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CON Jul 29. 2016

꽃개 네트워크 12 반려견이 아프면 사라진다?

무리 동물의 비애를 배웠다.

꽃개가 새벽에 토했다.

잠이 안 와 새벽 3시까지 컴퓨터를 두들기는데

꽃개가 와서 알짱거렸다.

나랑 같이 있으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인터넷 전쟁을 멈추고 꽃개랑 자러 갔더니

안방에 토한 흔적이 깨끗하게 남아있었다.

세 군데에 토했고

음식물의 흔적은 없었으며

액체 상태의 그것은 살짝 붉은 빛을 띠었다.

(안전?한 색깔은 거품을 띤 흰색이다.

이 정도의 토는 '흔하다'고 할 수도 있다.

위험?한 색깔은 녹색 계열의 토인데

그때는 얼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희한하게 '토'에서 세제 냄새가 났다.

아내를 깨워 꽃개 상태를 공유한 뒤

토사물을 치우고 잤다.

꽃개도 잤다.

다음 날

평소대로 6시쯤 일어나 꽃개랑 산책 나갔다.

평소대로 쉬를 하고 응가를 누는 꽃개.

응가 상태도 괜찮았다.

토를 했을 때 음식물은 없고 응가는 했으니

'우발적 토'라는 추론이 가능했다.

굳.

아내가 8시쯤 일어나 꽃개 밥을 줬다.

아이가 방학을 해 우리는 내처 잤다.

이번엔 아내가 잠결에, 토하는 소리를 들었다.

8시에 먹은 아침을 9시에 고스란히 토해냈다.

살짝 긴장 모드.

그래도 바로 병원으로 쏘지는 않았다.

병원에 가면 어떤 처치가 이뤄질지 대충 짐작이 가니까.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기는

병원도 마찬가지다.

꽃개가 토하는 '원인'을 규명하고자 한다면

혈액 검사를 비롯한 갖가지 검사를 받아봐야 할 텐데

수십만 원 상당의 비용을 들여

검사를 받고 결과를 받아들 즈음엔 건강을 되찾아, 

씩씩한 상태로 돌아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방학을 맞은 아이가 할머니 집에 간다고 해서

아내랑 아이를 전철역에 바래다주고 왔더니

또 토해놨다.

새벽에 토한 것과 같은 양상.

세 군데에 나눠 토했고,

음식물을 비롯한 건더기는 일체 없으며,

세제 냄새를 풍기는 액체는

불그스름한 빛깔을 띠었다.

혈액이 섞인 것처럼 보이기도 해

긴장감이 고조됐다.

아내랑 문자.

병원에 가봐야 하나?

내일은 분당에 있다는,

수영장 딸린 애견 카페에 갈 계획이었다.

거의 물 건너간 분위기.

우리 모르게 먹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먹었나?

일단 우리 집엔 그럴 만한 무언가가 없었다.

만약 무언가를 잘못 먹어 토한 거라면 

토사물에 그게 섞여 있어야 했다.

아침에 먹은 걸 그대로 게워낸 걸 보면

빈 속이, 어떤 이유에서 음식물 소화를

거부한다는 뜻이었다.

전날 비가 그친 틈을 이용해

잠깐 프리스비를 한 적이 있는데,

(저녁에 해가 떨어져 선선할 즈음)

그 때문에 속이 뒤집혔나?

꽃개는 내가 보는 앞에서 한 번 더 토했다.

안에 든 뭔가를 끄집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뒷모습.

개는 아플 때 더없이 조용해진다.

아프다고 칭얼대지 않는다.

오히려 슥 사라진다.

아픈 걸 감추고 싶어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게 무리 지어 사는 동물의 습성이라고 한다.

자기가 아프면 무리에 해를 주기 때문에

낙오되거나 도태되는 걸 '받아들이는' 본능이 있다고.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져 구석진 곳에 몸을 숨긴다.

자기의 아픈 상태를 꼭꼭 감춘다.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돼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알려줘도 모자랄 판에!

할머니 집에 아이를 데려다준 아내가 왔다.

병원에 가봐야 하나?

빈 속에 자꾸 토하면 수분이 부족한 것 말고도

여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한 템포 늦춘 건

스스로 이겨낼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야생 생활을 한 DNA를 가진 녀석이

이깟 토 한 번 했다고 죽으면,

진작 멸종했겠지.

아내가 와서인지 조금씩 살아나는 점도 희망을 갖게 했다.

사료를 사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개 주스를 주자

한 접시를 원샷에 비웠다.

일단 사료를 반만 먹여보고 토하나 보자.

또 토하면 비가 오든 안 오든 병원에 가고,

안 토하고 비도 안 오면 분당에 있는 애견 카페에 가고,

안 토했는데 비가 오면 꽃개는 집에 두고

우리끼리 바람이나 쐬러 가지, 뭐.



위 사진은 2015년 7월 19일.

아래 사진은 2016년 7월 19일.

1년 전 윗도리는 사라졌고

손목시계는 약이 다 해 멈춘 상태고

아내는 드디어 '수평'을 신경 써서 찍을 줄 알게 됐다.



카메라는 똑딱이(하이엔드급)에서 DSLR로 바뀌었고

국회는 여소야대가 됐으며

영국은 EU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꽃개는



성견이 됐다.




퍼붓는 빗줄기를 뚫고 백화점에 갔다.

계절밥상에서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스와치 매장을 찾아가 건전지를 교체했다.

무상으로 해줘 놀랐다.

자본의 갑질이 극에 달한, 이 무망한 시기에

적어도 건전지 값은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매장 직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영수증이나 보증서 따위의 요구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교체해줬다.

(니콘이 요즘 무상으로 해주던 서비스를 

유상으로 한다고 해서 시끄럽다.

DSLR로 갈아탄지 얼마나 됐다고!

니콘도 우리가 개돼지란 사실을 눈치챈 걸까)

완전히 살아난 꽃개는 놀아달라며

미사일처럼 날아올랐다.



작가의 이전글 꽃개 네트워크 11 백인의 오랜 질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