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차, 2018년 2월 26일.
하는 건 여행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이다. 지난 여행은 미진한 구석이 있었지만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은 그런 것도 없었다. 하와이 오아후 섬을 충분히 누린 느낌이다. 무엇보다 나는 꽃개가 걱정됐다. 가족과 떨어져 낯선 환경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니까.
불 바위(Fire Rock)를 한 병 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아내도 그랬지만 나도 잠을 설쳤다. 날씨도 돌변해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서너 번은 깼던 것 같다. 재봉질을 하는 것처럼 시계를 볼 때마다 제자리였다.
작년 여행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우리는 하와이를 ‘느긋’한 세계로 이해했지만 사실과 먼 인식이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도 뼈저리게 느꼈지만 느긋한 ‘감각’이란 건 대개 관광객이 지닌 값이다. 현지인들은 느긋하지 않다. 그들도 우리랑 똑같이 빡빡한 출퇴근 시간을 경험한다. 도로는 충분히 깔려있지만 도시의 특성상 한꺼번에 몰려드는 차량이 만들어내는 ‘번잡함’이란 양식은 우리네 도시랑 별반 다르지 않다.
노스 쇼어에서 출발한 우리는 호놀룰루로 출근하는 차량에 흡수돼 발을 동동 굴렀는데 렌터카 사무실에 들러 반납까지 해야 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내린 공항에서 티켓팅을 한 뒤 출국 심사에 줄을 섰는데 지옥이 거기 있었다. 한없이 늘어진 줄,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모르는 공항직원의 안내. 까딱하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공포심에 직면한 아내가 시큐리티 조끼를 입은 공항 직원을 붙들고 하소연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겨우 출국 심사를 마쳤는데 끝이 아니었다. 진에어를 타는 데가 너무 멀었다. 우리 가족은 꼬리에 불이 붙은 개처럼 뛰었다. 이번 여행 일정엔 그때 당한 일의 교훈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렌터카는 없다. 호텔은 힐튼 와이키키 비치.
새벽 6시에 일어나 체크아웃을 한 뒤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갈 예정이다.
혹시 늦잠이라도 자서 비행기를 놓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한 삽 더 파보면 이런 작용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무의식이 늦잠을 연출해 비행기를 놓치게 하지는 않을까 불안해진 의식이 자꾸만 흔들어 깨운 ― .
침대 옆 테이블에 탁상시계가 있었지만 믿을 수 없어 갤럭시탭 시계 기능에 있는 알람을 설정했다.
스마트폰과 탭 사이에서 갈등한다면 갤럭시탭 S3 리뷰는 여기
손목시계는 하와이 시각으로 맞춰놨지만
갤럭시탭은 한국 시각을 그대로 둬 현지 시각으로 ‘6시’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하마터면 엉뚱한 시간으로 세팅할 뻔했다. 음악을 고르고 음량을 체크한 뒤 2분 뒤로 설정해 테스트까지 해봤다.
새벽 6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내 의식은 깨어있었다.
아내는 코트야드(정식 명칭은 코트야드 바이 매리엇 오아후 노스 쇼어)에 220V를 110V로 바꿔 껴주는 돼지코 하나를 놓고 왔다.
지난 여행 때는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에다 이태리타월을 놓고 왔고.
힐튼 와이키키 비치 2206호를 떠날 때는 ‘아쉬움’을 빼면 아무것도 놓고 가지 않았다.
방 키를 교환해준 바 있는 덩치 큰 남자 직원이 체크아웃을 해줬다. 체크인 때 숙박비를 다 지불했기 때문에 따로 처리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걸렸다. 직원도 의식이 됐는지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머니백. 돌려줄 돈이 있다고 했다.
이번 하와이 여행의 3대 미스터리 중 하나인데 우리는 계산이 잘못됐으니 돈을 돌려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22달러 정도를 돌려받았는데 명세표를 봐도 돌려받은 이유를 알 수 있는 항목이 없었다. 추정키로는 세금 관련해 1% 정도를 돌려받은 게 아닌가 싶다. 아내가 호텔을 예약한 뒤로 주정부가 숙박 세금을 1%인가 올렸다는 안내문을 받은 적이 있다.
체크인을 해준 직원이 일을 잘못 처리했다는 건데. 그녀는 방을 열게 하고 수영장 문을 열게 하는 카드 키도 이상하게 처리해 한 장만 되고 나머지 두 장은 안 되는, 먹통인 카드를 주기도 했다.
조삼모사 효과는 탁월했다.
정당한 우리 몫이었지만 보너스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로비 옆 승하차장에서 짐과 차를 처리(발렛 파킹)해주는 직원에게 택시를 부탁하자 금방 도착했다.
작은 키에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는 베트남 사람이었다. 벤이었는데 아내와 아들은 안전벨트를 매지도 못했다. 버클에 문제가 있어서.
그가 일본 말을 사용해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고 확인해줬다. 와이키키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릴 때 어디서 왔냐고 물어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자 자기 딸이 코리아에 있다며 뭔가를 물었다. 우리는 알아듣지 못했는데 그는 집요하게 같은 걸 물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동족을 학살한 원수의 나라에서 택시를 모는 아저씨의 ‘말’을 알아들으려 노력했다. 내 귀에는 ‘에이폴’이라고 들렸는데 아들과 아내는 그게 ‘에이프릴’을 뜻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장담하지만 영어보다 베트남 영어가 훨씬 더 어렵다.
셉템버 때 딸을 보러 한국에 다녀간 적이 있는데 얼어 디질 뻔했다며 4월 날씨는 어떠냐고 물은 것이다. 아내와 내가 이구동성으로 답해줬다.
웜. 괜찮다고, 따뜻하다고. 미세먼지로 공기가 나쁠 수도 있다는 말은 어려워서 생략했다. 시집 간 딸이 잘 가르쳐주겠지.
도로가 마비되는 걸 보면서(새벽 6시에 일어나 나왔는데도!) 내 의식은 자동으로 베트남 전쟁과 한국으로 국제결혼을 해 들어온 여성이 당하게 되는 온갖 종류의 학대를 생각했다. 때로는 이러한 조건반사적 반응 때문에 뜻 모를 죄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비닐처럼 얇고 투명하지만 피부에 들러붙는 순간 존재감이 확실한 죄의식. 거미줄처럼 하찮게 달라붙는 이것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우리는 ‘괜찮다’는 카드를 꺼내 든다.
베트남 며느리를 갈구는 건 일부 남성의 문제겠지. 우리가 미국의 똥개 노릇을 하느라 군대를 보내 베트남 양민을 학살한 것도 일부 군인의 문제였을 거야. 아저씨도 살아남았잖아? 딸도 살아남을 거야. 작위적으로 뒤엉킨 생각이 침묵을 타고 흘러나올 동안 아저씨는 지지직거리는 무전기(?)로 홍홍거리는 베트남 말을 쓰는 동료 기사들과 정보를 주고받았다.
아저씨는 47달러를 받았다. 짐 하나당 1달러씩 받게 되어있는 팁은 안 받고 미터기에 찍힌 만큼만 받았다. 박항서 감독 만세.
우리는 진에어가 티켓팅을 하는 구역인 로비 6으로 들어갔다. 7시 전이었지만 한국인들은 벌써 줄을 서고 있었다. 예닐곱 팀이 앞에 있었으니 우리도 제법 빨리 왔다. 줄을 선 사람은 한국인들밖에 없었다. 경찰 복장을 한 관계자들이 스타벅스에서 이런 아침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짐이 제일 적었다. 앞뒤로 포진한 그들은 이민이라도 갈 기세였다. 진에어 직원이 다가와 23킬로그램이 넘는 수하물은 추가 요금이 붙으니까(그때 가서 따지지 말고) 미리 정리하라고 알렸다.
저쪽으로 가면 무게 재는 데가 있으니 확인하라고. 나도 제일 꽉꽉 눌러 담은 천(커버 소재가 천이다) 가방을 질질 끌고 무게를 재러 갔다. 과연 텅 빈 공간에 설치된 저울이 보였다.
전자저울에 가방을 올리니 단위가 lb로 나왔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파운드 단위라고. kg로 바꾸는 단추가 없나 확인하는데 일본어로 몇 파운드까지는 23kg 이하라 OK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가방 무게는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확실히 해두기 위해 몸무게를 아는 나를 올려봤다. 파운드 단위에 찍힌 숫자를 환산해보니 대충 맞는 것 같았다. 오케이.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코리아 타임의 숙명이었다. 선착순으로 좋은 자리에 앉게 된다. 고지를 점령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지난 여행 때 호놀룰루 공항을 들개처럼 질주한 우리는 매의 눈으로 상황을 점검했다. 모든 게 뜻대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아들이 속이 불편하다고 했지만 그것도 곧 제압됐다.
앞뒤로 움직임이 감지됐다. 연인 단위의 여행객은 존재조차 않는다. 가족 단위의 움직임, 작은 애들이 못 견뎌 상체와 하체를 꽈배기처럼 꼬기 시작하면 그것을 무마하려는 어른들의 액션이 가미된다. 파도처럼 출렁댄다. 줄이 흩어졌다 오그라들면서 뒤를 쿡 찌르기도 한다. 코리아 웨이브. 여기에 속한 자체가 피곤한 일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집단)상승하면서 파도는 더 거칠어진다.
알로하 복장을 한 현지인 직원은 친절했다. 앞이 없는 줄은 다 나갔다고 해 뒤가 없는 30열을 요청했다. 받아들여졌다. 아내와 농구 선수처럼 주먹을 부딪쳤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알로하셔츠에서 코리아 유니폼으로.
지난 여행 때 놓친 호놀룰루 공항 면세점은 밋밋했다. 호텔처럼 매끈하게 꾸며놓은 인천공항 면세점에 비하면 여기는 그냥 일반 마켓 같았다. 이런 분위기가 옳다. 면세는 그냥 세금이 없다는 의미다. 백화점 1층처럼 화려할 필요가 없다. 그런 데 뒀다고 해서 없는 물건의 가치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그렇게 꾸며놓는 데 드는 비용이 면세품 가격에 붙는다. 면세로 싸게 사는 의미가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커피 한 잔을 하고 싶은데 스타벅스만 보였다.
잡지와 음료를 비롯한 잡화를 파는 편의점 같은 데도 냉장고 안에 진열된 커피는 스타벅스 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과점도 아니고 100% 독점이다. 우리나라 치킨 집만큼 흔한 스타벅스는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한 듯 보였다. 전 세계 사람들 목구멍에 스타벅스를 들이붓게 하겠다?
불매 목록에 올랐지만 대안이 없었다.
안 사 먹고 잘 버텼는데 잠을 설쳐 각성 효과가 필요했다. 커다란 유리병 스타벅스를 하나 사서 아내가 지불하는데 점원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내가 5불을 1불로 착각해 값을 치른 것이다. 점원은 뒤늦게 가게를 빠져나가는 아내에게 3불을 돌려줬다. 마지막까지 흔들렸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웃음’을 지었을 때 바로 지적했으면 됐는데 한 타임 늦췄으니까. 미국인들은 계산대에서 값을 치르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 오해가 없도록 확실히 한다. 한 장씩 펼쳐놓으면서 주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염병할 스타벅스를 마시며 정신을 차렸다. 아내는 엄마 선물을 사 왔다. 핸드폰을 눌러대던 아들도 할머니 선물을 사러 갔다.
비행기를 타는 건 의자 형태의 공간에 당신을 수납한다는 뜻이다.
고속버스 우등 좌석을 떠올려보라. 등받이를 한껏 누일 수 있고 발 받침대도 올릴 수 있다. 손잡이엔 컵 받침대가 있고 시사주간지를 읽다 꽂아 넣을 수납함도 제공된다. 그런 시설 정도에는 앉아 줘야 비행기를 ‘타고’ 간다고 할 수 있다.
일반석은 타고 가는 게 아니라 ‘ㄹ’ 자로 접혀 가는 거다. 그렇게 10시간이다. 불판 위에 올라간 오징어를 생각해도 된다. 스트레스가 열처럼 가해지면 신체는 뒤틀리게 되어 있다. 애들도 고생이라고? 그렇지 않다. 애들은 몸이 작기 때문에 고속버스 우등만큼은 아니어도 키 170 이상의 어른이 받게 될 고통만큼은 받지 않는다. 다만 좀 지루할 뿐이지. 대기를 반으로 찢고 들어가는 동체에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럽고.
만 미터 상공을 시속 800킬로미터로 날아가는 감각은 불판 위의 오징어적 감각으로 체화된다. 자동차에 탑승한 내가 운전대를 잡고 시속 100킬로미터를 밟으면 그건 분명히 ‘그렇게’ 체험된다. 내가 꽤 밟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비행기 안에서는 그냥 시끄럽고 지루하고 어깨가 결리고 무릎 아래가 시릴뿐이다.
정신이 혼미해 어떻게 오른 지도 모른 상태에서 태평양 상공을 날았다. 아들과 영화를 봤다. 토르를 보고 로건을 봤다. 아들은 발톱 액션이 마음에 들었는지 흉내 냈다. ‘무서운 꿈’은 보다 말고 ‘베케이션’은 아들과 보기엔 위화감이 들어 껐다. ‘쥬토피아’는 기대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토끼와 호랑이가 함께 범법자를 잡는 세상이라. 그게 뭔지는 알겠는데 실패한 비유가 아닌가 싶다. 애초 호랑이 같은 포식자가 먹이사슬 아래 있는 동물을 잡아먹는 건 포악함이나 킬러 본능과는 무관하다. 그들은 단지 효율적으로 밥을 찾아먹을 뿐이다. 안 그러면 죽으니까. 굳이 잔혹함을 따지자면 그건 개체에 있는 게 아니라 먹이사슬 자체에 있다.
아들은 진에어가 제공하는 맛없는 식사는 먹을 수 없다며 비빔 ― 컵밥을 시켜먹었다. 나한테 있는 5만 원 권 지폐로 계산했는데 그 돈은 집에 도착할 즈음 몇 천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 여행 때는 나도 하늘 위에서 호사를 누려보겠다며 스타벅스 캔 커피를 사 먹었지만 올해는 생각조차 품지 않았다. NBC 그 녀석 때문에 5천 원 굳었다.(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 맞지?)
하와이 갈 때는 난기류를 만나면 생각이 복잡해졌는데 올 때는 그마저 지루했다. 젠장, 또 흔들어대는 거야? 정도? 이렇다 할 위기감 없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식구들과 주먹을 부딪쳤다. 좋은 자리에 앉으니 나갈 때도 빨리 나갔다. 나가는 문이 두 개인데 맨 앞에 있는 문 말고 두 번째 문에서는 내가 제일 먼저 나갔다.
꽤 걸었다. 몇 백 미터는 걸었을 것이다. 전철까지 탔다. 그런 뒤 겨우 입국 심사장에 도착했는데 안내해주는 직원이 없었다. 줄을 세우는 방식도 희한했다. 외국인이 먼저였다. 그다음 자동 입국 심사 줄, 그다음이 일반 입국 심사 줄. 거꾸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짐 찾는 데서 제대로 한 방 먹었다.
내가 그렇게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짐이 기이할 정도로 안 나왔다. 30분을 마냥 기다렸던 것 같다. 나는 뭔가 일이 터졌다고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안내 방송이 나왔다. 동계 올림픽을 맞이하여 수하물 검색이 강화돼 늦을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가방이 길게 빙글빙글 도는 설비 위에는 대형 전광판이 설치돼 있다. 거기다 안내문 공지하면 되잖아! 상황이 어떻다는 걸 전해줄 직원조차 없다.
아내는 티켓팅을 일찍 한 사람이 가방도 일찍 나온다는 가설을 제기했지만(어디선가 접한 정보) 꼭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이번 경우만 검색 강화로 틀렸는지 모르고. 늦게 나온 편도 아니었다. 벨트 주위에 늘어서 목을 길게 빼고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면 그래도 빨리 나온 편이었다.
아내는 와이파이 에그를 반납하러 가고 나는 버스 티켓을 끊으러 갔다. 하와이 사람이 한국에 관광 와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면 아무것도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크고 너무 복잡하다. 내국인도 이렇게 느낄 정도니 말 다한 거 아닌가. 버스 티켓을 판다는 안내문을 보고 찾아간 것도 아니다. 작년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다. 그런 안내문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직원 한 사람이 한 줄로 늘어선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어디요’ ‘얼마입니다’ ‘여기요’ ‘잔돈입니다’ 하는 대화가 아니었다. 차례가 돌아온 사람은 대개 뭔가를 심각하게 물었다. 거의 안내소에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대화가 잘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는 걸 묻거나 대답할 수 없는 범주의 질문을 한 것으로 보였다. 나도 물었다.
“혼자서 다 하시는 거예요?”
나의 불만은 직원이 아닌, 직원을 한 사람만 둔 윗대가리한테 향한 거였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달랐다.
“우리도 밥은 먹고 해야죠. 밥 먹으러 갔어요.”
그랬다. 옆 창구 하나가 비어있었는데 식사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잠시 뒤 그 직원이 돌아오면 이번에는 이 직원이 밥을 먹으러 가겠군. 돌아서는데 직원이 깜짝 놀라 웃으며 나를 불렀다. 돈만 지불하고 티켓은 안 챙긴 것이다. 그녀는 친절하게 버스 시간과 타는 장소를 알려줬다. 밖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흡입하며 줄을 서있을 필요는 없었다. 좌석제니까.
그런 줄도 모르고 줄 서서 타고 가려다 기사하고 욕 배틀을 한 게 작년 일이다. 아내가 동네 이름을 대자, 기사가 거기 어디? 하고 반말을 지껄인 것이다. 혐오하는 눈길로 위아래를 훑으면서.
그때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우리는 아직 ‘하와이 여행’이라는 비행기에서 덜 내려온 것이다. 동체를 흔드는 난기류 속에 착륙을 시도하는 중이랄까. 버스에서 내린 누가 가방을 바꿔 가기라도 하면? 여행을 망치는 일은 한순간에 벌어진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야말로 문명의 본질일 것이다. 그 사회를 재는 척도. 우리 동네까지 가는 2시간 동안 푹 자도 버스 짐칸에 가방이 그대로 있을 거라는 믿음.
우리는 푹 자지 못했다. 창밖을 지나는 풍경은 아파트, 아파트, 회색 아파트 일색이었다. 그 위를 덮은 하늘은 우중충한 잿빛. 번화가로 들어서자 이번엔 정신없이 울긋불긋한 네온사인 간판이 눈길을 잡아당기고 낚아채고 한 바퀴 돌린 뒤 ‘싫음 말고’ 걷어찼다.
흔히들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송하는데 그렇게 빨리 경제를 일으키고 증폭시킨 속도의 여파가 지금까지 미치는 걸 보면 그 점이 개인의 행복과 무관하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단지 자본을 빠르게 회전시키는 파도의 한 점에 불과하다. 드나들길 반복하다 바위 같은 데 부딪치면 깨져서 흩어지는 흰색 거품.
버스 정류장을 10미터 앞두고 차가 밀렸다. 정류장 바로 앞에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입구가 있는데 거기다 차를 대고 술을 먹으러 가려는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정체를 빚은 것이다. 하와이 오아후 섬이었다면 경찰이 벌써 출동해 딱지를 끊든가 차를 빼라고 지시하든가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가방을 무사히 챙긴 우리는(작년엔 그러지 못했다. 누가 가방을 들고 간 게 아니라 내가 가방을 놓고 내렸다) 집까지 걸어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랜딩기어가 활주로에 닿긴 했지만 아직 내릴 때가 된 것은 아니다. 짐을 풀기도 전에 꽃개를 데리러 갔다.
마침내 여행이 끝났다.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인 식구와 여행을 무탈하게 마친 것에 감사하며 집으로 가는데 뒤에서 택시가 ‘빵’ 했다. 좌회전 신호를 대기 중인데 택시는 우회전으로 빠져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차선이 하나밖에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앞차가 좌회전을 기다리면 뒤차도 기다려야 한다. 택시도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빵’ 하고 신경질을 냈을 뿐.
도착한 다음 날은 분리수거 날이었다. 어젯밤 짐을 모두 풀어 나온 쓰레기를 몽땅 버리러 가는데 3층에서 탄 부부가 우리를 혐오했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냄새가 난다며 뭐라고 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가려서 버려야지 그게 뭐냐고.
하와이는 알로하지만 코리아는 파이팅이다. 달리 파이팅이겠는가. 한국 사회라는 활주로에 멈춰 선 우리는 1분 1초가 전투이자 경쟁인 삶으로 무사히 귀환한 것이다.
돌아오게 되어있는 건 여행의 나쁜 점이다. 좋은 점은…… 어디 한 번 찾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