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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CON Mar 04. 2018

꽃개 네트워크 43 웰시코기가 설사를 멈출 때

마침내 똥을 줍게 되자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안도했다.

열흘

간의 하와이 여행을 마치고 오후 4시쯤 비행기가 떨어졌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입국 수속을 마친 우리는 초조하게 여행 가방을 기다렸다. 30분쯤 기다리자 올림픽 기간 동안 수하물 검사를 꼼꼼히 하니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 간단한 사실을 안내해주는 직원이나 화면이 없었다. 가방이 빙글빙글 도는 트랙 위에 거대한 텔레비전을 설치해놓고도 그랬다. 1시간을 기다려 가방을 챙긴 우리는 5시 40분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우리는 짐을 풀기도 전에 서둘러 차키를 챙겨 주차장으로 갔다.

업체에서 하루에 세 번 카톡을 해줬기 때문에 꽃개가 잘 지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디 집만 하겠는가. 녀석의 상실감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10시간 비행을 하고 인천공항에서 1시간을 시달렸지만 1초도 늦출 수 없었다. 지지부진한 퇴근길 행렬을 뚫고 호텔링 업체 앞마당에 주차했다. 동영상은 아들이 찍기로 했다.

아들과 나는 '운다'에, 아내는 '안 운다'에 걸었다.



꽃개는 분하다는 듯 돌아가면서 앞발 차기를 한 뒤 낑낑거리며 울었다.



돌아온

첫날에는 이상 징후를 느끼지 못했다. 다음 날부터 설사를 했다. 휴지로 집을 수조차 없는 완벽에 가까운 물똥이었다.

아내는 기쁜 마음에 먹인 '딸기'가 원인인지 걱정했다. 나는 스트레스가 원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스트레스는 부정적인 일에 국한될 것 같지만 결혼이나 새집으로 이사, 여행 같은 것도 스트레스일 수 있다. 모든 걸 체념하고 수용소 생활에 적응한 꽃개 입장에선 다시 만난 가족이 웬수 같을 지도.

관련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뒤진 아내는 하루 굶겨보라는 지침을 따랐다. 동네 동물병원 의사도 꽤 터프한 편이어서 그 정도로 취급할 것 같았다. 개 공원에서 놀다 패드가 찢어져 갔을 때도 소독약 바르면 된다고 돌려보냈으니까.(집에 있는 빨간 약 바르면 된다면서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았다)

하루쯤 굶기니 배가 쏙 들어갔다. 그래도 밥 달라고 개기지 않았다. 그러니 더 짠했다.(심리전을 편 걸까?) 물똥을 싸는 걸 제외하면 아주 멀쩡해 보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녀석이 아프면 우리는 알아차리는 편이다. 워낙 당당한 녀석이라 기가 꺾인 게 보일 정도니까. 아프지는 않은데 물똥을 싸서 의아했던 것이다.

사흘을 노심초사했던 것 같다. 어제저녁 마침내 꽃개는 쥐똥 크기에 불과했지만 휴지로 집을 만한 똥을 쌌다. 컨디션이 회복된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가설이 떠올랐다.

녀석을 업체에 맡길 때 편히 자라고 이동식 개집을 함께 맡겼는데 더러워져 닦는다고 욕실에 빼놓은 그날부터 싸기 시작해 잘 말려 원래 자리에 갖다 놓은 날 설사를 멈춘 것이다. 깨끗하게 청소된 캐리어를 갖다 놓자마자 녀석은 머리를 처박고 한숨 푹 잤다.



녀석은 혹시 캐리어가 치워진 게 자신이 치워질 거라고 받아들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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