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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CON Mar 14. 2017

정신없는 하와이 여행 10 하와이에서 쇼핑하는 재미

오아후 섬 워드 빌리지에 있는 노드스트롬 랙에서 아들 신발을 득템했다.


알리이타워 1층.

나는 로비 상주 직원에게, 아침에 요청한 서비스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TV가 DVD 플레이어를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를 내가 *직접 해결해서. 


영국에 축구가 있다면 일본엔 만화가 있다.


일본 관광객을 위해 돌아다니는 버스를 줄기차게 보낸 뒤 '더 버스'에 탔다.

알라 모아나 쇼핑센터를 도보로 가로질러 도로 몇 개를 건너자 TJ맥스 간판이 보였다.



노드스트롬 랙은 바로 옆 건물이고, 입구도 바로 옆에 있는데



대각선 방향에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본 것과 비슷한 건물이 있었다.



어반 하이브 빌딩.



우리끼리는 벌집 건물이라고 불렀는데 땡땡이 빌딩이라는 애칭이 있다고.



옛날에 아들이 저 건물 1층에 있는 '테이크 어반'에서 *뽕빵을 먹기도 했다.

예쁜 인테리어에 높은 층고가 쾌적해, 집 근처에 있다면 자주 출석했을 *카페였는데...



추억은 법정에서 유효할까?

사진으로 찍어두지 않은 추억은, 법정에서 어떻게 증명될까?

증거가 없으면 사실로 인정해주지 않는 법정이야말로 현실을 망각한, *비현실적 공간이 아닐까?

쇼핑 작전 개시.



넓은 매장에 옷과 신발이 사이즈 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책에 의하면 노드스트롬 랙은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이월상품이나 작은 하자가 있는 상품들을 파는 데라고.

1층은 남성 패션, 2층은 여성 패션 및 잡화로 구성돼 있었다.

옷은 작년에 괌에서 *실컷 사서, 곧장 신발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우리 *때도 그랬지만 사춘기는 유독 브랜드에 민감한 것 같다.

신발은 브랜드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

아웃도어 따위의 옷들은 계절을 타지만 운동화는 외출 중일 때 늘 함께 하니까.



우리는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을 밀었다.



잘은 몰라도 비싸게 팔리는 브랜드니까 웬 떡이냐 싶었는데 아들은 어디서 듣보잡 신발을 골라왔다.




호카 원원?

디자인도 우리가 '좋다'고 느끼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아들의 감각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건 평소 느꼈던 거라 놀랍지는 않았다.

아들은 꽤 단호하게 그 신발을 마음에 들어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택'이란 나머지 모든 가능성을 버린다는 의미다.

그걸 사서 무척 행복한 것 같지만 실은 나머지 가능성을 모두 버린 결과이기 때문에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소비량을 증가시킬 목적으로 상품 사이클을 패스트하게 돌리는 요즘엔 그런 상실감이 더하다.

신상품을 손에 넣은 기쁨이 하루 반나절도 넘기 힘들다.

그 점을 알기에 이럴 때마다 나는 아들을 회유한다.

다른 좋은 신발도 있으니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아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사이즈가 아슬아슬했지만 아들의 성장 속도가 빨라 한 사이즈 큰 걸 사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가 검색에 들어갔다.


이 글의 편의상 검색한 화면이다.


당시 아내가 검색한 화면은 네이버 쇼핑이었다.

일단 값이 만만치 않았는데 정식 수입 업체 없이 대행 구매를 해서 그런 것 같았다.


하와이 여행기에 나오는 모든 가격 비교 출처는 '다나와'.


나쁘지 않은데?

담아.



내가 겨울용으로 고른 신발은 스페리.



똑같은 제품은 아니었지만 헬조선에서 비싸게 팔리는 물건을 싸게 사는 느낌은 없었다.


왜 나는 항상 이런 물건만 *걸리지?

아내는 좋은 브랜드 제품이 많다며 이것저것 추천했지만 스페리보다 끌리는 물건은 없었다.



헬조선 엘리베이터 4층에는 'F'가 있고, 미국 엘리베이터 1층에는 '스타'가 있다.



1층에서 꽤 좋은 쇼핑을 했다고 판단한 아내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아내가 충분히 고를 수 있게 아들을 데리고 구석진 데로 철수했다.


어메니티로 제공되는 면도기는 내 턱을 밀지 못했다.


둘 중 어느 걸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는 '결정 장애'는 사실은 둘 다 갖고 싶다는 고백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색깔별로 사놓는 게 제일 좋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몸을 가진 어른은, 그런 소비 패턴도 가능하다.

우리는 돈을 주고 그걸 '소유'한 듯 보이지만 상품의 효용가치가 제한되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그 물건을 사용할 '일정한 시간대의 기회'를 가진 것뿐이다.

옷은 바래고 신발은 닳고 현대차는 부식한다.

그런 점에서 취향은, 부자들에게 불가능한 감각이다.

당신이 부자고 차를 좋아해 마세라티 매장에 갔다 치자.

정열의 빨간색인지 카리스마의 검정색인지 고민한다면 당신은 부자가 아니다.

부자는, 둘 다 산다.

요즘은 부자들이 성격도 *좋다는 말도 이런 감각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매 순간 신중해야 한다.

감각을 뾰족하게 세워야 한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한 지점을 정확히 뚫어야 한다.


이걸 한 번 좋아해 볼까?

하는 모험심은 버리는 게 좋다.

실패하면 *낭패니까.



오아후 섬의 쇼핑 공간은 그렇게 네거티브적으로 길들여진 당신의 감각을 테스트하기 좋은 곳이다.

상품들이, 오색찬란하다.



어디 한 번 고를 수 있나 두고 보겠다는 듯.

결정 장애가 심한 이들은 여기서 정신이 분열될지 모른다.



뭘 골라도 그걸 들고 돌아서는 순간 



다른 걸 고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의심에 사로잡힌다.

아들 신발이 109.97달러,

내 신발이 49.97달러,

아내 신발이 49.97달러,

아내 슬리퍼가 14.97달러,

피부를 식히는 알로에 젤이 9.97달러,

세금이 11.07달러,

도합 245.92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8만5267.2원.

기말고사처럼 신중한 쇼핑을 마친 우리는 TJ맥스로 건너갔다.



내심 기대했던 곳인데 의외로 별로였다.



노드스트롬 랙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반전에 가까운 결과였다.


머그컵 크기가 백인들의 큼직한 손을 떠올리게 했다.



상품의 질은 '중에서 하'로 보이는데 가격은 '중에서 상'에 걸쳐진 느낌이었다.



꽃개(반려견)를 위한, 애견 용품 코너도 마찬가지였다.



품질 대비 가격이 *비싸게 느껴져 뭐 하나 속시원히 고를 수 없었다.




노드스트롬 랙은 발견,
TJ 맥스는 실패.

스포츠 어쏘리티는 꼭 가보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시간도 늦고 다리 힘도 풀려 엄두도 못 냈다.



여행지에서는 트럭조차 인상적이다.



며칠 뒤 와이켈레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마주친 마시자, 코카*콜라 트럭.

미국의 사이즈가 느껴진다.



저녁은 알라 모아나 쇼핑센터에 있는 마카이 푸드에서 때웠다.



아들은 *겸손하게 감자칩과 음료를 골랐다.



감자칩이 4.69불,

음료가 3.69불,

세금이 0.39불,

도합 8.77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0173.2원.



아내와 나는 블루 워터 쉬림프에서 스테이크와 쉬림프를 시켜먹었다.



영수증은, 없다.

그렇다면 맛은?



클리어.

아들이 고른, 치즈가 든 감자칩 맛은?



클리어.



이번엔 나도 음식을 주문해보겠다며 이탈리아 피자 가게에서 내일 아침 먹을거리를 시켜봤다.

먹음직스럽게 생긴 *스트롬볼리(stromboli)를 두 개 시켰다.

진열장 앞에 있는 것 하나, 저쪽에 있는 것 하나.

영어를 못 하니까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원', 저쪽 거 가리키면서 '원' 했는데 직원이 '오케이' 하고 끝내길 바란 내 기대를 저버린 채 자꾸만 무언가를 확인했다.

긴 문장이 아니었다.

그녀는 뭐라고 짧게 되물었다.

'원'이었는지, '투'였는지 그것조차 확실히 들리지 않았다.

처음으로 영어 때문에 당황한 순간이었다.


'이거' 하고 '저거' 주세요.

라는 바디랭귀지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그녀가 따지듯 되묻자 영어처럼 들리던 말이 외계어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알리이타워 로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

내가 룸 넘버를 대고 무언가를 요청한 상황이었는데 직원이 '오케이' 하는 대신 내게 뭔가를 요구했다.

그건 아무래도 '패스포트' 같았다.

그런 것 같다고 짐작은 했지만, 단어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그 직원은 내가 못 알아듣는 걸 알고, 더 천천히 발음했다.


젠장!

보통으로 말할 때보다 더 알아듣기 힘든 단어가 되어버렸다.

동영상을 느리게 재생하면, 등장인물의 대사가 엿가락처럼 늘어져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되는 것과 유사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의사소통에 실패했고, 직원은 말도 못 하는 손님을 상대하는 것에 짜증냈지만 결국은 내 뜻대로 됐다.

내가 가리킨 스트롬볼리 두 개가 포장지에 싸여 전달됐고, 나는 값을 치렀다.

Bacon stromboli가 6.69불,

Pepperoni stromboli가 6.69불,

세금이 0.6불,

도합 13.98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6216.8원.

돌아오는 길에 ABC 스토어에 들려 맥주를 샀다.



미국 영화에서 봤던 그 봉투다.

'술'을 샀다는 걸 감춰 주는 기능이 포함된.


빨간색 화살표가 병따개.


복도에 나가 뚜껑을 딴 뒤


안주로 올라온 샌드위치는 낮에 먹다 남긴 서브웨이, 과자는 월마트에서 산 썬칩.


건배.






다음 편에 계속






*직접 ; 그 내용은 다음 편에서 밝히겠다. 어쩌면 그 이후가 될 수도 있겠는데, 내러티브 구조상 그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뽕빵 ; 때때로 어떤 음식은 마약처럼 아이를 흥분시켰다.

*카페였는데 지금은 맛없는투썸플레이스가 영업 중인 걸로 알고 있다. 유감이다.

*비현실적 ; 법꾸라지의 비인간성이 그렇게 강화되는지도.

*실컷 ; 아내는 GPO(괌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천 불을 지른 뒤 스스로도 깜짝 놀라 숙소에서 냉정을 되찾아 200불어치를 환불받았다. 내 경우엔 아직 태그를 제거하지 않은 옷도 있다.

*때도 ; 나이키를 위시한, 프로스펙스 따위의 브랜드가 태동한 시기. 브랜드의 계급화는 곧 타인의 계급화로 이어져 '나이스'라도 신어야 하는 형국이 됐다.

*걸리지 ; 스와치 시계도 그랬다.

*좋다 ; 최순실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그녀는 부자가 아닌 것처럼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했다. 유년기 시절의 핍진한 삶에 고정된 정서가 수백, 수천억 원의 재산을 가진 뒤에도 여전히 게걸스럽게 재화를 흡입하도록 동력을 부여한 결과가 아닐까.

*낭패 ; 당신이 자동차 색깔을 흰색으로 고른, 대체적인 이유.

*비싸게 ; 절대적 감각이 아닌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는 가격이 '싸서' 마음에 들었다고 할 수도 있다.

*콜라 ; 우리나라 콜라와 다른 맛이다. '서양'스런 향이 있는데, 그게 꽤 강하게 맛을 지배한다.

*겸손 ; 값나가는 신발을 지른 형편과 균형을 맞추려고.



*스트롬볼리 ; 화산이 검색됐는데, 내가 산 음식은 빨간 박스를 친 빵처럼 생긴 피자다. 동그란 피자를 김밥처럼 돌돌 만 형태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런 음식일 거라고 알고 산 건 아니다. 그냥 즉흥적으로 구매한 건데 맛은 다음 편에서 밝히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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