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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CON Jun 22. 2017

정신없는 하와이 여행 18 와이켈레 프리미엄 아울렛

아내가 하와이를 쇼핑했다.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끄응

욕 같은 한숨을 뱉은 뒤 돌아누웠다.

어김없이 나타난 악마가 속삭였다.


뭐하러 일어나, 처 자지.

스스로 한 약속을 저버리길 바라는 악마.

시차 적응에 완전히 실패했다.

잘 자자고 맥주까지 마셨는데 잠의 세계로 빠져드는 데 실패했다.

밤새 파도 소리에 시달렸다.

하이파이에 훈련된 귀가 그것을 돌비 서라운드로 받아들였다.

파도 소리는 내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와 출렁이고 부딪치고 철썩거렸다.

제주도에서 비슷한 일을 당한 적 있다.

밤새 창틀을 파고드는 바람 소리에 시달린 우리는 쉽게 인정해버렸다.


역시 제주도는 바람인가 봐, 윙윙대는 게 장난 아닌데.

그게 아니라 베란다 창문을 (닫기만 하고) 잠그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시건장치를 확인하고, 목재로 만든 커튼(햇빛 가리개의 용도로 만들어진 문이 레일에 달려 커튼처럼 여닫을 수 있었다)까지 꼭 닫았는데도 소용없었다.

방이 캄캄해지자 소리만 더 선명해졌다.


귀를 막고 자야 하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그것들은 이제 원혼의 울부짖음으로 들렸다.

바다에 삼켜져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3시간이나 잤을까?

나는 일어났다.

주섬주섬 챙겨 입고 카메라 장비를 챙겼다.

삼각대는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태평양을 건넌 물건이었다.

로비로 나오자 '나는 역시 의지가 강한 인간이야' 라고 알통에 입맞춤할 필요도 없었다.

나보다 더 부지런한 인간들이 요가 교실에 모여 몸을 뱀처럼 구부리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바람이 격하게 포옹했다.

바람막이 대용으로 입은 아디다스 집업이 깃발처럼 펄럭였다.

내가 기대한 예쁜 바다는 아니었다.

DSLR을 잘 찍게 해주는 책에서 본 하와이 바다는 엽서처럼 예뻤다.

동트기 전 바다와 백사장과 하늘이 싸이언 계열의 색깔로 담백하게 나왔는데.

내 앞에 펼쳐진 바다는, 맹수처럼 으르렁대며 앞을 가로막는 모든 걸 쉬지 않고 때리는 터프가이 바다였다.

수동모드로 맞춘 삼각대가 날아가지 않도록 움켜쥔 상태에서 셔터를 눌렀다.



200장쯤 찍었나?

완연히 떠오른 해가 철수를 명령했다.

값비싼 취미 생활의 한 장이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13장의 파도는 여기



건물의 동쪽으로 나가 바다와 면한 구역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없이 조용한 데서 저런 기념물과 마주하고 있자니, 박물관에라도 온 기분이었다.

아침은 노스 쇼어에 가서 때웠다.



커피 갤러리.

앞마당엔 아주 약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우비라고 하던가.

깨끗하게 느껴져 우산이 필요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내는 짐 쌀 때 우비도 챙겼는데, 챙겨 온 그대로 돌아왔다.



예쁜 가게였다.

매끈한 인테리어 기술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세월의 녹.



가격표에 일본어가 같이 표기돼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파이팅!

외무고시 합격했다고 요직에 앉아 손가락 빨면서 군주 노릇만 해온 적폐 세력의 모가지 좀 비틀어주세요.



주문하는 곳에서 입구를 바라본 모습.



좌측.



우측.



음식을 들고 가서 먹는 곳의 바닥.



거기서 바라본, 주문하는 곳.



우리가 주문한 음식.

나는 커피롤, 아들은 블루베리 머핀.



아내가 주문한 베이글엔 필라델피아 치즈가 딸려 나왔다.



카페라떼는, 맛있었다.



아내는 아메리카노, 아들은 파인애플 주스.



블루베리 머핀은 머핀 반, 블루베리 반이었다.

블루베리가 큼직했다.

(그걸 표현하고 싶었던 사진인데 이상하게 나왔다. 이날 찍은 사진들은 대체로 엉망이었다. 새벽 일찍 무리를 한 탓이었을까)

아내의 평가로는 헬조선에선 코스트코에서 파는 블루베리 머핀이 그나마 나은 편인데, 그보다 훌륭한 머핀이라고.



우리를 제외하면 거의 백인이었다.

노트북을 하는 백인도 제법 있었다.

아침을 잘 때운 우리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내륙 도로를 달렸다.

터틀 베이 리조트로 올라갈 때 탔어야 했던 바로 그 도로였다.


하와이 뒷골목에 차를 세워둔 자의 비애가 궁금하다면


세계적인 파인애플 가공업체인 돌 농장도 지나, 마침내 도착한



와이켈레 프리미엄 아울렛.

정문은 아니고 화장실을 찾다 발견한 후문 정도 되겠다.



아내와 아들이 쇼핑을 할 동안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다 찾게 된 화장실.

바닥이 젖은 건 비가 오다 말다 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스럽지 않게 인색한 화장실이었다.

미국은 상업 주체가 소비자에게 '화장실'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고 여기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여기도 그랬지만 나중에 들린 푸드랜드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남자 화장실에는 소변기와 좌변기가 하나씩 있었다.

딱 하나씩.

냄새가 났고, 청결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화장실이라기보다는 창고 같은 느낌?

그래도 좌변기가 설치된 공간은 넓게 뽑아, 휠체어 이용자를 배려했다.

하지만 나는 기다려야 했다.

누군가 문을 잠근 채 힘을 주고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 남자들이 한 명씩 들어왔다.

그들은 나를 보고 움찔한 뒤 목표가 다르다는 걸 알고 소변기 앞에서 볼일을 봤다.

10분을 기다려도 안 나왔다.

해방감에 들뜬 덩이 삐져서 도로 들어가겠다고 아우성 칠 정도였다.

우리나라였다면 다른 데 갔을 것이다.

여기서는 쉽지 않은 판단이었다.

다른 데 화장실이 있다는 보장도 없고(아내 말에 따르면 다른 데도 있었다), 어디 있는지 몰랐으며, 있는 걸 알고 가도 또다시 이와 같은 상황과 마주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꽁무니를 고무줄로 묶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노크를 두어 번 했던 것 같다.

(팔뚝에 문신을 한 덩치 큰 흑인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할 겨를조차 없었다. 덩은 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한편 용감하게도 만들었다)

20분쯤 기다렸을 것이다.

마침내 나온 인종은 아시아인이었다.

마른 체구의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나를 한 번 힐끔 보고 재빨리 사라졌다.

한국인 같지는 않았다.

일본인보다는 중국인 같다는 느낌이었다.

뚜껑이 닫혀 있었다.

예의상 닫은 게 아니었다.

그는 물을 내리지 않았다.


워떠...

하와이는 천국이 아니다.


그는 물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을 내리는 레버가,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

변기가 아닌 벽에, 금속으로 된 단추가 있었다.

변기의 뒤쪽이었는지 화장지가 걸린 옆쪽 벽이었는지는 잊어버렸다.

아무튼 묘한 위치에 달린 금속으로 된 단추를 누르자, 그가 남긴 번민의 덩어리가 휩쓸려 내려갔다.

(문학적 묘사다. 나는 뚜껑을 닫고 단추를 찾은 뒤 눌렀다)

그는 20분간 물 내리는 단추를 못 찾아 끙끙댄 걸까?

아니면 자꾸 노크를 한 내가 짜증 나 자유한국당중국식 진상을 부린 걸까?

나는 삐져서 안 나오려고 하는 친구들을 살살 달래 밖으로 보냈다.



땅을 넓게 쓰니까 트럭 사이즈도 크다.



쇼핑하는 내내 여우비가 왔다.

하늘은 맑은 데 바닥은 젖어있다.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코치 남성 매장에서 아들 지갑을 샀다.

나는 셀카 놀이.

여자들이 쇼핑하는 방식은 남자들과 다르다.

여자는 2시간을 고른 뒤 안 살 수도 있다.

남자는 2분 만에 차 한 대를 지르는 것도 가능하다.

남자의 쇼핑이 직선이라면 여자의 쇼핑은



사우디아라비아 국기다.

이 간극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것이어서, 요즘도 백화점에 가면 싸우면서 가는 부부를 종종 보게 된다.



타미힐피거를 탈탈 털고 아디다스에서 아들 생활복을 사주고, 코치에서 몇 가지 패션 아이템을 득템한 아내는 신이 나서 펫코 점령에 나섰다.



나도 못 탄 보드를, 너도 타는구나.



척잇도 반갑고



터그 놀이 장난감도 주렁주렁.



여기선 개 옷도 알로하 스타일?

하지만 일본색이 느껴진다.

가격은 헬조선보다 싼 것도 있고, 비싼 것도 있었다.



나는 주차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쉐보레 노란색 카마로는 렌터카 중 제일 흔하게 돌아다니는 스포츠카였다.



그러다 사진의 왼쪽 구역에서 스타벅스 매장을 발견



짐도 맡을 겸 본국의 스타벅스를 경험해 보기로 했다.

하와이에서 시애틀은 또 한참이지만


우리나라 스타벅스 매장에서 에스프레소를 시킬 때 당할 수도 있는 일은 여기



매장 풍경은 평이했다.



우리나라 스타벅스 매장이랑 유사한 분위기.



창 밖 풍경.

하와이에 있는 카페라고 해서 무조건 바다 전망인 건 아니다.



종목은 카페라떼.

내가 알아서 주문했는데 어떻게 주문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직원이 내 말을 잘 알아들었던 것 같다.



뚜껑을 열었더니



저 하트 무늬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일단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머그컵에 준 거라면 몰라도, 테이크아웃 컵에 주면서 하트 무늬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을까?

굳이 뚜껑을 벗겨 볼 사람도 없을 테고, 하트 무늬가 없다고 다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사람도 없을 텐데.

저건 단지 훈련된 종업원이 기계적으로 그려낸 무늬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일 그럴 기회가 있다면 당신의 뚜껑을 열어보라.

저렇게 되어 있는 카페와 그렇지 않은 카페가 있을 것이다.

어떤 카페는 머그컵으로 주문해도 그림이 없을 때가 있다.

물론 하트 무늬가 맛을 결정해주는 건 아니다.

다만 만드는 사람이 '하나' 더 신경 썼다는 신호가 있을 뿐.



주차장 한쪽에 박근혜가 약속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무수히 많은 공약 가운데 하나인 푸드트럭이 있었다.



아내와 나는 로또 5등에 당첨된 것처럼 좋아했다.

하와이에 가면 꼭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 가운데 하나가 레오나즈 베이커리의 말라사다 도넛이었다.

우리는 오아후 섬의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그 식도락을 포기했는데



여기서 만난 것이다.



이렇게 생긴 도넛인데 우리나라 빵집에서 파는 찹쌀 도넛과 단팥빵을 반씩 섞어놓은 것 같다.

내 입맛엔 싱거웠고, 하와이까지 와서 먹어봐야 할 정도의 기념비적인 맛은 아니었다.


이런 도넛도 있구나.

정도의 맛?

뜨거울 때 먹는 게 식었을 때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



터틀 베이 리조트에 거의 다 와서 들른 푸드랜드.

아내는 생수를 사야 한다고 했다.

터틀 베이 리조트는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와 달리 생수를 제공하지 않았다.

제공받을 땐 필요 없어 보이던 것도, 제공을 끊으니 불편하게 다가왔다.



아내와 아들이 푸드랜드에서 생수를 살 동안 나는 차를 지켰다.

와이켈레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장 본 물건이 잔뜩 있어서.

더웠기 때문에 차 안에 있을 순 없었다.

푸드랜드 앞은 주차장이었기 때문에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닭이나 찍는 수밖에.

이 동네는 고양이가 없는 걸까?

아니면 고양이도 닭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인간적 질서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걸까.

닭들이 동네 어르신처럼 어깨를 쫙 펴고 활보했다.



오색 찬란한 집도 찍고.



크라이슬러 200은 한때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렸던 차다.



요즘은 워낙 멋진 차들이 많이 나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지워졌지만.



아들이 나와서 화장실을 찾았다.

아들은 나보다 영어를 더 잘 알아듣는다.

레프트 턴, 라이트 턴 해서 파이어하우스 어디로 가면 있다고 하는데, 아들은 화장실을 찾지 못했다.

파이어하우스는 소방서를 뜻하는 것 같았다.

이 근처 어딘가에서 소방서를 본 기억이 났다.

하와이에서 본 소방차는 남성미가 넘치는 멋진 차였다.

그러니까 직원의 말은, 푸드랜드는 따로 화장실을 제공하지 않으니 관공서에 가서 해결하라는 뜻 같았다.

아들은 볼일 보는 걸 포기했다.



아내는 나오지 않았다.



들어가서 찾으니 식스팩으로 묶인 맥주에서 두 개만 뽑으려고 하다 그게 잘 안 돼서 시간이 걸렸다는 거였다.

쇼핑 공간에서, 남자와 여자의 시간은 한데 섞이지 않는다.

물과 기름처럼 분리돼 전혀 다른 시간대를 보내게 된다.

나는 30분을 기다린 것 같은데 아내는 잠깐 보고 있었던 것.

이 글을 올릴 즈음 생각한 건데, 이런 혼란을 줄이려면 시간 약속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분까지 정문에서 만나자고 하면 서로 오해할 일이 없을 것이다.



바디보드는 월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작은 듯 보였다.

숙소로 돌아와 짐 정리를 하고 와이파이를 하면서 쉰 우리는 터틀 베이 리조트의 동쪽에 위치한 해변에 갔다.



뽕을 뽑기 위해선 체력이 필수다.



방파제가 있어 파도가 멀리서 칠 뿐 해변까지는 안 온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터틀 베이 리조트.

더운 날씨는 아니었다.

사진에도 나왔지만, 두꺼운 구름이 해를 가리면 으슬으슬했다.

그래도 수영장처럼 거센 바람이 불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와이를 2월에 가도 터틀 베이 리조트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을까?



그늘막 우산을 관리하는 직원은 친절하지 않았다.

우리의 요구에 대해 못 알아들은 것인지,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건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한데 모아놓은 의자가 접혀서 묶여 있었는데 풀어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기억에 남을 바다나 해수욕장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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