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내일은 꽃개랑 산지 일년째 되는 날이다.
꽃개 인생의 15분의 1이 후딱 지나갔다.
(평균 15살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아내는 은퇴한지 2주 밖에 안 된 것 같다고 엄살.
나도 하루가 겁나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낀다.
제방을 무너뜨린 강물처럼 콸콸
거침없이 쏟아지는데
그 많은 시간이 어디로 가버리는지 젠장,
알다가도 모르겠다.
꽃개와 공유한 1년은
파란만장했다.
동물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는 것으로
미국의료보험을 체험하게 해주었고
아침 9시에 느지막이 일어나던 인간이
새벽 6시만 되면 군인처럼 눈을 뜨게 됐으며
(꽃개도 나처럼 잠에서 깨어나면 급해진다)
작대기를 던지던 것이
공을 던지고
쟁반(원반)을 던지게 됐다.
개에 관한 편견도 많이 부서진 1년이었다.
꽃개를 모든 개로 일반화시킬 순 없겠지만
개는 기본적으로 조용한 동물이었다.
특히 아플 때
꽃개는 절대적으로 조용해졌다.
마치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처럼.
인간은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약동하지만, 그래서
말도 하고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르지만
꽃개는 우리한테 요구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먹을 걸 내놓으라고 하염없이 앉아있을 때도
(꼼짝도 않는 모습이 망부석 같다)
절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
기다림, 그게 다였다.
개는 냄새를 잘 맡는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꽃개는
우리의 감정을 귀신 같이 읽어냈다.
내 감정이 요동치면
(예컨대 정치면 기사를 5분만 읽으면
누구나 혈압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데)
꽃개는 어김없이 다가와
'괜찮냐'고 핥아주었다.
아들을 야단칠 때도 중간에 끼어들어
그러지 말라고 나를 말렸다.
그래서 아들을 붙잡고 공부를 시킬 때는
야단치는 걸로 오인해
안 보이는 데 가서 숨기도 했다.
이럴 때는 개껌을 줘도 안 먹는다.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에 깔끔하기까지 하다.
생각할 줄 알고 기억할 줄 알며 추론도 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1층에서 내리면 왼쪽으로 가고
지하 1층에서 내리면 오른쪽으로 간다.
(차 타러 가는 줄 알고)
우리 집은 거실을 제외하고 방마다 베란다가 있는데
거실과 연결된 베란다 문을 통해
숨바꼭질을 할 때면
꽃개는 아들이 달아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서 잡을 줄 안다.
위풍당당한 꽃개.
자기 걸 철저히 지켜내느라
곤란한 적도 많았다.^^
개들의 싸움은 크게 3단계를 거친다.
서로 노려보며 으르렁 하는 1단계.
입을 크게 벌려 물 것처럼 덤비지만
접촉은 않는 2단계.
그냥 물어버리는 3단계.
힘의 편차가 클 땐 예고없이
3단계로 진입해 물어버린다.
이런 사고를 막기 가장 어렵다.
꽃개는 주로 2단계의 거친 경고성 싸움을 하는데
이때마다 나는 깜짝 놀라 둘 사이에 끼어든다.
다리를 집어넣어 어떻게든 떼어내려 한다.
성견이 되니 말리는 것도 쉽지 않아졌는데
아무튼 꽃개는
자기 안에 하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 강해
종종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Ju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