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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진 Jan 09. 2024

내가 정한 정체성의 경계

요한복음 1:19-34

20240102.화 / 요 1:19-34


> 요약

종교적 기득권자들이 세례요한에게 네가 누구냐 묻는다. 요한은 자신이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자일 뿐 선지자도 그리스도도 아니라 하니 그러면 왜 세례를 베푸냐 한다.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 뿐이라 한다. 이튿날 요한은 예수를 보고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한다.


> 묵상

종교 지도자들은 세례요한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다. 아마 이들은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요한이 정확히 뭔지도 몰랐을 거 같다. 

한마디로 '응? 얘 카리스마 있고 뭐가 있는 거 같은데 그리스도는 아닌데 그럼 대체 뭐지?' 하는 마음이었을 거 같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자신은 그리스도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라고 한다. 

그러니 종교 지도자들은 의문이 든다. “그럼 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데?” 결국 요한의 정체성과 요한의 행위를 연결 짓는다. 

그래서 요한은 또 대답해 준다. 자신이 주는 세례는 물 세례를 베풀 뿐이고 자신의 뒤에 오는 이가 진짜 임을 말이다. 

여기서 그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급기야 이튿날 예수님을 보자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한다.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했고, 예수님과 자신의 정체성 차이를 정확히 알았던 거 같다.

이게 너무 당연한 건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게 정말 순식간에 뒤집히고 수시로 뒤집힌다.

나는 분명 나의 정체성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임을 아는데

정말 시시 때때로 밥먹고 숨쉬듯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서 ‘내가 곧 하나님’이 되어버린다.


Q. 나는 나의 정체성의 경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남편이 실직을 했고 2주에서 한 달을 쉬고 싶다고 선언하듯 얘기했다. 

이제까지 정말 성실히 일만 해온 남편에게 마땅한 쉼이라 여겨진다.

사실 어제까지는 주말이 신정이였으니 실직과 관계없이 쉬는 날이었을 거다.

그러니 사실 실직하고 집에서 쉬는건 오늘부터 시작되는건데 나는 벌써부터 갑갑하기 시작하다.


그냥 남편이 집에 앉아 있는 거 자체가 갑갑하다.

3일간 남편이 밥하고 설거지하고를 다했다. 거기에 청소기 돌리고 부탁하는 일 있으면 부탁한 거 다 들어주는데도 말이다. 


Q. 나는 왜 갑갑한가? 


이건 내가 그리는 남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는 남편은 돈벌고 아내는 집안일을 하는 그림이다.

그렇게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내가 그려놓은 것은 나의 상처와 개인적 사연에 의한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원하는 모양의 사랑을 받지 못해 내가 원하는 사랑을 해줄 이를 바랬고, 그것이 남편이길 바랬다.

가정이 한 번 깨져서 그 꿈이 산산조각 났지만 그럼에도 또 내 이상에 상대를 맞추고 싶어한다.


그러니 남편이 아무리 집안에서 많은 일을 한다해도 갑갑하다. 

이러다 집안 일 하는 사람이 2명이 되고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게 되면 돈을 안벌고 싶은 내 바램도 위협받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남편이 없으면 이 공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인데 뭐랄까 그런게 사라지는 기분이다. 

결국 나는 이 곳에서 내가 왕노릇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남편이 오만가지 다 해줘도 그의 디테일은 내가 원하는 기준도 아니니 만족도 감사도 별로 없다.

그냥 순간 밥해주고 그거 얻어먹을 때만 좋지 설거지 해놓은 뒷마무리 같은 걸 보면 속이 뒤집힐 거 같다.

지금이야 같이 있은지 3일밖에 안되어서 그렇지 기간이 길어지고 갈등이라도 발생하면 

나는 ‘아내’의 정체성에서 그리고 인간대 인간으로서가 아닌 내가 곧 하나님이 되어 뭐든 옳고 그름으로 남편한테 잔소리를 할 게 분명하다.


남편이 쉼을 갖고 싶다고 한 기간 동안 남편을 짐짝처럼 여기지 않고

쉼을 충분히 갖도록 그를 편히 대해야 하지 않나 싶다.


> 삶   

남편이 쉬는 기간을 정말 2주에서 한 달을 채운다 하여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남편이 있고 남편이 집안 일 한다고 남편에게 다 맡기지 않고 나는 나의 역할을 잘 하기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다 나았으니 내가 요리하자)


> 기도

하나님, 세례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았고 또한 예수님과 자신의 차이 또한 알았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 했는데요. 저는 정신 차려보면 예수님 신발을 내 신발처럼 신고 달려나가 있습니다. 주님, 부디 주님보다 앞서지 않게 하시고 그렇다고 주님 가는 길 나몰라라 하지 않길 기도합니다. 남편이 쉼을 갖고 싶다는 기간동안 잘 쉴 수 있도록 돕게 하시고 남편이 집안 일을 잘 한다해서 내가 나의 역할을 놓지 않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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