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후 섬의 북쪽은 밤이 되자 파도 소리만 남았다.
여행지에서 숙소는 고향이다.
은신처.
비를 피해 들어온
동굴.
마침내
당도한
약속의
땅.
알로하, 터틀 베이 리조트!
짐을 풀고
전망 체크.
파샬 오션뷰?
루프뷰.
여행기의 소분류에 이런 장르가 있다.
진상 - 자랑기.
규정상 안 되는 걸 부탁해서, 또는 바락바락 우겨서,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능력을 통해 자기는 타냈다고, 업그레이드 받았다고 자랑하는 여행기.
나는 아내에게 전망이 안 좋으니 로비에 내려가 방을 바꿔달라고 하자고 했다.
아내는 난색을 표했다.
평화주의자인 아내는 갈등 상황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구글맵과 내비게이션(하고 나한테)에 치여 여기까지 오는데 에너지를 소진한 아내는, 그런 걸 요구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나무에 수영복이 걸렸다.
베란다에 수영복을 널면 안 되겠는데, 태평양까지 날아가겠어.
우리는 옷장에 수영복을 널어 말렸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우리는 리조트 주변을 탐문하기로 했다.
하와이의 흔한 스포츠카.
터틀 베이 리조트의 서쪽 바다는 거칠었다.
바람도 세게 불고 파도 소리도 우렁찼다.
빠지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데, 나중에 보니 이런 데서 서핑을 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터틀 베이 리조트의 서쪽 바다는 거칠지만, 동쪽 바다는 방파제를 쌓아 관광객이 해변을 즐길 수 있게 해놨다.
가운데 구멍이 뚫린 데가 바다와 연결돼 있다.
파도가 제대로 치면 압축된 공기가 쏘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빠져나간다.
바다를 찍다 깜짝 놀랐더니, 백인 남자가 괜찮냐고 웃으며 말을 건넨 뒤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터틀 베이 리조트는 수영장이 있다.
지금 이 글을 올리는 날짜는 6월 15일이지만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날짜는 2월 21일 즈음이다.
수영, 할 수 있다.
하지만 막 더워서 하는 수영은 아니고.
그늘막 우산을 다 접어놨다.
펼치는 순간 (강풍을 맞아) 미사일처럼 날아갈까 봐.
엄청난 바람이, 쉬지 않고 불었다.
사계절 내내 이런 바람이 부는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놀러 간 2월 하순엔 지독한 바람이 불어, 수영을 즐기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수영장과 분명히 다른 점은, 깊이의 차이가 확실하다는 점이다.
테두리에 표시를 해놓았는데 사진에서 보는 방향의 왼쪽은 깊고, 오른쪽은 얕다.
깊은 데는 꽤 깊어서 발이 안 닿는다.
키가 2미터인 사람도 발이 안 닿을 깊이다.
사진엔 나오지 않았는데, 오른쪽에 자쿠지가 있다.
물이 완전히 뜨거우면 참 좋을 텐데, 줄기차게 불어대는 바람 탓인지 미지근하다.
바람 맞으며 수영한 추위를 녹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서핑을 하고 온 서양인들이 벌벌 떨면서 들어오기도 했다.
자쿠지가 서너 군데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딱 하나밖에 없다.
늘 만원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노스 쇼어에 갔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자, 말이 굉장히 빠른 여성이 안내를 시작했다.
레쓰고!
쿠아아이나 버거.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았음에도 나는 이곳을 일단 지나친 뒤 유턴해서 돌아왔다.
간판이 저게 다다.
저녁 8시쯤 가니 어두워서 간판을 못 보고 지나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이 아니다.
글자도 작다.
그래도 태평양을 건너온 한국인 가족이 알아서 잘 찾아온다.
마당에 주차를 하고 들어갔다.
예쁜 가게였다.
서핑 보드는, 벽에 걸면 장식품이다.
파도가 아니라, 빌딩을 타는 것 같은데.
한산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주문.
짜잔~
일단 비주얼에 압도된다.
알맞게 구부러진 감자튀김조차 예사롭지 않다.
먹방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괴롭다) 이건 정말 찍어야 했다.
이게 햄버거라고?
우리가 국내에서 먹었던 건 그럼 뭐지?
쿠아아이나 버거의 치명적 단점.
앞으로 더 이상 다른 햄버거를 먹기가 불편해진다.
이건 정말 최고의 맛이었다.
하와이에 가게 되면 반드시 다시 찾아갈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그래, 햄버거가 아니라 샌드위치지.
이건 샌드위치라고 봐야 할 것이다.
클리어.
우리가 먹고 퇴장할 때쯤 가게도 문을 닫는 분위기였다.
우리나라처럼 밤 9시, 10까지 하는 가게가 아니니, 방문하고 싶다면 영업시간을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터틀 베이 리조트 셀프 파킹 주차장에서 귀여운 차를 만났다.
남자는, 차다.
이런 차는 찍어야 해.
이렇게 (관리가 잘 된) 오래된 차는, 타고 다니는 자체가 취미 생활일 것 같다.
어흑, 마세라티.
하지만 마세라티의 디자인도 무너졌다.
피아트가 인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피아트가 크라이슬러까지 인수하면서, 이탈리아 특유의 관능적 라인이 미국의 실용적 라인과 부딪치면서 상쇄되고 말았다.
이게 진짜 마세라티지.
아주 작은 차이인데 훨씬 섹시하다.
류시원이 [스타일]이라는 드라마에서 타고 다니기 훨씬 전부터 눈독 들인 차였는데
마세라티 라인업 중에 MC12라는 괴물 같은 스포츠카가 있다.
이건 말 그대로 레이싱카다.
차값만 10억 원이 넘는 걸로 알고 있다.
이런 차는 몰고 다니는 자체로 취미 생활이 될 것 같은데, 실제로 우리나라에 이 차를 구입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담철곤이라면 마세라티 MC12나 몰고 다니면서 법도 없이 착하게 잘 살 것 같은데.
요즘 내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브랜드는 볼보.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볼보 XC60는 이렇게 생겼다.
어떻게 이런 디자인을...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이 아저씨, 지금 하와이 여행기를 쓰는 거야, 자동차 관심기를 쓰는 거야?
거듭 밝히지만,
남자는... 차다.
터틀 베이 리조트 입구.
발렛 파킹을 원하는 사람은 여기서 달러와 차 키를 던져주고 가면 된다.
발렛 파킹 주차장은 코앞에 있고, 나처럼 스스로 주차하는 사람들의 주차장은 멀리 떨어져 있다.
자본주의적 공평함이란, 불편함이다.
건물을 지탱하는 이 화려함도 바람처럼 스쳐 지나는 것일 뿐, 내 것으로 체화되는 풍경은 아니다.
로비 전경.
오른쪽 까만 유리창 너머로 리조트의 동쪽 해안이 있다.
방파제를 쌓아 수영이 가능한 해변이다.
서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바람도 덜 불었다.
자꾸 찍게 되는 통로 사진.
여기에는 나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아들이 발견한 코카콜라 자판기.
옆에는 얼음이 쏟아지는 냉동고가 있다.
병따개는 없었다.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때와 달리 TV를 적극적으로 시청했다.
채널이 굉장히 많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서너 번은 돌렸을 것이다.
일단 탄핵 정국에 휩싸인 헬조선 뉴스.
불과 넉 달 전만 해도 박근혜는 대통령이었다.
자유한국당은 새누리당이었고,
나라는 개판오분전이었으며,
촛불을 든 시민만이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다.
수면유도제를 사러 나왔다.
터틀 베이 리조트에 입점한 가게.
희로애락을 웃음에 담아 한 방에 터뜨린 조각상.
포토제닉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절망과 마주친 젊은이들을 위한 추경 예산을 통과시켜 달라는 연설을 할 때 자빠져 잔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이 맥주로 보였던 걸까?
박근혜한테는 충성 맹세하느라 입 싹 닫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촛불을 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않던 자들이 이제 와 나라를 구한답시고 문재인 대통령한테 반대?
뭐든 무조건 반대하는 게 너희들이 말하는 협치?
아들은 메로나.
우리는 와이키키 브루잉 컴퍼니의 하나호우 헤페.
허브스러운 향이 강한 맥주였다.
안주는 월마트에서 산 스낵.
아직 오기 전이었던,
탄핵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