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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CON Feb 03. 2017

보도블록 19 어느 날 더치라떼

친구가 만들어준 더치라떼에 도전해봤다.

별다방에서 실제로 겪은 일이다.

나는 카페에 가면 주로 카페라떼를 마신다.

에스프레소 + 우유 + 우유 거품.

별다방 카페라떼는 우유 맛이 강해 좋아하지 않는 편.

돈도 아낄 겸 에스프레소 더블을 시켰다.

종이컵 말고 에스프레소 잔에 달라고 분명히 전했다.

전에 같은 별다방에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더니

종이컵으로 준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까 봐 미리 요구한 것이다.

나는 자리에 앉아 작업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중요한 장면을 쓰는 날이었다.

관저 집무실이 아닌 비싼 별다방을 찾은 이유.

자극을 받아 새로운 기분을 낼 필요가 있었다.

에스프레소가 나왔다고 해서 받으러 갔다.

흰색 변기를 떠올려보라.

설사를 해 덩물이 사방에 튄 변기.

나는 그것을 즉각 이해했다.

그들은 매뉴얼대로 한 것이다.

지난번 에스프레소를 시켰을 때

코딱지만 한 액체를 커다란 종이컵에 담아준 것도

매뉴얼에


손님의 특별한 요구가 없으면 무조건 테이크아웃으로


라고 되어있어 그대로 따른 것이고

이번에도 기계적으로 에스프레소 머신의 밑바닥,

컵 두는 곳에 에스프레소 잔을 두고 추출물을 담은 것이다.

높은 데서 쫄쫄쫄 떨어지는 물이 사방에 튀는 건 당연한 뉴턴의 물리법칙.

나는 깨끗이 담아줄 것을 요구했다.

돌아서는데 그들이 웃었다.

내 요구가 웃겨서 그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웃음에 화살표가 달려, 진원지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장면을 써야 했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들이 다시 불러 내가 주문한 상품을 가지러 갔다.

비교적 깨끗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미진한 무언가가 있었지만.

나는 자리로 돌아와 침착하게 내가 써야 할 장면과 대면했다.

잔을 들고 아주 조금 마시는데 거슬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찬장에 뒤집어서 쌓아둔 그릇.

오랫동안 사용을 안 한 그릇에 쌓인 보풀, 자잘한.

그런 것들이 입이 닿는 잔의 주둥이에 균일하게 분포돼 있었다.

여기선 아무도 에스프레소를 시켜먹지 않는 모양이었다.

매너 좋은 손님이라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잔의 주둥이를 요령껏 닦아 마시면 될 터였다.

먼지 좀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나는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했다.

집에 손님이 와 커피를 대접할 때도 이렇게 지저분하게 줄 것 같지 않은데

나는 돈까지 지불한 상태였다.

돈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뭔가 해야 했다.

나는 그들에게 가서 내가 본 것을 가리켰고, 그들도 곧 내 이의를 수용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이나 '바꿔 드리겠습니다'라는 말도 없었다.

그들은 능숙하게 기계처럼

이번엔 보풀을 닦아 없앤 에스프레소 잔에,

설사가 튄 것처럼 보이지 않게 요령껏 담아

아직 한 단어도 끄집어내지 못한 나를 재차 호출했다.



바리스타 좀 한다는 친구가 놀러 왔다.

(친척이 친구가 볶은 콩을 주문해 가져다줄 겸)

우리는 와인을 내놨고 친구는 더치라떼를 만들어줬다.



카페에서 사 먹는 카페라떼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우리는 고스톱을 쳤고 반기문을 안주로, 와인을 마셨다.

돈은 내가 땄지만 닭발 값으로



친구가 오면 꽃개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경계를 서느라.

뭘 경계하는지는 묵비권 행사 중.



아내가 머리 하러 간 날, 직접 더치카페에 도전해봤다.



컵에 우유를 따른다.

우유 맛 선호도에 따라 양이 많아질 수도,

적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1분 30초씩 2회.

남자들은 여기서 귀찮다며

3분 1회로 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면 우유가 폭발한다고 한다.



우유를 데울 동안 주변에 개가 있으면 사진을 찍어도 좋다.



뜨거워진 우유의 표면에 생성된 막을 걷어낸다.



오옷, 우유 김의 렌즈 어택.



막을 걷어낸 뒤엔 자동 거품기로 돌린다.

저렇게 돌리면 우유가 구수해지면서 거품이 표면으로 올라온다.

우유를 많이 넣으면 이 과정에서 넘칠 수 있다.



더치커피 원샷 준비.

구글링을 한 결과,

더치커피란 말은 일본식 표현이고,

영미권에서는 콜드브루라고 하는 모양이다.

미디어에서는 '콜드 브루'라는 말을 선호한다고.



거품 막이 형성된 우유에 더치커피 원샷을 투하하면 끝.

이때 선호하는 맛에 따라 더치커피의 양을 조절하면 된다.

목 넘김이 굉장히 부드러운데

그렇다고 카페인이 적은 거로 오해하면 안 된다고.

하루에 투 샷 이상은 권하지 않는다는데

실제로 더치라떼를 두 잔 마셔보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현상이 있었다.



우유와 더치가 섞일 동안

주변에 개가 있으면 사진을 찍어도 좋다.

친구가 만들어준 맛을

따라가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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