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개네 가족 모임을 가졌다.
지난주 토요일.
몇 차례 통화가 오간 뒤 모임을 갖기로 최종 결정했다.
처음 논의되었던 장소는 신현리 도그런.
이런저런 이유로 여의치 않았는지
두 번째 장소로 광교 애견 공원이 낙점됐다.
하지만 토요일 아침까지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떠
딩고를 갈까 하다가
요즘 워낙 핫해
(사장님이 영업을 너무 잘해!)
기본으로 깔린 호텔링 개들만 10마리는 될 듯 해
카페도기로 최종 낙점.
아내가 인스타그램 메시지 기능을 이용해
사장님께 미리 양해를 구했다.
오전 10시경, 웰시코기 5마리가 방문할 예정이라고.
흔쾌히 허락해주신 사장님.
사장님이 무룩이를 데리고 제일 먼저 도착해
영업을 준비 중이셨고
우리의 뒤를 이어 둥이네가 도착했다.
최근 컨디션이 안 좋았던 둥이는
꽃개를 보자마자 덮쳤다.
개슬링 파뤼.
초반엔 무게가 나가는 둥이가 깔아뭉개는 편이다.
미안하다, 둥아.
아저씨가 특별히 노리고 찍은 건 아니야.
그다음 마루와 우디와 가을이네가 한 차로 도착,
패밀리를 완성했다.
'아버지'는 아무도 안 찾는,
철저한 모계 사회.
마루맘이 줄을 잡아달라고 해서
잠깐 잡아봤는데
헉, 돌덩이가 달려 나가는 줄 알았다.
힘이 장사여서, 썰매를 끌어도 될 듯.
이렇게 기운 센 녀석이 '여자'라는 게 함정.
작년 5월 4남매를 순산한 엄마견, 가을이.
아기들이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가장 작은 개가 됐다.
무게는 제일 많이 나간다는 점이 함정
우디는 엄마랑 같이 산다.
왼쪽 우디, 오른쪽 가을이.
우디가 카페도기 영업사원견 무룩이를 잡았다.
쫓아가면서 짖으면 다른 녀석들도
덩달아 그런 경향을 보였다.
곤란하다, 우디야.
오른쪽 눈이 오드아이인데,
처음 보면 낯설어도
자주 보면 나름 카리스마 있다.
음, 이렇게 보니 해맑은 개구쟁이 같은데.
집에서 엄마랑 장난도 잘 친다고.
둥이맘은
다섯 마리가 한 줄로 나란히 앉은
가족사진을 기념으로
남기고 싶어 했지만
(가끔 그런 사진을 볼 때마다
'어떻게 찍었지?' 하고
불가사의함을 느낀다)
음, 현재 내 실력으로는
둥이와 꽃개 단 둘이만
나란히 앉혀 놓고 찍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200컷 찍고 현장에서
바로 삭제한 사진만 50컷.
메모리가 부족한 점도 있지만
초점이 나간 사진이 너무 많았다.
녀석들은 잠시도 가만있질 않았다.
카메라가 자기를 보는 것도 싫어해서
구도를 잡았다 싶으면 고개를 돌렸다.
셔터찬스를 기다릴 때
카메라를 보고 미소 짓는 녀석은 둥이가 유일.
그래서 이런 게 5마리가 모두 나온
가족사진이다, 쿨럭.
나름 한 줄로 나란히 설 때까지
셔터찬스를 기다린 결과.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감자튀김과
아이스크림이 얹어진 와플을 시켜먹었다.
차분히 앉아 담소를 나눌 겨를은 없었다.
녀석들은 돌아가면서 마킹을 하고 쉬를 하고 똥을 쌌다.
무룩이가 있는 게 못마땅한지
툭하면 짖고 내쫓았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지만
카페도기는 웰시코기 5마리를 품기에
넉넉한 공간이 아니었다.
사이즈가 저래 보여도 짖는 소리는 '대형'급이다.
쩌렁쩌렁 울린다.
소형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에너지가 미친 파도처럼 몰아친다.
SOS를 보냈는지 뽀글이와 뽀또 사장님도 출근.
녀석들은 새로 출현한 영업사원견도 바로 몰아세웠다.
이대로 있다간 손님들이 무섭다고 돌아가겠어.
물러날 때였다.
우리는 어느 정도 말랐을 거라 기대되는
광교 애견 공원으로 장소를 옮겼다.
광교 애견 공원은 노는 데가
대형과 소형견으로 분리돼 있다.
대형견 안쪽 깊은 곳에 '격리 구역'이 따로 있다.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애들을 진정시킬 양으로 넣어 놨다.
그랬더니 가족사진 대열이 됐다!
철문만 포토샵으로 지워버리면!
하나가 빠졌는데?
사진사 노릇을 하려고 작정을 하고 나간 자리였다.
렌즈는 과감히 단렌즈를 선택했다.
줌렌즈가 다양한 화면 구성엔 좋지만
단렌즈의 쨍한 화질로
단순한 초상 사진을 찍자 했던 것이다.
둥이네는 앞으로도 자주 만날 사이여서
가을이와 우디, 마루네를 집중해서 찍었다.
꽃개네 가족을 처음 보는 이도
우디는 쉽게 구분할 것이다.
오드아이를 가리면 누군지 또 모르겠지만.^^
다른 종은 모르겠는데
웰시코기 종은
(내가 키워서 그런지)
털 색깔이 굉장히 다양한 편이다.
눈과 눈 사이를 가로지르는 가르마와
목도리처럼 목을 두른 흰색 털,
발목을 살짝 덮는 목장갑을 보면
대강의 구분이 가능하다.
유일하게 블랙이 섞인 마루.
웰시코기 사진들을 보면 블랙이 섞인 개들이 제법 있다.
마루가 고개를 돌린 건
얼짱각도가 아니라,
'카메라'를 싫어해서다.
꽃개의 역대급 사진.
아내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 사진의 진가는 크게 뽑을 때 발휘된다.
초점이 완벽하게 맞았다.
가을이는 우디를 제법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아들'이라고 인지하는 걸까?
우디는 가을이를 '엄마'로 인지하고?
공성애자 꽃개는 엎드려 쉬다
엄마가 와서 자기 공을 건드리자
달려들었다.
입술을 살짝 물렸다고.
뒈지게 야단을 맞았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를 본드처럼 강력한
윤리도덕으로 발라서 붙이는 건
동물적 특성이 아닌 인간적 특성으로 보인다.
그래도 같이 사는 가을이와 우디는
서로를 알아보는 듯 보였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이런 거였다.
이 사진조차 배경이 너무 많지만.
개를 찍은 교과서적인 사진을 보면
망원렌즈로 바닥에 배를 깔고 찍어
개의 얼굴(눈을 중심으로)만 선명하게 잡고
배경은 녹색으로 날려버리는 게 대부분이다.
개는 인형처럼 얌전히 있고.
웰시코기 4남매는 도무지 가만있지 않았다.
가을이 사진이 많은 건
연로하신 어머님께서 상대적으로 덜 움직여서.
얻어걸린 사진.
점프를 한 것도 아닌데 시원하게 보이는 건
배경이 깔끔하게 처리됐기 때문이다.
노 파인더로 카메라를 지면에 붙이다시피 하고 눌렀는데
초점까지 맞아버렸다.
꽃개의 프리스비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지만
배경에 하늘이 나온 사진은 처음이다.
꽃개는 이날도 열심히 공을 좇았다.
휘핏 견주가 바닥에 굴리는 작은 타이어 같은 놀이도구도
부리나케 좇아갔다.
이럴 땐 민망하다.
졸지에 주인을 빼앗긴 휘핏은
수돗가 근처에 망연자실 있었다.
엄마보다 훌쩍 커버린,
둥이는 역시 모델견.
가을이한테 초점을 맞췄는데 카메라를 돌아보는 센스.
가을이가 낳은 4남매는 다 잘생겼다.
상남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마루.
사람들 앞에서, 버티는 꽃개.
예전에 딩고에서,
도베르만한테 버티는
꽃개 사진을 올린 적이 있는데
같은 상황이다.
한 성깔 하는 꽃개는 아무리 큰 개를 봐도
뒤집지 않는다.(서열 인정?)
소형견이 저렇게 하면 꽃개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달려든다.
인사를, 거부하는 것이다.
셰퍼드의 인사도 거부하고 싶었던 걸까?
상체는 무너졌는데, 버티는 하체.
꼬리로 뚜껑을 닫고.
꽃개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배꼽 잡고 뒤집힌다.
하늘 참 맑다.
아빠, 디젤차 운전자들이 다 같이 운행을 중단했나 봐요.
미세먼지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