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들고 광화문 5차 집회에 나갔다.
최태민 일가에 나라를 넘긴 반역 혐의로
청와대에서 농성 중인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데 필요한 물건.
양모 양말.
기모 장갑.
비니.
회색 비니 잘못 쓰면 암환자처럼 보인다.
군화.
전투 식량.
일부러 7개 맞췄다.
핫팩.
히트텍.
기모 운동복.
고어텍스 다운재킷.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첫눈이 왔다.
걱정할 거 없다.
당신이 꼭두각시가 아니어서
누군가의 개돼지가 아니라면
의지 하나로 충분하다.
똥진태, 보고 있나?
촛불 하나를 밝히려고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는지.
꽃개는 아들에게 맡기고
광화문 광장으로 출발.
경복궁역 6번 출구로 나와 청와대 방면으로 걸었다.
파란 실선이 우리가 걸어간 경로.
오전에 꽃개 유격 훈련을 시킬 겸
딩고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컨디션을 망쳤다.
너무 추운데!
완전 군장을 한 상태로 전철에 올라
사람들한테 눌리다 보니 진이 다 빠졌다.
내복 안쪽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해 광장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신나게 셔터를 눌렀다.
청와대 행진을 마치고 광장으로 가는 사람들.
전철에 타기 전에는 해가 있었는데
지상으로 올라오니 밤이었다.
언론은 광장에 나온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구호를 외쳤다는 식으로
보도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모두가 박근혜 하나만 보고 나온 건 아니다.
저마다 각자의 입장과 관점으로 모여
자기가 하고 싶은 주장을 한다.
내가 하려는 주장이 아닌 주장을 한다고 해서 흥분할 필요 없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큰 틀은 유효하므로.
내가 아는 그 아고라?
누군가는 깃발을 들고 걷는다.
누군가는 인쇄물을 들고 걷는다.
이 길로 쭉 가면
비아그라 먹는 길라임이 드라마를 보는
농성장이 나온다.
우리는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뉴스로만 봤던 내자동 로터리는 지난 것 같고,
경찰은 안 된다고 했지만 법원은 된다고 한
청와대 200미터 앞까지,
혹은 500미터 앞까지라도.
스티커로 치장한 경찰 버스를 만났다.
중국인 관광객을 데려오면
기념 촬영 많이 할 것 같은데.
스티커를 참 잘 붙인다.
국정교과서가 대기 중이다.
비아그라 열기가 식을 즈음
빵빵 터져줄.
몹쓸 학익진.
원래는 이거.
박근혜 때문에 막장 드라마 작가들이 힘들다고.
이젠 뭘 해도 막장이 아니야!
웬만한 소재로는 씨알도 안 먹혀!
우리는 여기서 발길을 돌렸는데
집에 와서 가만 보니
경찰들 사이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더 갈 수 있었던 거야?
폭력 시위를 조장하는 장본인은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이다.
100만 명이 평화롭게 퇴진을 요구하면
겸허히 수용, 퇴진하면 될 일을,
부정 선거로 국가 권력을 강탈한 자들이
헌법 타령을 하며 버티니까,
평화 요구를 한 100만 명이 아무 것도 안 한 게 된 셈이다.
그래서 이날은 전국에서 190만 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여전히 "평화"롭게 요구할 것이므로
퇴진 안 해도 그만,
잠이 최고라는 조롱까지 가능하다.
죽은 척 엎드렸던 언론도
슬슬 개돼지 몰이에 나선다.
국민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부턴 정치가 나서야 한다고.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할 때라고.
짖는다, 개처럼.
사람들이 거리로 나선 건
바로 그 정치가 파탄 났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정치의 파탄이다.
새누리당이라는, 제 1 여당이
머리가 텅 빈 꼭두각시를 대통령으로 추대해
청와대에 앉힌 주범인데,
이제 그들에게 "탄핵을 처리해줄 것"을 읍소 하라고?
양복 입고 방송국 스튜디오에 나와 근엄한 척
요설을 까는 너희들이 뭔데?
박근혜는 언론의 파탄이다.
대통령을 선거로 뽑는다는 건
후보의 자질을 검증할 의무가 언론에 있다는 뜻이다.
종북 좌파 빨갱이 최면을 걸어
"국민"에게 기호 1번을 찍으라고 종용한 자들이 누군데?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KBS, MBC, YTN, 연합뉴스.
이 자들이 무슨 "국민"의 메시아라도 되나?
"국민"의 교사, "국민"의 부모라도 돼?
박근혜 하나도 검증 못하고
'중립'이랍시고 일부러 안 해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에게 빌붙어
단물을 빨아먹은 자들이
이제 와서 나라 걱정 코스프레?
세월호 아이들도 그렇게 죽였지?
구조(탄핵)는 해경(정치권)에 맡기라고.
배(나라) 흔들리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경찰버스 아닌 척
골목마다 한 대씩.
참 예쁜 동네였다.
이 젊은이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진격했다.
누군가는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참 나쁜 학익진.
그런데 박근혜를 등에 업고 백남기 농부를 살해한 강신명은?
차들이 쫓겨난 도로를 걷는 기분은 상쾌했다.
안치환의 노래가 들리는 광장으로 갔다.
손석희 씨가 MBC에서 종편으로 옮기자
많은 지각 있는 사람들이 배신자라고 비난했지만
그들이 틀렸다.
우리를 청와대 축사로부터 해방시켜 준 이가
JTBC의 손석희였으니까.
이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박근혜에 대해 험담을 하면
그 기록을 공적인 장소에 남기면
경찰이 잡고 검찰이 기소해
법정의 판사들이 명예훼손 맞다고
교도소로 보냈다.
이제는 모두가 박근혜의 명예를 훼손한다.
국회가 탄핵 절차를 밟아
헌법재판관 9명에게 국민을 대신할 판단을 맡기자고?
그 자들이 뭔데?
그 자들이 옳다는 근거가 어디 있는데?
박근혜가 임명한 헌법재판관은
사실상 최순실이 임명한 낙하산이잖아?
박근혜는 헌법의 파탄, 법치의 파탄이다.
다시는 개돼지가 되는 치욕을 겪지 않으려면
박근혜한테 충성한 판사들까지 단죄해야 한다.
경복궁 돌담길.
경찰이 제공한 이동식 화장실은 감동이었다.
손석희의 JTBC가 최순실 태블릿을 1년 빨리 보도했더라면
백남기 농부는 저기 올라가 편하게 볼일을 본 뒤
시위대로 돌아가
공약대로 농부의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누군가는 펼침막을 들고 갔다.
창조 경제.
인쇄업 활황.
서울시 운송업 활황.
연인들은 광장 데이트로 용돈 아껴.
당신을 개돼지로 요리할 레시피,
의료민영화.
누군가는 아이를 무등 태웠다.
광장의 중심으로 들어갈 엄두도 못 냈다.
그러다가 소를 만났는데
나중에 기사로 보니 "하야하소"라고.
내 관점으로는 소를 학대한 행위로 보였다.
소는 박근혜와 아무 관련도 없는데
사람들로 펄펄 끓는 광장으로 끌려 나왔다.
상당히 겁에 질리지 않았을까.
우리도 꽃개를 데려갈까 생각했지만
포기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광장이란 환경이
개한테 좋을 리 없어서.
그리고 "하야하소"라는 라임을 맞추려고
그 육중한 동물을 운송한 비용을 고려해보면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저마다의 바람을 들고 있다.
바람이 불면 꺼지는 게 아니라
지난 8년 동안
이명박과 박근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지속적으로 발로 밟아 꺼 왔던 게 '민심'이란 촛불이다.
미국인들이 쓰레기로 버리는 쇠고기를 수입하고
4대 강을 쓰레기로 만드는 사업을 벌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를 죽였다는 유언비어로
당선된 뒤로는 나라 살림을 말아먹고
1달러짜리 기업을 1조 원에 인수하는
망나니 짓을 한 뒤에도
박근혜를 청와대에 꽂은 덕에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지.
박근혜 다음은 이명박이다.
#그런데 최순실 다음은
#그런데 이명박, 이다.
우리 동네엔 눈이 펄펄 내릴 정도로
뚝 떨어진 날씨에도
집에 안 가고 모여든 사람들.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면
손은 좀 시려도
추위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광화문 삼거리를 지나 주한 미국 대사관 뒷길로 갔다.
촛불은 내가 "여기 있다"는 상징이다.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말은,
무력으로 얼마든지 진압 가능하다는 뜻.
김진태는 계엄을 꿈꿨던 걸까?
1980년대 광주처럼
군인을 사냥개처럼 풀어
기관총으로 드르륵 갈기고 싶었던 걸까?
저런 말을 함부로 뱉는 자를
같은 '인간'으로 대우할 가치가 있을까?
우리가 그를 인간으로 대하는 순간
우리는 그에 의해 개돼지가 되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서 있다, 촛불을 들고.
모든 해법이 담긴 깃발.
누군가는 푯말을 들고 정중동으로 서 있다.
3년 동안 마주칠 사람들을 한꺼번에 본 느낌.
강경 시위가 주류인 유럽 사회에서는 꿈도 못 꿀 풍경.
집회 바로 옆에서 카페가 영업 중이야!
시위하다 지치면 들어가서 커피 한 잔 해도 돼!
니콘 D5500의 야간 스냅 샷은 기대 이상이었다.
1.8단렌즈를 끼우고 조리개 우선 모드로 촬영했다.
나중에 몇몇 컷은 수동으로 찍기도 했지만
충분히 생각하고 찍을 겨를이 없었다.
화이트 밸런스는 '오토'로 설정했는데
어차피 디지털 암실에서 재조정을 거쳐
큰 의미는 없다.
브런치에 올린 이미지에 주로 적용된 색온도 값은 '4030'.
분노한 40대부터 30대?
주한 미국 대사관 AT필드.
꽤 여유롭다.
잘 하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
이건 4차 집회 때 정부종합청사를 보호해준 AT필드.
국민을 섬기는 정책을 짜내는 머리는 없어도
이런 머리는 거의 천재.
철통 보안.
개돼지들은 삼팔선 넘지 말라고.
내가 선정한, 베스트 샷.
뒷길로 가면 덜 붐빌 거란 생각은 오판이었다.
불이 나도 소방차 출동이 안 될 것 같은 상황.
각자의 마음으로 내는 한 목소리.
박근혜는, 퇴진하라.
하야는, 왕이나 하는 거고.
종로 1가에서 2가까지
사람들 물결.
분노하지만 흥분하지는 않는.
여성들은 그 동안 또 얼마나 분노했을까.
여성의 사생활?
박근혜는 여성의 파탄이다.
여색을 밝힌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최순실도 마찬가지)
우리나라 여자들도 자기 아버지 같은 남자들에게
똑같이 당하길 바라는 무의식적 기도가 있었을까?
일베충 창궐,
소라넷 대박.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사유화하고
유린하는 범죄가 스포츠처럼 성행.
잡힌 뒤에는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오히려 꼿꼿하게 대드는 정서 확충.
그런 나라를 창조한 자들에게
위안부 여성이란 세월호처럼
빨리 치워버려야 하는 짐짝이었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아무것도 안 한 여자 정치인.
퇴진이, 퇴치가
되기 전에
갔으면 하지만
그 머리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
반기문이 크리스마스 전후로 들어와
박근혜를 모시고 내려간다는 썰이 있던데
그것 때문에 이정현이 12월 21일 사퇴한다고
못 박았다고.
우리는 못했지만
누군가는 해냈다.
평생 맡을 사람 냄새
하루 만에 다 맡아보는 개.
초상권 보호하느라 힘들었다.
종로 2가에서 1가를 바라본 풍경.
8시가 넘었는데
광장으로 가는 사람은 늘어나는 추세였다.
분노하되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려고 걸음을 재촉했다.
비틀거리는 파란색 실선이 우리가 걸어간 경로.
다행히 종로3가역은 경복궁역만큼 붐비지 않았다.
갈아타는 데서 만난 가족.
아빠 손에 들려있는 광장의 구호가 반갑다.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해
주말도 헌납하고 광장을 찾아야 했던
그 사람의 입장은 내 입장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철저히 짓밟아놓고도
헌법 뒤에 숨어 배째라는 아이러니.
이러려고 브런치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헬조선도
세월호도
메르스도
조중동도
종편도
박근혜도
최순실도
김진태도
없는 나라를
물려줘야 하기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