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바뀔 거라는 두 번째 착각에 맞서.
인스타그램을 하는 아내가 전한 14차 촛불의 사전집회 일정이 마음에 들었다.
2시까지 법원 앞에 모여 이재용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법부를 규탄한 뒤 강남역까지 행진,
4시나 5시쯤에는 삼성전자 본사 앞에 도착해, 광화문으로 넘어간다.
자연스럽게 버스를 타고 귀가할 수 있는 일정이다.
이재용이 풀려난 그날 새벽 5시쯤 인터넷에 들어갔다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뉴스를 보고
잠을 설쳤던 기억이 새롭다.
당장이라도 법원에 달려가
네가 대체 뭔데 그럴 수 있냐
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들이 행사하는 권력은
뉴턴이 발견한 물리법칙처럼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
뭘 해도 변하지 않을 듯한
거대한 콘크리트 산.
법학 교수들이 법원 앞에 천막을 치고 항의 시위를 시작했다는 뉴스를 보고,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온다는 날에 맞춰 가려했지만 실패했다.
나이를 먹으니 그런 데 가는 것도 큰일처럼 다가온다.
김기춘과 조윤선 구속영장이 신청된 날엔 새벽 3시쯤?
컴퓨터 앞에 앉아 "김기춘 조윤선 구속"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놓고
새로고침을 거듭했다.
지난번처럼 안 당하려고 담당 판사의 이력까지 확인한 뒤였다.
다른 내용 없이 "김기춘 조윤선 구속"이라는 1보가 뜬 뒤에야 겨우
자고 있던 아내한테 소식을 전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의 굴욕을 잊으면 개돼지가 되는 거다.
단단히 벼른 나는 아내와 함께 애견 카페 딩고에 갔다.
날이 풀린다고 했지만 환기를 위해 문을 열어놓은 딩고는 추웠다.
나이를 먹으니 컨디션 조절도 큰일로 다가온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카메라를 챙겼다.
서울 가는 버스에 올랐다.
강남역에서 법원 가는 전철로 환승.
법원, 검찰청이 있는 교대역은 벽보부터 달랐다.
법원은 터무니없이 높은 데 있었다.
민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관이
지하철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사랑의 교회는 엎어지면 코 닿는 데 있고
삼성전자 본사도 2호선 강남역은 물론
신분당선까지 뱃속에 삼키고 있는데.
법의 보호를 받고 싶은 민원인은 알아서 부지런히 걸어오라 이건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엄두도 못 낼 오르막길이었다.
터무니없이 커다란 법원 부지에,
지록위마들은 퇴근한 듯 보이지 않았다.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에 놀란 대학교수들과 법률가들이 농성 중인 천막.
고생을 많이 한 얼굴들이어서 가난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다들 변호사에 대학 교수.
반가운, 국민방송 JTBC.
집회 현장에서 바라본 지록위마 생태 보호구역.
정문으로 가는 도로인데도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에 법원, 왼쪽에 우병우가 팔짱 끼고 처 웃던 검찰청이 "숨어" 있다.
반기문들은 "변질"을 우려하지만.
세월호는, 삼성에도 있었다.
광고 물량의 공세로 보도가 안 될 뿐.
이정표의 볼품없음은 "위장"일까,
현 위치가 그러하다는 "은유"일까.
KBS는 이들을 종북 좌파 빨갱이로 보도할까?
보도하기는 할까?
피켓을 만들어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컴퓨터로 작업해 A4 용지로 출력하면...
귀찮아서 CG 처리하기로 했다.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일을 한다는 게 큰일로 다가온다.
이재용도 구속 못 하는 지록위마들이
박근혜를 탄핵할까?
이들이 흰색 비닐 옷을 입는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표정이 리얼하다.
광화문 집회 때 참 찍고 싶었던 아줌마.
근데 왜 KT 마크를 달고 있지?
두 사람 때문에 엄한 두 사람이 저기 갇혔다.
멀리 헬조선의 관문이 보인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기를 쓰고 막는 지록위마들의 성.
새 나라에선 모든 재판에 배심원제를 도입해
판사들에게 주어진 터무니없는 권력을 박탈해야 한다.
선관위를 독점 중인 지위도 박탈해,
판사들에게 빼앗긴 공정 선거를 돌려받아야 한다.
지록위마들은 박근혜의 부정 선거를 묵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 가지고
탄핵으로 몰고 간 것들이.
SBS 촬영 기자의 점퍼는 멋졌다.
정몽구는 왜...
소음관리가 앞장서고 시위대가 따라갔다.
시위대 뒤에는 분노로 가득 찬 차들이 따라왔다.
왼쪽에도, 분노에 가득 찬 차량 행렬을 볼 수 있다.
시위도 항상 강북 사람들의 몫이어서 눈앞에 펼쳐진 초유의 사태에
이들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사진기자인 양 행렬의 앞에서 촬영했다.
교대역에서 볼일을 보고 나올 때는
멀찌감치 떨어진 노인들이 주고받는
저런 빨갱이 새끼들은 다 죽여야 한다
는 대화를 들어야 했다.
언론에서는 탄핵 찬성과 반대를
동일한 값인 양 나란히 보도한다.
범죄 피해자와 옹호자, 혹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를 등치 시켜
누가 이기나 보자며
싸움 붙이는 보도 행태.
과연, 박근혜를 탄생시킨 괴물들의 논리.
다리 밑으로 진입할 땐 아줌마가 이마를 찧지 않을까 걱정됐다.
건너편에선 경찰이 따라왔다.
강남역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대열에서 이탈해 편의점에서 로또를 샀다.
나이가 들면 이런 일이 큰일로 다가온다.
시위대는 거침없이 진격했다.
물대포를 쏘거나 최루액을 눈에다 뿌리는 경찰은 없었다.
삼성전자 본사 앞의 조형물은
이건희 부자를 위해
먼지처럼 사라진 사람들의 묘비 같았다.
그리고 차벽.
인간벽.
삼성이란 바다에 침몰한 세월호.
시위대가 입은 흰색 비닐 옷은 반도체 노동자의 작업복이었다.
도처에 깔린 죽음.
도처에 깔린 부패.
그것들을 지키는 차벽.
미국 대사관을 앞지르는 타이트함.
정부종합청사 차벽.
광화문 미국 대사관 차벽.
역시 헬조선의 핵심 코어.
중력만큼이나 불가항력적인 이름.
알고 보면 전자제품 파는 회사에 불과한데.
버스에 타자, 렌즈에 김이 서렸다.
대한민국의 2017년 2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