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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CON Oct 07. 2016

꽃개 네트워크 20 공원에 사는 흉측한 개

공원을 둘러싼 두 편의 이야기.

우리 집 근처엔 공원이 있다. 유수지라고 하던가. 낮은 지대에 잔디를 깔고 나무를 심고 벤치를 갖다 놔 평소엔 공원의 역할을 하지만 폭우가 내려 급류가 형성될 땐 물을 가두는 저수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연못 같은 데를 중심으로 데크도 깔아놓고 깔끔하게 정비해 요즘처럼 선선한 날엔 산책하기 좋다.

최근엔 분수 쇼도 하고 무릎 높이의 수영장도 개장해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하지만 북적대는 한 철이 지나면 인근 중학교 애들이나 체육 시간 때 운동장 대용으로 삼는, 썰렁한

공간이 된다. 

몇몇 견주들에겐 그 점이 공간의 낭비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공원 구석에 비탈을 '벽' 삼아 녹색 그물로 울타리를 쳐서 개를 풀어놓았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연, 임시적 애견 공원이었달까. 꽃개를 위해

리서치를 즐기는 아내가 그런 움직임을 포착해 한 번 놀러 간 적이 있다.

역시 인터넷 정보는 과장이 심해.

광교 애견 공원을 경험한 우리에게 거기는 '애견 공원'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울타리는 허술했고, 개들을 위한 공간은 좁았으며, '벽' 대신 사용하는 비탈도 모호하기 그지없었다. 시쳇말로 그냥, 없어 보였다. 아마도 개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 나간 용감한 몇몇 시민이 없는 살림을 가지고 억지로 만들어놓은 듯한 장소로 이해됐다. 이번에도 낚였다는 생각에 허탈했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꼭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경험한 광교 애견 공원이 너무 훌륭해 빚어진 편견일 수도 있으니. 뭐랄까, 눈높이가 너무 높아진 탓이랄까. 분당에도 애견 공원이 있다고 하는데 다녀온 지인의 말에 따르면 광교에

비할 데가 아니라고 했다. 분당은 대형 소형견이 분리되어 있지도 않다며.

우리를 맞이한 관계자의 첫인상도 좋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먹이는 사료는 나쁘니 생식을 먹여야 한다는 주장은 원론적으로 맞지만 그런 걸 배우러 나간 자리는 아니었다. 그걸 몰라서 사료를 먹이는 것도 아니고. 꽃개를 학대하려고 사료를 먹이는 것도 아니지 않나? 우리는 자본주의가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사료의 심각성이 아니라, 꽃개가 뛰어놀 만한 곳인지 체험하러 간 거였다. 결론은 '아니다'였고,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는 듯 보였다.

지역 카페 회원인 아내가 최근 이슈를 들려줬다. 임시로 운영 중인 애견 공원을 정식으로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그게 선출직 시장의 관할인지, 시의회의 관할인지, 대체 누구에게 유수지 공원의 한 귀퉁이를 그런 식으로 변경할 권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좋다고 생각했다. 역세권이란 말도 있듯이 애견세권도 있으면 땡큐라고.

그 뉴스가 뒤집히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수면 아래 있던 의견이 공식적으로 논의된 탓인지 반대자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제방을 넘어온 파도처럼 우리 아파트 단지를 덮쳤다. 엘리베이터에 우리 아파트 가치를 떨어뜨리는 애견 공원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자는

안내문이 붙었다.

나는 세 가지 점이 이상했다. 애견 공원이 아파트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 사이에 8차선 도로가 있고 우체국이 있고, 보건소가 있고, 테니스장이 있고 다시 상업지구가 있고 중학교가 있고 고등학교가 있는데? 유수지를 겸하는 그 공원이 언제부터 우리 아파트 소유가 됐지? 인근 주민이 이용을 너무 안 해서 무릎 높이 수영장을 만들어준 뒤에야 겨우 여름 한 철에만 찾게 된 땅을?  그리고 언제부터 '개'가 혐오물이 됐지? 애완견이란 단어도 문제지만, 나처럼 개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서 이 글을 보는 사람은 뭐가 되는 거야? KBS는 오직 중립만을 외치며 아무것도 안 하느라 무용지물인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안내물'을 부착할 권력을 지닌 그들은 의견 수렴도 전에 이미 애견 공원을 '혐오 시설'로 규정한 뒤 나서 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겼다. 압도적으로, 애견 공원 설립은 백지화됐다. 그걸로도 성이 안 찼는지 임시 수용소처럼 녹색 그물을 쳐놓고 놀게 해줬던 유휴 공간에 작은 나무까지 심어, 더는 그렇게 놀지도 못하게 막아버렸다. 처음 방문한 우리에게 생식을 권하던 이들은 자취를 감췄다. 500미터 떨어진 그곳에 애견 공원이 생기면 개똥 냄새가 날 거라고 경고했던 아파트 대표도 바뀌었다. 요즘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역세권 아파트로 재평가받아야 한다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우리는 종종 거기 간다. 날씨가 풀리면서 한적한 공원은 아주 좋아졌다. 꽃개가 거길 좋아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종종 집에 가기 싫다고, 드러누워 뻗대는 걸 보면.



이때만 해도 우리는 녀석이 공성애자인지 몰랐다.
여기까진 작년 9월 28일 사진.


아내가 가입한 지역 커뮤니티가 '개' 문제로 뜨겁게 달아오른 적이 있다. 포털 메인에 뜨는 뉴스에는 댓글이 경쟁적으로 달리지만 지역 커뮤니티는 대략 평균적인 댓글이 달린다. 평균 이상의 댓글이 달린 글은 내용이 궁금해서라도 한 번 더 보게 되고, 내용이나 댓글에 공감한 누군가 댓글에 답하는 댓글을 달면서 순식간에 불어나는 방식인데... '개'와 관련된 글이 그렇게 순식간에 한 그루 떨기나무처럼

타올랐다.

아이랑 같이 우리 집 근처의 그 공원에 놀러 갔다는 애 엄마의 고백. 구석에서 놀던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그물을 뛰어넘어 자기 애한테 달려와 공포에 질렸다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울타리 대신 쳐놓은 녹색 그물은 엉성한 것이어서 운동 신경이 발달한 대형견이라면 얼마든지 넘는 게 가능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레트리버 같은 개가 그렇게 허들을 넘은 것 같다. 카페에 글을 올린 이는 그 개가 자기 애를 공격했다는 식으로 썼던 것 같은데(뉘앙스가) 그건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현장에 없어서 언어도단일 가능성도 있지만 '아이를 공격했다'는 판단은 사실상 '개가 그물을 뛰어넘었다'는 행동을 규정하고 있다. 문제적 행동을 보인 그 개가 오로지 아이를

공격하기 위해 울타리를 뛰어넘었다는 뜻이 되니까.

당연히, 난리가 났다. 법적으로 허가받은 애견 공원도 아니었으므로. 법적으로 허가받은 애견 공원이라 해도 대형견이 탈출해서 달려들면 성인 남성도 쫄 수밖에 없다. 당시 아이 엄마가 겪었을 공포는 충분히 이해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내가 개보다 더 무서워 시비를 걸지 못하는 측면도 있어) 경험한 적이 별로 없지만(아주 없는 건 아니다) 아내는 몇 번 당한 적 있다. 줄을 꽉 잡고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저리 치워달라는 주문. 그때 아내랑 함께 있는 개는 '혐오물'이 된다. 그런 취급을 받을까 봐 줄을

꽉 잡고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당연히, 난리가 났다. 댓글 릴레이. 공포에 떨었던 아이 엄마를 위로하는 댓글은 개가 울타리를 넘도록 내버려둔 견주들을 비난하는 댓글로 이어지고 그것은 어느 시점에 방향을 틀어 개에 대한 방어권을 공격으로 승화하는 댓글로 나아갔다. 유모차에 장우산이나 장대를 꽂고 다니다 개를 보면 때리겠다는 댓글은 중국 무협지 같은 과장법 때문에 '웃을' 수라도 있다. 100개, 200개를 넘어 폭주한

댓글 끝에 나온, 말의 왕.


세상의 모든 개들이 다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유영철은 개가 아닌 사람인데? 사람 남자. 세월호를 진도 앞바다에 침몰시킨 건 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잖아? 메르스를 전국에 퍼뜨려 학교까지 쉬게 만든 원흉은 개가 아니라 병원과 정부였고. 날이면 날마다 포털 메인을 장식하는 온갖 혐오스러운 범죄의 주체는 언제나 개가 아니라 인간이었는데... 오로지 인간만이 전쟁을 벌이고 학살을 즐기고 탐욕으로 타자를 벌주는 존재인데. 울타리를 뛰어넘었다는 그 개가 아이를 물었나? 그런 내용은 없었다. 다행이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다쳤다면 꽃개는 수용소로 끌려가 가스실에서 짧은 생을 마쳤을 테니 말이다.


이게, 쟁반이냐, 원반이냐, 걸레냐.
여기까진 올해 9월 28일 사진. 꽃개의 정체는 대략 밝혀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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