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맛동산

한양도성 순성길에서 만난 맛집들

정동 ‘논두렁찰보리밥’ㆍ부암동 ‘청운토속집’ㆍ 성북동 ‘마전터’

by 유성호의 미식포럼

필자는 1년에 한두 번 한양도성을 한 바퀴 걸어서 돈다. 이를 옛사람들은 ‘순성놀이’라고 했다. 순성놀이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보러 상경한 선비들이 도성을 돌며 급제를 빌었던 풍습도 있었다. 대략 40리, 정확하게는 18.6km 도성길을 한나절 동안 도는 것이다, 하루 만에 돌아야 효험이 있다는 소리도 전한다.


한양도성은 목멱산(남산), 인왕산, 백악산, 낙산 등 4개 코스로 나뉘어 있다. 이를 일주하면 한 번의 식사시간을 포함해 대략 10시간 정도 걸린다. 보통 아침 8시에 출발해 저녁 6시경 마친다. 잰걸음이면 한 시간 이상 단축할 수 있다.


출발지는 다양하게 정할 수 있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창의문이나 인왕산 입구 등 자유롭게 선택하면 되고 방향도 정해진 것이 없다. 둘레길처럼 구간별로 나눠서 돌 수 있고 스탬프로 확인하기 때문에 이어서 걸어도 완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4개 스탬프를 다 찍으면 완주기념 배지를 준다.


옛사람들의 풍류 ‘순성놀이’


1.jpg 조선 영·정조시대 한양도성 한 바퀴 40리를 하루에 도는 순성놀이가 인기였다. 요즘도 서울시 공식행사로 순성놀이가 진행되고 개인과 단체들도 많이 즐긴다.

한양도성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보안상, 국방상 통제구간이 많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3년 인왕산 구간에 이어 2006년 백악산 구간의 복원작업과 함께 개방되면서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2011년에는 한양도성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면서 완전한 형태로 새로운 명소가 됐다.


1975년 광희문부터 시작해 사반세기 가까이 복원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물론 70년대는 복원기술의 미숙으로 원형보다는 형태를 만들기 급급했던 시기도 있었다. 이 당시에는 한쪽에선 복원을, 다른 한쪽에서는 도시 개발의 가속화로 훼손을 하는 아이러니한 시기이기도 했다.


서울시는 2009년 6월 ‘서울 성곽 보존 및 활용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추진하면서 더 이상의 훼손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4년까지 복원한 결과물을 가지고 2015년에는 유네스코에 ‘세계유일의 성곽도시’로 등재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면서 한양도성은 온 국민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예부터 사대문 안에 도성 사람들은 서울을 감싼 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과 능선을 따라 축조된 성벽을 거닐며 즐겼다. 조선 창업 1등 공신 정도전은 신 도읍지 8가지를 예찬하는 ‘신도팔경시’(新都八景詩)를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도성궁원(都城宮苑)이다.


성은 높아 천 길의 철옹이고(城高鐵甕千尋),

구름 둘렀어라 봉래 오색이(雲繞蓬萊五色),

연년이 상원에는 앵화 가득하고(年年上苑鶯花),

세세로 도성 사람 놀며 즐기네(歲歲都仁遊樂)


조선후기 정조 연간에 수도 한성부 모습을 자세히 기록한 ‘한경지략’에서는 ‘도성의 둘레가 대략 40리나 되며, 봄과 여름철에는 성안 사람들이 짝을 지어 성 둘레를 따라서 한 바퀴 돌면서 성 안팎의 경치를 구경한다. 한 바퀴 돌자면 하루해가 걸린다. 이것을 순성놀이라 한다.’


조선 영·정조 때 문신 유득공이 서울의 세시풍습을 기록한 ‘경도잡지’에는 ‘도성을 한 바퀴 빙 돌아서 도성 안팎의 화류를 구경하는 것이 멋있는 놀이인데, 새벽에 출발해야 저녁종 칠 때에 다 볼 수 있다. 산길이 깎은 듯 험해서 지쳐서 돌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적고 있다.


구한말 외국인의 기록에서도 한양도성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영국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자연스럽게 성벽을 따라가게 되는데 한쪽은 남산을 따라 오르고, 다른 한쪽은 북한산 물마루까지 완전히 뻗어 있다. 성벽은 그것이 서 있는 언덕만큼이나 견고하게 보이도록 설계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조선견문록’을 쓴 언더우드 부인은 ‘가끔 우리는 도시의 성벽을 따라 걷곤 했는데, 그때마다 황홀한 달빛에 젖어 우리들 발아래 고요히 잠들어 있는 마을과 먼 산을 바라보면서’라고 기술했다. 이는 순성놀이를 야간에도 즐긴 것이 아닌가란 추측을 하게 한다. 지금도 낙산구간의 정상 낙산공원에는 해넘이와 야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에밀 부르다레는 순성놀이에 대해 ‘서울의 이 장벽은 하루 만에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다. 상당히 잘 걷고 산을 잘 타는 사람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산책이 된다. 대단한 구경거리로서 비범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특히 좋은 계절에 소나무와 꽃이 우거진 남산 비탈을 따라갈 때, 흠잡을 데 없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구석구석을 즐길 만하다.’고 표현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순성장거’(巡城壯擧)라고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 주관으로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2011년 9월24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출발하는 순성놀이를 시작했다. 내사산(인왕산, 백악산, 낙산, 목멱산), 4대문(돈의문, 숙정문, 흥인문, 숭례문), 4소문(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을 지나며 서울의 600년 역사, 문화를 느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로 매년 진행 중이다.


연 1회 정도 꾸준히 도성 한 바퀴


2.jpg 필자는 연 1~2회 정도 한양도성을 꾸준히 순성 하고 있다. 리를 일종의 체력 가늠자로 활용한다.

필자는 지난달 5일 순성놀이를 했다. 이달 4일에도 또 한 차례 계획돼 있어서 일부 구간 사전 답사를 했다. 식당도 알아보고 새로운 답사로도 알아보기 위해서다. 편재 한양도성 백악구간 일부가 공사로 막혀있다. 우회로가 있지만 성곽을 볼 수 없어서 새로운 길을 열었다. 백사실 계곡을 거쳐서 가는 길인데, 백악구간 성벽 라인을 조망할 수 있어서 꽤 괜찮은 루트다.


순성놀이를 하려면 식사를 한두 끼는 해야 한다. 아침 일찍 시작하면 아침, 점심 두 번의 식사를 해야 하는데, 최선의 방법은 아침을 먹고 나와서 8시에 출발해 점식 식사 정도를 하고 저녁에 헤어지거나 뒤풀이를 하면 된다. 식사를 싸와서 먹기도 하지만 매식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필자는 주로 동대문에서 모여 출발한다. 전에는 낙산 방향으로 많이 갔지만 요즘은 남산방향으로 돈다. 동대문에서 장충체육관까지는 성벽이 아예 훼철돼 사라졌거나 훼손이 심하다. 광희문 근처 성벽은 주택들이 깔고 앉아있다. 인왕산 구간도 주택이 깔고 있는 곳이 있고 경신고에서는 담벼락 기초석으로 쓰이고 있다.


순성놀이 날에는 보리비빔밥이 무난


3.jpg 강북삼성병원 건너편, 옛날로 치면 돈의문 터 옆에 있는 ‘논두렁찰보리밥’에서는 보리밥 정식에다가 고등어구이, 오징어볶음, 제육볶음 등을 기호에 따라 추가로 시키면 한 끼 구성이 완

남산을 넘어 남대문을 거치면 11시 경이된다. 조금 이르지만 인왕산을 넘기 전에 정동에서 배를 채운다. 답사를 할 때면 건강식으로 보리밥을 즐긴다. 강북삼성병원 건너편, 옛날로 치면 돈의문 터 옆에 있는 ‘논두렁찰보리밥’이 아지트다.


보리밥 정식에다가 고등어구이, 오징어볶음, 제육볶음 등을 기호에 따라 추가로 시키면 한 끼 구성이 완벽하다. 밥과 밑반찬은 원하는 대로 채워주니 양이 많은 사람에겐 이만한 식당이 없다. 갖은 나물에 콤콤한 된장과 콩비지를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 한입 입으로 가져가면 산을 넘고 한참을 걸어온 피로가 확 풀린다. 약간의 반주로 막걸리 한 대접을 겸한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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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숨은 보석 같은 식당


4.jpg ‘청운토속집’은 부암동 숨은 보석 같은 맛집이다. 주인 정금순 대표의 집밥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오는 4일 순성 때는 이곳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잰걸음으로 인왕산까지 넘어 부암동에 있는 식당을 찾을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사전 답사 때 들렀던 ‘청운토속집’으로 황태구이, 콩비지, 손수제비 등이 전문이다. 미리 주문을 넣으면 닭백숙, 닭볶음탕도 가능하다.


손맛 좋은 정금순 대표의 다양한 반찬을 맛볼 수 있고 각기 다른 메뉴를 주문해도 친절하게 받아준다. 기본적으로 7~8가지 정도 밑반찬이 제공되는 데, 평균 이상의 맛을 낸다. 고등어 구이는 인당 한 조각씩 내주고 반찬 구성이 영양소 밸런스를 잘 맞춘 웰빙음식점이다.


6000원짜리 가정식 백반부터 대부분 메뉴가 6500~7500원 정도로 가격이 합리적이다. 3시간 정도 전에 연락을 주면 닭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닭볶음탕 작은 냄비가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은 게 특징이다. 일요일도 문을 열어서 이번 답사일정과 맞아떨어져서 이곳을 선택했다.


양지국물 시원한 국밥 전문점

5.jpg 인왕산자락 성벽 옆서 30년을 지켜 온 소고기국밥전문점 ‘마전터’.

예전엔 와룡공원을 지나 경신고를 가기 전에 ‘마전터’라는 소고기국밥과 황태요리 전문점에도 가끔 들렀다. 이곳은 업력 30여 년의 노포다. ‘마전터’의 대표 메뉴는 소고기국밥이다. 한우 양지 국물을 맑게 우려낸 육수가 시원 칼칼하다. 육수를 뺀 양지는 손으로 정성스레 찢어 콩나물과 함께 국밥을 완성했다. 국밥은 밥을 토렴 한 것이 아니고 따로 공깃밥이 제공된다. 예전에는 잔치국수도 팔았지만 지금은 꽃게장 메뉴와 황태요리에 마케팅 포인트를 두고 있다.


마전이라 이름은 영조가 성북 주민에게 하사했던 권리 중 하나로 광목 옷감을 세탁하고 염색해 궁에 납품하는 권리인 마전권에서 비롯됐다. 선잠단 앞 성북천 일대가 조선시대 마전을 하던 곳으로 이곳에서는 옷감을 삶거나 빨고 표백했다. 마전질이라는 것은 표백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고 마전터는 장소를 일컬었다.


1902년에는 성북동에 표백회사가 들어선다. 현재 성북초등학교 자리에는 표백한 광목을 말리던 곳이다. 1970년대 성북천 복개공사로 마전터 흔적을 사라졌다. 다만 ‘마전터’라는 음식점 이름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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