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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CON Sep 24. 2016

꽃개 네트워크 19 반려견이 원하는 하루는?

1년 전 하루와 비교해봤다.

오늘 서초동에선 반려견 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출처 : 연합뉴스


이름 확 상표 등록해 버릴까?



1년 전 어제 꽃개는 갤럭시펫에 갔다.


출처 : 네이버 지도


5월 5일이 생일이니까

1년 전 9월이라면 4개월 무렵,

퍼피 라이선스 취득 기간이다.



아직은 갤럭시펫이 넓었을 때다.

입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호텔링을 맡겼던 곳이기도 하다.



담당 직원이 찍어줘

제주도에서 봤던 사진들.

녀석, 힘들었는지

닷새만에 나타난 우리 품에 안겨

울었더랬다.



요즘은 거의 안 간다.

꽃개 사이즈가 커지고 활동량이 급격히 늘면서

카페 공간이 작아진 것.

갤럭시펫 측이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것도 한몫했다.

2층에 '동물병원'을 열면서 호텔이 3층으로 올라와

애견 카페 공간이 반으로 줄었다.



그래도 퍼피 때의 추억이 가득한 곳.



이렇게 어두운 데는 아니다.



당시 카메라가 너무 구려서.



대충 이런 식으로



디지털 암실에서 보정하면 요 정도.

밝기를 확보하기 위해 셔터스피드가 느려지니까

의자로 뛰어오르는 꽃개가 구불구불 물처럼 찍혔다.



당시 카메라,

후지필름 FinePix S200EXR.

생긴 것만 보면 DSLR 같지만 렌즈 분리가 안 되는 똑딱이다.

(심지어 DSLR인 니콘 D5500보다 크고, 무겁다, 헐)

렌즈 자체는 좋다.

광각도 넓고 망원도 잘 당기고 접사까지 된다.

문제는 센서 크기와 ISO 감도.

400만 올려도 화질이 자글거려 써먹을 수 없다.

그래서 광원이 부족한 실내 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그 결과 꽃개 퍼피 사진이 거의 없게 됐다.

퍼피 때는 예방 접종이 진행 중이라 외출을 삼갔고

그 결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카메라 성능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갤럭시펫 직원이 찍어준 사진도

우리에겐 소중한 자료로 남게 됐다.



내일은 어디 갈까?



아무 데도 안 갔다.

1년 전 오늘, 우리는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줄을 안 한 건 4개월밖에 안 된 퍼피 자격에 기대.

잘못된 행동이지만 워낙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은 데라

다행히 줄을 매 줄 것을 요구하거나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진짜 문제는, 워낙 소형견이 많은 사회여서

저 사이즈를 퍼피라고 믿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이름이 왜 꽃개에요?



갤럭시펫에서도 그랬지만 내가 이 사진을 찍은 건

꽃개가 펄쩍 뛰어오르는 게 신기해서였다.

저 다리로, 못 하는 게 없다.



이 역시 꽃개를 이해하는 주요 단서 중 하나.

개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네

라는 말이 있다.

헛소리 하지 말란 말인데,

저 말이 헛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개는 풀을 뜯(어 먹기도)는다.



이 사이즈를 누가

생후 4개월 된 아기 개라 믿겠는가.

첫 대면했을 때부터 그랬다.

정말 컸다.



이때는 아내도 참 가볍게 안았는데, 떱.












오늘 우리는,

흥분해서 벌벌 떠는 꽃개를 데리고

(그는 우리가 나간다는 걸 안다)

광교호수공원애견놀이터에 갔다.


출처 : 네이버 지도


꽃개를 입양한 그해 개장해

우리에겐 말 그대로 환상적인 놀이터였다.

잔디도 새 거, 벤치도 새 거,

문도 새 거, 수도꼭지도 새 거,

입장객도 새 거, 이용자들 매너도 새 거,

모든 게 다 새 거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용자들이 많아 

잔디가 죽고 땅이 파이고

시설이 노후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쳐도



초기 이용자들 사이엔 분명 있었다.

배변 봉투를 챙겨 와

자기 집 개가 싼 똥은 꼭 치우는 문화가.

요즘은, 그게 사라진 것 같다.

오늘 저 자리에 앉아 제일 먼저 한 것도

남의 집 개가 싼 똥을 치운 거였다.

의자 바로 밑에 있어 치워야 할 수밖에 없었다.

꽃개 똥은 맨손으로 만지라고 해도 만지겠는데

남의 집 개 똥은, 더러웠다, 정말.

하루 묵어, 새벽이슬까지 맞은 똥이라니.



일주일 만에 만난 둥이도 잡고.



대형견 놀이터로 자리를 옮겨

(광교호수공원애견놀이터는 

소형견과 대형견 노는 공간이 따로 구분돼 있다)

꽃개 군기도 잡고.

성격이 친절했다 날카로워졌다

바이오리듬처럼 파도를 타는 것 같다.

오늘은, '오기만 해봐라' 리듬.

몇 번이나 왁왁거려 야단도 맞았다.

대형견 틈에 끼면 함부로 못하는 걸 알고

옮겼더니 어색하게 겉돌다

저 위로 올라갔다.

둥이는 다른 개랑 잘만 노는데.



아내가 며칠 전부터 칼국수 노래를 불러

꽃개를 집에 두고 가기로 했다.



펜스를 치고.

꽃개가 넓은 집을 다 커버하도록 두는 것보다

집의 반쪽만 커버하도록 두는 게 

심리적으로 안정될 거라는 게 우리의 추론이다.



아들 방을 닫는 건 

레고 블록처럼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장난감 삼키지 말라고.



물그릇도 옮기고.



배변 패드도 깔아주고.

'똥개'란 말을 보면

사람들은 개(혹은 모든 동물)가

더럽고 지저분하다고

믿는 모양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꽃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안식처로 삼은 집을

청결히 하려고 노력한다.

한 번 시작된 실외 배변 습관이

굳어진 걸 보면

본인도 꽤 만족하는 듯.

(배변 냄새가 안 나는 것에)

저거는 혹시나 해서 깔아 두는 건데

한 번 패드에서 탈피하면

바로 돌아오는 건 아니어서

반드시 저기다 싸리란 보장은 없다.

그래도, 깔아준다.



음악을 틀어주고.

퍼피 때부터 꽃개는 내 방에서 함께

음악을 듣다 잠들곤 했다.



혹시 더울까 선풍기도 틀어주고.

녀석이 자리를 잘 못 잡을 가능성을 고려해

풍향은 '회전'으로 설정.



빈백도 눕혀준다.

마약 방석 사줄 돈 없어 이걸로 때우는 중.

꽃개 발 쪽에 허옇게 묻은 것도

저기 누운 채 개껌을 물고 뜯다 생긴 흔적이다.

외출 준비를 마친 우리는 꽃개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기다려.


라고 말한 뒤 나갔다.



전망 좋은 식당이었다.

멀리 무덤도 보이는

부지런히 수저를 놀렸다.



아들.



아빠.



엄마.



미션 클리어.






우리가 밖에서

배를 채울 동안

꽃개는



이러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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