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자들은 즐거웠을까?
KBS가,
민낯을 드러냈다.
경제 위기, 공교육 붕괴, 청년 실업, 여혐, 부동산 위기, 자영업자 몰락 같은 현안은 깡그리 무시한 채 노무현 대통령, 국가보안법, 북한 핵, 북한 인권 문제 따위를 한 시간 동안 떠들게 했다.
처음부터 "문재인은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짰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부역자들이 그렇다는 거야 놀랄 일도 아니지만 미국 거라면 똥까지 받아먹을 기세로 "스탠딩" 토론을 하자고 우기더니 SBS의 앉아서 한 토론보다 더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유권자들은 정말 그런 걸 원했을까?
2시간 동안 꼼짝 않고 서 있기?
왜?
왜 우리가 벌을 주길 원한다고 생각했지?
토론 배틀에 나가는 학생들도, 그 한 번의 토론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는 걸로 아는데.
후보들이 골방에 처박혀 토론 준비만 하고 있길 바랐나?
선거 유세하러 엄청 돌아다니는 시기에?
다른 후보는 모르겠고, 문재인의 경우 수백수천 킬로미터를 소화하는 걸로 아는데.
최순실과 손잡고 대한민국을 말아먹은 인간들은 감방에 갔는데.(우병우 빼고)
왜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이 거기서 벌을 받아야 했지?
원고도 안 된다?
무슨 취지로?
후보들의 기억력을 테스트하려고?
왜?
우리가 지금 기억력 좋은 사람 뽑으려고 이러는 거야?
나는 우리 아들보다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대통령 후보를 뽑으라면 나보다 아들이 더 적합하단 뜻?
뭐 이런 똥 같은 논리가 다 있지?
다섯 후보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관저에서, 서서, 일체의 서류도 안 보고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달달 외워" 일하게 되는 거야?
정보처리기술의 발달로 외우고 다닐 필요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인데.
말로만 새정치, 새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 외치면서 하는 짓이라고는 역주행.
"미리 준비하는 자료"는 보좌관의 역량을 체크할 수 있는 기회다.
박근혜를 말아먹은 문고리 삼인방.
하라는 일은 않고, 간신배처럼 박근혜가 듣고 싶어 하는 말과 사람만 전달한 보좌관들.
대통령 후보가 토론 준비를 잘해왔다면(정확한 자료 따위로) 보좌관들의 실력이 좋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문제 아닌가?
자료를 아무리 잘 준비한들 모든 대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장면1
문재인 후보는 홍준표의 질문을 진주의료원 문제로 되치기 했다. (메르스 사태를 거론했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음압실이 있는 의료원을 폐쇄한 이유가 뭐냐고.
자료를 미리 준비하게 해도 홍준표는 진주의료원 관련 자료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저런 질문을 받게 될 거라고 예측하기 쉽지 않으니까.
그들이 다루는 영역은 방대하다.
공간은 물론 시간까지.
하루 종일 유세하러 돌아다닌 사람들을 세워놓고 기억력까지 쥐어짜게 해서 시청자들이 얻는 실익이 뭐라고?
나는 그냥, 괴롭히는 거로 보였다.
청산의 기로에 선 부역자들이 카메라라는 채찍을 휘두르는 거라고.
박근혜를 엿 먹였다 이거지? 어디 한 번 너희도 당해봐.
장면2
유승민은 검사처럼 문재인 후보를 몰아세웠다.
유엔의 인권 표결에 앞서, 북한 측에 물어보지 않았느냐고.
질문이 아니다.
유승민은 "그렇다"는 확신을 갖고 심문에 임했다.
문재인 후보는 똑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물어본 게 아니라 국정원을 통해 북측의 동향을 파악한 거라고.
유승민은 첩보 기관의 첩보 활동에 대해, 그러니까 그게 북한에 "물어본 거 아니냐?"고 계속 따졌다.
토론이 아니라 섹스다.
묶어놓고 때리면서 즐기는.
장면3
심상정 후보도 문재인 후보를 심판했다.
사드 문제로, 공약을 축소했다는 이유?로.
문재인 후보가 그 방대한 공약을 숫자 하나까지 다 외우고 다녀야 직성이 풀린단 걸까?
왜 그래야 하지?
지금은 SNS란 게 있어서 누구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앉은자리에서 다 확인할 수 있는데?
4차 산업 혁명 운운하면서 문명의 이기를 등한시하는 이 태도는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토론은, 그런 게 아니다.
논쟁보다 낮은 단계의 토의다.
게다가 당도 다 다르잖아?
사드에 대한 입장이 달라야 정상이다!
사드를 반대해야 한다고 가르칠 게 아니라, 우리 당은 대한민국을 위해 사드를 반대하는 입장인데 당신네 당은 대한민국을 위해 사드를 설치하자는 입장인 거냐? 하고 그 차이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처럼 발언했다.
유승민은 아직 대통령 된 거 아니라고 발끈했고, 그의 지적이 팩트이긴 하지만, 문재인은 아마도 "시간"이 없다고 여기는 듯 보였다.
취임식을 하기 전까지 스스로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하기에는 한반도 시계가 급박히 돌아간다는 판단에.
그래서 다섯 후보가 모여 북한에게 엄중 경고하는 공동 결의를 하자는 제안도 했다.
문제를 푸는 방법은 달라도, 나라를 걱정하는 자세는 똑같다.
게다가 사드는 박근혜가 싼 똥이잖아!
문재인 후보는 명확히 밝혔다.
외교적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미리 밝힐 수 없다.
이건 비판받거나 비난받거나 심판받아야 할 대답이 아니다.
두루뭉술한 대답도 아니다.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남이 싼 똥을 치울 고민에 빠져있는 것이다.
장면4
홍준표가, 문재인 후보에게 정체를 숨기고 있다고 한 지적이 날카로웠다.
나도 그랬으면 하는 부분인데...
장면5
아내와 나는 괴롭힘을 즐기는 사람처럼 KBS를 봤다.
SBS의 앉아서 한 걸작 토론회도 반 밖에 안 봤는데.
아내가 썰전의 팬이어서 그날 채널을 돌려야 했다.
같이 보는 내 입에선 전원책이 말을 마칠 때마다 **이 튀어나왔지만
이재명이었으면 되치기 했을 텐데. 지난 4년 내내 북핵 위기를 떠들어서 나아진 게 뭐냐고.
문재인 아저씨는 그러지 못했다.
아내는 아마도 문재인이어서 그럴 거라고 말했다.
장면5
문재인 후보가 딱 한 번 성질을 냈다.
안철수가 불쑥 전인권을 언급했을 때.
나를 지지하면 적폐 세력이라고 했는데 전인권이 나를 지지하니까 당신의 지지자들이 전인권을 비난하고 나섰다. 전인권도 적폐 세력이냐?(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뜻은 대충 이랬을 것이다)
이것은 꽤 놀라운 시작이었다.
1부 빨갱이 놀이를 마치고 2부 빨갱이를 제외한 나머지 문제를 다루는 시간이 되자 안철수가 첫 질문으로 "전인권"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내가 놀란 건 인터넷 토론 게시판에서 "전인권" 관련 경고문을 접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확실치 않다)가 전인권이 안철수를 지지한다는 기사를 올렸다, 문재인 지지자들로 하여금 전인권을 욕하도록 유도하는 조선일보 특유의 프레임에 말려들지 말자.
어느 네티즌이 올린 그 경고의 글을 안철수도 읽었던 걸까?
정확히 그 점을 찌르고 들어오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는데 문재인 후보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일단 내가 한 것이 아니고요. 그래선 안 되죠.
그다음 문재인이 보인 반응.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옆자리였다)
질문을 이어가려던(후속 질문도 캠프 쪽에서 잘 준비한 것 같았다) 안철수가 당황할 정도로.
사실은 나도 당황했다.
젠틀맨 문재인이 저렇게 확 등을 돌릴 정도면 꽤 화가 났다는 뜻인데.
문재인 후보는 홍준표에게 질문하려 했다.
안철수는 그러지 말고 자기의 후속 질문을 받으라고 했다.
문재인은 돌린 등을 되돌리지 않았다.
홍준표가 웃었다.
누가 봐도 어색한 상황이었다.
웬만하면 안철수 질문받고 넘어가지.
(별 의미도 없을 것 같은데)
문재인은 그러지 않았다.
끝까지 완강하게,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흐름이 헝클어지자 공식적으로 식물인간설이 제기된 KBS 관계자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자유 토론이니까, 내가 질문에 답했으니까 나도 질문할 권리 있는 거죠?
KBS는 안철수 편을 들어줬다.
연관된 질문을 받으라고.
할 수 없이 돌아온 등.
당신의 지지자가 전인권을 비난하는 것도 양념입니까?(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대충 그런 뜻)
문재인 후보는 양념은, 우리끼리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치열한 논쟁을 말한다고 답한 뒤 다시 등을 돌려버렸다.
장면6
홍준표가 안철수의 포스터를 언급했다.
"국민의당"을 지운 것에 대해 안철수는 이렇게 답했다.
나이키에 "나이키"라고 안 써도 다 압니다.
시청자인 나의 반박.
그러면 이름도 지우고 번호도 지워야지, 다 아니까.
아무튼 민주당은, 여론조사를 가장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KBS를 검찰에 고발할 것을 촉구한다.
여론조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건 공식적으로 확인됐으니 그 의도성만 밝혀내면 누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