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렌터카 빌릴 때 필요한 것들.
*여권.
운전면허증. 그리고
국제운전면허증.
우리나라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한 사람이라고 번역한 정부 발행 문서. 따라서 이 종이 쪼가리는 운전면허증으로 쓸 수 없다. 여권과 운전면허증과 함께 한 세트로 써야 한다. 유효기간은 1년.
재발급을 위해 경찰서를 찾았다. 운전면허시험장에서도 발급해 준다. 민원 창구의 경찰관은 친절했다. 그는 누가 봐도 본인이란 걸 알 수 있는 사진을 내밀었다.(집에서 아들이 킥킥대고 웃던)
"안 돼요."
"왜요?"
"운전면허증에 있는 거랑 같은 사진이잖아요."
10년 전에 발급받은 증이다. 국제운전면허증 사진은 6개월 이내에 찍은 것이어야 한다. 그는 여권을 만들 때 찍은 사진을 내밀었다.
"안 돼요."
"왜요?"
경찰관은 여권을 달라고 하더니 '같은' 사진이라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는 침착하게 작년의 기억을 떠올렸다.
6개월 이내에 찍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알려준 글이 없어 여권 사진을 들고 갔다 벽에 부딪쳐 가루가 됐던... 분개한 그를 본 직원은 정 그러면 각서를 쓰라고 했다. 하와이 현지에서 체포돼 유치장에 갇혀도 정부 탓을 않겠다는 각서. 썼고 잘 다녀왔다.
"각서 쓸게요."
"안 돼요."
(젠장!)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그는 작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작년 여행은 너무 많은 걸 하려 했다. 그래서 너무 많은 걸 놓쳤다. 욕심을 비워 빈칸의 폭을 늘린다. 이건 새 각오를 테스트하기 좋은 출발점이었다.
"아잉, 어떻게 안 될까요?"
경찰관은 탕집 앞에 있으니 찍어오라고 했다.
만 원에 여섯 장이 나오는 즉석사진기.
사진을 붙이는 이유는 위조를 막기 위해서다. 신분증을 소지한 사람이 사진 속 인물과 같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된다. 여권 사진에 강화된 눈썹과 귀를 보이도록 한 조건도 더 잘 알아보기 위함일 것이다. 얼굴이 크게 변하지 않은 사람은 고등학생 때 사진을 써도 무방할 것이다. 같은 사람이란 것만 알아볼 수만 있다면.
6개월 이내라는 조건이 '위조'를 막을까? 국제운전면허증을 위조하기로 작정한 자들이 6개월 이내 찍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조건에 좌절할까? 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범죄를 목적으로 국제운전면허증을 위조할까?
경찰관이 요구한 수수료는 8,500원(2018년 1월 기준)이었다.
대한민국이 묻는다 15,300원.
개의 사생활 16,000원.
여자, 내밀한 몸의 정체 19,800원.
세월호, 그날의 기록 22,500원.
1년 뒤에는 쓸 수도 없는 종이 쪼가리의 가격이 그렇다.
신자유주의에 심취해 본인이 자본의 개가 된 줄도 모르는 경제전문가들은 뻑하면 정부의 사이즈를 줄이라고 요구하는데 개인의 사이즈를 마이크로 화하는 큰 정부란 이런 것이다. 운전면허증이 있다는 사실 하나 증명하는데 본인 부담 비용이 18,500원이나 되는 사회.
다섯 장의 사진은 버려질 것이다.
개인한테 폭력적으로 비용을 전가하는 정부가 정작 자신이 잘못을 저지를 땐 어떨까?
미사일이 날아온다고 속여 휴가 중이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하와이 정부가 땡전 한 푼이라도 보상했을까?
하와이에서 렌터카를 빌릴 땐 신용카드도 필요하다. 결제 수단이 아니라 신원 확인 수단이다. 여권의 영문 이름과 카드 표면에 삽입된 영문 이름이 일치해야 한다.
해외에서 결제 가능한 카드여야 한다.
아내가 구시렁대는 그에게 물었다.
"작년 여행기는 언제 끝낼 거야?"
*배경에 사용된 도록은 데이비드 라샤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