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다는 말만 한 게 아닐까.
어젯밤 아내와 나는 SBS에 낚였다.
그저께 [그것이 알고 싶다] 시청을 마친 뒤 예고편을 봤을 때는 강신주, 진중권, 허지웅 패널이 대선주자를 발가벗기는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 맞긴 한데 1부, 2부나 상, 중, 하로 구분하지 않는 속임수를 썼다. 다음 주 예고편에 강신주, 진중권, 허지웅이 "또" 등장했지만 그들이 다음 주 방영분에 나올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왜 거대 언론은 저런 잔대가리를 굴려도 되는 걸까?)
특히 어제 방송된 1부는 주류 언론 특유의 헛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그들은 마치 대선주자와 유권자가 다이렉트로 연결되어 있다는 식으로 묘사했다. 언론의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자세를 취할 땐 미국의 트럼프 사례를 인용했다. CNN을 비롯한 미국 주류 언론이 대선주자를 발가벗기듯 검증해 봐야 KKK의 당선을 막을 수 없다는 실폐 사례를.
그러면서 자칭 전문가라는 자가 각 대선 주자를 두세 마디로 요리하는 씬이 있었다. 문재인의 경우 지난 대선 때 4명 중 1명이 안보 불안을 이유로 투표하지 않았다는 객관적? 데이터까지 제시하며 그 점을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총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박근혜와 특전사 출신 문재인 후보 중 박근혜가 아닌 문재인한테 안보 불안을 느꼈다면, 그게 왜 잘못된 판단을 내린 유권자의 탓이 아니고 문재인의 탓이라는 거지? 그리고 4명 중 3명은 안보가 불안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스스로 제시해놓고 4명 중 3명의 의견이 아닌 4명 중 1명의 의견을 근거로 문재인의 안보 불안을 검증해야 한다는 거지? 저들은 왜 항상 국방 정책이라고 않고 안보라고 하는 걸까? 저런 왜곡된 말 때문에 오히려 이명박 따위가 방위산업 예산을 말아먹을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이명박이 방위산업비를 해먹은 만큼 대한민국 군사력은 쓰레기가 됐는데 문재인 안보관을 물어뜯는 조중동문이 이명박 정권에 대해선 무릎 위의 개처럼 얌전한 이유는 뭐고? 자칭 보수라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마찬가지. 문재인의 안보관이 위험하다면서 그 근거로 외교관이 쓴 자서전 한 줄을 제시한다. 누군지도 모를 그 사람의 말 한마디가 문재인이 내놓은 수많은 국방 정책보다 진실하다는 식으로.
거꾸로, 박근혜의 안보관이 문재인보다 투철한 이유는 뭔데? 지난 대선 때 박근혜가 사드 배치를 약속했었나? 문재인은 안 했고? 두 후보의 안보관은 두 후보가 제시한 국방 정책으로 비교 분석하면 될 일이다. 일반 유권자들은 먹고사는 일이 바빠 국방 정책의 디테일을 못 보니 언론이 그 일을 대신해 주면 되는 거고. 요즘은 사드 배치를 두고 대통령 후보 사상을 검증하려는 자들이 있는데 사드는 북한의 서울 폭격을 막지 못한다. 사드가 배치됨으로 일본이 안전해지는 건 확실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레이다망에 포착되는 것도 확실하다. 사드 배치로 인해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수백 배 높아진 것도 명약관화하다. 트럼프 정권이 사드 배치를 서두르는 것도 같은 맥락일 수 있다. 자국에서의 위기를 외부와의 전쟁으로 넘긴 사이코패스 정치인은 히틀러나 조지 부시처럼 흔해 빠졌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 기조를 지난 10년간 이어갔다면 금강산 관광지나 개성 공단 같은 햇볕 영토가 더 넓어져 한반도 전쟁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었을 것이다. 미 군산복합체가 제공하는 천문학적 비용의 무기를 사들일 이유도 그만큼 줄어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만드는 비용으로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명박이 도입한 선령 완화 같은 정책도 없었을 것이고, 메르스나 AI에 대한 초기 대응도 더 완벽히 해내거나, 박근혜 정권 때 폭발적으로 늘어난 다중 이용 시설 화재 사건 앞에서 목숨 내놓고 싸우는 소방관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건 왜 안보가 아니라는 거지?
박근혜(수구 세력 후보)가 문재인(민주 세력 후보)보다 안보관이 투철하다는 인식이야말로 조중동문이 짜 놓은 프레임에 불과한데 그걸 그대로 읊으면서 국민의 뜻인 양 오도하니 열 받을 수밖에. 그리고 이런 선동 프레임을 가져오기 위해 SBS PD는 대선주자와 유권자 사이가 다이렉트로 연결되어 있다는 잘못된 가정을 한 것이다. 대선주자와 유권자 사이를 비틀고, 왜곡하고, 이간질하는 헬조선의 CPU에 해당하는 주류 언론의 역할을 자(체)삭(제)한 것.
기분이 나빴지만 꽃개를 데리고 나갔다. 자정 무렵 밖에 나가 볼일을 보게 해주는 건 오래된 일과.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 그는 내리지 않고 우리와 함께 1층까지 갔다. 신문이 든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신문배달부가 밤늦게 신문을 돌렸다. 엘리베이터 하나를 사용하면서. 다른 엘리베이터가 알아서 올라와주면 좋은데 신문배달부가 사용하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간다"고 인지해 그냥 있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꽃개랑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신문배달부가 한층씩 멈춰서는 엘리베이터를.
꽃개는 노즈워크를 하고 돌아다니다 오줌을 쌌다. 나무에, 물을 줬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7층에 걸린 엘리베이터가 6층에서 멈췄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으니 저런 움직임은, 아까 본 신문배달부가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머지 엘리베이터는 12층에 걸려 꼼짝도 안 했다. 나는 지하로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면 나머지 엘리베이터가 "내려가세요?" 하고 내려올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어쩐 일인지 꿈쩍도 안 했다.
꽃개가 떨기 시작했다. 내가 "화난" 걸 인지한 것이다. 가만히 서서 티도 안 냈는데, 꽃개는 내 감정의 변화를 즉시 알아차렸다. 너한테 화난 거 아니니까 떨지 말라고 하품을 하고 배를 만져줘도 꽃개는 떠는 걸 멈추지 않았다. 6층에 걸린 엘리베이터는 5층에서 멈추고, 다시 4층에서 멈추고 3층에서 멈췄다.
그 사이 젊은 한 남자가 들어와 나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꽃개는 떨면서 "살려달라는 듯" 내 눈치를 봤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예상대로 아까 본 신문 배달하는 남자가 있었다. 꽃개를 데리고 들어갔다. 갇혔다고 느꼈는지 꽃개의 떨림이 심해졌다. 신문배달부가 지하 1층에서 내리자 따라갔다.
가만있어!
소리를 빽 지르자 꽃개는 더 심하게 떨었다. 1층에서 기다리던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꽃개는 낮은 포복으로, 꼬리 뚜껑을 완전히 덮은 채 그 남자에게 갔다. 살려달라는 거다. 나로부터. 남자 눈에는 내가 동물학대자로 보였을 것이다. 나는 꽃개를 안아들었다. 꽃개는 내 품에 안겨서도 와들와들 떨며 그 남자를 바라봤다. 구해달라고.
1인용 레이지 소파에서 TV를 보면 꽃개는 이렇게 올라와 내 곁에서 잠을 청한다. JTBC의 정치부 회의나 손석희의 뉴스룸을 시청하면 꽃개는 쫄아서 꼬리를 닫고 어쩔 줄 모른다. 때로는 밑에서 놀다가도 "이런 염병할" 하고 허공에 찍는 댓글에 펄쩍 뛰어올라 괜찮냐고 핥는다. 꽃개는 내 감정의 변화를 귀신 같이 알아챈다. 부정적으로 변할 때는 괜찮냐고 살피고, 험악해질 때는 자기한테도 불똥이 튈까 바짝 쫀다.
전에는 아이 때문에 정치인 욕을 못했다면 요즘은 꽃개 때문에 분노도 마음대로 못 한다. 개한테 검열당하는 기분, 썩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