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생명의 빛에 대한 고민

요한복음

by 김혜진

220127.목 / 요7:53-8:20


> 요약

예수님이 백성들을 가르칠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어찌할지에 대해 물으며 시험한다.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자 가책을 느껴 그 자리를 떠난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정죄하지 않으니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빛이라 하니 이 증언이 참되지 않다고 바리새인은 주장하고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기에 증언이 참되다 한다.


> 묵상

예수님에게 다가오는 이들 중 바리새인과 서기관, 종교지도자들 같은 경우는 예수님을 알아가기 위한 교제의 목적이 아니라 시험하고자 예수님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 된 다가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이 예수님을 다 이해하진 못해도 알아가고자 하는 유연한 마음만 있었어도 얼마나 좋았을까?

늘 여러 가지 시험에 빠져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고자 하는 이들의 오늘 시험거리는 음행한 여자를 율법대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관계의 목적처럼 이 과정 또한 정말 치사하고 더럽다고 생각된다. 일단 행음하는 여자를 어떻게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성이 행음하는 대상은 어디에 있는가? 행음한 여성의 성적대상이 여기 없다. 그리고 행음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끌과 와 가운데 세운다. 죄를 지은 사람의 인격이란 존재하지 않는 건가? 여기서 옳다고 여기는 것을 행하는 무리들의 폭력성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옳고 저 여성과 예수는 잘못되었으니 이 여성을 함부로 대하고 돌로 쳐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잔혹함 말이다. 난 모든 죄인들이 죄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옳다고 여기고 그 최소한의 법적인 제재가 너무 약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들은 죽어도 마땅한 자라고 단정지어 그들을 대하는 방식에 폭력성을 띄는 것에는 반대한다.

어찌되었건 예수님은 손가락으로 땅에 쓰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하시므로 무리들이 잠시 멈출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그 잠시의 멈춤의 시간이 그들에게 효과적이긴 했던 거 같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성경은 기록하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이들이 그 자리를 피해 숨어버림으로 상황을 마무리짓는 방식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에 직면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은 정죄한 자가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을 아시면서도 물어 보신다. 그리고 자신도 정죄하지 않을 거라며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한다. 어쩌면 예수님에게 죄만큼 정죄 또한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김근주 목사님 설교에서 다시 죄를 짓게 되면 그녀를 정죄하지 않고 친구가 되어줄 예수님이 곁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목사님만의 상상을 더한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그건 예수님이 그녀가 죄를 또 짓길 바라는 것과 거리가 먼 것이라 생각한다. 행음한 여자가 정말 죄를 짓고 그 자리에 끌려 온 거라면 죄를 짓지 않길 바라셨을 거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단번에 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노력해도 넘어지는 것이 인간이기에 그녀가 또 넘어진다면 그때 예수님은 그녀를 돌로 쳐 죽인다고 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런 측면에서 당시 설교가 공감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빛이라고 설명 하시는데 바리새인들은 동의하지 않지만 어찌되었건 생명의 빛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때 예수님의 정체성과 관련된 죄와 멀리 하는 생명의 빛을 말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예수님이 보이신 행동처럼 죄로 인해 위축된 이가 어둠으로 다니며 자신의 죄에 대한 낙인으로 세상과 더욱 단절된 채 더한 어둠 속으로 다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죄를 직면하고 동시에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의 빛을 얻어 변화되어 갈 수 있음을 모두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즉, 정체성과 관계 그리고 그로 인한 태도의 변화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 생명의 빛이 아닐까?


> 삶

1. 사람과 죄를 분리할 수 있는 것, 그러나 죄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질 수 있는 사회적인 제도와 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할 수 있는 것들을 행해야지.


> 기도

하나님, 죄없는 예수님과의 관계도 알아감이 아닌 시험들게 함인 그들인데 예수님은 죄있는 여인을 포함한 우리와의 관계를 시험에 걸려 넘어지게 함이 아닌 알아가고 위로하며 치유하고 회복시키심을 봅니다. 결국 예수님의 관계의 목적과 방식 그로인한 태도 모든 것들이 생명의 빛임을 느낍니다. 아무래도 예수님이 빛이시니 그런 거 같아요. 하나님, 죄인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가 죄에 대한 대가를 받고 죄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느끼게 할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너무나도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 가벼운 죄값을 받는 이들을 봅니다. 하나님 그들을 사랑하신다면 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그에 따른 법이 마련되길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죄인은 죽어 마땅하다며 목소리내며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끌고 세우는 똑같이 비 인격적인 태도는 아니길 기도합니다. 중심과 균형을 이루기란 쉽지 않으니 주님, 우릴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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