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을 차별하고 종교를 차별하고 동물을 차별해온 사나운 정신 세계
모처럼 한우를 먹으러 간다.
가족이 한데 모여 비싼 음식을 즐기는데
한 사람이 소를 몰고 오더니
당신 면전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야이, 야만인들아.
그 사람의 입장이야 어떻든
거기서 그 말에 귀기울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배경을 인도로 바꾸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 것이다.
힌두교는 쇠고기, 이슬람교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
한국인이 개를 특별히 증오해서 식용으로 삼았을까?
가난한 농경 사회에서는 고기가 그만큼 귀해
죽었다고 묻을 바에는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농사 일에 실컷 부려먹다 잡아먹었던
소를 대하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백인들은 개를 특별 대우한다.
개로부터 다른 여타 동물을 차별한다.
근거는? 백인 자신이다.
성경에서 개를 키우는 자만이 천국에 간다고 한 적도 없고
예수가 개를 키웠다는 묘사도 없으며
개를 먹은 자,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 저주한 대목도 없는데
개를 특별시한다.
자기들과 같은 태도를 취하라고 요구한다.
힌두교가 신성시하는 소나
이슬람교가 금기시하는 돼지는
맛있게 먹어도 되지만
백인들이 좋아하는 개는 먹으면 안 된다.
스페인에서는 해마다 소를
골목길로 몰아 잔인하게 죽이는
투우를 즐기고,
프랑스에선 거위 가슴에 빨대를 꽂아
(요즘은 대개 오리 간으로 만든다고 한다)
간만 쪽 빨아먹는 짓을
대단한 식문화인 양 즐기면서
개와 관련된 음식 문화에 대해선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이건, 백인들이
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식민지를 건설하고
유색인종을 가축(노예는 순화된 말)으로
부리던 시절부터
강화된 질병이다.
남의 땅에 도착한 백인이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너, 예수 아냐?
모른다고 하면
이, 야만인들 같으니라고.
예수 모르면 지옥 가는 거 몰라?
예수 믿고 개화하든가
아님 정의의 심판(대포, 총)을 받고 지옥으로 꺼져!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테러범들의 논조와 똑 닮았다.
예수 자리에 다른 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을 뿐.
나는 개를 키우고
(개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명확히 하자면
따로 한 편의 글을 써내야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개'와 '귀여움'을 혼동해서
자기가 개를 좋아하는지
강아지를 좋아하는지
인형처럼 귀여운
동물을 좋아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개가 짖는 것도 좋아해야 한다.
개한테는 그게 말이자
의사 표현의 수단이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애견인 중에
자기 개가 짖는 걸
좋게, 긍정적으로,
마치 음악 감상을 하듯
받아들이는 사람을 본 적 없다)
꽃개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개고기를 먹는 사람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내 취향이 타인의 행위를 통제할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법이나 윤리도덕이 아니며
옳고 그름의 잣대나 기준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개를 키우는 걸 근거로
보신탕을 못 먹게 한다면
보신탕을 먹는 누군가도
자신의 미식 취향을 근거로
개를 키우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 건너온 백인이 들고있는
피켓의 수준이
딱 거기까지다.
애견 문화와 관련해
정말로 필요한 캠페인은
'버리지 말자'이고
이것만큼 시급한 문제가
'배변 봉투 들고 다니기'이다.
꽃개는 지난 1월부터 집에서 배변하기를 관둬
하루에 다섯 번씩 산책을 나가 볼일을 보는데
나는 아직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나처럼 배변 봉투를 들고 다니는
애견인을 본 적 없다.
개똥을 남발하는
민폐 수준의 애견 문화를 갖고
농경 사회로부터 비롯된
오랜 식문화를
역사책에서 지워버리겠다?
음, 내가 볼 땐
애견인들이
더 겸손해져야 할 때라고 본다.
아파트가 주거 공간의 대세로 자리잡은
지금에 와선 더더욱 말이다.
이명박 정권의 구제역 파동 때
생지옥에 떨어진 돼지들.
돼지한테는 이래도 되고
그래서 먹어도 된다는 뜻일까?
동물을 차별해도 된다는 생각,
그런 생각에 길들여진 사고가
종교를 차별하고
인종을 차별하는 세계를
지옥 한 귀퉁이에서
꺼내 오는 거 아닐까?
영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부흥 국가가 만들어낸
'가진 정도'로 모든 걸 차별하는 사회니까.
민중은 개, 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