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라는 이름 뒤에 숨은 기득권자들을 생각해봤다.
손석희의 JTBC가 '최순실 태블릿'을 보도한 이후 나는 우리가 박근혜 탄핵 과정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복기해보자면 초기에는 흔히들 말하는 '하야'가 맞다고 생각했다. 너무 많은 말도 안 되는 악행이(미르와 K스포츠재단은 상대적으로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탄로 나 스스로 쪽 팔려서라도 꼬리를 말고 내뺄 거라고. (물론 나의 이러한 상식적 판단에 반성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도올의 주장대로 '탄핵'으로 가는 건 시간 낭비이고, 한 나라의 정당을 한 사람의 부정을 핑계로 해체시킨
헌법재판소의 극악무도한 행태를 봤을 때 길라임 편에 설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다고 애들처럼 탄핵 의견을 기각 처리해주는 게 아니라(그러면 큰일 난다는 거 자기들도 아니까) 최대한 질질 끄는 수법으로. 재판관 중 몇 명이 갑자기 사표를 내서 과정 자체를 무효로 만든다든지 하는. 실제 사례가 있다.
대법원에 숨은 부역자들.
18대 대선은 총체적 부정선거라는 선거무효소송을 무시하는 것으로 박근혜 정권을 용인해준 대법원 판사들. 대법이 저 소송을 법대로 처리해 박근혜 당선을 무효로 했다면 어땠을까?
세월호는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사고'로 침몰해도 구조에 박차를 가했을 것이다. 설사 '구조 실패'로 많은 사람이 사망했어도 책임 관계를 깨끗이 규명해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거나 그랬다는 이유로 패륜아들에게 둘러싸여 모욕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경찰이 쏘는 캡사이신을 맞을 일도 없고 일베충의 폭식 투쟁 같은 개막장 포르노를 구경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메르스도 신속히 대응해, 36명도 자기 삶을 이어갔을 것이고
제주도를 일본 영토로 처리한
국정교과서를 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만 아니라 법치도 프로포폴을 맞은 시체 상태였다.
경찰이 잡고 검찰이 기소하면 판사가 '유죄' 판결해 국민의 입을 꿰매버린. 이 극악무도한 범죄에 비하면 미르, K스포츠재단은 대기업 삥을 뜯은 단순 사기에 불과하다.
10월 25일.
박근혜가 범죄 사실을 모두 시인하는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금방 끝날 것 같던 이 싸움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 성격을 달리 하게 됐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예상했던 자진 하야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민과 야당은 할 수 없이 '탄핵' 절차를 밟는 분위기였고 '비박'이란 자들이 튀어나오면서 그것은 곧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게 함정이었다. 지지율 4퍼센트를 '바닥'으로 본 길라임들이 대반격에 나선 것.
3차 담화문에서 가장 눈여겨볼만한 점은 "국민"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자기가 한 모든 행위는 '애국'이었다는 망상을 자랑한 뒤, 진퇴 문제는 '국회'가 결정하라고 명령한다. 4분짜리 자유발언에 "국민"이란 대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잘났고, 내 스케줄은 국회, 니들이 정해봐.
국민은, 박근혜 때문에 화가 난 사람들은, 분노해서 눈이 내리는 광장에 나가야 했던 우리는 안중에도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박근혜 친위대이자 최순실 홍위병인 국회의원들이 그 프레임을 가져와 구축한다. 그들이 설사처럼 쏟아낸 말들엔 여전히 "국민"이 없다. 김진태가 한 말, 훅 불면 꺼지는 촛불. 즉, 국민은 '촛불'이어서 자기처럼 완장 찬 자가 훅 '불면' 언제든 꺼지는 존재라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쉽게 다룰 수 있는 국민의 '입장'이란 건 생각해보거나 재고해볼 가치조차 없다는 선언. 정진석도 '촛불'을 이렇게 받아먹었다. 광장이 아무리 뜨거워도 국회는 냉철해야 한다고. 백만 명이 아닌 천만 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와도 그건 이성을 잃은 '흥분 상태'에 불과하니 이성을 겸비한 자기들이 '냉철'하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 전형적인 엘리트주의. 하지만 압권은 손석희의 뉴스룸에 출연한 박지원이었다.
박지원이 노익장을 과시 중이란 건 인정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박지원이 야당 대표인 줄로 착각할 정도로 종횡무진하고 있는데 손석희에 의해 가면이 벗겨지고 말았다. 박지원이 자기 뜻을 고집할수록 그가 뒤집어쓴 가면이 무참하리만치 벗겨지는 대화. 그만큼 손석희가 좋은 질문을 던졌다는 뜻인데 저 워딩을 그대로 보면 참 좋은 말처럼 들린다. 3차 담화문 때 '퇴진하겠다'고 밝힌 박근혜처럼.
하지만 저 말의 주체를 "박지원"에서 "국민"으로 바꾸면 꽤 골 때리는 말이 된다.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에게 분개한 민심의 목표는 당연히 '탄핵'이다. 탄핵을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상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저렇게 '통과'를 조건으로 걸게 되면 '상정' 자체가 안 될 수도 있다. 박지원은 석 달 뒤에도 같은 말을 반복할 수 있다.
통과를 목표로 하는데 새누리당이 비협조적으로 나와 상정을 할 수 없다.
이게 대체 말이냐, 똥이냐.
그리고 비박계를 설득하겠다는 대목. 박지원을 빼고 "국민"을 넣어보자. "탄핵"을 강력히 요구하는 국민이 비박계를 설득해야 한다? 비박계가 왜 갑자기 탄핵의 주체가 됐지? 비박계는 순결한 이정현만도 못한 개쓰레기 집단인데? 박근혜를 도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던 자들이, 선거 때마다 박근혜 옆에 손잡고 서서 환호를 받았던 연놈들이, 갑자기 "비박"이라고 주장하고, 기레기들이 그걸 넙죽넙죽 받아쓰면 친박이 비박 되는 거야? 그렇게 허위사실 유포하고 기망해도 되는 거야? 탈당한 남경필이 비박이라고?
남경필은 진심 박근혜를 사랑해서 세월호 때 진도체육관까지 따라갔었다.
남경필이 저기서 마이크 들고 설친 이유를 아는 사람?
판사 출신 국회의원인 나경원은?
도움받을 건 다 받고
수 틀리니까 비박?
새누리당에 비박은 없다. 박근혜가 싫어한 새누리당 의원은 있을 수 있어도(유승민 정도?) 박근혜를 싫어한 새누리당 의원은 없다. 민주당에 (일베충 같은) 비노는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비노들은 문재인도 노무현으로 보고 싫어했다. (비노들의 세력화를 위해 종편이 건 프레임이 '친노'였다) 그렇게 튀어나가 만든 당이 국민의당이다. 새누리당에 '비박'으로 분류할 만한 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탈당 러시는 벌써 이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탈당' 안 한다. 박근혜도 '탈당'시키지 않는다. 왜?
박정희에 대한 환상으로 박근혜를 지지해준 유권자들이 만들어준 정당이니까. 그들은 변한 게 없고 그 바깥에서 무언가를 얻겠다는 생각도 없다. 국민의당은 노무현 - 문재인으로 이어진 당 정체성에 반기를 들고 나가 '전라도'라는 파이를 뜯어먹는 데 성공했다. 알다시피 민주당의 '핵'이 된 두 사람은 부산 출신이니까. 새누리당은 그렇게 뜯어먹을 '지역'도 없다. 새누리당은 곧 TK고 그 바깥은 TK만큼 보장된 약속의 땅이 아니므로.
다시 박지원의 자가당착을 분석해보자. 그는 '비박계' 때문에 죽겠다고 징징댔다. '탄핵'을 협상 대상으로 보는 자기 시각을 고백한 것이다. 그것도 나라를 말아먹은 탄핵 대상을 상대로.
국민, 흔히 말하는 민심, 최순실 태블릿 보도를 보고 분노한 사람들은 '탄핵'을 협상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탄핵'이다. 원래는 하야를 원했는데 박근혜가 싫다고 하니까 '탄핵'으로 옮아간 것이다. 다른 카드는 없다. '탄핵'은 즉각 이뤄져야 하는 일이지 이런저런 조건과 교환될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박근혜는 단죄의 대상이지 협상 파트너가 아니다. 아무리 헬조선이라도 그런 법은 없다. 범죄자는 '반성'할 때까지 맞는 거 말고 다른 길이 없다. 하물며 코흘리개 애들도 거짓말하면 부모한테 맞는다. "거짓말"은 나쁜 짓이니까 하지 말라고.
일국의 대통령이란 자가 최순실 일가를 위해 지난 4년간 매일 같이 "거짓말"을 해왔는데 '탄핵' 때조차 협상 파트너로 삼자고? 비박이든 친박이든 개박이든 그들은 분노한 국민의 협상 파트너가 아니다. 그것들은 단죄의 대상, 박근혜 같은 자를 청와대에 앉혀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공동정범이다. 이정현, 김진태, 정진석, 김무성, 유승민, 남경필 모두 예외 없이 탄핵 대상이다. 이혜훈은 '용감하게' 인터뷰에 응해 박근혜가 그런 분인 줄 몰랐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말이야말로 처벌 대상인 위증이라고 본다. 전여옥은 알았는데 이혜훈은 왜 몰라? 전여옥 정도의 '지능'만 있으면 다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다 큰 어른이, 그것도 정치판에서 난다 긴다 하는 자들이 그걸 몰라봤다고? 박근혜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김어준도 인터뷰 두 번째 질문만에 알아차렸다는데?
김어준 :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누가 있어요?
길라임 : 영국의 마가렛 대처요.
김어준 : 마가렛 대처의 어떤 점을 존경해요?
길라임 : (시선을 피한다, 손톱 밑을 살핀다)
김어준 : (뻘쭘하고 무안해진다. 씨바 괜히 물었나?)
몰랐다는 게 아니라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고 그런 비정상적인 면을 외면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선'이다. 어떤 면에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근혜보다 더 악질이다. 단지 자기 '당선'을 위해 표를 모아주는 박근혜를 이용했을 뿐이니까.
박지원이 이런 사정을 몰라서, 이런 정치 공학, 사이코패스들이 국민을 위하는 척 '가면'을 쓰고 오직 '당선'만을 목표로 활동한 뒤 완장을 차면 온갖 '갑질'과 '분탕'질로 헬조선 체재를 강화해왔다는 거, 그런 배후 구조를 몰라서 마치 우리가 비박계를 설득하면 불쌍해서라도 탄핵에 응해줄 거라 '믿었다'?
몇 달 새 50여 개의 법안을 제출하느라 국회 거지가 됐다는 박주민 의원이 그런 말을 했다면 몰라도 박지원이 하는 말을 누가 믿나? 비박 핑계를 대며 '통과'가 어려울 거라는 복선을 깐 것은 사실상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본심'이 아니었을까? 박지원은 심판이 목표인 우리와 달리 '정권'을 잡는 '권력욕'을 해소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민주당을 찢고 나가 '전라도' 파이를 뜯어먹은 것처럼. 김대중 대통령이 보시면 참 잘한다고 물개 박수 칠 것 같은데.
3차 담화문을 필두로 박근혜 부역자들의 워딩도 달라지고 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확정 판결을 남겨놓은 새누리당 김종태가 종북 좌파 빨갱이가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박근혜가 국민대통합위원장으로 최성규 목사를 꽂는 걸 보면서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박근혜와 싸우는 게 아니었구나. 박근혜 치마폭에 숨은 기득권 세력과 싸우는 거였어.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대리전쟁을 치렀던 것처럼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만든 기득권 세력과 개돼지 신분에서 사람 신분으로 상승하길 원하는 우리가 박근혜 탄핵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고.
기득권 세력에게 박근혜라는 카드를 탄핵으로 정리하는 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대한변협은 대표적인 보수 세력이다. 어버이연합과 달리 '가진 게 많은' 보수 세력이다. 변협조차 개돼지 신분에 갇힌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요구를 내놓았다. 그러니까 "기득권 세력"이라고 해서 박근혜를 지키는 것에 다 같이 목숨을 걸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어떤" 기득권 세력은 박근혜에 쓸데없는 자존심을 건 것으로 보인다. 마치 세월호 7시간처럼.
그냥 국민이 원하는 대로 까서 보여주면 되는데 개돼지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빈정 상해서 "죽어도" 안 보여주기로 작정한 기득권 세력 특유의 똘끼. 김기춘이나 우병우 같은. 3차 담화문은 박근혜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다. 개돼지들한텐 절대 질 수 없다고 분개한 기득권 세력이 작정하고 만든 선전포고다. 촛불 들고 기어 나온 개돼지들은 족 까시고 가슴에 금배지 단 기득권의 총아인 국회한테 근사한 출구전략 짜 보라고, 던진 것이다. '짜 볼 수'나 있나, 비웃는 심보로.
박지원이 자기주장대로 민심을 대변하는, 최순실 홍위병을 자처한 기득권 세력과 싸우는 정치인이었다면 손석희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
박근혜의 3차 담화문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다.
('덫'이라고 인정해주는 발언 자체가 '덫'이다)
박근혜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인 것 같다.
(3차 담화문에 숨겨진 비의 따위는 변기로 내려)
우리는 오로지 국민만 본다.
(비박계가 아니라!)
우리는 탄핵을 상정할 것이고 탄핵안은 당연히 100프로 통과될 것이다.
(안 될 것 같아도,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전략적 발언을 해야지!)
여기서 탄핵이 안 되면 박근혜에 대한 분노가 국회로 쏟아질 것이다.
(당연하지!)
새누리당이 박근혜와 달리 제정신이라면
(굳이 비박계라고 구분할 필요 있나?)
당연히 120프로 탄핵에 찬성할 거라 믿는다. 그래야 한다. 그게 역사다.
박지원이 이런 식으로 말했다면 탄핵안은 무난히 통과되었을지 모른다. 탄핵안이 통과되지 않았더라도 그는 구국의 영웅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누구보다 정치를 잘 아는 그가 왜 이렇게 좋은 기회를 스스로 말아먹었을까? 탄핵이 되면 어쩌나 하는 본심을 감출 수 없어서.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의 활약으로 인해.
12월 1일 목요일 밤에 방송된 '썰전'에서 유시민은 박근혜 3차 담화문을 멋지게 번역했다. '나르시시즘' 대목의 한 부분은 내 생각과 달랐다. 진짜로 애국심이라 믿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은 아닌 것 같다.
박근혜는 거짓말쟁이다. 이명박만큼 거짓말에 능하다. 세월호 담화문 때는 '눈물'까지 흘렸다. 그런 거짓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다. 불과 일주일 전에 한, '조사'를 받겠다는 말도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뒤집는 작자다. 그럼 그때 검찰 조사를 받겠다는 말이 '진심'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박근혜는 20살 시절부터 거짓말을 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태민과의 관계를 독재자 아버지 앞에서 숨기려면 거짓말에 능해야 했을 것이다.
'거짓말'은 위장과 관련 있다. 박근혜는 '거짓말'을 통해 자신을 '피해자' 신분으로 위장하는 데 능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쏟아진 각종 의혹(나중엔 다 사실로 밝혀진)에 대해 늘어놓은 거짓말들을 보면 마치 자기가 그런 의혹 제기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봤다는 태도를 취한다. 검찰 조사를 받겠다고 해놓고 검찰 조사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로 '피해자' 행세.(세상에 어느 피의자가 검찰을 중립적으로 보고 그냥 '두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항상 이런 식이다. '모른다' '몰랐다'고 하는 건 그런 입장이 거짓으로 속일 때 유용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죄의식 없는 확신범.
나는 노회찬 의원의 묘사가 박근혜에 관한 가장 적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어리버리하게 말을 더듬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고장 난 소시오패스 같았는데 사실은 '동정심'을 유발하는 사이코패스 기질이었던 것.(어떤 연쇄살인범은 희생자를 유혹하려고 장애인으로 위장한다) 그런 식으로 유권자 표를 긁어모아온 것이다.(이번에 대구의 서문 시장을 방문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니었을까)
최순실을 위해 재단을 만들면서 오로지 나라를 위해, 애국심으로 했다는 말을 유시민은 액면 그대로 받아줬다. 정말 나르시시즘에 빠져 그랬을 수 있다고. 이런 거다. 성폭행범을 체포해 범죄 동기를 묻자
"사랑해서"라고 말한다. 피의자들은 원래 제멋대로 말하니까 그렇다 치지만 검사와 판사까지 그 말을 사실로 "인정"해버리면? 아, 저 남자는 저 여자를 "사랑"해서 강간했구나, 라고 납득하면 재판 결과가 얼마나 끔찍하게 나올까.
유시민의 정세 분석이 내 생각과 일치한 부분은 분노한 국민의 마음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탄핵이 부결되면 분노로 가득 찬 에너지가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른다는 것. (손석희 앞에 선 박지원이 오독했던 부분, 국민은 박지원에게 탄핵을 시키라고 명령했지, 탄핵이 부결되면 어떡하나 걱정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뉴스룸에 초대된 문재인 원래 대통령이 손석희와 재미난 신경전을 벌였다. 박근혜가 즉각 퇴진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자 문재인 원래 대통령은 두 가지로 답했다. 하나는 헌법에 따라 60일 내에 선거를 치러 대통령을 뽑는다. 또 하나는 국민의 민의를 물어 따라가기.
손석희가 계속 물었다. 내가 봤을 땐 네 번인가 다섯 번은 물었던 것 같다.
국민의 뜻을 물어 결정한다는 건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문재인 원래 대통령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손석희가 추궁하듯이 반복해서 묻자 결국 문재인도 항복했다. 헌법대로 하면 된다고.
이걸 가지고 일베충들은 문재인을 엄청 깠다. 60일 내에 선거하면 자기가 무조건 먹는 거니까 낯간지러운 가식적인 말을 한 거라고. 워낙에 싫어하면 그런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문재인을 가식적인 인간으로 본다면 그가 하는 모든 말이 '가식'이란 결론이 가능하므로. 하지만 나는 문재인 원래 대통령이 얼버무린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이다.
헌법에 우선하는 국민적 합의? 혁명이지.
유시민이 '김이 끓어오르는' 상황이라고 한 그것.
종북, 좌파, 빨갱이, 국민은 이제 그만 하고, 정치권에 맡겨야. 촛불 민심은 뜨거워도 국회는 냉철해야. 탄핵 반대한다고 비난하는 건 홍위병을 떠올리게 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져. 4월 퇴진, 6월 대선. 국회가 합의해주면, 개헌. 비박계 때문에 탄핵 안 될 수도.
이 모든 워딩의 반대편에 문재인이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있었던 것.
여기서 우리가 이기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경제가 폭망이고 재정 적자도 심각해 다음 대통령은 누가 하든 5년 내내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 똥만 치우고 끝날 가능성 높다) 하지만 지면 어떻게 될지는 누가 봐도 명확해 보인다. 박근혜와 최순실에 부역한 기득권 세력을 배 불리는 헬조선 개돼지로써의 삶이 연장된다는 거. 우리는 이기고 있지 않다, 당신이 분노하고 있는 딱 그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