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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CON Feb 28. 2017

정신없는 하와이 여행 05 하와이는 천국이 아니다

호놀룰루 국제공항에서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알리이 타워까지


지난해 괌 여행.

4시간 비행을 마친 뒤 기지개를 켜고 걸으면서 마네킹 같은 몸에 피가 돌까 하는데 입국 심사장에 늘어선 줄이 또 무한 'ㄹ'이었다.

사진이라도 찍을까 해서 카메라를 꺼냈더니 직원이 다가와 '두 낫 쏼라' 했다.

직원이 가리킨 푯말을 보니 촬영 금지라는 사인.

뒤에서는 간격을 모르는 한국인들이 찔러대고, 입국 심사장 직원들은 느긋하게 업무를 봤다.

대기 인원이 많다고 처리 속도가 빨라지거나 심사 직원을 늘리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2시간을 '줄'이라는 뱃속에서 썩어버린 기억은 미국 입국 심사장에 관한 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하와이에는 만만디 문화라는 것도 있다던데.

아는 만큼 즐긴다는 건 인생의 평범한 진리.



아내는 떠나기 보름 전부터 스마트폰을 후벼 팠고, 나도 일주일 전부터 하와이 여행 서적을 봤다.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전 한 시간씩 공부했다.

어느 정도 숙지한 뒤에는 노트북으로 하와이 학습을 계속했다.

브런치에서 '하와이 여행'을 검색해 읽기도 했는데 브런치였는지 네이버 블로그였는지 확실치 않지만 이런 글을 봤다.


호놀룰루 국제공항에 도착해 룰라랄라 내리려는데 입국 심사장이 복잡하니 기내에서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 뒤로 한 시간인가 두 시간을 기내에서 기다렸다는 보고.

지옥이, 저기 있다.



아내는 현지 시각으로 오전이 비행기가 몰리는 때라고 했다.


지옥이야.

나는 절규했다.

도착했다는 생각에 싱글벙글한 사람들이 모르는 지옥이 하나 더 있었다.

시차라는 지옥.

하와이 현지 시각으로 오전 10시는 우리 시각으로 새벽 3시.

입국 심사가 2시간 걸린다고 가정하면 수면이 정점을 찍는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에 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뜻이다.

짐처럼 의자에 묶여 잠도 못 잔 자들이 유령처럼 줄을 서 벌을 받는 거다.

이러려고 관광객이 됐나 하는 자괴감.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가는 건 핀볼 게임에 던져진 구슬이 되는 게 아닐까.



'그들'이 쏜 대로 이리저리 튕기는 신세.

탑승구로 굴러가던 비행기가 '띵' 소리와 함께 멈추자, 승객들이 벌떡 일어나 통로를 채웠다.

'투쟁을 기피'하는 아내도 이때만큼은 탈출을 서두른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아내는 MRI를 받을 때도 살려달라고 빌 정도다.

나는 2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제발 기내에서 대기하라는 방송만 나오지 말아달라고 *레인보우 신에게 부탁했다.

이대로 나가나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입국 심사장이 복잡하니 기내에서 15분만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뭐가 *빌어먹을 15분이야! 등산할 때 지친 사람에게 이제 다 왔으니 조금만 참으라는 입에 발린 소리 아니야?

우리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어느 정도 학습이 된 탓에



그렇게 큰 충격은 아니었다.

몇몇은 영문을 모르고 통로에 계속 서있다 자리로 돌아갔다.

넉넉하게 한 시간은 기다리자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약속한 15분이 지나자 진짜로 우리를 풀어주었다.

아내는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가려했고, 현지인으로 보이는 직원은 카메라를 뽑아 전망대처럼 꾸며진 실내를 찍으려는 내게 '킵 고잉'을 요구했다.

그럴 수 있는 데가 아닌 데서 그런 짓 하다 걸리면 유치장으로 끌려가 미드에서나 보았던 흑형이나 KKK, 머리로 빗자루를 만든 네오나치와 동침하는 수가 있겠지.



저들이 준법을 요구하는 태도엔 절도와 강단이 있다.

'아잉' 하면서 어깨를 떨며 특혜를 요구하는 짓 따위는 절대 안 통할 것 같다.

밖으로 나온 순간 처음으로 마주친 하와이는 뜻밖에 후덥지근했다.

먹구름이 두껍게 깔려있었고 비가 오다 멈춘 듯 습했는데 '예상'보다 더웠다.

책에서는 하와이의 2월 낮 최고 평균 기온이 27도라고 했는데 그보다는 높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수영할 수 있겠는데!

걸어간 끝에 버스가 있었다.

터프한 아메리칸 스타일 버스.

승객을 꽉 채우려는 그들의 요구에 의해 밀려들어가다 보니 중간에 위치한 하차문 앞에 서게 됐다.

이게 웬 떡이야.

버스에서 내린 나는 경보 선수처럼 걸었다.

뛰는 건 좀 민망하니까.

천장이 낮고 취조실 분위기가 나는 입국 심사장에 들어섰다.

오예베이비.

괌에 비하면 줄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문제는 내가 어느 줄에 서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

'ㄹ' 자 형태로 만든 통로를 쭉 따라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잘못 들어서는 날에는 30분 이상 날려버릴지 모른다!

뒤에서는 나만큼이나 미치기 직전인 승객들이 맹추격 중이었다.

경보 선수처럼 걸으면서 우사인 볼트처럼 생각했다.

시신경으로 접수된 정보와 나의 정무감각적 판단, 운빨을 섞어 한 통로에 들어섰다.

아내와 아들이 내 옆에 따라붙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기계 앞에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기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멀티플렉스 극장 같은 데 가면 볼 수 있는 자동발권기 같은 것?

터치 스크린 화면에 떠오른 *지시대로 차근차근 밟아가면 된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사람 입장에선 낯설어!

이런 기기를 감각적으로 잘 다루는 사람도 있지만 나 같이 버벅대는 사람도 있다고!

아내와 나, 아들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놈(혹은 년)이 시키는 대로 따라갔다.

여권 투입 항목에서 막혔는데 직원이 '옷'을 벗기라고 했다.



예쁜 여권 껍데기를 벗겨 알맹이만, 사진이 있는 면으로 펼쳐 넣으라는 뜻.


이해를 돕기 위해 집에 와서 찍은 것이다.


끄응.

옷을 벗긴 녹색 여권을 넣자 무사통과!

지문 입력까지 마친 뒤 녀석이 토해내는 영수증을 받았다.

한 사람씩 똑같은 절차를 밟아 영수증을 받은 뒤 *사람이 업무를 보는 입국 심사대로 갔다.

줄은 거의 없어, 바로 통과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후덕한 인상의 직원이,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롸이터.

유명한 작가냐고 물어 단호히 답했다.

노우~

직원이 웃는 걸 보니 내 유머는 세계화의 반열에

기기에서 받은 사진이 첨부된 영수증을 여기에 제출했다.

아내와 아들은 사진에 에러가 생겼다며 직원 앞에서 다시 찍었다.

수하물 코스를 빠져나와 뒤를 돌아보니 십여 대 가량 설치된 기기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지옥이 아니었지만, 저들도 지옥이 아니란 보장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기기' 줄에 다시 서야 했다.

그들은 사람이 업무를 보는 데로 곧장 갔던 것이다.

우리는 서둘러 택시 승강장에 갔다.

앞선 글에서 여행은 이별이라고 했던가.


여행은 전투다.

눈치코치로 벌이는 스피드 싸움.

호놀룰루 국제공항의 택시 승강장이 어디 있냐고?

'택시'라고 붙인 푯말을 따라가면 된다.

여행 블로거들의 사진 설명에 *목매지 말고, 현지에 있는 푯말만 잘 따라가도 많은 문제가 해결되니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덩치 큰 *미국 백인 택시 기사가 친절하게 짐을 실어주었다.



책에서는 택시가 거의 밴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탄 건 전형적인 세단이었다.

트렁크에 짐이 다 들어간 건 우리나라 택시와 달리 가솔린으로 달려 가스탱크가 없어서였다.



기사가 음악을 듣겠냐고 물어, '노'라고 했다.

아내는 차에서 음악 듣는 걸 싫어했다.

제네시스 따위의 대형 세단이 좋은 오디오 심었다고 자랑하는 광고가 아내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수줍게 카메라를 꺼내 하와이 첫 풍경 사진을 찍는데, 그보다는 기사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영어 실력은 30년 전에 배운 하와유, 파인 땡큐, 앤쥬~ 수준이라 그의 걸걸한 다이얼로그에서 몇몇 단어를 겨우 알아듣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비가 계속 올지 묻자, 백인 남자가 말했다.


오, 그건 걱정하지 마. 오늘은 스톰이 와서 비를 뿌렸지만, 내일은 괜찮아. 선샤인이 너를 바짝 말려줄 거야.

그리고 그는 이런 농담도 했다.


그리고 어차피 비에 젖으나 바다에 젖으나 풀장에 젖으나 마찬가지 아니야? 낄낄낄.

나는 수줍게, 미국 기준으로 만 3세나 4세 수준의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조용한 가운데 대화를 나누는 게 어색해 '뮤직'도 틀어달라고 하고.

그는 작게 틀어놓은 음악을 가리켜 하와이에서 유명한 밴드의 노래라고 했다.

영어 버전도 있고 하와이안 버전도 있다면서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우리의 마음이 열렸다고 생각했는지 지나가면서 보이는 건물을 소개했다.

알라모아나 궁전이라고 했던가.

다운타운이란 말도 들렸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로스가 나와. 모든 여자들이 로스를 사랑해.

흥, 우리 (가족) 여자는 와이켈레를 좋아하거든.

그가 바로 알아들었다.

오, 프리미엄 아울렛! 굳.

이상하게 그 백인 남자와 '대화'가 됐다.

왠지 하와이 영어 사용자하고 전부 대화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은 *나중에 처참히 부서져 뼈도 못 추리게 되지만.

숙소에 도착했다.

그가 짐을 내려줬다.

50달러를 내자 잔돈을 거슬러줬다.

화폐 단위도 어려워 거스름돈이 맞는지 한참 계산했는데 거의 *미터기 값만 받았다.

책에서는 가방 하나당 *1불 정도의 팁을 줘야 한다고 했으니 3달러는 더 받아도 됐는데 백인 남자는 그 값을 갖지 않은 듯 보였다.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메인 로비는 이국적인 풍경으로 넘쳤다.

괌에서 보지 못한 외국이 여기 있었다.

백인들.

괌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구분 안 되는 아시아인들밖에 없던데!

마침내 외국 한복판에 닻을 내린 느낌이었다.

아내는 힐튼 *아너스 클럽 줄에 섰다.

매니저가 다가와 예약 타워를 보더니 알리이 타워는 거기 1층 로비에서 하면 된다고 안내해줬다.

우리는 짐을 끌고 알리이 타워로 갔다.

접수원은 안경을 낀 백인 남성.

아내가 직원과 영어 배틀을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열심히 알아듣는 척했다.

얼리 체크는 방이 비지 않아 안 된다고 했고, 방이 비면 문자를 주겠다며 셀 넘버를 물었다.

나는 아내에게 어차피 여기서 기다릴 게 아니라면 오후 3시까지는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문자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문제를 넘기자 '계산'이 남았다.

신용카드로 할 건지, 현찰로 할 건지 물어 우리는 현찰로 내겠다고 했다.

아내는 힐튼 아너스 클럽으로부터 받은 메일을 프린트해왔다.

1846달러였던가.

우리는 1900달러를 지불했다.

그는 확인했고 영수증을 건넸다.

영수증에 1900달러가 지불됐다는 내역이 기록됐다.

그는 절차가 끝났으니 이따가 보자는 분위기였다.

나는 아내에게 '거스름돈'을 왜 안 주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영어학원에 다니는 아들까지 포함해 우리 중 누구도 '거스름돈'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는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우리를 데리고 메인 로비로 갔다.

메인 데스크 말고 임시로 갖다 놓은 듯한 책상에 '한국어 통역'이 있었다.

통역이 설명해준 바에 의하면 백인 남성이 책정한 호텔 비용은 1900달러가 넘는다는 거였다.

그의 입장에선 잔돈을 거슬러줄 필요가 없었던 것.

아내는 당황해 서류를 뒤졌다.

이럴 땐 서류가 초원에 흩어진 얼룩말처럼 잘 찾아지지 않는다.

겨우 찾아낸 아내가 힐튼 아너스 클럽이 보낸 계산서를 들이밀었다.

백인 남자는 리조트 피가 포함돼서 그렇다고 설명했지만, 아내는 리조트 피가 포함된 총가격이라고 주장했다.

백인 남자가 확인해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여행이 전투라고 했던가?


여행은 눈뜨고 코 베기다.

제주도 신라호텔에서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잘 놀고 퇴장하는 우리를 붙든 직원이, 중간에 방 변경이 있었는데 '오션뷰'가 적용돼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는 거였다.

방 바꿔줄 때 그런 말 해줬으면 안 바꾸고 그냥 놀았잖아!

그런 건가?

순진한 소비자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덫에, 걸리고 만 건가?

돌아온 백인 남자는 아내가 맞다고 인정했다.

우리는 거스름돈을 건네받았다.

힐튼에서 당한 의문의 1패.

영어 배틀은 계속됐다.

메인 로비 좌측 끝에 벨 데스크가 있었다.

거기다 짐을 *맡기는데 노트북은 안 맡아준다면서 로비를 돌아가면 시크릿 한 게 있는데 거기다 맡기면 된다고 했다.

메인 로비의 우측 끝에 귀중품 보관소가 있다.

무료로 이용 가능하기 때문에 직원에게 신청하면 은행 금고 같은 곳으로 데려가 은행 금고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는 철제 박스를 꺼내 '담으라'고 한다.

내 15.5인치 노트북이 딱 맞게 들어갔다.

직원이 내민 서류에 *영문 주소와 영문 이름, 전화번호를 적으면 접수 끝.

여기서도 확인서를 끊어주는데 나중에 그걸 보여주면 돌려받는 식이다.

해내고 나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거길 찾는 데도 한참 걸렸다.

'귀중품 보관소'라는 개념이 아닌 다른 (시크릿 한) 개념의 장소를 찾아 헤맨 것이다.

시차 탓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이보다는 영어를 잘할 수 있었다.

많이 지친 상황이었지만 이런 전략도 있다.

저녁때까지 버텨야 그나마 시차 적응을 빨리 할 수 있다.

나는 거꾸로 힘이 솟는 상황이었다.

하와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2월 낮 평균 기온이 27도라고 해서 수영을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 후덥지근한 날씨도 마음에 들고.



낯설지만 안전하게 느껴지는 거리, 다양한 인종, 하루에 세 번씩 치우던 꽃개 똥도 없고, 염병할 최순실과 오리발 박근혜 탄핵 쇼를 안 봐도 되는 건 덤이고, 앞으로 '돈 쓸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나는 몸과 마음이 점점 더 가벼워져 마라톤 시합에라도 나갈 컨디션이 되고 말았다.

'하루'를 아끼기 위해 아들 수영복을 사러 알라 모아나 쇼핑센터에 갔다.

뛰어갈 수도 있었지만 아내와 아들을 위해 '더 버스'를 탔다.


이건 '더 버스'가 아니다. 더 버스는 훨씬 '버스'답게 생겼다.


와이키키 도심엔 일본 관광객을 위한 버스가 자주 출몰한다.



이 책은 카일루아 비치 파크에서 신나게 논 뒤 허기를 채우러 간 인근 테디스 버거 매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정보지처럼 무료로 배포되는데 당신이 일본어를 할 줄 안다면 쇼핑의 *천국스러움을 맛볼 수 있다.



어디서 무얼 파는지 할인 쿠폰과 함께 상세히 나와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나는 하와이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일본인 취급을 많이 받았다.

중국인 취급도 두어 번 받고.

한국인 취급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버스는 안 오고, 책과 여행 블로거와 구글맵이 알려주지 않은 번호의 버스가 왔는데 내가 알라 모아나 쇼핑센터에 가냐고 *묻자 간다고 해서 탔다.



더 버스 티켓은 이렇게 생겼고 2시간 이내에 환승이 가능하다.

찢어진 종이의 제일 위에 적힌 시간 안에 타기만 하면 한 번은 공짜로 탈 수 있다.

책에서는 버스에 타면서 기사한테 '트랜스퍼 티켓 플리즈'라고 말해야 준다고 했지만 어떤 기사들은 말을 안 해도 그냥 줬고 '트랜스퍼'까지만 말하면 대개 알아서 줬다.

헬조선처럼 영어 못 한다고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일 없으니 쫄지 말자.

'더 버스'를 이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진지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알라 모아나 쇼핑센터 입구가, 별 거 없다.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버스와 트롤리 핑크 라인이 이곳을 종점으로 삼았다.



아주 오래전 일산에서 이런 몰을 경험한 적 있다.

하늘이 보이도록 개방된 통로 주변으로 3층 정도의 낮은 건물이 '마을'처럼 들어서 사람들이 물처럼 떠다니며 쇼핑을 하는 곳.

공연이 있었기 때문인지 다양한 장애인이 있었다.

팔이 없는 사람, 다리가 없는 사람, 거동이 불편한 사람, 부들부들 떨면서 걷는 사람.

우리나라로 치면 백화점에 갔는데 팔 하나가 없는 사람이 휠체어를 탄 친구와 물건을 고르는 광경이었다.

한국에서 수년 동안 볼 장애인을 알라모아나 쇼핑센터를 방문한 잠깐 동안 다 본 것 같았다.

아들이 먼저 무너졌다.

수영복을 한 벌 샀는데 지치니까 싫은 거다.

카페에 들어가 쉬려는데 '카페'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마침 있던 호놀룰루 커피는 양로원 같아 내가 싫었다.

나이 많은 백인 남녀가 테이블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손잡고 돌아다니는,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그렇게 많았다.

광장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는데 그냥 있기가 그래서, 근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 왔더니 이번엔 아내가 무너졌다.

공연 소리가 너무 커 싫다고.



나는 뭉친 다리 근육을 풀면서 사람을 구경했다.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스타일도 제각각이고 노출 범위도 스스로 정했다.

울퉁불퉁한 몸의 곡선을 드러내도 그걸 *보는 사람이 없었다.

헤어스타일도 천차만별이어서 모든 사람을 정지시키고 두발 검사를 해도 같은 형태의 두 사람을 찾아내기 힘들 것 같았다.

내 앞을 거니는 사람들이, 무지개처럼 오색찬란했다.

이런 게 서양인들이 말하는 개인주의였던가.

장애인도 '개인주의'였을까?

다리가 없는 사람이나 팔이 없는 사람,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이들에게는 그저 한 사람의 '개인'에 불과했던 걸까.

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개인이란 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공산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설명이 와 닿지 않는 사람은 도로에 넘치는 차량 행렬을 떠올리면 된다.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무채색 (흰색, 은색, 검은색) 차량들.

미치도록 많은 현대기아.

와이키키 도심을 지나는 차들은 같은 차, 같은 색상의 차가 두 대 이상 붙어가는 게 오히려 신기했다.

그리고 하와이는



새의 천국이다.



잘 도망가지도 않는다.



이 녀석은 쇼핑을 마치고 돌아온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조경 시설에서 만났다.

어디서든 자유롭게 활보하는 조류와 만나게 된다.

앵그리 버드랑 똑같이 생긴 녀석들이 도로로 쪼르륵 나와 차가 덮치기 전까지 뭔가를 쪼아댄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원기를 회복한 아들을 데리고 중단한 쇼핑을 이어갔다.



입구에 설치된 보드가 하와이 냄새를 물씬 풍기는



로컬 모션과



립 컬에서 아들 수영복 두 벌과 내 수영복 한 벌, 내가 신을 쪼리 한 켤레를 산 뒤



풋 로커에서 아들 슬리퍼를 하나 샀다.

물놀이 준비를 마친 우리는 마카이 푸드 코트에 갔다.



호돌이가 전두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야미에서



바비큐를 사 먹고...

최고였다.

가격은 16불에서 *18불 정도?

옥수수도 맛있고 큼직하게 무친 시금치도 맛있었다.



세계적인 푸드 체인점이라는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탕수육과 볶음밥?을 시켜먹었다.

맛은 그럭저럭 이었다.

와, 끝내주는데 하는 맛도 아니지만, 나쁘다고 투덜거릴 맛도 아니었다.



음료수가 빅사이즈, 그런데 이게 기본형이다.

일회용 *도시락 용기에 담긴 음식이 9.1불, 소다가 2불, 세금이 0.52불 해서 합계가 11.62불.

한국에서 먹던 맛과 살짝 달랐지만 입에 안 맞는 외국 음식을 먹는다는 느낌도 없었다.

이런 식이면 음식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길 건너 정류장에서 '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알라모아나 비치 파크의 나무를 찍었다.



나무들이 하나같이 웅장했다.

우와, 감탄사를 남발하며 찍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게, 오아후 섬에서 본 나무들이 대개 이렇게 웅장했다.

우리나라의 오래되었다는 나무들은 댈 바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됐는데 하와이를 습격한 일본인은 진주만에만 폭탄을 퍼부은 모양이다.

거대한 자연이 잘 보존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여기에 사람이 살았다.

노숙자.

자본주의와의 게임에 져서, 핀볼 바깥으로 튕겨 나온 사람.

하와이는 천국이 아니다.



버스가 한 대 왔는데 안 멈추고 그냥 달렸다.

백인이 타겠다고 손을 흔들었는데도 그랬다.

빈정 상해 그냥 걸어갔다.



부드러운 갈색 톤의 건물이 많았다.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메인 로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경.

체크인까지 1시간 남았지만 내가 대표로 가서 되냐고 물었다.

우리 달러를 베어가려 했던 안경 쓴 백인 남자가 키를 건네며 오케이, 올라가라고 했다. 



마침내 당도한 숙소, 넓지는 않다.



체육대회를 열 게 아니라면 불편할 정도로 좁지도 않다.



이 투명한 플라스틱 봉은 아무래도 커튼을 우아하게 열고 닫으라고 달아놓은 거겠지?



그리고 문제의 파샬 오션뷰.

흥, 빌딩 뷰가 아니고?

보이긴 하네, 저기 멀리 알라모아나 파크 비치에 정박 중인 요트들이.



택시 기사가 알리이 타워를 스패샬 타워라고 해서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그랬다.

가장 최근에 레노베이션을 해서 다른 타워에 비해 시설이 좋은 편이고, 우리 쪽은 파샬 오션뷰로 전망이 별로지만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객실도 있었다.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레인보우 타워가 뷰는 제일 좋을 것이고, 나머지 타워들은 두 타워의 뒤쪽에 위치해 상대적으로 뷰가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아래를 보면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가 보유한 5개의 수영장 중 가장 크다는 슈퍼 풀이 있다.



그리고 5박을 하는 내내 돌아오면 저곳에 놓여있던 꽃.

저 꽃의 의미는, 우리에게 있는 것 같지 않다.

저 꽃을 집어 들어 향기를 맡으며 감동할 투숙객도 어딘가엔 있겠지만.

그보다는 객실을 청소하고 준비한 이들이 마침표처럼 저 꽃을 올려놓을 때의 마음가짐이 떠오른다.

별 거 아닌 것으로부터 전해지는 타인의 친절함이.

저거 안 뒀다고 침을 뱉으며 다시는 힐튼 쪽으로 오줌도 안 누겠다고 할 투숙객은 없을 것 같은데.



아들은 뻗고



나는 벗어놓은 옷에서 꽃개 털을 발견했다.

알로하, 꽃개.







   





 


*레인보우 신에게 부탁했다는 건 문학적 수사다. 그냥 '생각'만 했다.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았다. 당신도 8시간 가까이 비행기에 갇혀 있으면 만사가 귀찮아져 누군가에게 기도할 힘도 없게 될 것이다.

*빌어먹을 ; 이 역시 문학적 수사다. 그렇게 분개할 힘도 없었다. 

*기계 사진이 없는 이유는 괌에서 촬영 제지를 당한 경험이 있어, 이곳에서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시 ; 한글도 지원된다. 쫄지 말자.

*사람 ; 괌에서는 사람이 모두 처리한 일을, 하와이에서는 발권기 형식의 기기가 절반 이상 처리하는 구조로 보였다.

*목매지 말고 ; 부정확한 정보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정보가 조금만 엇나가도 외국에서는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 쉽다.

*미국 백인이라는 표현은 유럽 백인과 구별하기 위해서다.

*미터기 값 ; 제주도에서 실제로 겪은 일이다. 나한테는 첫 번째 제주도 여행이었는데 숙소가 신라호텔이어서 인 리조트를 생각하고 렌터카를 빌리지 않았다. 주상절리에서 인근 맛집을 검색해 택시를 타려는데 택시기사들이 그 가까운 데를 뭐 하러 택시 타고 가냐고 비웃었다. 길을 몰라서 그런다고 하자 태워주더니 거스름돈도 안 주고 가버렸다. 미터기 값보다 500원을 더 챙겨갔다.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제주도 택시를 이용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잘 지켜가는 중이다.

*나중에?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택시 기사가 스패샬 타워라고 치켜세워준 알리이 타워 로비에서 '거스름돈'이란 말을 생각해내지 못해 식은땀을 흘렸으니. 

*1불 ; 어떤 경우엔 달러, 어떤 경우엔 불이라는 표현이 입에 붙는다.

*아너스는 이번 여행을 위해 가입한 멤버십이다.

*유사한 일 ; 제주 신라호텔 냉장고에 있는 생수를 아무 생각 없이 꺼내 마셨는데 8천 원짜리였다. 바로 그 옆에 '무료'라는 라벨이 붙은 생수가, 거의 비슷하게 생긴 용기에 담겨 있었다. 간발의 차로 8천 원을 마셔버린 것이다!

*맡기는데 ; 룸 넘버를 묻고 그걸 적은 확인서를 끊어주는 데 나중에 그걸 보여주면 짐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따라서 그들이 건네준 확인서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

*영문 주소 ; 이걸 써야 할 때가 몇 번 있었다. 아내가 네이버에서 알아내 캡처해왔다.

*천국스러움 ; 쇼핑의 천국이란 말은, 자본가 입장에서나 맞는 말이지, 소비자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다. 비싼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와이켈레 프리미엄 아울렛에 가면 비싼 물건을 싸게 사는 것 같지만 시즌 오프 상품이란 점을 감안하면 제값 주고 사는 게 맞다. 한국인이 괌이나 하와이에 가서 어떤 물건을 구입하며 '싸다'고 느끼는 건 현지 가격이 싼 게 아니라 헬조선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발생하는 착시 현상이다. 내 글을 잘 따라오면 월마트에서 찍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가격표를 보게 될 것이다. 비싼 물건을 제값 주고 사는 데가 어떻게 천국? 원하는 걸 거저 가질 수는 있어야 '천국'일 수 있는 거 아닐까? "쇼핑의 천국"이란 말은 곧 '부자들의 천국'이란 뜻이다. 수백 달러 짜리 옷과 가방, 수천 달러 짜리 시계 따위를 웃으며 지를 수 있는 사람한테나 즐거운 데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성경의 메시지가 자본주의의 천국인 미국에서 이렇게 변태된다.

*묻자 ; 완벽한 영어 문장을 만들어 물은 게 아니라 '알라 모아나 쇼핑센터?'라고 묻자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찾기 ; 수영복 매장도 찾을 엄두가 안 나, 안내 직원에게 물어 지도를 받고 찾아갔다. 지도에 체크된 가게를 찾아가는데도 맞는지 확신이 안 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보는 ; 존재를 규정하고 단정하고 단죄하는 폭력적 시선. 그것은 곧 개인성의 부정이다.

*18불 정도라고 모호하게 표기한 건 영수증을 보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모은다고 모았는데 빠진 영수증이 꽤 됐다.

*도시락 용기에 담긴 음식은 먹다가 남기면 싸갈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도 남은 음식을 싸가서 다음 날 아침으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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