고 자주 찾았던 곳이다.       


요즘은 영수증으로 리뷰를 하는 손님들이 많아졌는데, ‘은주정’ 리뷰에는 맛있다는 칭찬도 많지만 ‘불친절’을 언급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고 친절, 가성비, 가심비, 분위기 등이 함께 어우러질 때 최고의 맛이 나온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서소문 ‘장호왕곱창김치찌개’(7000원)는 식당 특성에 맞게 ‘짤라곱창’(8000원)을 넣어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짤라는 다른 곳의 계란말이 같은 사이드 메뉴다. 메인이 곱창집이다 보니 가능한 구성이다. 점심시간에 가면 테이블마다 미리 가지런히 세팅이 돼 있어서 바쁜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뚜껑 손잡이 없는 양은 냄비는 이 식당의 트레이드마크.      


‘김삼보’, ‘광화문집’. ‘은주정’, ‘장호왕곱창’의 김치찌개 맛은 큰 차이가 없다. 그만큼 일정하게 잘 숙성된 김치를 내온다는 의미다. 이는 김치 맛이 좋아야 찌개 맛이 좋다는 보편의 진리를 충족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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