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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CON Apr 21. 2017

보도블록 38 심상정의 18분과 치욕의 9년

그들은 이제 가차 없이 등을 돌리기로 결심했다.


0

손석희는 최순실의 태블릿 PC는 보도해도 "최순실을 보도하지 않는 KBS"는 보도하지 않는다.


1

지난 총선 때 나는 인물엔 민주당, 비례대표엔 정의당을 찍었다.


2

지지난 총선 때도 나는 인물엔 민주당, 비례대표엔 통합진보당을 찍었다.


3

스마트폰 앙케이트 조사에 따르면 나는 강성 진보라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답했을 뿐인데


4

내가 정의당에 최적화된 유권자인지는 확실치 않다.

정의당 강령을 입수해 읽은 적이 없어서.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후보를 가린 채 공약만 고르라고 하면 심상정 후보의 공약집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을까.


5

KBS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심상정을 배제한다고 했을 때 나는 쌍욕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주장할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에 최선을 다해 비난을 퍼부었다.

정치와 무관한(진심이다) 이곳 브런치에 KBS 여론조사 조작 사건을 끈질기게 리뷰한 것도 마찬가지.

KBS가 여론조사를 조작했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KBS가 적폐 세력의 본산지임을 증명하려는 것이지.

나만 그렇게 비난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KBS 스탠딩 토론에 출연한 걸 보면.


6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처음 털린 것도 아니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가 제일 먼저 털렸다.



그 여파 때문인지 요즘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상호 기자가 털린 건 이재용 구속이 기각되던 날, 문재인 후보가 삼성과 무언가 있다는 식의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사람들이 고발뉴스로 달려가 후원금을 끊겠다고 난리를 쳤다.

두 번째로 털린 데는 한겨레쯤 되려나?

조중동 말고 한경오도 있다.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중립적인 척하면서 문재인 후보를 조중동 프레임과 똑같이 난도질하는 자들.

이상호 기자를 털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똑같이 턴다.

절독을 선언하고 난리를 피우자 한 용감한 한겨레 기자는 이런 말도 했다.


갈 사람은 가시라, 한겨레의 주인은 상식과 진리와 진실이니 우리는 그것을 따르겠다.

7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뭐가 문제였을까.

토론이 아닌 "심판"의 태도를 취한 게 문제였다는 건 지난 글에서 지적했다.

팩트도 틀렸다.

심상정 후보는 선관위에 등록된 공약을 근거로 숫자를 축소하는 속임수를 썼다고 했는데, 사실에 부합하는 발언이 아니었다.

선관위에 등록한 공약과 무관한, 공식 선거 운동 전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금씩 노출된 공약의 구체적 내용이 변했다고 하면 또 몰라도.

심상정은 숫자(공약의 질, 유권자가 누릴 혜택)를 축소한 게 잘못이라고 지적한 게 아니다.

서민을 위하는 척 사기를 친다고 비난한 거지.

심상정의 그러한 주장 이면엔 이런 믿음이 있다.


민주당은 사기 정당이다, 선거 때만 국민을 위하는 척 공약을 남발한다.

이 믿음을 지탱하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우리 당은 다르다, 우리는 민심을 얻기 위해 공약 가지고 사기 치는 몰염치한 정치 집단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 결론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심상정이나 노회찬, 정의당이나 통합진보당, 더 멀리 민주노동당은 아직 자기들이 내건 공약을 집행할 만한 권력을 잡아본 적 없다.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 요구도, 심상정이 틀렸다.



사드 효용성을 꼼꼼히 따져보겠다는 약속은 외교적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문재인 후보의 워딩보다 한참 떨어지는 정치 감각이다.

효용성이란 말 안에는 이미 외교적 문제도 포함돼 있으므로, 문재인 후보의 워딩이 더 디테일했던 것이고, 그 발언에 이미 "입장을 표명"할 수 없다는 근거를 담고 있다.

그대로 수용하면 된다.

문재인 후보는 "판단을 유보하는 척" 사기를 치고 있는 게 아니다.

끝으로 심상정은, 조중동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왔다.

전과 14범을 당선하게 만든 프레임이 "경제 폭망"이었다.

홍준표는 아직도 "경제 폭망"을 들먹인다.

노무현 대통령 때 경제가 망해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았냐고.

헬조선이란 말도 없었던 시절을 그렇게 비하한다.

문재인을 제외한 TV 속 네 사람은 박근혜가 탄핵되는 바람에 보궐 선거를 치르게 됐다는 사실을 잊은 듯 보인다.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난 4년을 심판해야 하는 자리 혹은 이명박 5년을 더해 지난 9년을 심판하는 자리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벌써 노동자가 힘들어졌다고 따지는 건 대체 뭘까?

그런데 역사 인식도 틀렸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IMF가 강제된 사실을 인위적으로 누락시켰다.

경제가 망한 건 김영삼 정부의 일이다.

(20대 유권자에겐 낯설겠지만 헬조선 기원에 관한 이야기다)

국제통화기금이 들어왔고 "돈"을 빌려줄 테니 "말"을 들으라고 요구했다.

김대중 정부는 할 수 없이 콜.

기업 구조가 재벌 독식 구조에서 외국인 대주주 구조로 바뀌었다.

IMF 전에도 기업은 이득을 추구했다.

전에는 재벌만 빨대를 꽂았다면 1998년 이후로는 외국인 대주주도 빨대를 꽂아 (노동자의 이윤을) 함께 빨아먹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이름들이 비정규직, 파견직, 정리해고 따위다.

김대중 정부에 대해 "다른 더 좋은 선택지"는 없었느냐고 따질 수는 있을 것이다.

교실이나 강당 같은 데서, 역사 시간에.

이명박근혜가 추구한 신자유주의란, 노동자 등에 꽂힌 빨대의 지름과 깊이, 빨아들이는 정도를 강화시킨 것이다.

지난 9년을 집권한 홍준표와 유승민이 져야 할 책임을 문재인 후보에게 따진다?

조중동 프레임을 넘어 일간베스트 유저들이나 즐길 후안무치.


8

나는 심상정 후보보다 보좌를 못한 참모진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처음 하는 토론 형식이라 낯설어서?

반세기 가까이 노동 운동을 한 사람이 그런 핑계 대면 안 된다.

나는 처음부터 전제 조건이 틀렸을 거라 유추한다.

그건 2시간짜리 토론회가 아니라 18분간 말할 기회였다.

무언가를 주장하든 입증하든 설득하든 설명하든.

지지율 5%를 넘기지 못하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라면 18분을 어떻게 써야 했을까?

문재인 후보를 까면 지지율이 1%라도 오를 거라 생각한 걸까?

아니라면... 왜 그런 생각은 안 한 걸까?

왜 어렵게 얻은 그 18분을 지지율을 1%라도 끌어올리는데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은 걸까?

유세 현장을 돌아다니느라 바쁜 심상정 후보는 몰랐어도, 보좌관들은 그 생각을 했어야 했다.


18분 동안 어떤 말을 해야 지지율을 1%라도 올릴 수 있을까?

9

국민의당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의 적폐 세력 발언을 끌고 와, 자기를 지지해주는 국민을 "적"으로 간주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전인권까지 끌어들였다.

나는 어제 글에서 조선일보(확실치는 않지만)가 전인권을 이용해 친문 패권주의를 유발하는 프레임을 썼다고 언급했다.



전인권이 나(안철수)를 지지한다고 하니까, (문재인에게) 당신 지지자들이 많은 비난을 하고 있다. 나를 지지하는 국민은 다 적인 거냐.

고발뉴스 이상호를 털고, 한경오를 턴 뒤 정의당 심상정 후보까지 털어버린 이 무서운 기세의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문빠일까?

친노?

조중동이 최초로 씌운 프레임은 "노빠"였다.

이 사람들이 지금 막 구름처럼 몰려다니면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민주주의에 헌신한 사람들을 다구리 놓고 있는 걸까?

이것이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친노 패권주의의 실체?


10

내게 지난 9년은 "치욕"이란 두 글자로 수렴된다.

IMF가 창궐한 김영삼 정부 때도 이렇게 치욕적이지는 않았다.

박정희, 전두환은 전쟁을 겪은 "미개한" 나라가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지난 9년은, 그렇게 겨우 얻은 권리를 모두 빼앗긴 "치욕의 시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의문사를 당했을 때도 나는 그다지 치욕적이지 않았다.

손혜원 의원이 "계산적"이었다고 말해 문재인 아저씨가 분노한 사건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이야말로 나는 저들이 설계한 프레임이라고 본다.

그렇게 믿어주면 땡큐라는 인셉션.

저 사람이 자살한 걸로 발견될 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밑밥을, 언론을 총동원해 깔아 놨으니까.

조중동은 물론 한경오까지 어깨를 나란히 스크럼을 짜서.

처음엔 자연스럽게 정권을 주고받은 듯 보였던 이명박이 왜 그럴 생각을 했을까? 

광우병 시위.

이명박과 맞짱 뜬 사람들은 단지 미국산 쇠고기를 먹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다.

전과자가 대통령이랍시고 똥폼 잡는 자체가 싫어서 "광우병" 핑계를 대고 나온 것이다.

이명박은, 그러한 민심의 배후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고 본 것이다.


저게 저기서 잘 살고 있으니까, 주말마다 봉하마을에 가서 놀고 하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니야?

김대중 대통령이 휠체어에 앉아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했을 때도 나는 치욕적이지 않았다.

박근혜 당선 확정이라는 자막이 떴을 때는 치욕보다 수치스러웠다.

쪽 팔려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느낌.

문재인이 잘나서라기보다 똑똑한 유권자들이 박근혜를 찍어줄 리 없다고 믿었건만.

세월호.

압도적 슬픔에 치욕을 느낄 틈도 없었다.

너무나 거대한 비극에, 압사당하는 느낌.

어느 날은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다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홀로 서럽게 울기.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폭식 투쟁.

헬조선의 완성.

여기는 지옥이고 우리는 악마와 살고 있었더라는 발견.

고인에 대한 끝없는 모욕.

인터넷의 한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대학 시험지에도 나오고, TV에도 나오고, KBS 인턴 기자에도 나오고, 홍대 졸업 작품에도 나오고, 사방팔방에서 치욕이 바퀴벌레처럼 쏟아져 나왔다.

어떤 "빠"라는 건 맹목적 사랑을 말한다.

이상호 기자한테, 한경오한테, 정의당 심상정 후보한테 몰려간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분노한 게 아니다.

9년간 지속된 학대가, 반복해서 시달린 몸과 마음이,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기로 결심하게 만든 것이다.

이상호 기자를 털고 한경오를 털고 심상정을 터는 게 그들의 목적이었을까?

이명박근혜란 괴물을 사육해온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기득권 적폐 세력)은 그렇게 보이기 바라지만 내 눈엔 너무 뻔히 보인다.

무자비하게 등을 돌리는 그들의 악다구니가 무엇인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봉하마을에도 있고,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에도 있었던 것.

노란색으로 표현된 그것은 "노무현"이란 한 사람이나 "세월호"라는 한 척의 배를 상징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짓눌린 목소리의 물질적 재현이다.

"죽음에 조의를 표하는" 검은색이 아닌 노란색이 된 것은, 죽을 만큼 짓눌려 있음에도 살아있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강렬히 피어났음에도 "노란" 목소리들은 왜 사회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짓밟혀야만 했을까?


힘이 없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달았음에도, 왜 힘을 얻지 못했을까?

연대하지 않으니까.


당신들은 왜 같이 싸워주지 않는 겁니까?

이상호 기자나 한경오나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도 얼마든지 "반론"이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9년의 치욕을 견딘 이들에게 미시적이고 개별적인 입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게 잡다한 이유로 문재인 후보를 까서 당선된 뒤에도 5년 내내 주야장천 까다 저쪽에 권력을 넘기면 또다시 부정선거의 위기를 감수하면서 견디고 살라고?

문재인 대통령을 절벽으로 데려가 밀고, 사람들이 탄 배가 침몰하는 데도 구조를 않는 국가를 용인하면서?


11

지난 9년은 광복 이후 적폐 세력에게 모든 걸 빼앗긴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천재일우의 기회, 그 양분이었는지 모른다.

이상호 기자나 한경오, 심상정 후보보다 그들에게 분노해 등을 돌려버린 사람들이, 그러한 역사적 변곡점에 더 강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여기서 이것마저 놓치면 두 번 다시 없을 거란 절박함.

다시는 웃으며 투표장에 갈 일이 없을 거란 두려움.

이승만 독재자를 건국의 아버지, 박정희 독재자를 경제 개발의 아버지, 전두환 독재자를 장수의 아버지라고 찬양하는 자들이 규정한 "패권주의" 프레임.

심상정 후보가 여기에 넘어가면 정의당은 진짜 회생 불능 상태에 빠질지 모른다.

당신들에게 기회를 줬던 사람들이, 왜 돌아서려 하는지 그 마음을 읽어주지 않는다면.


12

손석희는, 박근혜는 잡아도 조중동은 안 잡는다.

내가 여전히 여기서 치욕과 나란히 살아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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